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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와 거짓말
왜 예수님은 이 땅에서 왕이 될 수 있는 길을 버리고 십자가를 선택하셨을까요? 왕이 되셨으면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많은 일을하실 수 있었는데 말이지요.
누가복음 9:18-27절 말씀을 통해 함께 생각해보기 원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십자가의 예수님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거짓말로 덮고
은폐하는 것이 아닙니다. 잘못을 모두 인정하고 드러내는 것입니다.
[목차]
1. 무리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2.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3.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 죽임을 당하고 … 살아나야 하리라
4. 나를 좇을 것이니라
5. 하나님 나라
6. 나에게 예수님은 어떤 분인가?
7. 사랑의 교회
[본문]
1. 무리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예수님은 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로 오천명을 먹이셨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이제 바야흐로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이적에 놀라워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무리들을 피하여 한적한 곳으로 가서 기도하셨습니다. 이곳은 가이사랴 빌립보 라는 곳으로 갈릴리
호수의 수원지인 헤르몬산 근처였습니다. 이때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있었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물어
보셨습니다. "무리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사람들의 반응에 대하여 제자들은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라, 더러는 옛 선지자중의 하나가 살아났다 하나이다."
사람들은 세례 요한이 다시 살아났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매우 당황해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본봉왕 헤롯
입니다. 헤롯은 본처와 이혼하고 그의 이복동생인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와 결혼을 하였는데, 세례요한이 그 결혼은
옳지 않다고 지적하자 그를 죽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세례요한이 다시 살아났다는 것은 헤롯으로서는 정말 당황스
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한편 어떤 사람들은 엘리야가 나타났다고도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말라기를 통하여 엘리야를 보내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들은 모세가 말한 그 선지자가 왔다고 생각하기도 하였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자기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실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려고 하였습니다. 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로 오천명을 먹이는 기적을 행하시는 예수님을 보고 이제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면 더 이상 배고프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2.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사람들의 반응을 들은 예수님은 이제 제자들에게 질문하였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예수님은 사람들의 반응보다 제자들이 자신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으셨습니다.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누구신가? 3년동안 같이 지내며 많은 기적과 언행을 지켜보았던 제자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보았을까요?
이때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구약에 예언된 메시야 그분이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오랜 이방인의 압제가운데 지내온 이스라엘 사람들은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언한 메시야가 와서 이스라엘의 주권을 회복시켜주길 바라고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그 메시야가 바로 예수님이시라고 대답하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반응은 베드로의 기대와 다소 달랐습니다. "이말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는 메시야 이시라면 왜 사람들에게 자신을 나타내려고 하지 않는 것인가? 베드로와 제자들은 무척 의아스러웠습니다.
이미 사람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삼고자 하였고, 이제 예수님이 스스로 메시야이심을 드러내기만 하면 자연스럽게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워질 수 있는 순간이 다가왔습니다. 베드로도 제자들도 이런 예수님을 기대하며 직업과 가족을 뒤로하고 예수님을 따라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과 제자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다르게 말씀 하셨습니다. 자신은 사람들이 기대하는 그런 메시야가 되기를 바라지 않으셨습니다. 사람들이 기대하는 그 메시야가 아니라면 도대체 이분은 누구란 말인가? 분명 시편에서 다윗은 기름부음 받은 자 메시야를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던가? 그 왕을 통하여 열방을 다스리며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리고 질그릇같이 부수겠다고 하지 않았던가? 구약의 약속된 그 메시야가 아니라면 이분은 도대체 누구인가?
3.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 죽임을 당하고 … 살아나야 하리라
예수님은 평소에 자신을 인자라고 부르곤 하였습니다. 왜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 혹은 메시야라고 하지 않고 인자라고 부르는걸까? 이 땅에 인자 (son of man) 가 아닌 사람이 누가 있다는 말인가? 우리는 모두 다 사람의 아들이 아닌가?
게다가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 삼 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당시 이스라엘의 최고 통치기구는 산헤드린이었습니다.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로 구성되었는데 서기관의 대부분은 바리새인이었습니다. 인원은 약 70명 이었고 대제사장이 산헤드린의 의장이었습니다. 이들은 백성들의 종교 및 일상생활에 대한 재판을 하였고 사형을 제외한 형집행과 경찰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산헤드린은 로마와 헤롯왕가를 제외하고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막강한 권력을 가진 집단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이들에 의해 버림을 받는다는 것은 정치적으로 이스라엘 민족의 핵심 세력들로부터 배척을 당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렇다면 왕이 되는 것과는 전혀 거리가 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해야 했을까요? 그것은 성전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어 쫓으시며 환전상들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상을 둘러 엎으셨기 때문입니다. 대제사장은 이들이 성전에서 장사할 수 있도록 허락하고 중간에서 막대한 이익을 얻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행위는 대제사장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었습니다. 결국 대제사장은 산헤드린 공회를 통해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스스로 인자라고 부르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인간의 몸을 입고 사람의 아들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지기로 선택하셨습니다. 왜 예수님은 십자가를 선택하셨을까요? 왜 예수님은이 땅의 왕이 되는 길을 택하지 않았을까요? 왜 배고픈 사람들, 로마의 압제에 신음하는 사람들의 필요를 뒤로 하신채 십자가의 길을 가셨을까요?
