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더 기울까봐 끝까지
솟아오르는 쪽을 누르고 있으려
옷장에 매달려서도
움직이지 말라는 방송을 믿으며
나 혼자를 버리고
다 같이 살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갈등을 물리쳤을, 공포를 견디었을
바보같이 착한 생명들아! 이학년들아!
그대들 앞에
이런 어처구니없음을 가능케 한
우리 모두는…
우리들의 시간은, 우리들의 세월은
침묵도, 반성도 부끄러운
죄다
쏟아져 들어오는 깜깜한 물을 밀어냈을
가녀린 손가락들
나는 괜찮다고 바깥 세상을 안심시켜 주던
가족들 목소리가 여운으로 남은
핸드폰을 다급히 품고
물 속에서 마지막으로 불러 보았을
공기방울 글씨
엄마,
아빠,
사랑해!
아, 이 공기, 숨쉬기도 미안한 사월
함민복, 아, 숨쉬기도 미안한 사월
자주자주 하늘을 올려다보리.
하늘엔 갑자기 생겨난 별들이
보석처럼 반짝이겠지.
가장 일찍 따서 가장 늦게 질
하늘의 아이들아,
욕된 이름들이 지상을 떠날 때까지
그들을 잊지 말고 굽어보고 지켜보렴.
흐르지 못한 시간들이
쌓이고 고여서 썩어가는
골목과 거리와 집과 강물과 늪에
너희 아픈 빛을 오래오래 비추어다오.
폐허의 가슴에
떠나버린 사랑이 다시 찾아올 때까지
약속을 되새기리.
자주자주 하늘을 올려다보리.
이재무, 약속
그날 네가 떠난 항구에는 낮은 바람이 불고 있었지
네 걸음소리 모래에 자국을 내며 달리고 있었어
너는 웃으며 배의 날개를 붙잡았었지
출발의 입구, 날개를 붙잡았었어
그리고 웃었어
지영이, 준영이, 희명이, 정희, 순이, 금이, 유화……
모두 웃었어, 날개를 달고 웃었어
그리 꿈도 크더니
너의 마지막 카톡은 2014년 4월 16일 10시 17분
아, 지금 어디 있느냐
너를 찾는 조명탄 노오란 불빛
어느 파도 위에서 바라보고 있느냐
조명탄 노오랗게 날리는 파도 사이로
어디서 만리 꿈길에 희망 섞어, 구원 섞어
또 하나의 출발이 되고 있느냐
바다에도 뭍에도 추억의 가방들 발버둥치는데
강은교, 너의 마지막 카톡은 2014년 4월 16일 오전 10시 17분
물음표 모양으로 제 몸을 죈, 귀를 세운 한 어린 주검을 만났다.
잠수부는 아이의 요지부동을 풀며, 풀며 말했다. 공기, 방울방울로 말했다.
"얘야 가자, 가자, 이제 참말로 좋은 데로 가자" 달래고 또 달래 안으며,
치밀어 올라오는 수압을 끄윽 끅, 씹어 삼켰다.
문인수, 침몰하는 봄
위로받아야 할 사람과 위로할 사람이 한사람이라면
우리에게 남은 것은 기도밖에 없는 것인가
우리는 떠올라야 한다
우리는 기어올라야 한다
누구도 우리를 끌어 올리지 않는다
가을이 멀었는데 온통 국화다
가을이 지난 지가 언젠데 국화 향이 이 세계를 덮고 있다
컴컴한 방에 검은 비닐봉지를 쓰고 앉아 있는 것처럼 숨이 막힌다
꿈속에서도 공기가 희박했다
해변은 제단이 되었다
바다 가운데 강철로 된 검은 허파가 떠 있었다
신철규, 검은 방
파도에 둥둥 떠다니는 이름표와 가방들,
산산조각 난 교실의 부유물들,
아이들에게는 저마다 아름다운 이름이 있었지만
배를 지키려는 자들에게는 한낱 무명의 목숨에 불과했다
침몰하는 배를 버리고 도망치는 순간까지도
몇 만 원짜리 승객이나 짐짝에 불과했다
아이들에게는 저마다 사랑하는 부모가 있었지만
싸늘한 시신을 안고 오열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햇빛도 닿지 않는 저 깊은 바닥에 잠겨 있으면서도
끝까지 손을 풀지 않았던 아이들,
구명복의 끈을 잡고 죽음의 공포를 견뎠던 아이들,
아이들은 수학여행 중이었다
나희덕, 난파된 교실
물이 허리까지 차고, 가슴까지 차오르고
물이 얼굴을 휩싸고 캄캄한 죽음으로 끌어들일 때
국민소득 2만 6천 달러가 무색한 간판들, 우왕좌왕
빠진 쓸개를 찾아 허둥거릴 때
우리가 돌아가 기댈 정의가 있기는 있는가,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가,
하늘이여, 2014년 4월 16일
저기 저 눈앞에서 어처구니없이 침몰하는 세월이여.
