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도 받아들여야 할 인연이다
황복숙
긴 겨울 섣달 밤 달빛이 매우 밝았다. 불을 끄고 누워서 쇼팽의야상곡 조성진의 피아노 연주를 유튜브에서 들었다. 창으로 들어오는 달빛이 온갖 그림자를 길게 늘어 뜨려 마치 대나무를 먹물로 칠한 듯 그윽하게 벽을 물들이고 있다.
어릴 때 나는 헤어지는 것을 무척 싫어했다. 친구들과 신나게 놀고 있을 때 해질 무렵 어머니께서 “그만 놀고 들어와라, 내일 만나서 놀면 되잖니?” 소리가 크게 들렸어도 같이 놀던 친구들과 헤어지기 싫어서 땅거미가 내리고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캄캄해져서야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여고 다닐 때 이었을까? 지금은 서울에 사는 친구와 친했던 나는 학교가 끝나면 나란히 걸었다. 친구의 집은 고사동이었고 내 집은 인후동 이었다. 함께 걸어서 전주고등학교 거의 오기 전, 전북은행 노송동 지점이 있었고, 도로 위 인도에는 버드나무가 있었다.
버드나무 앞에서 헤어지곤 했다. 친구와 나는 마음이 서로 통해서 헤어질 때면 걸어 온 길을 되돌아 걷곤 했다. 다시 헤어질 곳이 가까워 오면 “한 사거리만 더 걸어가자” 그렇게 홍지서림 사거리에서 지금의 한옥마을까지 이르는 것이 보통이었다.
경기전을 지나 거의 학교까지 되돌아 가곤했다. 그것은 서로가 좋아해서 잠깐이라도 함께 있고 싶음도 있었지만 누군가와 헤어지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맺은 인연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
헤어지기를 싫어하는 성격은 사람과의 인연뿐이 아니다. 영화를 관람하려고 영화관에 가면 아침 9시부터 해저물때까지 점심을 굶은 채 영화를 보곤 했다. 영화가 끝날 즘이면 계속 상영한다면 얼마나 좋을까를 생각했고, 집으로 돌아 올 때도 못 내 아쉬웠다.
책을 읽는 것도 마찬가지 였다. 어릴 때 읽었던 만화책은 한 장, 한 장 넘기는 것이 아쉬워 읽고 또 읽고를 반복하곤 했다. 헤어지거나 이별하는 것을 싫어하는 내 성격은 물건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오래 신어 낡아 헤어진 구두를 버리지 못하고, 집안의 물건도 새 물건을 사는 일보다는 낡은 물건을 사랑하고 아끼며 쓰고 있다.
오래전 젊어서 입던 옷이 작아도 그 옷에 애착이 간다. 많은 세월이 흘렀으니 장롱과 TV, 가전제품들은 대부분 수십 년 된 것 들이다. 망가져 최근에 바꾼 제품도 있지만, 지금도 잘 쓰고 있는 선풍기는 40년 된 고물 임에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몇 년 전에 고장이 나 바람을 낼 때 부서지는 계곡물소리를 내 서비스 센타에 가지고 간 적이 있다. 오래되어 부속이 없어 고칠 수 없으니 그대로 쓰다가 멈추면 버리라고 했다.
그럼에도 지난 여름에 책을 읽을 때, 글을 쓸 때도 금방이라도 부서 질듯 소리를 내면서도 시원한 바람을 불어 줘 무더운 더위를 식혀 주었다.
지금 우리 집에서 가장 큰 골칫덩이는 피아노다. 자식들 셋이 다 구식 피아노라 너무 커 자리를 많이 차지해 가져 갈 수 없단다. 그래서 손자, 손녀들이 오면 아름다운 선율을 들려주기에 만족하며 바라보고 있다. 버리기 전의 골칫덩이는 검은색 가죽소파 였다.
젊어서 전세 아파트에 살다가 처음으로 집을 장만해 이사를 했다. 집들이를 할 때 남편친구가 소파가 없다고 선물해 주었다. 전에 살던 아파트는 작은 평수의 아파트 였다. 결혼을 해 방두 칸, 재래식 부엌인 집에서 살다가 아파트로 이사를 가니, 이집 저집들이 난리가 났다.
