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에 작은고모의 큰아들이 갑자기 별세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나와는 동갑내기인데, 충격이다. 어릴 때부터 친하게 지낸 내종사촌이다. 급작스런 죽음의 원인이 궁금해 알아보니 5개월전 발병한 파킨슨병이 급성으로 진행한 탓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알기로는 파킨슨에 걸려 죽었다는 말을 들어본적이 없어 더 충격이다. 급성은 생명까지 위협한다는 사실이 놀랍다. 집사였는데, 구원의 확신은 있었는지 궁금하다. 백마장감리교회에 가족들이 출석을 해서 그냥 따라다녔는지, 아니면 자신도 구원의 확신이 있었는지.
만일 구원의 확신이 있는 상태에서의 별세였다면 비록 급성이었고, 갑작스런 죽음리라해도 헛된 삶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아직은 아쉬운 죽음이다. 이제 68세이니.
나 역시 죽음에 대해 자주 생각을 하게 된다. 이미 동창들 중에도 별세자들이 꽤 되기 때문이다. 주님은 우리에게 공로를 요구하지 않는다. 신앙의 출발을 감리교에서 하다보니 알미니안적 구원관이 자리잡혀 있었다. 그러나 장로교 신학을 하면서 칼빈주의적 구원관을 받아 들이게 되었고 칼비니즘적 구원관이 더 성경적임을 믿게 된다.
하지만 맹목적인 예정론에 현혹돼 잘못된 신앙관과 구원관을 맹신하는 신자들도 적지않다. 주님은 자아를 죽이고 예수와 동행하는 신자를 찾으신다. 주님이 찾는 영혼은 공로주의자가 아니다. 비록 거지나사로처럼 세상에서는 존재없이 살았을지라도 예수와 동행하는 자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된다. 바로 자신의 의가 아닌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인정해주는 칭의의 신앙이다.
나는 확신한다. 내 영혼이 언제 어느 때 부름을 받더라도 아쉬움이 없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