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는 여인(Weeping Woman)
프랑스의 입체파 화가 피카소(Pablo Ruiz y Picasso:1881~1973)의 그림.
작가 : 피카소
종류 : 캔버스에 오일
크기 : 60 x 49㎝
제작년도 : 1937년
세로 60㎝, 가로 49㎝이다. 캔버스에 오일로 그려졌다. 프랑스의 입체파 화가 피카소 작품이다. 피카소는 91년간의 생애 중 80여 년을 미술에 바친 대가로서, 회화·조각·소묘·도자기 등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작품을 남김으로써 20세기 현대미술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이 작품은 에스파냐 내전을 주제로 전쟁의 비극성을 표현한 피카소의 대표작《게르니카 Guernica》의 습작에서 시작되었다. 피카소는 이 주제에 매료되어 《게르니카》를 완성한 후에도 여러 점을 제작하였다. 즉, 여인들에게 많은 변화를 주어 작품을 만들었는데, 《잠자는 여인》 《춤추는 여인》 《독서하는 여인》 《거울을 보는 여인》 《포옹하는 여인》 등 그 변화는 매우 다양하다.
전쟁의 비극을 통한 여인들의 슬픔을 상징화한 작품으로, 울고 있는 여인의 얼굴을 입체적으로 분해한 뒤 재조립하는 피카소 특유의 표현법으로 제작되었다. 배경의 검은색 속에서 선명하게 얼굴과 손이 부상하고 있다. 눈물을 그린 것도 사실적인 것을 피하고 추상적이며, 흐르는 것이 아니라 튀어나오는 듯이 표현하고 있다. 마치 아동화같이 소박하고도 상징적으로 표현한 피카소의 걸작 중의 하나이다.
이 작품의 모델은 에스파냐 내전이 한창 진행 중이던 시절에 만난 피카소의 다섯번째 연인 도라 마르이다. 사진작가이자 화가로도 활동했던 도라 마르는 《게르니카》을 그리는 데 많은 영감을 주기도 한 인물이다.
게르니카…죽은 아이 안고 울부짖는 여인 도라 마르
예술가의 뮤즈 ⑫파블로 피카소와 도라 마르
중기이코노미 기사 입력 : 2017-11-29 13:17
김현성 객원 기자 (artbrunch@naver.com)
스페인 출신의 세기의 화가 피카소에게는 7명의 여인이 있었다. 그녀들은 피카소의 곁을 잠시 지켰다가 그의 여성 편력을 감당하지 못하고 떠났으며, 몇몇은 우울증에 시달렸고 몇몇은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도 했다. 그의 다섯번째 여인으로 알려진 도라 마르 또한 조현병과 정신분열증에 시달리다 쓸쓸한 죽음을 맞이했다.
유고슬라비아 출신의 도라 마르는 피카소의 여인들 중 가장 지적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사진작가이자 화가였던 그녀는 초현실주의 작가들과 교분을 쌓으며 명성을 쌓아가던 무렵 피카소를 만난다. 피카소는 그녀를 보자마자 첫눈에 사랑에 빠졌다. 당시 그는 마리 테레즈라는 여인과 딸 하나를 둔 상태였다. 마리 테레즈는 프랑스 출신으로 관능적인 몸매를 가진 매력 넘치는 여인이었던 반면 도라는 차분하고 지적인 느낌의 여인이었다. 피카소는 스페인어에 능통하고 자신의 예술세계를 이해할 줄 아는 도라와 사랑에 빠져든다. 피카소의 나이는 54세였고 도라는 28세였다.
그 무렵 피카소의 고국인 스페인에서는 내전이 발발했다. 1936년 2월의 총선거에서 스페인의 인민전선 내각이 승리하자, 이에 반대하는 프랑코 장군이 군부를 이끌고 정부군과 내전을 일으켰다. 전쟁은 1939년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가 프랑코의 손에 넘어가면서 끝난다.
1937년 피카소는 내전의 참상을 고발하는 ‘게르니카’라는 작품을 몇달에 걸쳐 그린다. 작품은 높이 3.5m, 길이 7.8m에 달하는 대작 벽화다. 그는 도라 마르에게 작업의 전체 제작과정을 사진으로 기록하도록 했다. 훗날 대작의 제작과정이 세상에 알려지는데 도라의 사진 작업이 큰 공헌을 했다. 게르니카 작품의 좌측에는 죽은 아이를 품에 안은 채 울부짖고 있는 여인의 모습이 보이는데 그 모델이 바로 도라 마르다.
울고 있는 여인(1937년, 세로 60cm, 가로 49cm, 캔버스에 오일, 영국 런던의 테이트갤러리에 소장)
피카소는 유독 도라의 울고 있는 모습을 작품으로 많이 그렸다. 하지만 도라가 우울한 성정의 소유자는 아니었다. 피카소가 도라에게 남긴 초기의 데생 작업들과 초상화를 보면, 그녀는 그에게 창조적인 영감을 주는 밝고 온화한 뮤즈의 모습으로 묘사돼 있다.
하지만 둘의 사랑이 지속될수록 품위 있고 자신감 넘쳤던 도라는 점점 더 신경질적으로 변해갔고, 결국 정신과 신세를 져야 할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녀는 이 시기를 거치면서 작가로서의 삶을 완전히 포기해야 했고, 피카소의 변덕에 시달리면서 자아분열증세까지 겪어야 했다.
피카소 또한 고통스러운 감정을 호소하며 소리를 지르고, 늘 슬픔과 분노에 차 있는 그녀를 화폭에 담았다. 결국 피카소와 도라의 사랑은 9년만에 종지부를 찍는다. 그는 도라에게 그림들과 별장을 주고 새로운 여인을 찾아 떠나간다. 그 후 오랫동안 도라는 우울증으로 고생하며 남은 생을 보내야 했다.
도라는 1997년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도 피카소에게 받은 그림과 별장을 소유하고 있었다고 한다. 죽기 직전에는 피카소가 남겼던 소소한 생활유품들과 그림들을 모조리 경매에 내놓기도 했다. 그중 ‘고양이와 함께 있는 도라의 초상’은 2006년 소더비 경매에서 9500만달러에 팔려 소더비 경매 사상 두 번째로 비싼 거래 작품으로 기록됐다.
그 외에도 소소한 피카소의 생활유품들이 경매에 나왔는데, 세계의 피카소 수집광들에게는 보물창고나 마찬가지였다. 유품들 중에는 공개되지 않았던 데생이나 크로키 작품은 물론 성냥갑에 그린 그림, 병마개와 철사로 만든 새 작품, 손으로 찢어서 만든 종이 조각품, 반지와 동물 해골 모양의 목걸이 등이 있었다. 유품 하나하나가 피카소의 작가로서의 생활 단면을 읽을 수 있는 미술사적 자료가 됐다.
도라는 60년 넘게 자신의 별장에 간직하고 있던 물건들을 경매에 내놓으며 한 점도 남기지 말고 판매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마지막 생을 수녀처럼 보냈던 그녀에게는 얼마나 소중한 유품이었을까. 피카소가 그리울 때마다 꺼내서 만져보며 추억에 잠겼을 도라는 자신의 죽음과 함께 생의 모든 흔적을 떠나보내려 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