장식장에 소파, 침대를 들여 놓고, 피아노를 사니 나도 질 세라 따라서 소파, 장식장, 침대에 피아노를 들여 놓으니, 19평 좁은 집이 그 때는 좁은 줄 모르고 좋았다. 1년이 지나니 집이 좁아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분양 받아 이사 간 새집에서는 소파 없이 넓게 살기로 했다.
그래서 사지 않은 소파를 남편 친구가 사 주어, 그 소파는 외손자를 볼 때까지 곁에서 함께 했다. 잠이 오면 누워서 자고, 차도 마시고, 친구들이 오면 수다의 장소 이기도 했다. 세월이 오래되어 가죽이 갈라지긴 했어도 요란하게 보기 흉하지는 않았다. 외손자를 봐 주었는데 외손자가 돌지나 걷기 시작하면서 가죽이 갈라진 틈을 손으로 쥐어뜯어 등가죽이 허옇게 찢어지니 도저히 보고 있을 수가 없어 버렸다.
오래 전의 일이다. 새 차를 구입해 10년을 넘게 탔더니 고물이 되어 달리다가 도로에서 멈추고, 아침마다 시동을 걸면 요란한 소리를 내니, 이웃들에게 미안해 어쩔 수없이 폐차를 하고 다른 차를 구입해 타고 있다.
낡은 물건을 고집하고, 낡은 소파가 등가죽을 드러내도록 고집했던 것은 알뜰하거나 소박해서가 아니라 오랜 세월을 함께 함이고, 깊이 정들었던 사람들과 또 물건들과 헤어지기 싫어서 이다.
낡은 것을 버리고 새 것을 장만하면 옛 물건과 인연이 끊어져 잊혀 지기 때문이다. 소파에 누워서 쉬던 그 기억들이 사라지기에 쉽게 버리지 못한다.
그런 이유에서 지금 살아가는 것도 그렇다. 남편을 만나 연애를 할 때 직장에서 퇴근을 하고 만나는 데이트는 시간이 짧았다. 만날 때는 좋았지만, 헤어지는 일은 너무 힘들었다. 헤어지면 내일 또 만날 수 있지만, 내일은 내일이고 지금은 지금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결혼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헤어지는 일이 없이 같이 있고 싶었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이 흘러 칠순의 나이니 얼굴에는 주름이 가득하고 검은 머리카락은 볼 수 없고 하얀 백발이 무성하게 늙은 지금, 만나면 헤어지기 싫어 걸었던 길을 다시 걸었던 그 때를 떠 올리며 설레는 마음으로 약속장소로 달려가던 그 마음으로 산다.
언제 인가는 하느님이 맺어 주신 인연을 죽음이 갈라놓을 것이지만 그 때 까지는 헤어지기 싫어 망설였던 일들을 기억하며 연애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 세 아이가 성장해 결혼을 해서 다복한 가정을 이루고, 손자, 손녀가 나보다 더 크다. 요즘에는 점점 이별의 순간을 맞는 일이 자주 생긴다.
남편 친구가 지병으로 세상을 등지더니, 지난 가을에는 남편 친구 부인이 암으로 투병을 하다가 떠나고, 고등학교 동창이 교통사고로 운명을 달리했다. 얼마 전 문득 3년 전에 돌아가신 분이 생각나서 핸드폰 속에 저장되어 있는 번호를 슬그머니 눌러 보았다.
이미 주인이 바뀐 핸드폰의 목소리는 낯설었다. 어느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 올 뿐 이었다. 젊음을 함께 지내던 추억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그래도 나는 많은 인연과 헤어지지 않고 이으며 살고 있다.
인연과의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고, 낡은 물건에 정을 주고 매일 바라보며 ‘저 피아노 어떻게 해’ 하면서도 애정을 표현하고, 큰딸 나이보다 더 먹은 장롱에게도 ‘너와 나 만난 것도 인연이야’ 라는 말을 하며 매일 닦아 준다.
커피를 마시며 만남, 이별 이라는 인연을 생각 하곤 한다. 이별이라는 슬픔도 있지만, 이별도 받아들여야 할 인연이다. 라고 마음을 위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