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테레즈 발테르의 초상(Portrait de Marie-Thérèse)
아티스트 :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출생-사망 1881년 10월 25일~1973년 4월 8일
제작연도 : 1937년
사조 : 입체주의
종류 : 유화
기법 : 캔버스에 유채(Huile sur toile)
크기 : 100 x 81 cm
소장처 : 파리 피카소 미술관
작품 배경
이 작품의 주인공인 마리 테레즈 발테르(Marie-Thérèse Walter, 1909-1977)는 1927년 당시 17세의 나이에 44세이던 피카소를 만나 그의 모델이자 연인이 되었으며, 1935년에는 딸 마야(Maya)를 출산하였다. 그녀는 지성이나 미모가 뛰어났던 피카소의 많은 연인들 중에서도 특히 아름답고 매력적인 여성으로 알려져 있으며, 1920년대 후반부터 1930년대 말까지 피카소의 작품에 많은 영감을 주었다. 피카소는 마리 테레즈를 화려하고 감각적인 색채, 부드러우면서도 생동감 넘치는 곡선, 풍만한 형태를 사용하여 신비하고도 초월적인 여신의 이미지로 표현하였다. 피카소의 다른 연인인 프랑수와즈 질로(Françoise Gilot)는 “피카소에게 마리 테레즈는 사실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미인이라기보다 우주적이고 초현실적인 질서와 조화의 상징이었다”고 회고하였다.
주제
1932년에 특히 정점을 이루는 이러한 작품 성향은 1935년을 전후로 시작되는 <실내의 여인> 연작에서부터 변화하게 된다. 이 그림들에서 마리 테레즈는 실내에서 평화로이 잠을 자거나 책을 읽고 있는 순수하고 천진난만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1935년 초 피카소는 첫 번째 부인인 올가(Olga Khokhlova)와의 이혼 소송으로 인해 심리적으로 매우 예민하고 지친 상태였다. 더구나 1936년 스페인 내전이 발발하면서 피카소의 내적 갈등과 현실에 대한 불안은 한층 심화된다.
이 시기에 제작된 다른 연작인 <투우>에는 그의 예민하고 불안한 심리가 나타나는데, 이는 <실내의 여인> 연작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전자는 ‘실외’의 투우장에서 죽음에 처한 동물의 맹렬함과 난폭함이 나타나 충동적이고 복잡한 피카소의 현재 상황을 보여준다. 반면, 후자는 따뜻하고 감미로우며 조용한 실내의 분위기를 연출함으로써, 괴로운 외부상황과 분리된 평화롭고 안전한 공간으로 도주하고 싶은 피카소의 욕망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결국, 마리 테레즈는 현실의 괴로움으로 인해 지쳐있던 피카소에게 있어 일종의 휴식이자 피난처를 의미하였다고 할 수 있다.
표현기법
1937년 1월의 <마리 테레즈 발테르의 초상> 역시 이러한 <실내의 여인> 시리즈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는 작품이다. 부드러운 곡선과 밝고 가벼운 색감으로 표현된 마리 테레즈는 온화한 미소를 띠고 있다. 얼굴에 손을 갖다 대는 특징적인 동작을 통해 이 작품이 19세기 프랑스 신고전주의 작가인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Jean Auguste Dominique Ingres, 1780-1867)의 <므와테시에 부인 초상화(Portrait of Madame Moitessier)>에서 영향을 받은 것임을 알 수 있다. 앵그르는 목가적인 이상향인 아르카디아를 의인화한 로마 시대의 이미지에서 영감을 얻어 이 작품을 그렸다고 알려져 있다. 이러한 주제 의식은 피카소에게 있어 휴식과 피난처를 의미했던 마리 테레즈의 이미지에 잘 부합된다. 그런데 이 시기 피카소에게는 도라 마르(Dora Maar)라는 새로운 연인이 생겼다.
마리 테레즈의 초상화에서 강렬한 원색과 감각적인 형태들이 쇠퇴하고 여신과 같은 신비로움이나 초월적인 아우라가 사라졌다는 점을 근거로 이 작품이 도라 마르와의 경쟁에서 점차 밀려나고 있는 마리 테레즈의 상황을 보여준다는 견해도 있다. 분명한 것은 같은 해에 제작된 <도라 마르의 초상화>에서 날카로운 형태와 어둡고도 강렬한 색상으로 표현된 도라 마르와 비교하였을 때, 마리 테레즈의 밝고 온화한 분위기가 분명하게 부각된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피카소에게 있어 마리 테레즈는 늘 감정적으로 불안하고 우울했던 도라 마르와는 달리 여전히 편안하고 휴식 같은 존재였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