강인한, 분노는 파도처럼
배가 기울자
"승객 여러분, 승무원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제자리에서 대기하십시오"
하고는 선장과 선원이 먼저 탈출하는 나라
정부에 보고할 승선 인원 파악에만 분주한
재난대책본부가 있는 나라
경제는 일류고 재난 대책은 삼류인
사람 중심이 아닌 돈 중심의 나라
한 사람의 죽음에서도 그 나라를 본다고 하는데
이런 수백의 죽음 앞에서 나는 나라의 침몰을 보았다
이런 나라의 정당에 가입하고 집단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내가
부끄러웠다
광화문 촛불 앞에서
검은 글씨로 극락에서 행복하라는 메모를 붙였다
버스를 타고 집에 오면서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엄마가 빨아서 넌 교복을 체육복을 입고
더 이상 학교에 갈 수 없는 너희들에게 미안했다
공광규, 노란 리본을 묶으며
이건 명백한 살인이다
어른들이 아이들을 죽였다
국가가 국민들을 산 채로 수장시킨 것이다
캄캄한 바다 속에 너희들을 묻어두고
비겁한 아빠는 아직 숨이 붙어 있구나
꾸역꾸역 밥 밀어넣고 있구나
아이들아,
이 닷냥 서푼어치도 못 나가는 시인을 우선 구속시켜 다오
어떤 벌이든지 달게 받겠다
뿌리부터 가지까지 몽땅 썩어빠진
국가를 먼저 구속시켜 다오
유용주, 국가를 구속하라
현관문 열어두마 언제 돌아올지 모르니
네 방 창문도 열어두마 한밤중 넘어올지 모르니
수도꼭지 흐르는 물속에서도 쏟아진다 엄마 엄마 소리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지는 빗줄기 뚫고 널 맞으러 가마
네가 오지 않으니 내가 가마 맨몸으로 가마 두들겨 맞으며 가마
물에 찍힌 음계를 밟고 나는 한 계단씩 내려가마
하얗게 부서지는 푸른 춤을 밟고 너는 오렴 오오 노래하며 와주렴
기다려 주렴 평생을 다해 네게로 헤엄쳐 가리니
벽이 된 바닥 미끄러지는 하늘 기어서 가리니
김해자, 아기단풍
바다야, 바다야
잘 시간 오지 않은 아이에게 자장가를 부르지 마라
그늘에서 굴 따던 엄마
모랫길을 뛰어가다
넘어진다
최현우, 섬집아기
그 수많은 주검들
슬픔 아픔 절망
남겨진 자의 유폐된 기억
죽음으로도 지울 수 없는 것들
과거를 지우려는 저들에게는
우린 버러지 같은데요
시인이여,
꽃 핀다고 봄이라고 하지 마시라
민초들 심장 피빛
아직 절벽 얼음송곳이니
아- 다시 꽃 피는 사월에는
슬픈 얼음 조각에도
꽃이 필 수 있을까요
얼마나 꽃이 져야 꽃이 필까요
얼마나 더 절망해야 꽃이 될까요
난, 차마 잠들지 못하고
버러지 같이 누워서
허기진 異郷 새벽달에 눈물 삼킵니다.
