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문 Ⅲ-1]아아-, 중국 황산
중국 역시 도처(到處)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명소들이지만, 한 친구가 진작부터 “황산이야말로 중국 관광의 압권이자 마무리”이라고 말하곤 했다. 기암괴석과 기이한 소나무도 좋지만, 일출과 일몰이 장관이라고 하도 여러 번 말하기에 구미가 당겼다. 연초 하얼삔을 같이 간 친구 4쌍과 연이어 계획한 것은 좋았으나, 1년에 200일이상 비가 오고 운무(雲霧)에 가려 경관을 못보기가 쉽다던데(적기는 9-10월), 하필 우리가 간 5월 1-4일이 그럴 줄이야. 3대가 덕을 쌓아야 한다는 말을 실감했다. 그냥 비만 맞은 채 앞도 보이지 않는 잔도(棧道)만을 걷고 온 듯하다. 몽롱하다. 그러나 황산은 확실히 장가계, 숭산, 소림사, 태산, 계림, 양삭, 운대산, 태항산, 백두산과 달랐다.
일단 모든 걸 차지하고, 면적(동서남북 대문이 다 있다)도 그렇지만, 천 길 낭떠러지 바위산에 우뚝 우뚝 솟은 저 소나무들의 생명력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먼지 몇 개만 모여도 나무는 자라는 것일까? 하늘에서 날아와 꽂혔다는 비래석(飛來石)도 기가 차는데, 관광객을 맞이한다는 영객송과 53개 소수민족을 상징하는 듯한 단결송은 또 무엇인가? 모노레일과 케이블카(索道)가 없다면 오르기는 상상이 안될 듯. 누가, 언제, 어떻게 이 굴들을 뚫고 아슬아슬한 길을 냈을까? 세상은 참 모를 것투성이다. AI도 신통한 답을 해주기가 거시기할 듯하다. 아무리 기계의 힘을 빌린다해도 ‘서해대협곡’을 걸어 내려오는데 힘들어도 너무 힘들다. 아찔하다. 그러나 절경(絶景)은 절경이다.
또한 우리 나이 일흔이 보통 나이인가? 5년 전에만 왔어도 이렇게 힘들지는 안했을 걸 후회가 됐다. 매일 운동도 많이 하고 자신있다는 한 형수조차 절룩절룩했으니, 호흡운동만 하는 우리는 어쩌겠는가. 거대한 산 속의 거대한 호텔 ‘서해빈관’. 5성급 호텔이 부럽지 않다. 게곡의 말고 우렁찬 물소리가 밤새 잠을 설치게 한다. "황산을 보고 나면 그 어떤 산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라는 말처럼, 중국에 5악(五嶽)이 있다지만 이제 어디든 가고 싶지 않다. 오죽했으면 어제 나흘만에 집에 돌아오자마자 유튜브에서 <세계테마기행-황산편>을 찾아 영상으로 황산의 전모를 감상했을까? 들어간 돈이 아까운가? 그래도 그건 아니었던 것을.
황산에 오르기 전 몸풀기로 들른 에머랄드계곡의 유래는 별 거 아니지만 재밌었다. 이 계곡에 MT를 온 남녀 대학생 36명중 20명이 결혼에 골인했다해 애정곡(愛情谷). 큰 바위에 ‘사랑 애(愛)’자가 모두 다른 글씨체로 99개가 쓰여 있다. 내 마음 속 깊은 곳에 마지막 남은 100번째 ‘愛’자를 쏟아부을 대상은 누구일까? 또한 사람이든 책이나 무슨 물건이든, 내가 살면서 사랑을 쏟은 대상이 99개가 될까를 생각했다. 첫 번째는 무조건 부모를 위시하여 대가족, 핵가족일 터. 그리고 친구들, 스승과 후배, 동료. 감명을 받은 책, 수많은 위인들, 애장품 등에도 아낌없이 사랑을 주었을 것이다. 사랑이 없으면 빈 껍데기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해준 계곡나들이. 스토리야 만들기 나름아닌가.
