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잔뜩 먹고난뒤 배가 부르면 힘이든다. 밥상을 차릴때는 얼른 먹으려고 부지런히 차린다. 그런데 먹고나면 일어나 치울 생각을 안하고 뭉그적거리고 TV 리모컨만 만지작 거려 애꿎은 채널만 돌려본다. 옆에있던 남편이 밥상을 얼른들고 나가 반찬그릇을 정리하고 설겆이를한다. 순간 몽유병 환자가 된듯 몽롱한 눈으로 남편이 하는 행동을 바라만본다. 이건 어느 드라마의 한장면인데 오늘은 내가 그주인공이다. "세상에 이럴수도 있구나" 하고 설겆이가 끝날때까지 온몸이 마비된듯 부른배를 쓸고 나만의 행복감에 젖어든다. 유쾌한 마음으로 설겆이를 마친 남편이 내옆으로 와서 다리를 뻗으라며 주무른다. 나는극구사양하며 짧은 다리를 감추지만 한뼘밖에 안되는 장딴지는 어느새 남편의 손안에서 호사를 누리고있다.
우리는 비록 몸은늙어 황혼이지만 마음만은 젊은이 못지 않은 청춘이다. 사람은 몸만늙지 마음은 결코 늙지 않는다는걸 알았다. 나도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건지 스스로 물어본다. 내가겪고있는 모든 일상이 그저 행복하고 감사하고 생소하기만하다. 내가 아닌 마음으로 살아간다. 한시간이 소중하고 하루가 아깝고 일주일이 너무빨라 급행열차를 탄듯 빨리도 지나간다. 마음을 주고 마음으로 나누는 사랑에 흠뻑빠진 나는 행복해서 웃고 고마워서 울고 행복충전소 여사장의 마음으로 살고있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운명은 정해진다고본다. 젊은날의 애들 아버지는 너무소심하고 병약했다. 내가 기대고 싶고 의지하고싶은 우람한 버팀목이길 갈망했는데 온실안의 화초처럼 나약하기만 했다. 일찍 찾아온 병마때문에 젊어서부터 늘 왜소하고남을 위한 배려는 엄두도 못냈다. 남자는 부엌에 들어가면 큰일 나는줄알아 밥상을 한번도 들어본적이 없다. 금이야 옥이야 고이 기르신 어머님의 영향이기도 했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만 나의것이고 불행은 남의 일인양 착각하고 살아간다. 나도 남편이 병약하긴 했어도 그렇게 빨리 내곁을 떠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병든 남편을 살리려고 무던히도 애썼지만 도리가 없었다. 인천 성모병원을 제집드나들듯하며 고치려 애썼지만 속수무책이었다. 밥상같은건 한번도 들어 준적없는 사람이지만 남편을 사랑했고 행복했는데 인연이 아니었는지 도망치듯 일찍 가버렸다.
아주아주 건강체질인 나는십여년전 호흡곤란으로 청주성모병원에 입원한적이 있었다. 내가 입원한 병실 바로옆 침대에 당뇨환자가 있었는데 그환자의 남편이 바로 지금의 내남편이 되었다. 사람의 인연은 정말 아무도 모른다. 청주에 그많은 병원 그많은 병실이 있는데 하필이면 같은 병실에 입원하게 된거부터 인연이란 생각이들었다. 그때 어찌나 마나님을 지극정성으로 간호를 하는지 나아픈건 어디가고 그분만 쳐다보게 되었다. 마나님을 먹여주고 닦아주고 주물러주고 휠체어 태우고 바깥바람 쐬어주던 그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입원해 있는 내내 부러워만 하다가 퇴원을 했다. 무심한 세월이 많이도 흘렀다. 지병인 심부전증 정기검진을 받으러 간병원에서 오랜세월 꿈에도 잊지못하던 그분을 기적처럼 다시 만났다.그때 나는 어느 교회주방에서 십년동안 봉사를 했는데 다리아퍼 일을 못하고 주방그만두는날에 그분을 만난것이다.부인은 오래전에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나는 성격이 내성적인데 그사람을 놓치면 후회할거 같아 꼭잡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어디서 그런용기가 났는지 나 자신도 의아했다. 그용기덕분에 지금 나는 누구보다도 큰행복을 누리며 살고있다. 내가먼저 전화번호를 달라고 했고 재혼했냐고 물었더니 이나이에 무슨재혼이냐고 소일거리가 뭐냐고 하니 복지관에서 생활댄스 배운다고 하기에 나도 오래전에 조금 배웠는데 테스트좀 해달라고 하니 흔쾌히 승낙을 하셨다.오래전에 배웠는데도 따라 하게되었다. 자기 집에가서 사교춤 연습하자고 해서 따라갔는데 나는 남자 혼자 사는집이라 지저분 한줄알고 대청소 해줄 맘으로 앞치마를 챙겨 갔는데 들어가는 순간 깜짝 놀랐다.여자가 사는집보다 더깨끗하였다.
나는 오래전에 친구따라 배운춤이 내운명을 이렇게바꾸어 놀줄이야 우리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고 필연이라고 생각한다. 기막힌 우리의 만남에 늘감사한다. 인연이 아니면 헤어지고 인연이면 언젠가는 만난다고 하더니 인생의 황혼길에서 그와나는 천생연분 부부가 되었다. 운명의 굴레에서 울고 헤어지고 가슴아픈 사연으로 우리는 인생여정을 이어간다. 지금의 남편을 만난것이 나는 가장귀한 로또를 맞은것이다.. 내가 병원에서 본그대로 우리남편은 정말 성실 그자체이다.내가 어떻게 이런 남편을 만났는지 날마다 감사드린다. 고달프게 살아온 남편도 늦게 찾은 행복이 너무 감사하다며 밥상보다 더무거운것도 영원히 들어주고 싶다고 한다 나보다 더행복한 사람있으면 나와보라고 맘속으로 외쳐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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