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과 정부
원제 : Sweet Bird of Youth
1962년 미국영화
감독, 각본 : 리처드 브룩스
원작 : 테네시 윌리암스
출연: 폴 뉴만, 제랄딘 페이지, 에드 베글리
셜리 나이트, 립 톤, 밀드레드 더노크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수상(에드 베글리)
골든 글러브 드라마부문 여우주연상 수상(제랄딘 페이지)
우리나라에 개봉된 폴 뉴만의 영화중에서 아직 DVD 출시가 되지 않은 작품은
'그레이트 볼케이노' '배가 떠날때까지' '반항하는 계절' '국제음모' 그리고 오늘 소개할
'애인과 정부' 정도입니다. 그중에서 '애인과 정부'는 굉장히 방대한 대사를 가진
작품이며 번역하기도 꽤 힘든 내용입니다. 영화가 어렵다기 보다는 '테네시 윌리암스'
원작 희곡을 각색한 영화다보니 영화적 각색으로는 사실 불필요한 과량의 대사들이
많이 쏟아져 나오는 것입니다.
내용은 우리나라 드라마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애정 통속극입니다. 해안마을에서
가난하게 자란 챈스 웨인(폴 뉴만)은 마을의 자수성가한 야심가 핀레이의 딸
헤븐리(셜리 나이트)를 사랑했지만 속물인 핀레이는 겨우 웨이터의 삶이나 살고
있는 챈스를 탐탁치 않게 여겨 그에게 출세하라고 등 떠밀어 보냅니다. 출세를
위해서 온갖 짓을 다하고 산 챈스는 결국 마지막 방안으로 한물간 유명 여배우의
운전기사 겸 정부 같은 역할을 하며 헐리웃 배우로서의 입성을 노립니다.
뭐, 가난한 청년이 부유한 속물 정치가의 딸을 좋아하면서 겪는 애정수난 같은
이야기인데, 신분의 차이가 다른 사랑과 부모의 반대에 부딫치는 이야기는
우리나라 드라마의 절반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흔한 내용입니다. 이 영화의
번역이나 구성이 방대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런 단순한 이야기를 순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폴 뉴만이 연상의 여배우와 차를 몰고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오는 부분부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방대한 대사와
회상 등을 통해서 도대체 이 이야기의 사연이 어떻게 이루어진 것인지가 차근차근
조립되고 있습니다.
'지난 여름 갑자기'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베이비 돌' '우수' '이구아나의 방'
'뜨거운 양철지붕위의 고양이' 등 여러 히트작을 남긴 명 극작가 테네시 윌리암스
희곡을 영화화 한 내용으로 이야기는 무척 짜림새가 있는 명희곡으로 생각되지만
아쉽게도 영화에 걸맞는 각색대신에 희곡의 분위기를 벗어나지 못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그래서 이런 통속극임에도 불구하고 이야기의 짜임새나
대사의 깊이는 무척 수준이 높은 영화였는데 좀 더 편안한 통속극을 원하는
관겍에게는 너무 방대한 대사가 벅차기도 한 영화입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흥미로워지는 장점을 갖춘 영화입니다. 주인공 챈스의
과거와 현재의 사연과 내막이 거의 드러나는 부분부터는 과연 챈스의 이 무모한
사랑의 도전이 어떻게 귀결이 될지 숨죽이고 보게 됩니다. 60년대 당시의 헐리웃
세대들은 이 깊이있는 대사와 풍부한 심리를 짜임새 있게 그려낸 이 수준있는
희곡 각색물에 꽤 많은 여운과 흥미를 느꼈을 것 같습니다. 그 이후에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많은 아류작들이 최근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는데, 드라마를 거의
안보는 제가 어쩌다 스치듯 보게 되는 드라마도 대부분 그런 내용입니다. 즉
가난한 남자가 부자집 여자를 힘겹게 사랑하다가 우여곡절끝에 부모의 강력한
반대를 무릅쓰고 맺어지는 이야기, 거기다 부모나 친척, 지인으로 등장하는
악역 역할의 가진자의 비리와 파멸이 함께 곁들여지고. '오자룡이 간다' '귀부인'
'내 사위의 여자' 등이 다 가난한 남자가 부자 속물의 딸을 사랑하는 국내의
드라마였는데, 그런 이야기의 원조가 이 '애인과 정부' 쯤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듭니다.
30대 후반으로 접어드는 절정기의 폴 뉴만의 잘생긴 외모가 톡톡히 빛을 발하는
영화입니다. 그가 따라다니며 출세의 도구로 삼는 한물간 여배우 역으로 출연한
제랄딘 페이지는 폴 뉴만과는 불과 1살 차이고 당시 38세에 불과했는데 나이보다
훨씬 들어 보이고 두 배우의 나이차이도 많이 나는 느낌입니다. 역할이 역할이다
보니 굳이 젊게 분장하지 않은 이유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현대의학을 힘을 빌리지
못한 60년대 30대 여배우들은 지금보다 훨씬 빨리 노안이 되었습니다. (요즘
김사랑, 한고은, 채정안 같은 배우들의 외모나 젊음과 비교해보면 정말......)
