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우-홍어 접대에 현금 매수까지… 농-수협 조합장 선거 과열
[혼탁한 조합장 선거] 3월 8일 전국 조합장 1347명 선출
연봉 1억에 인사권, 금융-판매 관장… 지역 여론 좌우할 영향력 가져
‘제왕적 권력’에 돈선거 유혹 여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17일 경기 과천청사에서 박찬진 사무총장 주재로 전국 17개 시도선관위 사무처장 화상회의를 열고 제3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 특별단속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중앙선관위 제공
“농협 조합장 A 씨가 지난해 추석 때 유권자인 조합원에게 전복 선물세트를 돌렸다.”
지난달 대구선거관리위원회에 이런 익명의 제보와 함께 택배 송장번호가 전달됐다. A 씨는 대구선관위가 다음 달 8일 열리는 전국 조합장 선거를 앞두고 입후보 예정자로 미리 분류했던 인사다. 제보 접수 뒤 대구선관위는 택배회사와 전남 완도의 전복 판매업체까지 탐문한 끝에 A 씨 명의로 4만5000원 상당의 선물세트 126개가 발송된 것을 확인했다. 대구선관위의 추궁에 A 씨는 “조합원은 빼고 선물을 보내려고 했는데 알고 보니 (조합원들까지) 다 보내졌다”고 실토했다. 결국 대구선관위의 고발에 따라 경찰은 22일 A 씨를 공공단체 등 위탁선거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
● 한우-홍어 접대에 ‘다단계 매표’까지
지역 농협, 수협 등 협동조합의 장(長)은 당초 각 조합이 독자적으로 선거를 실시해 뽑았다. 하지만 조합원들만 투표권을 갖는 폐쇄적인 조합장 선거의 특성상 금품 제공, 부정 투표 등 논란이 커졌다. 결국 2015년부터 전국 모든 조합의 조합장 임기를 통일해 선관위 주관으로 4년마다 동시 선거를 치르기로 했다.
이에 따라 다음 달 8일 3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가 치러지지만, 대구의 사례처럼 여전히 조합장을 둘러싼 ‘돈선거’가 전국 각지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번 조합장 선거에는 전국에서 262만2225명의 조합원이 참여해 전국 농·수협과 산림조합의 조합장 1347명을 뽑는다.
최근 전북 전주시 일대에는 ‘금품(홍어 등)을 받은 조합원은 선거관리위원회에 자수해 과태료를 감경·면제받기를 바란다’는 내용의 현수막이 걸렸다. 금품 선거 제보를 받은 전북선관위가 공개 경고 및 자수 권유에 나선 것. 이후 20명의 유권자가 선관위에 자수했다. 조합장 선거는 총선, 지방선거 등과 마찬가지로 금품을 준 사람도, 받은 사람도 모두 처벌 대상이다.
선물 외에도 식사 대접, 찬조금 등 돈을 뿌리는 방법은 가지각색이다. 강릉선관위는 16일 지난해 12월 조합원들이 참여한 관광 행사에 603만 원의 한우 식사 비용을 제공한 혐의로 B 씨를 경찰에 고발했다. 경기 파주의 한 조합장 선거에 뛰어든 C 씨는 지난해 조합원이 포함된 마을 행사에 160만 원의 찬조금을 7차례에 나눠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다.
아예 유권자인 조합원을 매수하는 사례도 있다. 전남에서는 한 조합장 후보자의 측근이 조합원에게 100만 원을 주고, 이 조합원이 다른 조합원에게 50만 원을 건네는 ‘다단계 매수’가 적발되기도 했다.
2015년부터 조합장 선거를 위탁 관리하는 중앙선관위가 불법 단속에 총력을 다하고 있지만 이런 돈 선거 관행은 끊이지 않고 있는 것. 영남 지역의 한 정치권 인사는 “돈을 많이 주는 후보를 찍어주는 조합장 선거의 오랜 관행이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 조합장, 연봉 1억 원에 지역 여론 좌우
조합장 후보들이 형사 처벌의 위험까지 감수하며 불법 선거를 벌이는 건 조합장이 갖는 막강한 권한 때문이다. 지방에서는 “조합장이 어지간한 지역 공기업 사장이나 공공기관장보다 낫다”고 할 정도다.