그것은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한 이 땅의 모든 문제들은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죄를 해결하고 그 모든 저주로 부터 우리를 자유케 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십자가를 통한 죄사함만이 우리를 죄에서 자유케 합니다. 죄없으신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흘리신 피, 그 피만이 우리를 정결케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위해 대신 죽으셨지만 죄없으신 예수님은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고백처럼 하나님의 그리스도 이심을 부활로서 확증하셨습니다.
죄를 가지고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는 자에게 예수님은 부활을 약속하십니다. 십자가는 부활로 나아가는 길임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부활이 있기에 우리는 십자가를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죄를 감추지 않습니다. 거짓말로 덮고 은폐하지 않습니다.
4. 나를 좇을 것이니라
예수님은 이제 자신의 죽음과 다시 살아나실 것에 대하여 말씀하신후 다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예수님이 자신을 따르는 길은 십자가의 길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 스스로 십자가를 향해 가시면서 제자들 또한 십자가를 향해 함께 가야 한다고 하십니다.예수님을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목숨을 구하려고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은 목숨을 잃게 될 수도 있다고 하였습니다.
사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라 온 것은 화려한 이스라엘의 회복을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왕이 되면 자신들도 권력의 일부를 차지할 수 있다는 계산이 있었습니다. 그동안의 예수님의 행적을 보면 평범한 사람은 아닌게 분명합니다. 예수님 자신도 스스로 구약의 약속된 메시야라고 선포하였고 베드로의 고백에 동의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제 제자들에게 분명하게 말합니다. 예수님의 나라는 이 땅에서 로마의 압제를 벗어나 독립국가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고 말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이 땅에 이스라엘 나라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온 천하를 얻어도 예수님을 따르지 않으면 결국 생명을 잃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영원한 생명을 잃게 된다는 말입니다. 지금 이 땅에서 잘 사는 것보다 하나님 나라에서 예수님과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것이 더 낫다고 말씀하십니다.
5. 하나님 나라
예수님은 계속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를 볼 자들도 있느니라.”
십자가를 지시는 예수님과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예수님을 따라야 참 제자가 될 수 있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된다는 것은 많은 값을 치러야만 하는 고난의 길이지만 보상도 또한 있다는 것을 강조하십니다. 하나님 나라가 그것입니다.
예수님이 약속하신 하나님 나라는 어떤 것일까요? 지금 이 땅의 나라와 무엇이 다른가요?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가 이루어지는 나라가 하나님 나라입니다. 예수님의 왕되심이 능력과 권세로서 이루어지는 나라 말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눅11:20) 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이 이 땅에 임하심으로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승천 이후에는 성령님이 우리 가운데 임하심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가운데 구체화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교회를 통해 오늘날도 계속해서 확장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다시 오심으로 하나님의 나라는 완성될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 나라는 모든 자의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의 고백처럼 예수님이 하나님의 그리스도 이심을 인정하고 예수님의 본을 따라 사는 사람만의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참 제자만의 나라입니다.
제자의 삶은 고난과 핍박이 있습니다. 하지만 십자가의 예수님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는 자에게 부활과 하나님 나라는 선물로 주어질 것입니다.
6. 나에게 예수님은 어떤 분인가?
우리는 그동안 예수님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보았습니다. 자신들의 배고픔을 해결해줄 왕으로 보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자신의 불륜을 지적했던 불편한 존재로 여기는 헤롯왕도 있었습니다. 로마의 압제에서 벗어나게 해줄 차세대 정치리더로 기대했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자신의 경제적 이득을 방해하는 자로 여겼던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한 산헤드린 공회원들도 있었습니다.
우리 자신에게 예수님은 어떤 분인가요? 내가 어려울때만 필요에 따라 도움을 청하는 해결사로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직장에서 승진하게 해달라고, 더 넓은 집으로 이사가게 해달라고 조르고 있는 대상은 아닌가요? 내 잘못을 지적하고 회개하라고 책망하여 불편해하는 존재는 아닌가요? 자신의 야망을 성취하기 위한 도구로 예수님을 이용하고 있지는 않나요?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라고 제자들에게 물으신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 각자에게 묻고 계십니다. “너에게 나는
누구인가?” 우리에게 예수님은 어떤 분인가요? 우리는 각자 예수님에게 대답해야 합니다. 만약 “예수님은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 라고 대답한다면 예수님은 다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내가 너의 그리스도라면 너는 네 자신을 부인하고 날마다 네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
예수님은 아라비안 나이트에 나오는 요술램프의 지니가 아닙니다. 도움이 필요할때 부르면 언제든지 나타나서 우리의 소원을 들어주는 존재가 아닙니다. 물론 예수님은 우리의 형편을 아시고 도와주십니다. 또한 어려울때 우리는 당연히 예수님께 나아가 도움을 구하여야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우리의 주님이시라면 우리는 예수님이 앞서 가신 십자가를 선택하는 자들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죄와 욕심을 십자가 앞에 가지고 나와 그 위에 못박는 것입니다. 우리의 약함과 거룩하지 못한 모습을 감추지 않고 벌거벗긴채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것입니다.
