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작인

[김신부]

20250321 사순 제2주간 금요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1,33-43.45-46
그때에 예수님께서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말씀하셨다.
33 “다른 비유를 들어 보아라. 어떤 밭 임자가 ‘포도밭을 일구어 울타리를 둘러치고 포도 확을 파고 탑을 세웠다.’ 그리고 소작인들에게 내주고 멀리 떠났다.
34 포도 철이 가까워지자 그는 자기 몫의 소출을 받아 오라고 소작인들에게 종들을 보냈다.
35 그런데 소작인들은 그들을 붙잡아 하나는 매질하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을 던져 죽이기까지 하였다.
36 주인이 다시 처음보다 더 많은 종을 보냈지만, 소작인들은 그들에게도 같은 짓을 하였다.
37 주인은 마침내 ‘내 아들이야 존중해 주겠지.’ 하며 그들에게 아들을 보냈다.
38 그러나 소작인들은 아들을 보자,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고 우리가 그의 상속 재산을 차지하자.’ 하고 저희끼리 말하면서,
39 그를 붙잡아 포도밭 밖으로 던져 죽여 버렸다.
40 그러니 포도밭 주인이 와서 그 소작인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41 “그렇게 악한 자들은 가차 없이 없애 버리고, 제때에 소출을 바치는 다른 소작인들에게 포도밭을 내줄 것입니다.” 하고 그들이 대답하자, 
4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성경에서 이 말씀을 읽어 본 적이 없느냐?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
4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너희에게서 하느님의 나라를 빼앗아, 그 소출을 내는 민족에게 주실 것이다.”
45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은 이 비유들을 듣고서
자기들을 두고 하신 말씀인 것을 알아차리고,
46 그분을 붙잡으려고 하였으나 군중이 두려웠다. 군중이 예수님을 예언자로 여겼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사제서품 후 바로 로마에 성경공부하러 갔을 때 일입니다. 국제수도회인 우리 수도회 여러 대륙에서 유학 온 서른 여 명의 형제들은 함께 공동체생활을 하면서 각자 전공 공부를 합니다. 매년 새로 공부하러 온 형제들이 공동체에 합류하면 첫 해에 자기 나라를 공동체 형제들 앞에서 소개하는 시간이 있습니다. 그때 한국을 소개하면서 마침 서울 우리 성북동수도원 근처에 있는 창덕궁 후원 (비원)에서 당시 총장신부님과 신학생 때 찍은 사진이 있어, 형제들에게 보여주면서, 우리 '고향 집'이라고 하니, 다들 엄청 부러워했던 기억이 납니다. 사실 한 달 배운 짧은 이태리말로 복잡하게 설명하는 것이 어려워, 내딴엔 그냥 쉽게 말한 것이었습니다. 실제 우리 고향 집도 전통 기와집에다가 마당에는 감나무를 비롯하여 온갖 과일나무와 꽃나무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알고보면 사실 창덕궁이나 설악산이나 동해바다나 다 내꺼고 우리꺼입니다. 모두에게 주신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원통 폐교도 임대였지만, 우리 집으로 십오 년 넘게 잘 가꾸고 살았고, 지금 우리 밥집도 비록 시유지지만 우리 집으로 잘 이용하며 살고 있습니다. 여기도 살다 때가 되면 또 더 좋은데로 갈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진짜 좋은 곳, 맨날 좋은 친구들과 어울려 즐겁게 사는 곳, 아버지 집으로 갈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예외없이 사람은 알몸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살다가 알몸으로 다시 하느님께로 돌아갑니다. 로마에서 살 때는 아름다운 로마와 앗시시와 피렌체와 나폴리, 아말피 해변이 내꺼였습니다. 가끔은 베드로 광장을 자기 집으로 사는 털보들이 부럽습니다. 끼니 때가 되면 광장 근처에 있는 봉쇄 관상수도원에서 샌드위치와 우유와 커피를 주어 의식주 걱정없고, 골치아픈 공부 안해도 되고, 잔소리하는 사람도 없고, 아름다운 베드로 대성당 품에 안겨 사니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지금은 현 교황님이 광장 우현에다 이 집없는 천사들을 위해 훌륭한 화장실과 샤워장까지 갖추어주었다. 그리고 매년 교황님 생신날에는 교대로 이 식구들이 초대받아 교황님과 함께 아침식사를 합니다.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거지철학자' 별명을 가진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디오게네스처럼.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에는 하느님의 인류 구원의 위대한 역사가 담겨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과 당신을 닮은 인류를 창조하시고, 그 인류로 하여금 풍요롭고 아름다운 낙원, "에덴동산"에서 당신과 더불어 살게하셨습니다.

그러나 사탄의 유혹에 빠진 인간은 낙원에서 쫓겨나 이 세상에서 나그네로 살게 되었습니다. 죄와 죽음의 한계 속에서. 

그러나 아브라함을 부르심으로 인류 구원의 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땅과 후손과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모세를 부르시어 당신 백성과 계약을 맺으시고 그들을 약속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약속의 땅으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언자들을 보내시어 약속의 땅에서 당신 백성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러나 어리석고 탐욕스런 이 백성은 계약을 저버리고 배신을 반복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느님께서 보내신 예언자들을 붙잡아 매질하고 죽이기까지 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마침내 당신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이 백성의 사악한 지도자들,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은 상속 재산을 차지하기 위해 그를 붙잡아 포도밭 밖으로 던져 죽여버렸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사악한 무리들을 물리치시고, 새 하느님 백성과 새로운 계약을 맺으시고, 그들에게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새 포도밭, 곧 하느님 나라를 맡기실 것입니다.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이 하느님 나라를 다스리실 것입니다.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한" 위대한 하느님의 역사입니다.

과연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희생제사로 새 계약을 맺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통하여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셨습니다. 그 성령을 통하여 새 하느님 백성, 곧 교회를 세우시고, 그 교회에 새 포도밭, 곧 하느님 나라를 맡기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풍요롭고 아름다운 새 포도밭을 가꾸도록 부름받은 아름다운 소작인들입니다.

오늘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 말씀은, 이 세상은 우리에게 맡겨진 풍요롭고 아름다운 포도밭이요, 그 주인은 하느님이시고, 우리는 포도밭을 가꾸는 소작인임을 상기시켜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