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아실이
김영랑
내 마음 아실 이
내 혼자 마음 날같이 아실 이
그래도 어디나 계실 것이면
내 마음에 때때로 어리우는 티끌과
속임 없는 눈물의 간곡한 방울방울
푸른 밤 고이 맺는 이슬 같은 보람을
보맨 듯 감추었다 내어 드리지
아! 그렇다
내 혼자 마음 날같이 아실 이
꿈에나 아득히 보이는가
향 맑은 옥들에 불이 달아
사랑은 타기도 하오련만
불빛에 연긴 듯 희미론 마음은
사랑도 모르리, 내 혼자 마음은
(『시문학』 3호, 1931.3)
[작품해설]
김소월 이후 우리말 구사에 가장 탁월한 능력을 보인 김영랑은 “북도에 ㅅ월, 남도에 영랑”이란 말에 어울리게 섬세하고 은은한 서정시의 극치를 이루었다. 그는 박용철과 함께 주도한 「시문학」으로 KAPF 중심의 비문학적 정치주의를 배격하고, 1920년대 중반부터 확산되어 오던 순수시의 서정 세계를 열어 놓았다. 시문학파가 주장한 순수시는 일제의 이념적·사회적 관심을 배제하고 오직 섬세한 언어의 아름다움과 그윽한 서정성을 추구하는 시를 뜻한다. 시문학파는 지나치게 개인의 내면세계에만 빠져 역사의식을 상실한 채 시어의 조탁(彫琢)에만 열중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우리 시가 언어나 형식면에서 한 차원 높아진 것은 부인할 수 없는 그들의 공적이라 하겠다.
교훈적 계몽이나 정치적 목적의식을 버리고 언어의 기교와 순수한 서정을 중시한 영랑의 시 세계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이 작품은 임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을 주제로 하여 여성적 화자의 호소력 있는 목소리로 남도 특유의 정서를 바탕으로 섬세한 시어를 구사하여 밝은 이미지로 형상화하고 있다. 기·승·전·결 형식의 네 연으로 구성된 이 시는 나의 마음을 알아 주실 임에게 간절한 그리움과 슬픔이 응결된 결정체를 보배처럼 간직했다가 내어 드리겠다는 내용의 연가이다. 네연의 짜임을 살펴보면 ‘내 마음을 아실 이가 계신다면’ 이라는 첫 연의 ‘가정(假定)’에 대하여 둘째연에서는 ‘보배인 듯 그 마음을 드리겠다’고 응답한다. ‘꿈에서라도 내 마음을 알아 줄 사람이 있다면’ 하는 셋째 연의 ‘자문(自問)’에 이어 마지막 연에서 그 임은 자기의 사랑을 알지 못할 것이라며 추측에 의한 ‘결론’을 내린다.
이런 과정과 응답은 자신의 마음을 알아 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표현으로 시적 자아는 꿈에서라도 그런 임을 만나고 싶어하지만 결국은 그것도 헛일이 되고, 그럴수록 그의 안타까움은 달아오르게 된다. 그러므로 시적 자아는 자신의 의식 세계에 고립되어 더욱 고독해 질 뿐이다. 이렇게 사랑을 밖으로 표현하지 못한 채 속으로 감내하며 괴로워하는 시적 자아의 모습은 전통의식 구조에 비추어 본다면 충분히 헤아릴 수 있지만, 내 마음을 아는 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단정을 내려놓은 상태에서 더구나 폐쇄시킨 자신의 의식 세계는 열지 않으면서 자기 마음을 알아주지 못한다며 임을 원망하는 것은 그야말로 지나친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작가소개]
김영랑(金永郞)
본명 : 김윤식(金允植)
1903년 전라남도 강진 출생
1915년 강진보통학교 졸업
1917년 휘문의숙 입학
1919년 3.1운동 직후 6개월간 옥고
1920년 일본 아오야마(靑山) 학원 중학부 입학
1922년 아오야마학원 영문과 진학
1923년 관동 대지진으로 귀국
1930년 문학 동인지 『시문학』 동인
1949년 공부처 출판국장
1950년 사망
시집 : 『영랑시집』(1935), 『영랑시선』(1949), 『영랑시선』(19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