죄를 버리고 고난의 길을 선택하고 영원한 생명을 선택하는 삶. 십자가의 예수님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그 길을 따라가는 삶.제자의 삶을 우리는 가야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향해 나아가는 자들입니다.
7. 사랑의 교회
마지막으로 사랑의 교회 사태와 관련하여 우리는 잠시 본문말씀을 묵상해 보기 원합니다.
장로들과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죽이고 자신들의 죄악상이 은폐되었다고 기뻐했습니다. 방해세력이 없어졌다고 말입니다.
문제는 예수님이 다시 부활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셨고 이후에 제자들은 계속해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을 증거하였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산헤드린의 죄악상도 함께 전해졌습니다. 그들에게는 참으로 난감한 일이었습니다. 제자들을 핍박하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전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일의 결국이 어떻게 되었나요? 성전은 로마군인에 의해 파괴되고 대제사장은 그 이후로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전승에 의하면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다고 합니다.
사랑의 교회는 행정소송 기각, 표절 무마 등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것 같습니다. 자신들의 부패가 은폐되었다고 기뻐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지 않았다면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십자가는 대제사장과 산헤드린의 부패를 더 분명하게 드러내었고 2천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전해지고 있습니다. 사랑의 교회는 어떨까요? 어떻게 해야 참 예수님의 제자들의 모임인 사랑의 교회가 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한다면 자신의 잘못을 이렇게 은폐 축소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는 방법을 택했겠지요. 예수님의 방법은 십자가 위에 우리의 죄를 벌거벗겨 드러내고 그 위에 못박는 것입니다. 죄를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입니다. 온 천하를 잃어도 영원한 생명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교회는 지금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일에 동참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어떻게 하는 것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일까요? 사랑의 교회 사태와 관련하여 우리 각자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예수님의 말씀을 다시 기억하기 원합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눅 9: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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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대단한 말씀 감사합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나에게 질문하는 말씀으로
다시한번 마음을 가다듬어 보겠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 주일 설교로 대신하겠습니다.
말씀 감사
예수님의 부활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이 세상을 왕으로 통치하신다는 의미겠지요.
감사합니다. 다시 부활하신 주님께서 사랑의교회의 모든 악을 제거하시기 위해
일하고 계심을 믿습니다.
집사님 말씀처럼 예수님은 요술 램프는 아니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형편을 잘아시고 때라 필요한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헌재의 사랑의교회의 현실을 그분은 아시고 기장 좋은곳으로 인도하여 주실것으로 믿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금요마당위에 일어날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방법으로 해결하실것 입니다 우리모두 하나님의 공의가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우리모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하시는 일도 많은데 글까지 쓰시느라 고생이 많습니다. 장문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이제 사랑의 교회는 담임 목사를 청빙하지 않아도 설교에서라면 별 지장이 없을 것 같네요 어떤 분 보다 더욱 진솔한 설교자가 많이 계시기 때문이에요. 설교는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딸들에게 하시고자 하는 말씀을 사람을 통하여 가감 없이 전하는 것 아닌가요. 부탁을 받아 누구의 말을 전하는 것이 아니고. 그리고 연약하게 보이는 성도들에게 공갈하고 협박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잖아요.
주일마다, 부탁을 받고 남의 말을 전하는 것을 설교대신 들어야하는 괴로움, 공갈, 협박, 바보 취급당하는 것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고싶습니다.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복음, 제자도의 핵심과 사랑의 교회 사태에 대해 정곡을 찌르는 말씀으로 다가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하나님이 내 속에 계심으로 우리 가운데 거하심으로 구체화되고 있다는 데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제자의 삶은 고난과 핍박이 있다는 것에도 동감합니다. 고난과 핍박이 있다는 것은 우리가 제대로 하고 있다는 증거요 예수님의 제자라는 증표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오 묵사는 그동안 심혈을 기울여 왔던 세상을 놓치지 않으려고 아니 놓는 것이 무서워 영원한 생명을 버리는 우를 범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와 그를 둘러싼 측근들을 불쌍히 여기고 기도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31200
독재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사람은 단순하고 무식한 대중들이고, 교권주의자들이 제일 좋아하는 교인은 영적으로 무지한 신도들입니다. 사실 지각 있는 신자들이 모인 교회라면, 누구도 교권을 함부러 휘두르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언제나 교권주의자들에게 힘을 실어 주는 사람들은 외부인들이 아니라 바로 개교회의 맹신도들이기 때문입니다. 결국은 신자들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 안에서 깨어 있어야만 비로소 교권주의를 막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