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들이 목사에게 왕따를 놓다니

[영원한방랑자]

[풍경소리]에서 모셔온 글

목사들이 목사에게 왕따를 놓다니

오강남 교수의 '제 2의 종교개혁'

송기득

 나는 지난 가을호 『신학비평』 뒷마당에서 목사들에게 '하느님의 미션'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말을 했는데, 거기에 대한 전형을 불행이도 이희운 목사가 왕따를 당한 사건에서 보았다. 이 목사는 지난 2003년 십자가를 들고 세 걸음에 한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면서 새만금 살리기 '삼보일배'의 행진에 나섰다.나는 그때 이 목사가 '삼보일도'하는 모습을 보면서 함께 동참했던 스님이나 신부처럼 '삼보일배'를 할 일이지, 굳이 삼보일도를 하는가 하면서 꼭 이런 자리에서까지 목사의 티를 내야 하는가하고 언짢은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리스도교 성직자로서 불교의 예법을 따르지 않고 그리스도교의 특징을 나타내려 했다는 점에서는 조금도 나무랄 일이 아니다. 그러나 삼보일배가 그리스도교의 전통이 아니고 불교의 전통이지만, 그대로 따라 해서 세 성직자가 '혼연일체'의 모습을 보엿으면 훨씬 좋았지 않았을까.  

이 목사는 절을 한다는 것을 부처님에게 하는 것으로, 또는 조상에게 제사 지낼 때 하는 절이라고 생각해서 절하는 것을 기도하는 것으로 대치했을까? 나는 그렇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희운 목사는 전북 해창 갯벌에서 서울 청와대 앞에까지 그 머나먼 길을 세 걸음 걷고 무릎은 꿇고 한번 절하는 '삼보일배'의 고행 길을 결의한 분이였으므로 불교의 예법 형식 하나를 수용하지 못 할만큼 막힌 사람은 아니었을 것이다. 나는 적어도 그렇게 믿는다.

그렇다면 이 목사는 어째서 '삼보일배'를 '삼보일도'로 바꾸었을까? 아마도 그리스도교교단 목사로서 예의범절을 지키려고 했는지 모른다. 아니면 그리스도교 교인들이 시험에 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또한 교단 목사들에게 책잡히지 않기 위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그 까닭이야 이 모든 것일 수도 있고, 그 밖에 다른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것이 대수인가. 삼보일배를 하든 삼보일도를 하든, 환경을 살리고 생명을 살리고 사람을 살리는 일이라면, 그 형식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그런데 당시 개신교 교단이나 동료 목회자들은 일제히 이 목사의 삼보일배는 물론 삼보일도까지도 비난하기 시작했다. "목사가 중의 꼬봉 노릇을 하는 거냐." 그리고 그들은 이러한 저질의 비난과 함께 이 목사를 이단으로 몰아 붙였다. 이른바 성직자라는 사람들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동료 목사 한 사람은 '자연을 지켜야 한다'는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기 위해서 온갖 고생을 무릅쓰고, 아니 생명까지 담보하면서 삼보일도의 길을 나섰는데, 그를 위로하고 격려하기는커녕 그 행진 모습만을 놓고 그를 비난하고 이단시해야 하는가. 낯이 얼마나 두텁고, 머리가 얼마나 막혔고, 마음이 얼마나 비뚤어졌으면, 그리고 그 신앙이 얼마나 독선스러우면, 이 목사의 '예언자다운 행동'에 대해서 그에게 왕따를 놓고 그를 이단시하는 이런 저질의 추태를 일삼을 수 있는 것인가?

그 때 이 목사의 고행에는 수경 스님, 문규현 신부, 김경일 교무가 함께 참여했는데, 이들은 종교가 다른 성직자들이다. 그러니까 이번 고행에는 비록 개인으로 나섰지만, '새만금'을 살리자는데 불교, 천주교, 원불교, 개신교가 공동으로 참여한 것이 된다. 서로 '믿음살이'의 방식은 다르지만, 자연을 살리고 생명을 살리자는 공공의 목표를 이루는데 있어서는 뜻을 같이하여 '하나'가 된 것이다. 그리고 그 뜻을 나타내기 위해서 '삼보일배'의 고행 형식을 따른 것이다. 그런데 그 형식이 그렇게도 문제가 되었을까? 그 비난이 오죽했으면 이 목사는 삼보일배 대신에 십자가를 들고 삼보일도를 했을까?