이종희, 얼마나 더 아파야 꽃이 필까요
사월 십육일 이전과
사월 십육일 이후로
내 인생은 갈라졌다
당신들은 가만히 있으라 했지만
다시는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가만히 있는 동안 내 자식이 대면했을 두려움
거센 조류가 되어 내 자식을 때렸을 공포를
생각하는 일이 내게는 고통이다
침몰의 순간순간을 가득 채웠을
우리 자식들의 몸부림과 비명을 생각하는 일이
내게는 견딜 수 없는 형벌이다
미안하고
미안해서 견딜 수 없다
내 자식은 병풍도 앞 짙푸른 바다 속에서 죽었다
그러나 내 자식을 죽인 게
바다만이 아니라는 걸 안다
그 참혹한 순간에도
비겁했던
진실을 외면했던
무능했던
계산이 많았던 자들을 생각하면
기도가 자꾸 끊어지곤 한다
하느님 어떻게 용서해야 합니까 하고 묻다가
물음은 울음으로 바뀌곤 한다
도종환, 깊은 슬픔
사월에서 오월로 건너오는 동안 내내 아팠다
자식 잃은 많은 이들이 바닷가로 몰려가 쓰러지고
그것을 지켜보던 등대도
그들을 부축하던 이들도 슬피 울었다
슬픔에서 벗어나라고 너무 쉽게 말하지 마라
섬 사이를 건너다니던 새들의 울음소리에
찔레꽃도 멍이 들어 하나씩 고개를 떨구고
파도는 손바닥으로 바위를 때리며 슬퍼하였다
잊어야 한다고 너무 쉽게 말하지 마라
이제 사월은 내게 옛날의 사월이 아니다
이제 바다는 내게 지난날의 바다가 아니다
도종환, 화인
갈팡질팡 절망한 채 이 땅을 버린 시신들을
맥없이 건져 올리는 것을 구조라 착각하는 나라여!
‘엄마 배가 가라앉나 봐! 나 어떡하면 돼?’
손톱이 까맣게 타들어가는 몸부림으로
목 놓아 불렀을 마지막 한사람 어머니!
저 저 자식들 앞에 두고는
도무지 불가능이 없던 그들조차
속수무책 실신한 흐느낌으로 할퀴고 파헤칠 뿐이네
돌아오지 않는 공허한 타전들만 겹겹이 벽에 부딪혀
물거품 되어 흩어졌네! 갇혔네!
이럴 거면 차라리 저희에게 박쥐의 날개라도
고래의 허파라도, 물고기의 아가미라도 내려주시지요!
저 침몰하는 어린 영혼들 어쩔 것이냐!
분노한 파도 끝으로 부서진 뼈들이
포말로 일어서는 아까운 내 새끼들 어쩔 것이냐!
정원도, 또 다른 방주 타고 오시라
이제는 기다리지 말아라.
가만히 있지도 말아라.
너는 이제 자유다, 아이들아.
그러니 가만히 따르지 말고
다시 태어나라, 아이들아.
다시 돌아와 온전히 네 나라를 살아라.
너희가 꿈꾸던 그 나라를 살아라.
사랑한다, 아이들아.
내 새깽이들아.
정우영, 가만히 있지 말아라
믿기지 않았다. 사고 소식이 들려온 그 아침만 해도
구조될 줄 알았다. 어디 먼 망망한 대양도 아니고
여기는 코앞의 우리 바다.
어리고 푸른 봄들이 눈앞에서 차갑게 식어가는 동안
생명을 보듬을 진심도 능력도 없는 자들이
사방에서 자동인형처럼 말한다.
가만히 있으라, 시키는 대로 해라, 지시를 기다려라.
가만히 기다린 봄이 얼어붙은 시신으로 올라오고 있다.
욕되고 부끄럽다. 이 참담한 땅의 어른이라는 것이.
만족을 모르는 자본과 가식에 찌든 권력,
가슴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무능과 오만이 참혹하다.
미안하다, 반성 없이 미쳐가는 얼음나라,
너희가 못 쉬는 숨을 여기서 쉰다.
너희가 못 먹는 밥을 여기서 먹는다.
김선우, 이 봄의 이름을 찾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너희들을
꽃같은 너희들의 이름을 부를 수 없게 되었다.
박찬서, 부를 수 없는 것들이 많아졌다
*remeber 0416 봄이 있는 한 잊지 않겠습니다.
*출처를 포함한 스크랩은 허용합니다
첫댓글 🎗
잊지않을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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