몇 년만에 찾은 중국음식은 이제 ‘한국화’가 된 듯 먹을만했다. 굳이 깻잎장아찌나 고추장을 가지고 가지 않아도 한두 끼는 충분히 먹을 수 있겠다. 음식의 세계화, 음식의 한국화가 대충 이루어진 듯. 그래도 싼 티나는 기름을 엄청 붓고 튀긴 것들이 많아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백채(김치)는 왜 이리 맛이 없는 걸까? 민물고기들은 흙내가 나 못먹겠다. 불면 날아갈 듯 안남미는 여러 번 먹어도 도무지 적응이 안된다. 우리쌀은 얼마나 맛있고 좋은가. 우리 여행이 재밌고 유익하고 맛있는 까닭은 흉허물없는 고등학교 동기동창들이 제각각 짝궁과 함께 다니는 것 때문일 듯. 동년배들이기에 공통된 화제가 많을 수밖에 없다. 손자손녀자랑을 아무리 해도 흉볼 일이 없다. 형수들의 생활수다도 못들어줄 이유가 없다. 어느 관광지의 안내양이 '언니들이 성형수술들을 했냐'고 물었다는데 '아니다'고 하니까 ‘모두 너무 곱게 나이가 익어간다’고 했다던가. 희로애락을 다 겪고 40년이상 살아온 옆지기(평생 짝꿍)가 예쁘지 않으면 누가 예쁘게 보일 것인가. My sweetheart is best.
황산의 둔계 옛거리(老街)를 둘러보며 값을 대폭 깎아내리는 물건 흥정도 해보고, 여양 옛거리에서 무제한으로 삼겹살도 먹어본다. 발 포함 전신마사지 1인 55달러. 등반에 지친 몸을 풀어주는 것인지 악화시키는 것인지, 아파서 참기가 힘들다. 내일 아침이면 풀어진다는 말에 위안을 삼는다. 황산에서 항주까지 고속도로로 최소 4시간. 항주(杭州)는 송나라 때의 수도. “나에게 하늘을 준다면 천 년을 되돌려주겠다”(給我一天還你千年:게이워이티엔 하이니치엔니엔)는 표어가 여기저기 눈에 띄는 송성공연장(宋城公演場)에서 본 쇼는 장난이 아니었다. 세계 3대 쇼라고 한더던가. 화려하다. 창의적이다. 공연료가 아깝지 않을 정도로 볼만하고도 남는다. 한국관광객을 유도하려는지 '아리랑' 연주를 넣었다. 관객이 무려 한꺼번에 4천명이 들어간다. 미로(迷路)가 따로 없기에 짝꿍의 손을 놓을 수가 없다. 가이드 없이 혼자나 둘이 관람하기는 불가능할 듯싶다. 3박4일 마지막 밤이다. 고량주 한 잔으로 주흥을 돋우다. 중국 맥주는 역시 ‘칭따오(청도)’가 최고라며 형수들도 건배를 든다.
다음날 중국의 3대 미녀 서시(西施)를 닮아 작명했다는 서호(西湖) 유람선 관광도 괜찮았다. ‘백사 전설’로 남은 무너져 새로 복원한 탑을 바라본다. 등대 3개의 구멍 15개에 한지를 막으면 호수에 15개의 달이 비춰 뜬다던가. 환상적일 듯하다. 2km 걷는데 보도블록에 큰 붓으로 ‘물글씨’를 쓰는 서예가들이 있고, 쌍쌍이 춤을 추는 한량들도 많았다. 그렇게 여행은 끝이 났으나, 연속해서 ‘분실 해프닝’으로 작은 소동도 있었다. 우리의 왕회장 친구가 호텔에 핸드폰(手機)을 놓고 온 것. 도중에 발견하여 다행, 공항에서나 알았으면 큰일날 뻔. 영민하게 생긴 가이드가 점심 먹는 식당으로 택배를 시켜 해결하자마자, 미화 500달러가 든 손지갑이 없어졌다며 옷과 가방을 탈탈 터는데, 캐리어에 넣어둔 것을 고만 깜빡한 것. 우리 나이가 그럴 때가 됐다는 게 중론이어서 소동은 가라앉았으나 놀랄 일이 연거푸, 안도의 한숨을 쓸어내리던 자식뻘 가이드(1986년생)는 '아버지'라 부르며 깔끔한 모자를 선물하다. 허리디스크와 무릎관절로 고생한 최-오 부부로부터 ‘로봇다리’ 정보를 들은 가이드는 황산에서 정말 이 아이디어사업을 하시려나 몰라.
마지막 소동. 2시30분 이륙예정이던 K108기, 정비관계로 2시간여 늑장 출발. 이륙하던 순간에도 급정지하는 동작에 오금이 저림. 한번 빵 터져버리면 다시는 못올 길로 가는 게 비행기사고가 아니던가. 순간, 연전에 발생한 무안공항 사고로 인한 대학동기 부부의 쌍초상이 떠오르기도. 저절로 옆좌석의 아내 손을 쥐고. 무사귀국. 안전이 최고. 다시 또 금세 만날 날을 기대하며 잠실로, 춘천으로, 용인으로, 전주로, 임실로 네 쌍은 그렇게 헤어졌다더라. 어느 팀은 12시가 넘어 집에 들어갔다는 후문. 친구 부부들과 가는 여행은 언제나 재미는 있지. 우리는 ‘우정의 탑’에 또 하나의 추억을 아로새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