그 때 가톨릭[천주교]의 문 신부는 '신부'의 신분인데도 그대로 삼보일배를 했는데, 이 분은 그리스도교 성직자로서 왜 불교의 고행법을 따라 했을까? 문 신부는 '십자가'를 몰랐고, 자신이 그리스도교 성직자라는 것을 잊어버렸을까? 이 분 또한 "중 꼬봉 노릇을 했던" 이단자였단 말인가? 그런데 그 뒤 천주교에서는 누구 한 사람이라도 문 신부를 비난했거나 '이단'이라고 단죄했다는 말을 들지 못했다. 오늘의 개신교는 '로마카톨릭'으로 돌아가고, 오늘의 천주교는 '진정한 개신교'로 돌아간 것인가?

종교가 다른 네 성직자들이 '삼보일배'라는 동일한 움직임으로 "마음과 뜻과 정성과 힘을 다해서" 고행의 길을 가고 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 우리는 거기에서 무엇을 느낄 수 있었는가? 그것은 서로 종교가 다르고 신앙체계가 다른 사람들끼리지만 공공의 선을 위해서는 뜻과 힘과 정성과 목숨을 한데 모을 수 있구나 하는 사실이다. 이것이 바로 종교 다원주의[신학]의 참뜻을 보여주는 '하느님의 미션'이 아닌가?

종교다원주의의 참뜻은 단순히 종교마다 자기 구원의 원리를 가지고 있으므로 서로 존중해야 한다는 데만 있지 않다. 그것은 세계의 평화, 사회의 평등, 사람의 자유, 역사의 정의, 자연[환경]의 보전, 생명의 존중 할 것 없이 사람의 최고선을 위하여 모든 종교가 뜻과 힘을 모은다는데 종교다원주의의 참뜻이 있다. 이 사실을 종교가 서로 다른 성직자들의 '삼보일배'가 잘 보여주었다. 그런데 이러한 '하느님의 미션'을 저질스럽게 비난하고, 거기에 참여한 성직자에게 왕따를 놓는 교단과 목사가 있다니, 참으로 어이가 없는 일이다. 그것도 '프로테스탄트'(저항정신)를 내세운 개신교에서 말이다.

삼보일도의 역사적인 사건이 있는 뒤, 지난 해 봄에 이희운 목사는 한국을 떠날 것을 결심했다. 남인도 카삼에서 기독교장로회 정호진 목사가 벌리고 있는 <농업센터>에서 함께 일하려는 것이다. 한국에서 시무했던 교회를 위시해서 한국에서 하고 있었던 농촌선교, 환경운동, 인권운동 따위의 모든 일을 후배에게 넘기고, 빈털터리로서 어린 두 딸을 데리고서, 한 달에 겨우 3만원으로 생존을 이어가야 하는 어린이들이 살고 있는, 정말로 살기 힘든 열대의 인도에 가서 살기로 결단한 것이다. 그는 떠나는 소감에서 "인도에 가서 농촌선교에 참여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으로 생각했습니다"고 말했다. 어디에서나 오직 하느님의 뜻을 좇아서 사는 것이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이라는 것이다. '삼보일도'의 결의와 정신을 가진 사람의 말이므로 우리는 그 진실한 마음을 헤아리고도 남는다.

