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포의 새벽 편지-2142
구병시식45
동봉
칭양성호
4. 이포외여래
이포외의 부처님께 지성귀의 하나이다
원하오니 시방세계 한량없는 고혼이여
생로병사 온갖고통 두려움을 모두떠나
무생법인 열반락을 그자리서 얻으소서
4. 離怖畏如來
南無離怖畏如來 願諸孤魂 離諸怖畏 得涅槃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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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후배 스님이 찾아왔다
내게 예를 갖춘 뒤 물었다
그야말로 다짜고짜다
다짜고짜라고는 하지만
무엇을 물었느냐가 중요하다
"큰스님, 여쭐 게 있습니다."
내가 담담하게 답했다
"그러시게, 뭐든 물으시게"
절기로 싸락눈小寒 계절인데도
싸락눈 대신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그가 곧바로 물어왔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게 뭡니까?"
후배 녀석이 선배에게 묻기는
다소 당돌한 질문일 수 있다
그의 물음에 내가 웃으며 답했다
"아이구 사람, 싱겁기는"
그가 다시 물어왔다
"큰스님, 얼버무리지 마시고
곧바로 일러 주십시오"
제법 날카로운 적수를 만났다
"무서움 중 가장 큰 무서움은
누가 뭐라든 죽음이라네
죽음을 넘어서는 두려움은 없지"
뜻밖의 답을 들어서일까
매무새를 가다듬으며 물었다
"그 답이 제가 바라던 것입니다"
후배 말을 들으며 기분이 상했다
뭐야! 나를 달아본 것인가
내가 소리를 질렀다
"어허, 이 사람!"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게 있다면
돈도 명예도 아닌 생명이다
사바나에서 갓 태어난 생명이
천적과 맞닥뜨렸을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까
본능적으로 달릴 것이다
생명에게 주어진 본능이라면
무엇보다 자기 생명을 지킴이다
이 말은 죽음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려는 본능이다
우리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
왜 하룻강아지가 겁이 없을까
생후 보름 정도가 지나야
비로소 눈을 뜨기에
범이 뭔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나 생명보다 귀한 것은 없다
뭐니 뭐니 해도 결국은 생명이다
생명을 협박하는 두려움보다
더 큰 게 있다면 그건 다 거짓이다
인간이 느끼는 즐거움에서
가장 큰 즐거움을 뽑으라 한다면
어느 누구도 머뭇거리지 않고
분명 이렇게 답할 것이다
참된 이치眞理의 기쁨이라고
이 진리의 바탕이 무엇일까
한마디로 열반Nirvana의 기쁨이다
이포외여래離怖畏如來는
두려움을 없애 주시는 부처며
최고의 기쁨을 선물하는 부처다
죽음을 앞둔 자의 표정보다
더 진솔한 것이 있을까
실로 죽음 앞에서는
누구나 진솔할 수밖에 없다
진솔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다
죽음을 인식할 수 있는 게 있다면
이는 뭐니 뭐니 해도 시간이다
시간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과 더불어
동떨어질 수 없는 게 있다면 무엇일까
짐작하겠지만 이는 공간空間이다
공간은 눈에 보이는 세계다
후배 스님에게 되물었다
"자네, 시간 못지않게
두려움이 있다면 뭐라 생각하는가?"
이야기에 이미 답이 실려 있다
"그야 큰스님, 공간이지요."
나는 섬뜩 놀란다
아니, 어떻게 알았지?
어떻게 내 생각을 알았을까
한마디로 표현하면 시공간이다
주자朱子Zhu Xi 말씀에 새길 게 있다
한마디로 '시간의 노래'다
소년이로학난성少年易老學難成
일촌광음불가경一寸光陰不可輕
미교지당춘초몽未覺池塘春草夢
계전오엽이추성階前梧葉已秋聲
이는 분명 시간의 노래다
이 노래에는 빠진 것이 있다
다들 알아챘겠지만 공간이다
시간의 일란성 쌍둥이 공간이다
어디나 할 것 없이 법당은 비어 있다
법당法堂은 곧 공당空堂이다
공空을 바탕으로 하는
불교에 어울린다 할 수 있다
그런데 정말 비어있음이 최고일까
십재일十齋日이 많다고 한들
한 달에 겨우 열 번 정도다
지금도 많은 절에서는
사재일四齋日을 지내는데
음력으로 초하루를 비롯하며
보름날과 지장재일 관음재일이다
이를 세분하면 아래와 같다
초하루는 정광불定光 재일이고
여드렛날은 약사불藥師 재일이며
열나흗날은 현겁천불賢劫千佛 재일이고
보름날은 아미타불阿彌陀佛 재일이다
열여드렛날은 지장地藏 재일이고
스무사흘은 세지勢至 재일이며
스무나흘은 관음觀音 재일이다
스무여드레는 비로자나 재일이고
스무아흐레는 약왕藥王재일이며
삼십일은 석가모니불 재일이다
이처럼 매달 열 번의 재일이 있고
재일에는 필히 공양을 올린다
지장재일에는 지장보살을 부르고
미타재일에는 아미타불을 염송하며
불보살님의 공덕을 요要한다
재일 불공을 평균 2.5시간으로 볼 때
한 달 내내 25시간이 고작이다
한 달 720시간 중 25시간은
겨우 28분의 1이다
빈 시간의 절반만 활용하더라도
자그마치 360시간이다
인간에게 주어진 삶의 평균 시간이
가령 80년이라 가정한다면
어떻게든 그 80년을 다 소비한다
그러나 그 80년 동안 내내
허비하는 시간만 아까운 게 아니라
텅 비어있는 이 소중한 공간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함이 안타깝다
두려움은 활용하지 못하는 공간이다
쓰다 보니 수미首尾가 어긋났다
마치 내 삶의 단초를 보이는 듯싶다
어찌하여 삶의 두려움을 벗어나
열반의 즐거움을 맛보게 하는
이포외여래의 공덕을 설명하면서
시공간의 얘기로 번져가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아! 이게 바로 내 삶의 모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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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사채 썩은 기둥이 가져온 생각의 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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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2020
곤지암 우리절 선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