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3일(화) 이사야 6:8-13 찬송 421장
8.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10.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
11. 내가 이르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하였더니 주께서 대답하시되 성읍들은 황폐하여
주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는 황폐하게 되며
12. 여호와께서 사람들을 멀리 옮기셔서 이 땅 가운데에 황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13.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아직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될 것이나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이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하시더라
(개역 개정)
- 선지자 이사야의 소명과 사명 -
환상 속에서 한 스랍이 가지도 온 제단 숯불로 입술의 정함을 받은 이사야(1-17절)가
곧이어 하나님의 뜻을 전할 사자를 찾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자발적으로 순종함으로써 소명맏은 사실(8절)과
남유다 백성의 완고함을 책망하라는
하나님의 사명을 받은 사실(9-13절)을 기록하고 있다.
이같은 이사야 선지자의 소명 기사는
그의 선지직과 메시지의 신적 지원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사야가 하나님의 거룩하신 모습을 발견하고
제단 숯불로 정함을 받고 난 후에 하나님의 소명을 받은 사실은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
그리고 당신의 거룩하심을 본받아 거룩하게 살기를 힘쓰는 자를 통하여
당신의 구속 사역을 이루어 나가신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이는 본 이사야서의 핵심 주제 중 하나로서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종국적인 구원과 축복 및 영광을 누릴 자는
신분이나 혈통에 관계없이 오직 성결함으로
주 앞에 나와 경배하는 자라는 사실을 보여준다.(66:20, 22-23)
그러므로 우리들은 항상 우리들을 성도(聖徒)로 부르신 분의
선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여 좇아 행함으로써
자신의 소명을 온전히 감당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엡1:11-12)
한편 하나님께서 이사야에게 주신 메시지에서
남유다가 완전히 멸절될 때까지 심판하실 것이나
그 그루터기 곧 거룩한 씨는 남기실 것이라고 하신 말씀(13절)은
이사야서 전체에서 거듭 언급되고 있는 바 ‘남은 자’ 사상의 핵심을 보여주고 있다.
8절)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라고
말씀하실 때 즉시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하고 대답하였다.
즉 이사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메신저로 자처하고 나선 것이다.
그런데 이사야가 이처럼 하나님의 메신저로 자처한 것은
하나님의 메신저가 되는 것이 영광스러운 일이거나
자기에게 어떤 유익이 되는 일이어서가 아니다.
사실 하나님의 메신저가 되기 위해서는 자기의 개인적인 삶을 포기하여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성경에서 선지자들이 전한 메시지는 대개 책망과 경고를 내용으로 한다.
이처럼 책망과 경고의 메시지는
전하는 사람에게나 듣는 사람에게나 결코 유쾌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선지자들은 늘 사람들로부터 배척을 받았고
심한 경우에는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었다.
본서 이사야의 메시지를 보면 대부분 책망과 경고로 이루어져 있으며
전해 오는 바에 의하면 이사야는 이같은 메시지를 충성스럽게 전하다
악독하며 불경한 므낫세 왕에 의해 혹독한 방법으로 죽임을 당하였다고 한다.
하나님의 메신저가 되는 일에 이러한 고난이 따른다는 사실을 모르고
이사야가 경솔하게 단순히 영웅심 하나로
하나님의 메신저가 되겠다고 자원하였다고 생각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만일 그가 그러한 영웅심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하였다면
그는 고난이 올 때 선지자로서의 사역을 중도 포기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순교를 당하기까지 선지자로서의 사명을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 수행함으로써 후대의 사람들에게
가장 위대한 선지자 중 한 명으로 추앙을 받고 있다.
이는 그의 선지자 자원이 단순한 영웅심에서가 아니라
분명한 소명 의식과 사명감 속에 이루어졌음을 증거하여 준다.
이에 더해 이사야가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서 즉각적으로 응답한 것은
민족에 대한 사랑이 그만큼 뜨거웠기 때문이다.
그는 비록 동족의 잘못을 책망하기는 하였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뵙는 체험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유다가 얼마나 심각한 상태에 있었는지 잘 몰랐다.
그는 웃시야만 회복되었어도
유다가 다윗과 솔로몬 시대의 영광을 회복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때문에 그는 웃시야의 죽음 앞에서 그 절망감이 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뵙자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그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영광에 비추어 볼 때
자신을 비롯한 유다 사람들이 얼마나 심각한 죄인들인가를 깨닫게 되었다.
만일 그러한 상태가 지속된다면 유다는 영영 파멸을 피하지 못할 것이었다.
이에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자 주저하지 않고
유다를 향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메신저가 되기로 자원한 것이다.
그는 자신의 사역으로 멸망으로 치닫는 민족을 구원하기를 바랬다.
그는 자기의 개인적인 삶과 생명을 바쳐서라도 유다를 구원하기를 바랬다.
실로 이사야에게는 동족에 대한 강한 민족애, 동족의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말씀 전파에 대한 강한 열정을 보였다.
이러한 이사야의 마음은 곧 우리 하나님의 마음이기도 하다.
하나님께서는 비록 죄인이며 보잘것없는 초라한 존재들이지만
우리들의 생명을 아끼고 사랑하셨기에 그 생명을 구하기 위하여
자기 아들의 생명까지도 내어놓으신 분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도 가져야 한다.
멸망의 위기에 처한 우리를 외면하지 않고 우리의 생명을 구하시기 위해
자기 생명도 아끼지 않으신 우리 주님의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우리 역시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는 복된 사역을 감당해야 한다.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롬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