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역 광장에서
칠월 넷째 일요일은 근교 산행 행선지를 좀 멀게 잡았다. 아침 일찍 마산역 광장으로 나갔다. 그곳에 가면 구산과 진동 방면으로 다니는 농어촌 녹색버스 이용할 수 있다. 역 광장에 닿으니 서북동으로 가는 농어촌버스 출발 시각보다 한 시간 정도 일렀다. 나는 역 구내로 올라가 볼 일이 한 가지 있었다. 역무원에게 얼마 전 경전선이 순천까지 복선화되면서 바뀐 열차시각표를 구했다.
그간 경전선에서 부전이나 동대구는 진주부터 순천까지는 단선이었다. 근래 복선이 되면서 터널이 생겨 운행 시간이 좁혀졌다. 그러니 당연히 열차 시각도 새로이 조정되었다. 나는 나중 하산 방향이 함안역에서 열차를 타야하기에 변경된 열차시각표가 꼭 필요했다. 아니나 다를까 목포에서 출발하는 무궁화호열차는 내가 탑승 예정인 시간대 함안역 통과 기준 반시간이나 빨리 지나갔다.
열차시각표를 챙겨 역 광장으로 내려섰다. 이은상 가고파 시비 왼쪽 너른 마당엔 밤을 샌 몇몇 노숙자들은 날이 밝아도 소주병을 끼고 잔을 비우고 있었다. 나는 서북동으로 가는 73번 버스를 살폈다. 아직 출발 시각이 일러 앞문은 닫혀 있고 기사는 바깥에서 동료들과 환담을 나누었다. 무슨 일인지 아까 그 노숙자 둘이 치고받는 싸움을 벌여 경찰 순찰차가 와 까까스로 누구려졌다.
현장을 지켜보던 버스 기사 이르길 주취 폭력 행위를 보고도 “이제 더 싸우면 안 됩니다”라는 한 마디만 던지고 떠남을 개탄했다. 공권력을 즉시 즉효로 발휘해 붙잡아 가지 못함에 유감을 표했다. 고성에 주먹이 오가고 이마가 찢어지는 살벌한 광경을 지켜보던 시민 제보로 경찰차가 나타난 듯했다. 비례물시(非禮勿視)라고, 나는 예가 아니었기에 그 장면이 보기 싫어 잠시 먼 산을 봤다.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 후 서북동으로 가는 나는 73번 버스를 탔다. 진동, 진전, 진북 세 개 면을 묶어 삼진이라 이른다. 거제 칠천도를 사이에 둔 광암과 고현과 창포는 바다를 끼었다. 둔덕과 상평과 의림사와 영동은 서북산 아래 산간지역이다. 그쪽 갯가와 산자락에 내 발자국을 여러 차례 남겼다. 주로 가을에서 겨울 사이 찾아간 경우가 많으나 때로는 봄이나 여름도 들리고 있다.
서북산 일대는 임도가 잘 개설되어 산행도 아닌 것이, 산책도 아닌 것이 걷기에 불편함 없어 좋았다. 어느 해 봄이 오는 길목이었다. 춘설이 제법 내려 산 아래는 눈이 다 녹았으나 산마루에는 녹지 않은 눈이 그대로 있었다. 나는 아무도 지나지 않은 숫눈을 하염없이 밟으며 길고 긴 임도를 걸은 적 있다. 이제 그 계절의 건너편 한여름에 서북산 임도를 걸으려고 길을 나섰던 것이다.
삼성병원과 어시장을 둘러 밤밭고개를 넘었다. 동전터널을 지나 진동환승장에 들려 진북면소재지를 거쳤다. 학동저수지를 돌아 영동마을을 지나 종점인 서북동에 닿았다. 평소 같으면 종점까지 타고 간 승객은 나 혼자가 예사였다. 그런데 버스 뒷자리 타고 있던 아낙 둘이 같이 내렸다. 그들은 버스에 내리자마자 볕이 따가워서인지 양산을 펼쳐 쓰고 임도 들머리 작은 절로 들어갔다.
갈림길 왼쪽은 부재고개와 의림사로 갔다. 나는 오른쪽 함안 여항으로 향해 감재고개를 넘었다. 길섶에서 제철에 피어난 노란 원추리와 물레나물 꽃과 보라색 등골나물 꽃을 만났다. 감재는 서북산으로 오르고 봉화산으로 건너가는 중간 지점이었다. 고개를 넘으니 왼쪽는 법륜사로 가고 오른쪽은 좌촌주차장으로 가는 길고 긴 여항산 둘레길이었다. 쉼터에서 얼음물을 한 모금 마셨다.
세 시간 넘게 숲속 임도를 걸어가니 산악자전거 동호인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페달을 저으며 땀을 뻘뻘 흘리며 올라왔다. 더 내려가니 한 무리 걷기 마니아들이 둘레 길 순례를 나섰다. 나는 한여름이 사람이 없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한낮이 되어 함안면소재지에 닿았다. 콩국수와 곡차로 소진된 열량을 충전시키고 창원중앙역으로 가는 무궁화호를 타고 긴 터널을 세 개 지났다. 16.0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