요즘 우리나라에서 이런 역할이라면 아마도 40대 중반 정도의 배우가 했겠지요.
폴 뉴만이 죽고 못사는 여인 헤븐리 역은 주로 TV에서 활동한 셜리 나이트가
연기했고, 악역 속물 핀레이로 등장한 에드 베글리는 밉상인 악역을 잘 연기하여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했습니다. 이밖에도 제랄딘 페이지와 셜리 나이트가
나란히 아카데미 여우주,조연상 후보로 올랐지만 수상하지는 못했고, 상복없는
배우 폴 뉴만은 주연상 후보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대신 제랄딘 페이지는
골든 글러브 드라마부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습니다.
사랑에 미치면 과연 어디까지 비굴해질 수 있는가를 폴 뉴만이 연기한 챈스라는
캐릭터를 통해서 톡톡히 보여주고 있는데, 자신이 헤븐리를 쟁취하지 못한 이유가
오로지 가난때문이라는 생각에 어떻게든 출세하려고 몸부림치는 모습이 처절합니다.
심지어 한물간 여배우의 노리개같은 역할까지 하면서도 출세를 위한 썩은 동아줄
이라도 잡으려는 모습입니다. 남자들의 이런 심리를 보면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가 얼마나 이 잘못된 사랑의 심미를 꿰뚫은 걸작소설인지를 다시금
실감하게 합니다. 이 영화에서의 챈스의 캐릭터도 어쩌면 그 개츠비와 많이 닮은
느낌입니다. 올라가지 못할 나무, 단순한 가난 때문이 아니라 그 속물 부모는
그 남자의 출생성분 자체를 싫어하기 때문에 아무리 출세를 해도 넘볼 수 없는
상대라는 것을.
과연 결말이 어떻게 될지 끝나기 10분전까지도 예측이 안되는 영화입니다.
이 무모한 사랑의 결말은 어떻게 마무리될까? 다만 속물인 핀레이가 파멸을 하는
결말이 될거라는 것은 쉽게 예측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챈스의 캐릭터가
우리나라 드라마와 다른 것은 폴 뉴만은 지극히 현실적 인간인데, 우리나라
드라마의 흙수저 주인공은 굉장히 초인적인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 다르지요.
'내 사위의 여자'라는 드라마만 봐도 고아이자 권투선수였던 현태라는 주인공이
재벌의 딸을 좋아하면서 그 회사에 입사하여 온갖 맹활약을 하고 망할뻔한 회사를
살려놓고 나쁜짓을 하려던 인간의 비리까지 다 파헤치는 그야말로 슈퍼맨같은
능력을 보여주며 결국 회장자리까지 모르니까요.(그게 1년만에 다 이루어지죠)
'애인과 정부'에서의 폴 뉴만에겐 그런 요술방망이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아무튼 신분의 차이때문에 사랑이 반대에 부딫치는 것은 과거 헐리웃 드라마나
우리나라나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 무모한 사랑을 쟁취하기 위하여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주인공을 챈스를 폴 뉴만이 연기하는데 폴 뉴만은 4년전 테네시
윌리암스 원작의 '뜨거운 양철지붕위의 고양이'에서 냉소적인 주인공으로 혼신의
명연기를 보여주었고, 다시 4년만에 같은 작가의 작품에 주인공으로 등장한
것입니다. 우리나라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개봉작으로, 개봉제목인 '애인과
정부'른 다분히 흥행을 의식한 제목 같습니다. 원제는 꽤 해석이 어려운 제목인데
대략 '풋내기 청춘' '미숙한 청춘' 뭐 그런 의미라고 보여집니다. 챈스라는 인물은
뭐 닳고 닳은 인간이지만. 폴 뉴만 전성기때 적역이 주어진 작품입니다. 그를
캐스팅하는데 작가인 테네시 윌리암스와도 충분한 상의가 이루어졌을 것
같습니다. 좀 아쉬운 것은 '폭력교실' '흑아' '카라마조프의 형제' '앨머 갠트리'등
사회성 드라마의 달인 리처드 브룩스의 연출력보다는 작가 테네시 윌리암스의
역량이 더 영향을 미친 영화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연극과 영화는 다르듯 감독
자신이 영화에 걸맞게 각색을 하여 희곡의 색채를 많이 지우지 못한 것이 아쉬운
고전이었습니다. 물론 각본은 리처드 브룩스가 직접 썼지만 아무래도 원작자의
간섭을 많이 받지 않았을까 싶네요.
ps1 : 제랄딘 페이지는 1953년 존 웨인 주연의 '혼도'로 29살이나 되어서 느즈막히
영화에 데뷔한 여배우인데 영화보다 TV활동을 더 많이 했음에도 아카데미상
후보에 무려 8번이나 오른 연기파 배우입니다. 결국 '바운티풀 여행'이라는
작품으로 주연상 수상을 했지요.
ps2 : 과거에 대해서 회상으로 꽤 샅샅이 알려주는 친절한 영화입니다.
[출처] 애인과 정부(Sweet Bird of Youth 62년) 한 남자의 처절한 사랑|작성자 이규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