나는 그를 안 어떤 분에게, 혹시 교단에서나 동료 목사들에게서 왕따를 당해서 인도의 고행을 결단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이 목사의 사람됨이나 믿음으로 보아 결코 '왕따'가 이유는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 말이 옳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목사의 결단이 '왕따'와 전혀 무관했을까? 어쨌든 이 목사가 왕따를 당한 것은 사실이 아닌가? 문제는 교단이나 동료 목사들이 이희운 목사의 '삼보일도'애서 그의 환경과 생명 사랑의 깊은 신앙을 읽지 않고, 그가 '종교다원주의'에 동조했다는 것만 보고서 그를 '이단'으로 몰았다는 점이다. 왕따를 놓은 그들이야 겉으로는 그렇지 않다고 했겠지만, 종교다원주의 사상을 '이단'으로 몰아붙이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뜻을 좇는 희생의 믿음살이보다도 그 알량한 '정통의 신앙'을 더 우선으로 여겼을 것이다. 그가 한국을 떠난다고 했을 때 같은 교단 목사들이나 노회에서 "한국에서 함께 일하자"고 부탁 한 적이 있었을까? 만일 이들이 그리스도교의 신앙을 지켰다는 것으로 하여 그리스드교 교단의 상은 받을지 몰라도, 그들의 '비인간적인' 행태는 하느님의 심판을 쉽! 게 넘기게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종교다원주의가 하느님의 인류구원사의 역사에 결코 배치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여기에서 이것을 신학적으로 논증할 생각은 없다. 다만 하느님께서는 인류를 사랑하신 분이므로, 예수의 이름을 몰랐던 사람들에게도 그 나름으로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는 사실은 말하고 싶다. 예수가 낳기 전에 살았던, 예수 이후에 살았던 수천억의 사람들을, 하느님께서는 예수의 이름을 모른다는 단 한 가지 이유로 모두 지옥에 보낼 정도로 잔인한 분은 아닐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설혹 예수의 이름을 모르는 시대에 살았던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하느님께서는 인류를 사랑하신 분이시라, 그들에게 나름대로 구원의 길을 열어주시지 않았겠는가?

그 길을 연 분이 공자일 수도 있고, 노자일 수도 있고, 또는 석가일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것은 전적으로 하느님의 소관임으로 우리가 판단할 문제는 아니다. 다만 우리는 그리스도교인으로서 자기의 신앙에 성실하면 되는 것이다. 종교에 따라 구원을 얻고 못 얻는 것은 전적으로 하느님의 소관이다.

말이 난 김에 신학적인 발언을 한 가지 끼워 넣고 싶다. 그것은 신학적으로 말해서 '그리스도중심모델'을 넘어서서 '하느님중심모델'에 서면, 종교다원주의는 쉽게 극복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다치성(多値性)과 다양성(多樣性)이 인정되는 현대에서는 자기 종교만이 옳고 다른 종교는 틀렸다는 배타주의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런 배타주의로써는 이제 세계의 구원에 동참할 수 없게 된다. 지금 세계의 구원의 핵심은 평화의 실현에 있는데, 종교다원주의를 인정하지 않는 배타주의 신앙은 오히려 세계의 평화를 파괴하는 비인간적인 광기를 낳을 따름이다. 한국의 그리스도교가 아직도 배타주의에 사로잡혀서 종교다원주의를 통해서 인류의 평화를 도모하려는 하느님의 경륜에 반역해서야 되겠는가?

나는 이 문제와 관련하여, 한 종교학자 오강남 교수의 생각을 소개하려고 한다. 그는 『예수는 없다』는 책을 써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분이다. 오강남 교수는 지난여름 <한국민족종교협의회>에서 마련한 강연에서, 오늘의 기독교는 '벌레나 나비가 된 것처럼' 제2 종교개혁의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강연 요지를 간단하게 소개한다.

1. 오늘의 서구 기독교는 불교와 만나면서 제 2의 종교개혁과 같은 변화를 겪고 있는데, 이처럼 새롭게 등장하는 기독교를 학계에서는 '새로운 기독교', 또는 '신세계 기독교'라고 일컫는다. 이 변화는 이론과 교리를 아는 데서라기보다도, 개인의 실천과 체험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종교의 핵심은 깨달음의 과정에서 얻게 되는 자기 변화에 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의 과정에서, 더 높이 올라갈수록 더 많이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실재인줄 모르던 것을 실재로서, 마지막에는 '궁극적인 실재'까지도 체험하게 된다. 그런데 지금까지 기독교는 그저 '믿어라'고 요구해왔다.

