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호수아 17:14-18
오늘 말씀은 요셉지파의 불만을 여호수아가 잘 돕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함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다 싸워주시지만 우리가 싸우는 것도 중요합니다. 싸우지 않는 분은 아무것도 얻을 수도 없고 차지할 수 없습니다. 어떤 분은 교회다니는데 왜 좋지 않은 일들이 계속생기는가? 합니다. 이는 잘 싸우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어떤 분은 기도는 했는데도 왜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가 합니다. 이런 분은 싸움의 원칙을 잘 몰라서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새벽기도로 싸우며 하루를 여는 분들을 도와주시고 말씀을 잡고 끝까지 말씀대로 순종하고자 하는 영적 싸움을 싸우는 분들의 손을 들어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적 싸움을 잘 감당하기 위하여 새벽기도, 중보기도, 수요기도등에 자주 나와야 합니다. 눈이 와도 나오고 남편이나 시부모가 반대해도 나와서 이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을 붙들고 싸워야 합니다. 찬양을 부르며, 성령의 충만함으로 영적인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그래야 각종 훼방과 반대, 각종 질병과 사고, 각종 마귀들을 물리치게 됩니다. 오늘 말씀에는 여호수아가 요셉자손에게 잘 싸우라고 방향을 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우리의 신앙이 어떤 싸움의 자세를 지니고 있어야 승리하는가를 배울 수 있습니다. 본문 말씀통하여 우리성도님들은 평생 안일해지지 말고 평생 개척정신을 가짐으로 많은 것을 차지해 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첫째, 스스로 개척해야 합니다. (14-15) “브리스 사람과 르바임 사람의 땅 삼림에 올라가서 스스로 개척하라”
하나님의 백성의 최고 지도자인 모세가 죽은 후 그의 후계자로 여호수아가 세움을 받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정복했습니다. 가나안 땅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세에게 약속한 땅이었고,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했습니다(출23:31).
여호수아는 마침내 가나안 땅 대부분을 정복하게 되었고 아직 덜 정복한 상태지만 다음 단계로 땅을 분할하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토지분배는 각 지파에서 제비를 뽑아 했습니다. 16장을 보면 요셉지파가 분할 받은 지역은 팔레스타인 중앙의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들은 요단강을 낀 아주 좋은 땅이였습니다. 요셉자손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축복은 심히 컸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의 놀라운 믿음을 보시고, 야곱을 통해 요셉의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야곱의 장자와 같이 대우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창48:5,6).
야곱의 축복대로 요셉 지파인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생육하고 번성하여 큰 민족을 이루었습니다(14a). 그러다보니 이것이 요셉지파의 불만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인구가 많은 지파인데 비해 분배받은 땅이 너무 좁다는 것 이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요구는 옳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분명 하나님 뜻 안에서 제비를 뽑아 분배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멘하고 받아들이기보다 불만을 제기하였습니다. 14절을 보면 “요셉 자손이 여호수아에게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지금까지 내게 복을 주시므로 내가 큰 민족이 되었거늘 당신이 나의 기업을 위하여 한 제비, 한 분깃으로만 내게 주심은 어찜함이니이까” 그러나 그것은 옳지 않는 말 이였습니다. 요셉 자손들은 비록 땅을 한 분깃만 분할 받았지만 그 땅은 매우 광대하였고, 유다 지파 다음으로 큰 지역이었습니다. 또한 인구수를 보아도 그것이 땅 분배의 원칙이었습니다. 민수기 26:53,54에 의하면 므낫세 반 지파 인구수는 26350명이었고, 에브라임 지파는 32500명으로써 전체 인구는 58850명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요셉 지파의 총 인구수는 단 지파의 인구수인 64400명보다 적은 숫자였습니다. 단 지파는 요셉지파보다 훨씬 작은 땅을 차지했었습니다. 요셉지파는 자신들이 큰 민족을 이루었는데 그에 합당한 큰 땅을 주지 않는다고 불평을 했습니다.
그러면 왜 불평을 했을까요? 요셉 자손은 여호와께서 자기 족속에게 특별히 큰 은혜를 주셔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큰 민족이 이루었다는 자부심이 대단히 강했습니다. 그리고 또한 “우리 지파의 조상 요셉이 있었기에 이스라엘 12지파의 백성들이 그 어렵고 혹독한 기근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이스라엘백성들은 지구상에서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는 특권의식도 있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최고 지도자인 여호수아도 요셉 자손 출신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뭔가 특별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이런 불평을 하는 요셉 자손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1) 그들에게는 개척하고자 하는 정신이 사라지고 안일해졌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아직 개척되지 않은 넓은 땅을 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비옥한 팔레스타인의 중앙부의 대부분을 차지했습니다. 그 당시 아직도 분배를 받지 못한 7지파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기 요구만을 하고 욕심을 부려서는 안되는 것 이였습니다. 그들에게는 가나안 땅을 정복할 때의 개척정신이 사라지고 벌써부터 좋은 땅에서 편안하게 살고자하는 안일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주시기로 한 땅은 남으로는 애굽 강에서 북으로는 유프라테스강에 이르는 거대한 넓은 땅이었습니다(창15:18). 아직도 남쪽 유다 지방과 북쪽 헬몬산 지역은 들어가 보지도 못했습니다.