조합장의 평균 연봉은 통상 1억1000만 원 수준으로 규모가 큰 조합은 연봉이 더 많다. 업무추진비 등 수당은 별도고, 운전기사와 차량도 제공받는다. 또 조합 직원 채용 등 인사권에 더해 조합의 대출 등 금융, 농수산물의 판매 및 유통 등을 관장한다. 조합장을 두고 ‘제왕적 권력’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전북 정치권의 한 인사는 “조합장 후보자들이 선거에 돈을 쓰는 건 당선 이후 그 비용을 충분히 회수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역 내 정치적 위상도 막강하다. 지역 행사에서 국회의원과 자치단체장 다음으로 소개되는 사람이 조합장이다. 일반 유권자들보다 결속력이 강한 조합원들을 등에 업고 지역 여론을 좌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인구가 적은 시(市)나 군(郡)의 경우 조합장의 영향력이 더 세다. 농협중앙회의 한 전직 간부는 “돈과 이권, 그리고 조합원과 조합 직원이라는 인적 네트워크 등을 토대로 국회의원과 시장, 군수에게 정치적 압력을 행사하는 권능이 ‘조합장 파워’의 핵심”이라며 “어지간한 시의원, 군의원은 조합장이 ‘이 사람아’라며 하대(下待)해도 꼼짝 못 한다”고 했다. 게다가 3선 연임 제한이 있는 자치단체장과 달리 조합 자산이 2500억 원 미만인 비상임조합장은 연임 제한이 없어 수십 년 ‘장기 집권’이 가능하다.
특히 내년 총선을 앞두고 지역 국회의원들도 이번 조합장 선거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한 국민의힘 보좌관은 “조합장이 ‘그 의원 일 참 잘하더라’라는 식으로 지지 의사를 표출하면 큰 도움이 된다”며 “지역 여론을 주도하는 조합장과는 항상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 노력한다”고 전했다.
조권형 기자, 전주=박영민 기자, 춘천=이인모 기자
“금품 받으면 50배 과태료… 제보자엔 최대 3억 포상금”
[혼탁한 조합장 선거]중앙선관위 ‘돈선거 근절’ 총력전
224곳 특별관리 광역조사팀 상주
“선거운동 확대 등 개선책 필요”
다음 달 8일 치러지는 제3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를 앞두고 부산 신암어촌계 해녀들이 22일 부산 기장군 연화리 앞바다에서 깨끗한 선거를 당부하는 ‘청정바다 클린선거’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부산=뉴시스
다음 달 8일 치러지는 제3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를 총괄 관리하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돈선거를 뿌리 뽑겠다”며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중앙선관위는 금품 제공자는 무관용 원칙을 적용해 엄단하고, 금품을 받았다면 가액의 최대 50배를 과태료로 부과하기로 했다. 또 돈선거 제보자에겐 최대 3억 원의 포상금을 제공하고 금품 수수를 자수하면 과태료를 줄여주거나 면제해준다.
중앙선관위는 다음 달 1일부터 선거일인 8일까지를 ‘돈선거 척결 특별단속기간’으로 지정하고 단속 역량을 총동원하기로 했다. 중앙선관위는 돈선거가 우려되는 전국 80개 구·시·군 224개 조합을 금품선거 특별관리지역으로 지정하고 광역조사팀을 상주시키고 있다. 또 전국에서 1283명의 공정선거지원단이 후보자와 측근의 활동을 감시하고, 읍·면·동 위원과 이·반장 등 지역 여론주도층 2869명이 자정 노력을 권장하는 ‘조합선거지킴이’로 활동한다.
중앙선관위에 따르면 2015년 제1회 선거에선 전체 적발 대상의 19.7%(867건 중 171건)를 고발했는데, 2019년 제2회 선거에선 적발 대상의 26.2%(744건 중 195건)를 고발하면서 대응 수위를 높이고 있다.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돈선거 정황이 발견되면 끝까지 경로를 추적해 엄중 조치할 것”이라며 “선거 종료 후 적발된 사안도 동일한 원칙하에 강력히 조사해 조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또 돈선거를 포함한 위법행위를 신고하면 심사를 통해 최고 3억 원의 포상금을 지급한다. 2019년 선거에서는 광주광역시 입후보예정자가 조합원 10명에게 현금 550만 원을 돌린 걸 제보한 이에게 포상금으로 1억 원을 지급한 사례가 있다. 신고는 ‘국번 없이 1390’으로 하면 된다.
정치권에서는 “혼탁 선거를 막기 위해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행법상 현직 조합장은 매년 1, 2월에 열리는 조합 행사에 참석해 홍보할 수 있지만 현직이 아닌 다른 조합장 후보들은 선거운동 기간인 13일 동안 후보자 본인만 선거운동을 할 수 있다. 결국 현직 조합장이 아닌 후보들이 인지도를 끌어올리기 위해 돈선거의 유혹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중앙선관위는 조합장 선거에도 예비후보자 제도를 신설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공공단체 등 위탁선거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2015년과 2019년 두 차례에 걸쳐 국회에 냈지만 여야의 무관심 속에 통과되지 못했다. 중앙선관위는 “4년마다 치러지는 조합장 선거가 신뢰받는 선거가 되려면 조합원의 알 권리를 강화하고 선거운동의 자유를 확대하는 제도 개선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동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