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적 따지고 만나이 따지면 35세지만 서정원은 한국 나이로 서른 일곱살(69년생)이다. 현역 최고령이다. 지난해에는 현역 동기로 신태용 호주 퀸즐랜드 로어 코치가 함께 그라운드를 누볐지만 올초 은퇴해 버렸다. 하지만 그는 나이를 거꾸로 먹고 있다. 오스트리아 땅을 밟은 지 9개월이 흘렀다. 첫 팀인 잘츠부르크에서 지난 6월 수많은 유혹을 뿌리치고 2005~2006시즌 1부 리그로 승격한 SV리트에 새로운 둥지를 틀었다.
그리고 서정원은 2만명이 옹기종기 모여사는 전원도시 리트의 영웅이 됐다. 최근에는 오스트리아 T-모바일 분데스리가 이적 선수 94명 가운데 최고의 평가를 받았다. 더구나 7골로 리그 득점 순위에서도 5위에 올라 있다. 1위 마리오 바지나(10골ㆍ리브헤르)와는 3골차. 리트 동료들은 서정원에게 "왜 나이를 속이느냐. 실제 나이가 몇이냐"는 농담과 함께 부러운 시선을 보내고 있다. 특히 국내에서는 A대표팀 복귀 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오스트리아에서 최고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서정원의 성공 신화를 파헤쳐봤다.
▲ 몸관리, 밥이 보약
서정원은 2개월 전 구단에서 체력테스트를 받았다. 피도 뽑고, 폐활량도 측정하는 등 일종의 종합 검진이었다. 구단 관계자들은 서정원의 테스트 결과를 받아보고 눈을 의심했단다. 30대 중반의 서정원이 20대 초반의 체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역시 서정원의 최고 자랑거리는 철저한 자기관리다. 술-담배는 물론 탄산음료, 커피 등 몸에 좋지 않다고 알려진 것은 절대로 가까이 하지 않는다. 서정원은 "어렸을 때부터 나쁜 것들을 멀리하다보니 이것이 축척되어서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럼 보약은 1년에 몇 재 정도 먹을까. 보통 운동선수들은 몸에 좋다고 하면 뭐든지 가리지 않는 편이다. 몸이 재산이기 때문이다. 심한 선수들은 1년내내 보약을 끼고 산다. 하지만 서정원의 보약은 밥이다. 별도로 먹는 보약은 1년에 1재 정도. 서정원은 "규칙적인 식사와 취침전 다양한 종류의 과일 한 접시를 먹는 것이 체력을 유지하는 비결"이라고 말했다.
▲ 온 가족이 리트의 스타
불세출의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와 베토벤, 슈베르트의 고향인 오스트리아는 사방이 '여행사 달력'이다. 창문만 열면 알프스 산맥을 배경으로 한 눈부신 경관이 펼쳐져 말문이 닫히게 한다. 리트도 예외는 아니다. 수도 빈에서 차로 2시간, 잘츠부르크에서 40분이 소요되는 리트는 독일과의 국경에 위치해 있다. 인구는 2만명 정도. 한국과 비교하면 읍단위의 지방 소도시인 셈이다.
이렇다보니 '세오(Seo) 군단'의 일거수일투족은 전 주민의 관심사가 됐다. 서정원은 두말할 것도 없고, 아내 윤효진씨(33)와 '리트의 스리 동'으로 불리는 동훈(9)
동재(7) 동완(5) 세 아들은 늘 화제의 중심에 서 있다. 특히 리트에는 손에 꼽을 만큼 동양인을 찾기 어려워 이들이 뜨면 금세 알아본다. 윤씨가 슈퍼마켓 등 쇼핑몰에서 바람몰이를 한다면, 동훈이와 동재는 초등학교에서, 동완이는 유치원에서 대스타다. 서정원은 "동훈이와 동완이가 학교에서 최고의 스타라고 자랑한다. 가족이 오스트리아 생활에 만족해 선수 생활을 하는데 너무 즐겁다"며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다.
▲ 축구 낙원, 내가 꿈꾸던 그곳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도 선수 생활을 했지만 서정원은 요즘 깜짝깜짝 놀란다. 세계 3대 빅리그는 아니지만 구단 운영 등이 이전에 경험한 어떤 곳보다 뛰어나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다.
어느 정도냐하면 SV리트에는 서정원 전담 마크맨까지 있다. 선수 출신인 네오다. 네오는 서정원의 5분 대기조다. 매일 집을 방문해 필요한 것이 없느냐며 점검하는 것은 물론 언제, 어디에서 호출을 해도 5분 안에 나타난다. 서정원은 "선수에 대한 배려가 이 정도인지 몰랐다. 처음봤다"며 "미안해서 부탁을 최대한 자제하려 한다"고 했다.
SV리트에서 선수 생활을 하면서 가장 큰 장점은 독일어와 영어를 함께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오스트리아는 공용어가 독일어지만 대다수의 국민이 영어를 구사한다. 서정원도 2개 언어를 함께 습득하고 있다. 또 지도자의 길을 걷기 위해서는 외국어가 필수인 시대가 왔다. 서정원은 현역에서 은퇴한 후에도 5년간 더 외국에 머물며 지도자 연수를 받을 예정이다. 그는 "맘껏 그라운드에서 뛸 수 있고, 독일어와 영어도 배울 수 있어 오스트리아가 곧 지상낙원인 것 같다"며 활짝 웃었다.
▲ 불멸의 신화는 계속된다
1m74, 67kg. 체격 조건만 봤을 때 공격수 서정원은 10%는 부족하다. 하지만 그는 타고난 성실함으로 모든 것을 극복해 왔다. 물론 축구에 대한 애정은 상상을 초월한다. 100m를 11초에 주파하는 '총알'이라 축구가 아닌 육상 선수로 일찌감치 자질을 인정받았지만 축구를 배우기 위해 중학교를 여섯 번이나 옮겨다녔다.
아직 서정원이 갈 길은 멀다. 그의 말처럼 이제 시작이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는 것이 인생 모토가 됐다. 서정원은 스승인 차범근 수원 감독의 해외파 현역 최장수 기록(36세)을 넘어 40세까지 선수 생활을 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갖고 있다. 리트와의 계약 기간은 1년이지만 계약 연장은 물론 다른 리그로의 이적도 고려하고 있다. 또 국가대표팀에서 불러준다면 응할 생각이다. 그는 "노장은 없다. 그라운드를 휘젓는 공격수 서정원 만이 있을 뿐"이라고 강한 자신감을 나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