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우의 죽음은 삼국지에서 큰 분기점이 된다. 관우를 죽인 여몽도 죽고 그 이듬해에는 조조도 죽는다. 그리고 관우의 원수를 갚으려던 유비와 장비도 죽는다. 적벽대전 이후 형주를 차지하고 촉과 한중까지 점령했던 유비다. 그러나 그가 이릉대전에서 패하면서 촉나라의 세력은 급속히 약화된다. 삼국지의 3대 대전 중 하나인 이릉대전 이후 삼국지는 2세대로 주인공이 넘어가게 된다. 적벽대전 이후 손권은 형주가 자기의 땅이라고 생각했다. 언제든 빼앗고야 말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었다. 때가 왔다. 219년 유비가 한중을 공격하는 것과 때를 맞추어 관우가 북상해 위나라를 공격했다. 손권은 여몽을 앞세워 형주를 점령했다. 형주를 되찾기 위해 군대를 되돌린 관우는 위군과 오군에게 협공을 받았다. 힘이 다하여 생포된 관우는 손권에게 처형됐다. 손권에 처형된 관우 복수 위해 문무대신 반대 속 吳 정벌 나서 형주는 천하의 배꼽과 같은 요충지였다. 위나라와 오나라, 촉나라의 균형을 맞추어주는 지역이었다. 그러나 형주가 오나라로 넘어가면서 삼국의 균형 축은 오나라에 유리하게 넘어갔다. 이렇게 중요한 곳이었기에 유비는 관우에게 10년간이나 형주를 맡겼던 것이다. 그런 관우의 죽음은 촉나라에게는 국가적인 타격이었다. 유비에게는 의형제이며 최고의 장군을 잃었다는 상실감이 너무 컸다. 그는 사흘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통곡했다. 온 나라에 상복을 입게 하고 장례를 몸소 치렀다. 그리고 관우를 죽인 오나라에 복수하기로 맹세한다. 관우의 죽음 이후로 국제정세가 숨 가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조조가 죽자 위왕을 물려받은 조비가 한실을 없애 버렸다. 그런 후 스스로 대위를 세워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후한이 멸망한 것이다. 유비는 폐위된 헌제가 산양으로 향하는 도중 살해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슬픔에 잠긴 현덕은 문무백관에게 상복을 입게 하고 헌제의 죽음과 후한의 멸망을 애도했다. 제갈공명은 후한의 황제가 죽고 조비가 새로운 황제가 되었으니 유비가 후한의 정통성을 물려받는 황제가 되어야 한다고 진언한다. “요즘 성도 주위가 누런 기운으로 덮여 있는데 이는 분명히 황제의 기운입니다. 제가 천기를 보니 황제의 별이 별자리들 가운데 나타나 마치 달처럼 밝으니 바로 한중왕이 제위에 올라 한나라 혈통을 계승할 징조입니다.” 초주를 비롯한 많은 신하의 건의에 결국 유비도 황제의 자리에 오른다. 건안 26년 4월, 연호를 장무(章武)라 하고 오(嗚)씨를 황후, 유선을 태자로 삼는다. 그리고 그는 첫 번째로 내리는 조서에 “짐이 관운장 장익덕과 더불어 도원결의를 할 때에 생사를 함께 하기로 맹세하였노라. 그런데 불행히 큰 아우 운장이 동오의 손권에게 해를 당해 먼저 죽으니 천추에 맺힌 한을 풀 길이 없노라. 원수를 갚지 못하면 이는 맹세를 저버리는 일이니 황제 된 자로서 할 일이 아니매 짐은 이제 군사를 일으켜 동오를 치고 역적을 사로잡아 한을 풀고자 하노라.”고 밝힌다. 많은 신하가 이에 반대한다. 유비는 “나는 황제가 되어 부귀영화를 누리면서 관우의 원수를 그대로 두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말하면서 원수 갚는 일이 최우선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조자룡을 비롯한 대신들은 위나라를 먼저 치는 것이 정도라고 간언한다. 후한을 멸망시킨 위나라야말로 천하의 역적이다. 그러므로 군비를 강화한 후 위나라를 공격하는 것이 정도라는 것이었다. 오나라는 개인적인 감정의 문제이므로 조금 후에 공격해도 된다는 거다. 유비는 신하들의 말 때문에 마음을 정하지 못한다. 그러나 결국 오나라를 공격하게 된다. 뜻하지 않게 장비가 와서 유비를 공박했기 때문이다. “왜 관우의 원수를 갚지 않습니까? 우리는 같은 날 같이 죽기로 맹세하지 않았습니까?” 결국 유비는 오나라를 공격하기로 최종적으로 결정한다. 물론 진복과 조자룡을 비롯한 문무대신이 반대한다. 그러나 이젠 유비의 결심을 꺾을 자는 아무도 없었다. 유비는 자신이 총사령관이 되어 오나라 정벌군을 지휘하겠다고 선언한다. 장군 황권이 선봉이 되겠다고 하자 그를 다른 곳으로 보냈을 정도다. 그만큼 유비가 오나라 공격에 강한 집착을 보였다는 증거다. 그리고 이것이 촉나라 비극의 시작이었다. 이릉대전은 관도대전, 적벽대전과 함께 삼국지 3대 대전에 속한다. 다음 주에 2편에서 만나도록 하자. [TIP]유비, 감정 때문에 공격? 누가 봐도 강력한 위나라를 북쪽에 두고 오나라와의 전쟁에 나서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 명분도 약하고 전략적으로도 생각이 짧다. 그러나 복수심에 불타는 유비에게 그런 국가전략이 보이지 않았던 것으로 삼국지에서는 말한다. 마지막 고집을 부려 대군을 이끌고 기세등등하게 출발한 유비는 결국 도성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그런데 필자는 가끔 정말 유비가 단순한 복수만을 위해 대군을 일으켰을까 궁금할 때가 있다. 유비의 깊은 생각은 아무도 모른다. 단순하게 의형제였던 관우의 복수만을 위해 대군을 일으키지는 않았을 것으로 생각한다는 말이다. 사실 전략적으로 형주를 차지해야 천하 통일의 꿈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기에 형주를 다시 차지해 삼국 통일을 이루겠다는 큰 그림을 마음속에 그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반기성 케이웨터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