O 보라, 내가 새 하늘들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이 기억되거나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17)
For, behold, I create new heavens and a new earth: and the former shall not be remembered, nor come into mind. 17)
번역에서 For에 대한 의미반영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의미없는 성경의 단어는 없습니다.
"그러니 보라" 라고 하는 것이 번역자의 올바른 자세라고 보여집니다. 그러니(For)의 의미는 앞절에 있을 것입니다.
앞절의 내용을 요약해보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세상에 타협한 자들은 심판을 받을 것이지만, 죄 있는 하나님의 종들은 그들이 가진 죄의 장애가 기억되지 않고 생각나지 않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새 하늘들과 새 땅을 창조하심은 죄인이었던 하나님의 종들의 죄를 기억하지도 생각나지 않도록 하기위하여 이 세상을 다시 창조하심입니다. 마치 않좋은 기억이 있는 동네를 떠나 새로운 곳으로 이사하는 것처럼 말이죠. 하나님은 자기의 종들의 죄의 장애를 가진 것을 잊고 소멸시키기 위하여 세상을 다시 만드시는 분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만드심과 가장 유사한 것은 태초가 시작될 때였습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느니라.
In the beginning God created the heaven and the earth.
창세기 1장 1절
그런데 위 말씀들을 비교해보면 시작때의 만드시는 하늘은 the heaven으로 단수 인데 비해 새 하늘들과 새 땅에서는 new heavens로 복수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태초보다 더 거대한 창조가 이때 이뤄진다고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으로 영원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움으로 창조하고 그 백성을 기쁨으로 창조하노라. 18)
But be ye glad and rejoice for even in that which I create: for, behold, I create Jerusalem a rejoicing, and her people a joy. 18)
"과거의 죄를 잊어버리고 그러나 하나님의 창조를 바라보고 기뻐하라."
"과거의 죄를 잊어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창조를 바라보고 기뻐하라."
여러분이 보기에 그러나와 오직 둘중에 어떤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집니까? 성경에서는 but이 오직, 다만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기서는 but이 오직 또는 다만으로 읽는 것이 매우 자연스럽습니다.
create Jerusalem a rejoicing
create her people a joy
and 절로 이렇게 대칭이 되어 있습니다. 예루살렘은 rejoicing이고 그녀(예루살렘)의 백성들은 joy로 기록되었습니다.
rejoice ① 기뻐하다 ② 환호하다
joy ① 기쁨 ② 즐거움 ③ 행복 ④ 환희
예루살렘은 도시로 그녀(her)로 불리며 대표명사로 기뻐함으로 창조되었고, 그녀(예루살렘)의 백성은 기쁨 그 자체로 창조 되는 것입니다. 집단을 그녀로 가리켜서 인격으로 대우하시지만 기뻐함의 대상이 되는 것이고, 그 예루살렘의 백성이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기쁨이 모여 기뻐함이 되는 것이라고 느껴집니다.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워하며 내 백성을 기뻐하리니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그 가운데서 더 이상 들리지 아니하리라. 19)
And I will rejoice in Jerusalem, and joy in my people: and the voice of weeping shall be no more heard in her, nor the voice of crying. 19)
weeping ① 눈물을 흘리는 ② 진물이 나는 ③ 비가 오는
이 땅의 예루살렘은 눈물을 흘리는 소리와 우는 소리가 그치지 않았으나,
새롭게 창조된 새하늘들과 새 땅에 있는 예루살렘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기뻐함으로 예루살렘의 백성들은 기쁨으로 받아들이시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날 수로 되는 아기도, 자기 수명을 다 채우지 못한 노인도 더 이상 없을 것이니 이는 백 세에 죽는 자가 아이요 백 세가 된 죄인은 저주를 받는 것이 될 것임이라. 20)
There shall be no more thence an infant of days,
nor an old man that hath not filled his days: for the child shall die an hundred years old;
but the sinner being an hundred years old shall be accursed. 20)
이사야 65장 17절 ~ 20절
thence ① 그 때부터 ② 거기서부터 ③ 그것이 원인으로
이곳은 새하늘들과 새땅의 예루살렘이라는 것을 잊으면 안됩니다. 그런데 새 하늘들과 새 땅에도 죽음과 죄가 존재합니다.
chird shall die an hundred years old.
sinner being an hundred years old.
이 땅에서는 날수로 나이를 가늠할 영아의 죽음도 있습니다. 그러나 새 하늘들과 새 땅의 예루살렘에는 그러한 불행한 일은 없는 것입니다. 죽는 자가 백세여도 아이고 죄인이 백세여도 저주를 받음입니다. 이 말씀은 새하늘들과 새 땅의 예루살렘에는 늙음이 없고 창조 직후 처럼 사람의 생명이 매우 긴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 땅에서 백세에 죄인이 된자는 감옥에 가도 그의 생이 얼마 남지 않아 저주가 되지 못하기도 합니다.
새 하늘들과 새 땅의 예루살렘에는 백세도 아이고 백세에 죄를 선고받으면 그가 죽음이 멀었으므로 저주가 되는 것입니다.
긴 수명이 보장되고 오래사는 새 하늘들과 새 땅에도 죽음과 죄가 존재한다는 것이 위 말씀에서 발견하는 새로운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