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을 돌고 돌아~ 이런 적이 있었던가
칠순을 맞아 차린 칠순 잔치에 몇 번 대접받은 적은 있다. 몇 번 초대받았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누구로부터 초대받았느냐가 문제라서
하는 말이다. 칠순 친구로부터 연락을 받고 얼떨결에 음식 얻어 먹고 왔지만 막상 그 잔치에 본인으로부터 이 초대 자식들로부터 초대받았는
지는 전연 생각치도 않았고 그 잔치를 누가 주선한 것인지는 털끝만치도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그냥 70을 맞는 생일날, 일흔 번째 생일이니까 함께 밥이나 먹어 보자는 무색무취의 흔하디 흔한 식사초대로만 여겨 왔다.
회갑의 나이를 자랑 할일도 아니요, 희수의 나이가 대단할 것도 못 되는 고령화시대의 요즘 부모님의 팔순 잔치에 부모의 친구나 자식 된
자의 친구들을 모아 놓고 장수를 축하하고 무병하심을 부모 친구 친지들과 잔치를 갖자는 전갈을 누구로부터 받았느냐는 말을 들었을 때 은연중
너무 세상을 가벼히 살고 있구나 하는 부끄러움을 느꼈을 정도였다
어떤때는 밥술이나 뜨는 형편이 되었는데도 제대로 앞길도 못 가리는 자식형편 생각해서 그냥 지나쳐서야 체면이 서지 않을까 걱정한 나머지
스스로 자리마련하는 어처구니 없는 잔치도 있었으니 하는 말이다..
왜냐하면 회갑이나 칠순 또는 팔순잔치 같은 장수를 축하하는 잔치는 예로부터 당연히 자식들이나 후배 제자들이 마련해 주는 잔치마당이었
기 때문이다.
옛부터 흔히 겪는 경조사가 가 모두 그러했건만 유독 요즘 코로나19의 회오리바람에 세상사는 불문률이 송두리채 뽑혀 날라 간 기분이다. 친구
의 장례식에 문상객을 보기 힘들고 고작 망인의 2~3대 존비속만이 자리를 지킬 뿐이고 보니 불문률인 3일장(三日葬)만 되면 시골 3일장날 멍석
걷다시피 탈탈 털고 끝내는 인륜대사(?)가 방불하니 누굴 탓할수 있을까마는~
엊그제 지구 산책 끝낸지 6개월이 지난 어제, 어딘가에 잠들고 있을 친구가 기다릴 것 같은 망상에 청계산 청계사에 다녀 왔다. 나 혼자서
찾아 갈만한 곳도 못되는 청계산 깊은 유곡을 어딘가에 잠들어 있응 그 친구 딸의 마음 씀으로 내일 모래 석가탄일 맞을 준비가 한창인 처음
가 본 청계산 청계사에 다녀 왔다.
극구 사양해도 물러 서지 않는 6개월 전에 부친 상을 받은 50대 중반의 고명 딸의 배려다. 경조사가 끝나면 없었던듯 잊혀지는 아버지의
친구에게 베풀고자하는 적선이 따스하다. 딸자식으로써 작은 점심 대접을 하고 싶어하는 끈질긴 고집에 마지 못해 따라 나선 모처럼의 점심
뒤의 청계산 청계사 드라이브가 내 마음을 울린다. 친구나 친지의 경조사에 언제 이런 이야기나마 들은 적이 있었던가?
마지막 운명하는 날, 의식 없는 친구 귀에 이어폰 한쪽을 꽂고 한쪽은 내귀에 꽂은 채 그 친구가 너무나도 좋아 하던 베토벤의 교향곡 피아노
협주곡 "황제을 틀었다. 오후 1시반 음악이 끝날무렵~ 의식 없는 친구 눈에서 가느다란 눈물이 흐르는 것을 보고 "친구야 편히 쉬어"하고 이어폰
을 걷우던 작년 11월이 바로 6개월 전이다.
잊혀져야 할 세상만사에 굳이 가슴 적시는 춥고도 따스운 추억거리가 기어히 마지막 지구 산채길에 가슴을 울려야 하는지 아직도 못 믿을 남은
여명이 두렵기도 하다.
- 글 / 쏠 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