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는 신생아 때부터 예민한 아이였습니다.
젖을 충분히 배불리 빨지 않았고 젖을 빨다가 엄마 눈을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기도 했죠. 엄마가 안고 있다가 내려놓으면 심하게 울어 밤에도 엄마 배 위에 누워야만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이유식을 먹을 때에도 새로운 재료를 넣거나 조금만 재료의 식감이 달라져도 뱉고 삼키질 않았습니다. 생후 18개월이 지나면서부터는 낯가림이 너무 심해서 잠시도 엄마 곁을 떠나려 하지 않아 엄마는 다니던 직장을 휴직하고 미나 곁을 지켜야 했습니다.
미나는 관심을 보이는 장난감을 사줘도 이내 싫증을 내고 엄마를 쫓아다니며 놀아달라고 떼를 썼는데 막상 놀이를 시작하면 하나의 놀이를 지속하지 못하고 금세 다른 놀이를 찾았습니다. 미나는 뛰고 춤추며 활동하는 것을 좋아했지만 엄마 곁을 맴돌았고 익숙하지 않은 장소에 가거나 도전적인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은 싫어했습니다. 미나는 물이 무섭다며 목욕하는 것을 싫어해 일과가 끝나고 씻어야 하는 시간이 되면 안 하겠다고 울며 떼를 쓰는 통에 씻는데 30~40분이 걸렸고 엄마는 늘 기진맥진 했습니다.
미나는 4살이 되어 처음으로 어린이집에 가게 되었는데, 집 현관을 나서면서부터 엄마에게 매달리며 가지 않겠다고 울고 떼를 써 늘 지각을 했습니다. 다행히 힘들게 떨어져 어린이집에 들어가면 이내 눈물을 멈추고 선생님을 잘 따라서 엄마는 안심했습니다. 5살이 되어 유치원으로 옮기게 되었을 때도 엄마와 떨어지는 것을 힘들어하고 적응이 어려워 등원 시간은 늘 눈물바다였습니다. 유치원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씻고, 간식 먹고, 숙제하는 등 해야 할 일이 많은데 엄마가 여러 번 말해도 잘 듣지 않고 간식 하나를 먹어도 느릿느릿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결국 엄마가 큰소리를 내야 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겁이 많은 미나는 특히 병원에 가는 것을 너무 싫어해 거부가 심했는데, 꼭 필요한 검사를 위해 엄마와 간호사가 1시간이 넘게 어르고 달래도 심하게 울며 드러누워 결국 검사를 하지 못하고 제대로 처치를 못 받을 때도 있었습니다. 예방주사를 맞으러 가면 온 병원 간호사, 의사가 다 붙어서 팔, 다리를 잡고 있어야만 겨우 주사를 맞을 수 있었습니다.
미나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엄마의 고민은 더욱더 깊어졌습니다. 아침에 학교에 가기 싫어하며 짜증을 내고 훌쩍거리다 마지못해 학교 가는 날이 많았고 학교에 가서도 수업을 잘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수업 시간에 돌아다니지는 않지만 멍하게 있는 시간이 많은지 선생님의 지시나 전달 사항을 빼먹을 때가 많았고 글씨는 엉망진창으로 알아보기 힘들었으며 아는 문제도 실수로 틀릴 때가 많았습니다. 집에 오면 별거 아닌 일에도 징징거리며 떼를 쓰고 짜증을 부렸고 엄마가 10번을 넘게 이야기해도 듣지 않고 딴짓을 할 때가 많았습니다. 외출하면 엄마가 일을 보는 잠시 동안도 떨어지지 않으려고 울며 엄마 옷을 붙들고 늘어져 곤란한 적도 많았습니다. 숙제해야 하는데 간단한 숙제도 1시간이 넘게 걸려 늘 시간이 부족했고 엄마가 붙들고 한참을 같이 책을 읽고 설명을 했는데 결국은 책 이야기와 다른 엉뚱한 소리를 하기도 했습니다.
엄마는 미나가 엄마와 떨어지길 힘들어하고 겁이 너무 많은 것이 걱정되어 소아청소년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보았습니다. 여러 검사와 상담 이후 의사 선생님은 미나가 굉장히 예민한 기질을 가지고 있어 쉽게 불안해지고 새로운 자극이나 변화를 위험으로 인식하며 회피하는 특성을 보인다고 설명해주었습니다. 이러한 기질 특성으로 인해 미나는 어려서부터 감각의 변화에 민감해 엄마가 안고 있다 내려놓으면 힘들어하고 음식의 식감 변화도 잘 느껴 불편해했던 겁니다. 미나에게는 어린이집에 가거나 새로운 과제를 접했을 때 호기심과 기대감보다는 두려움, 불안이 더 컸기 때문에 자신을 편안하게 해 줄 수 있는 엄마에게만 매달리고 적응이 어려웠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기질 특성과는 별개로 미나에게는 또 다른 특성이 있었습니다. 또래 친구들보다 집중 시간이 짧고 주변 자극에 의해 쉽게 산만해졌습니다. 이로 인해 숙제하는데 오래 걸리고 학교에서도 주변 자극들에 쉽게 주의를 뺏겨 수업에 집중하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책을 읽어도 다른 생각들이 자꾸 떠올라 책의 내용에만 집중하지 못하고, 다 읽고 나서도 내용을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예민한 기질을 가진 아이들은 위험회피 성향으로 인해 행동을 조심하느라 ADHD의 전형적인 특성 중 하나인 과잉행동이 잘 드러나지 않아서, 집중의 어려움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어린아이일수록 제대로 진단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커집니다. 미나는 예민한 기질과 ADHD에 대해 치료를 받았고 3개월 정도 지나자 엄마와 떨어지는 것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고 학교생활을 즐겁게 할 수 있게 되었고, 그동안 미뤄 두었던 안과 검진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1시간씩 걸리던 숙제는 이제 30분도 채 걸리지 않아 여유 시간이 생겼고 책 읽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ADHD를 가진 아이들은 저마다 타고난 기질 때문에 일반적으로 알려진 ADHD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일 수 있고, 이로 인해 잘못 진단되거나 적절한 치료가 늦어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아이가 전형적인 ADHD의 증상을 보이지 않더라도, 걱정되는 모습이 있다면 소아청소년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제대로 된 평가를 받아보시는 것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