2. 실재를 체험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것은 '공동체'이다. 모든 것은 연관되어 있고, 서로 의존하고 있다. 이러한 유기적인 시각은 신, 인간, 자연을 바라보는 눈을 바꾸어 놓았다. 본질과 현상, 진실과 거짓, 나와 너, 사람과 자연과 같은 것으로 나누어 보는 서구의 이분법적 사고를 넘어서서 모든 것을 하나의 관련 속에서 '통전적으로'보게 되었다. 따라서 우주 공동체 안에 초월만 강조했던 신관은 초월과 내재를 동시에 강조하는 범재론적인 신관으로 바뀌게 되었다.

3. 우주공동체 안에서는 인종, 계급, 성병, 빈부에 따른 차별이 거부되고, 모든 사람을 한 형제, 한 몸으로 인식하게 된다. 따라서 모든 억압의 구조를 물리치고 정의와 평등의 실현을 위한 얘언자적 저항의 자세를 취한다. 이것을 통해서 "우리는 홀로가 아닙니다. 하느님의 세계에서 함께 삽니다"라고 고백하게 된다. 이리하여 그리스도교는 음습한 '원죄'의 종교가 아니라, 기쁨과 축제의 종교가 된다.

4. 종교와 종교 사이는 적자생존의 관계가 아니라, 협력·생존의 관계[폴 니터]로 변한다. 알렌 레이스는 말한다. "신에 대한 지식은 기독교를 포함해서 모든 종교가 부분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각 종교는 완전한 진리가 인류에게 주어지도록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한다."

과거에는 해와 달과 별들이 지구를 돌고 있듯이, 다른 종교들이 나의 종교를 중심으로 돌고 있다고 생각했다[프토레미의 천동설적인 시각]. 그러나 이제는 지구가 다른 행성들과 같이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있듯이, 나의 종교를 포함은 모든 종교가 진리의 태양을 중심으로 운행한다는 코페르니쿠스의 시각을 채택해야 한다[존 휙]. 그래서 종교 사이의 대화가 가능한가, 또는 필요한가의 물음은, 해가 중천에 떠 있는데도 해가 뜰 것인가, 뜰 필요가 있는가를 묻는 것과 흡사하다.

그러기에 종교 사이의 대화는 가능하고 필요하다. 종교 사이의 대화없이 종교 사이의 평화는 불가능하고, 종교 사이의 대화 없이 세계 평화는 있을 수 없다. 그리고 종교 사이의 대화는 어떤 유익을 가져오는가?

(1) 서로 모자라는 것을 채워주어서, 종교적 삶을 풍요하게 해준다.

(2) 서로 배척하는데 쏟았던 에너지를 인류가 당면한 고통을 줄이는데 활용하게 한다.

(3)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보게 하고, 서로 행복을 찾아 누릴 수 있게 한다.

이 강연에서 오강남 교수는 종교다원주의를 피력했다. 그리고 오 교수는 이 강연에서 다른 사람이 정리한 자신의 「그리스도교 페러다임의 변화」를 소개했다.

1. 배타주의에서 다원주의로.

2. 위에 계시는 하느님 뿐 아니라, 내 안에 계시는 하느님으로.

3. 예수에 관한 종교에서 예수의 종교로.

4. 교리중심주의에서 깨달음중심주의로.

5. 죄의 강조에서 사랑의 강조로.

6. 육체의 부정에서 육체의 긍정으로.

7. 현실 야합에서 예언자적 태도로.

8. 상하구조에서 평등구조로.

9. 종말론에서 환경론으로.

오강남 교수는 이 페러다임의 변화를 통해서 그리스도교는 제2의 종교개혁을 이루어야 오늘의 종교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점을 역설했다.

[겨울비]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아그렇군]

많은 것 배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