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 서사로5길 9-2가 우리집이고 건너편집 서사로 5길 9-3에 남수네 어머님이 혼자 산다. 안체에 혼자 살고 밖앗체는 세를 놨다. 옛날 미스 탐라출신 고려진 아나운서네 집 다음집에서 우회해서 들어가는 디긋자 골목, 이 디긋자 골목으로 대문을 낸 집이 8가군데 그중 61,62년도에 신축 입주해서 아직까지 이사안가고 살고있는 집은 우리하고 남수네 하고 두집이다.
남수어머닌 돌아가신 우리어머니(1925년생)보다 서너살 어려, 우리어머니 보고 성님,성님 하며 지냈다. 당시 남수는 초등학교 5학년, 동생 완수는 2학년, 남수네 아버지는 목수, 남수어머닌 20대때 부인있는 남편의 첩으로 들어가서 아들 둘을 낳았다. 남편은 애들학비나 생활비를 대주지 않았다. 돈을 안대 줄 뿐아니라 평소엔 안오다가도 술을 마시면 찾아와서는 남수네 어머니를 두들겨 팼다.
가끔 남수어머님은 맨발로 남편의 손에서 도망쳐 빠져 나오면 우리집으로 와서 숨곤했다. 저인간 제발 안왔으면 좋겠다고 하면서, 생활비며 애들 학비는 오로지 혼자 힘으로 해결해야 했다. 그것도 기술도 없고 배움도 없고, 자기 땅도 없어 하루하루 품삯으로, 그렇게 두아들을 대학까지 보냈다.
남편은 그 본가에서도 행패에 못견뎌서 돈을 모아 일본에 밀항을 보냈다. 일본에 가면 행동이 좀 달라지겠거니 기대 하면서...
목수 기술도 있고 하니까 일본서 착실히 일하고 말썽을 안피웠으면 돈도 벌수 있었을 텐데, 거기서도 술먹고 싸우고 하다가 순사한테 끌려가서 결국 수용소에 있다가 강제 송환되고 말았다. 돌아와서 얼마 안있다가 죽었다.
그녀가 혼자 날품 팔아가지고 애들키우고 교육 시킨건 기적 같은 일, 요즘도 큰다라에 낙숫물 받아서 빨래하고 청소한다. 밤에도 혼자있을 때는 전기를 안키고, 겨울에도 난방을 안하는 둣, 집안에 들어가면 냉냉하다. 이렇게 절약하며 평생을 힘든 농사일, 그것도 남의 일 하면서 애들 잘 키웠으면, 늙어서라도 편하게 지내야 하는 데..
둘째 완수가 자살을 했다. 인하대를 나와 회사에 다니다가 그만두고 식당을 했는 데 그게 잘 안되고 해서 빚이 쌓였다고 한다. 결혼해서 애가 둘인 상태, 그애들은 며느리가 키우고 있다고 한다.
요즘도 계속 일을 다니신다. 허리가 완전히 새우등처럼 휘어서 앞에오는 사람을 못보고 땅만 보고 다니는 상태인데도 일을 다닌다. 인제 좀 편히 지내시라고 하니까 차라리 일을 하는 게 낫단다. 가만히 있으면 둘째 생각이 나서 더 힘들다고 하면서..
첫댓글 사람의 운명은 노력만으로 되는 게 아니라 알 수 없는 힘의 영향을 받는가 보구나.
귀국한 것 같은데 여행 후일담도 들을 겸 얼굴 한번 봅시다.
위와 동감입니다...
영광입니다. 술은 못하게 됐지만 보는 것 만으로도 좋으니까 언제든 좋습니다.
여자 팔자 뒤옴박(?)팔자라더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