요셉자손과는 대조적으로 갈렙장군은 수14장을 보면 가나안 땅을 정복할 때 부사령관으로써 큰 공을 세웠습니다. 그는 이제 나이 85세가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갈렙은 여호수아에게 특별대접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여호수아에게 아낙자손이 진을 치고 있는 미개척지 헤브론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수14:12)”. 갈렙은 비록 85세의 노인이었으나 안일한 마음이 없고 개척정신이 충만했습니다.
2) 그들은 감사가 없고 불평만 했습니다. 그들은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와 그 땅에 발을 딛고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감사와 감격이 넘쳐야만 했습니다. 모세는 비스가 산상에서 가나안 땅만을 바라보고 죽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자손은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와 처음으로 자기 땅을 갖게 된 것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겠습니까? 그런데도 그들이 감사하기보다 불평한다는 것은 하나님앞에서 죄악이었습니다. 그 당시 땅의 분배는 여호수아의 생각대로 임의로 한 것이 아니고 기도 가운데 제비를 뽑아 하나님의 뜻에 따라 공의롭게 행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불평을 하며 땅을 더 달라고 떼를 썼습니다. 이러한 요구에 여호수아는 어떤 새 방향을 주었습니까? 15절을 보면.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이르되 네가 큰 민족이 되므로 에브라임 산지가 네게 너무 좁을진대 브리스 사람과 르바임 사람의 땅 삼림에 올라가서 스스로 개척하라”. 여호수아는 불평하는 요셉자손에게 땅이 좁으면 산지에게 올라가서 이방인을 몰아내고 땅을 개척하고 넓게 차지하라는 방향을 주었습니다. 여호수아는 그들의 불평을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스스로 개척하라는 말씀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한 것입니까?
1) 스스로 개척하라는 말은 밀림의 나무와 잡초를 베고 땅을 개간한다는 뜻입니다. 이는 가만히 앉아서 머리만 굴리고 말로만 개척을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 당시 브리스 사람과 르바임 사람이 사는 산림에 올라가서 나무를 베고 나무뿌리를 뽑고 돌을 제거하고 산림을 농토로 바꾼다는 의미입니다. 에브라임지파 땅에는 북서쪽에 산지가 많았다고 합니다(사무엘상14:22). 거기에는 철병거를 가진 거주민도 있었다고 합니다. 개척하라는 것은 실제적으로 요셉자손이 많은 사람들을 동원하여 산림에 있는 가나안 족속들과 싸우고 그들을 쫓아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나무를 베고 바위를 제거하고 삽과 괭이로 땅을 파서 그 산림을 좋은 땅으로 개간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개척을 하기 위해서는 적과 싸우고 몰아내고자 하는 파이팅정신이 필요합니다.
2) 스스로 개척하라는 것은 더 이상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믿음으로 스스로 자립하라는 것입니다. 자립한다는 것은 영어로는 하나님만 의지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우리가 사람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의지하고 스스로 개척할수록 더욱 크게 임합니다. 여호수아는 바로 사람의지하지말고 하나님의지하고 개척하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도전하고 개척하기보다는 안주하고픈 마음이 많습니다. 그리고 남들이 다 해놓은 곳에서 편안하게 사역하며 살고자 합니다. 그러나 이런 안일을 사랑하면 사람이 육적인 일에 관심을 갖게 되고 무기력하게 되고 죄에 빠지게 됩니다. 미국의 청교도들은 피와 땀을 흘려 거대한 미국이란 땅을 개척하였습니다. 미국인들은 조상들의 개척으로 잘 먹고 잘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현재 미국 젊은이들은 이러한 개척정신을 잃고 안일에 빠졌을 때 오히려 마약과 각종 범죄로 병들어 버렸습니다. 안일은 이와같이 영혼의 수면제요 패망의 근원이요 선봉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인간에게 만물을 다스리고 정복하라고 하셨습니다. 토인비도 그의 저서인 역사연구에서 도전하고 응전한 민족은 문명의 꽃을 피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정복하지 않고 개척하지 않는 민족은 멸망하였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가나안을 주었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땅은 그냥 공짜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개척하고 도전하고 쟁취하여야 얻을 수 있습니다. 이를 볼 때 개척하는 자만이 더 많은 축복을 차지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교회 성도님들은 개척교회에 와서 참 많이 희생하시고 헌신하였습니다. 큰 교회에 가서 뒷전에서 편안하게 신앙 생활할 수도 있었겠지만 결코 그런 안일한 것을 구하지 않고 작은 교회에 와서 프론티어정신을 가지고 개척을 영광스럽게 여기며 감당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이런 우리들을 반드시 더 많은 것으로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사실 다 갖추어지고 잘 닦아진 곳에서 열매를 따는 것보다 황무지를 개간하여 옥토를 만들고 직접 수고하여 자라난 열매들을 거두는 것이 얼마나 더 고된지 모릅니다. 그러나 고된 만큼 영광스럽고 고된만큼 축복이 더하여 지므로 개척자가 받을 상이 큰 것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우리 성도님들 더 많은 축복을 차지해 가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영적인 안일을 늘 경계해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축복을 좀 받아 살만하면 안일해 집니다. 그래서 예배에 빠지고 기도회빠지고 속회빠지고 하다가 결국은 받은 축복까지 다 잃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님들은 개척정신을 잃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인도자들은 우리 속회는 어떻다 하며 이의제기하지 말고 속회도 더 개척하시고 교사들은 어린이속회도 개척하시고 개척을 통해 축복을 더 차지해 가시기 바랍니다.
둘째. 비록 산림이라도 개척해가야 합니다(18) “그 산지도 네 것이 되리니 비록 삼림이라도 네가 개척하라” 여호수아의 스스로 개척하라는 방향에 대한 요셉자손의 반응은 무엇이었습니까? 16절을 보면 “요셉 자손이 이르되 그 산지는 우리에게 넉넉하지도 못하고 골짜기 땅에 거주하는 가나안 사람에게는 벧스안과 그 마을들에 거주하는 자이든지 이스르엘 골짜기에 거주하는 자이든지 다 철병거가 있나이다.” 여호수아가 요셉지파에게 개척방향을 주자 요셉지파는 두가지를 들어 불평하였습니다. 첫째는 그 땅은 개척하기에 넉넉하지도 않은 땅이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철병거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제는 목숨을 거는 싸움을 그만 싸우고 좀 편안하게 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그럴지라도 삼림을 개척하라고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농토를 개간하기보다는 삼림을 개척해야 축복이 크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현실은 삼림과 같이 개척해 가기가 어려운 상황일 수가 있습니다. 사업이 어렵고 물질적으로 궁핍하고 몸이 안 좋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지라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잡고 좌절하거나 결코 포기하지 마시고 개척해나가시기 바랍니다. 믿음으로 인내하며 끝까지 개척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하나님께서는 그 땅을 옥토로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그들의 두려워하는 변명을 듣고 여호수아는 어떤 방향을 주었습니까? 17,18절을 보면 “여호수아가 다시 요셉의 족속 곧 에브라임과 므낫세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는 큰 민족이요 큰 권능이 있은즉 한 분깃만 가질 것이 아니라 그 산지도 네 것이 되리니 비록 삼림이라도 네가 개척하라 그 끝까지 네 것이 되리라 가나안 족속이 비록 철병거를 가졌고 강할지라도 네가 능히 그를 쫓아내리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세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다음과 같이 약속했습니다. “내가 네 경계를 홍해에서부터 블레셋 바다까지, 광야에서부터 강까지 정하고 그 땅의 주민을 네 손에 넘기리니 네가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낼지라(출23:31)”. 하나님께서는 그 선민에게 그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고 하나님의 백성이 그 땅에 주민을 능히 쫓아 낼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여호수아는 이 말씀에 기초하여 그들을 도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동일하게 약속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피로 축복을 약속하셨고 그래서 우리는 능히 승리할 수 있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혹 요셉자손들처럼 어려운 환경이나 철병거만 보고 부정적이 되어 변명만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날 우리의 경쟁자들은 모두 철병거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요즘 다들 얼마나 잘해놓았는데, 까페가 럭서리하고 그런데 우리교회는 규모가 너무 영세해.. 까페가 저게 뭐야, 창고지, 우리와 경쟁하는 큰 교회들이 한 때는 철병거처럼 보였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따라 갈 수 없을 것 같아 보였고 도저히 안될 것만 같아 보였습니다. 우리성도님들 앞에 막고 방해하는 철병거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결코 약해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남편이 철병거 같아 보입니까? 아이들이 철병거같아 보입니까? 우리에게는 약속의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살아계신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여전히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심령도 찔러 쪼갤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철병거도 몰아내주시고 어떤 고집센 남편도 깨뜨리시고 어떤 질병도 몰아내시고 어떤 곤란한 문제도 해결해 주십니다. 우리성도님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말씀을 의지하심으로 산림을 향해 도전하고 철병거를 향해 도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전쟁의 승리가 무기에 달려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달려있습니다. 여호수아는 오직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가나안 정복전쟁은 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