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의 꿈
지독히도 긴 장마다. 폭우가 되어 내리던 비가 소나기가 되어 산발적으로 내리는가 싶더니 부슬부슬 이슬비가 되어 또 내린다. 햇빛을 본 기억이 아련하다. 오늘도 중부지방엔 또 100mm의 비가 내린다고 한다. 마음이 어둡다.
나의 유년 시절에도 결코 빛을 보지 못할 것 같은 어둠이 있었다. 절벽처럼 닫힌 어둠 속에서 자꾸만 안으로 기어드는 달팽이의 꿈을 닮아 가고 있었다. 그것은 나 스스로 자각능력이 만들어지기도 전에 사고로 한쪽 눈의 시력을 잃게 된 것이 원인이었다. 그러면서 신체적인 활동은 물론 몸까지 허약하여 자유롭지 못했으며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은 나를 늘 자폐적 공간으로 몰아넣었다
난 그 유년의 어린 시절을 어두운 방 속에 가두어 놓은 채 누가 열어 보지 못하도록 문밖에 장애아란 이름표를 걸어 놓아야 했다.
그 단단한 껍질을 깨고 나오기까지 참으로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그러나 삶의 고통은 모멸 차게 나를 밖으로 내몰았으며 살기 위하여 난 닥치는 대로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어린 자식들을 생각해서라도 웅크리고 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수많은 좌절을 겪으면서 좌충우돌 삶을 헤쳐 나갔다. 그러나 그렇게 살아오면서도 가슴 한 켠에 항상 맺혀 있었던 것은 어린 시절에 겪었던 장애아로서의 절망감이었다.
2002년 7월 태극기와 함께 붉은 악마의 함성이 휘날리던 날, 난 모 손해보험사 대리점 대표로 당당히 합격하여 내 이름을 걸어놓은 사무실에 입주할 수 있었다. 조금은 안정이 찾아왔다. 난 이때부터 장애인들에게 비로소 시선을 돌릴 수 있었다. 그들이 장애우로서 겪는 아픔을 덜어 주고 싶었고 생활 속에서 닥치는 어려움을 해결해주고 싶었다.
나에게 찾아오는 장애인들은 갖가지 사연도 많고 장애를 지녔기에 겪는 억울함과 가슴 아픈 일도 많다. 그들의 아픔과 억울함에 대하여 기꺼이 조언하고 상담하는 역할을 하면서 이들을 위해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이 과연 무엇인가를 생각했다. 그 과제는 내가 틈틈이 취미로 볼링을 하면서 풀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내가 바라는 꿈으로 자라났다.
2008년 제28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 볼링 부문에 참가하여 은메달을 수상하면서부터 각종 대회에 참가하여 많은 수상을 하였다. 경기를 하는 동안 볼링공을 힘차게 던지는 수많은 장애인들의 밝은 웃음과 성취욕을 바라보면서 난 비로소 장애인들의 일상적인 건강과 생활참여를 위하여 그들에게 운동을 시켜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들을 밖으로 이끌어 내고 가르치기 위해서는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난 그 꿈을 위해 또다시 도전하였다.
2009년 장애인스포츠지도자 연수 합격, 볼링심판자격, 볼링지도자 2급 자격을 갖추었다. 올해 7월엔 제주도에서 있었던 볼링지도자 1급에 시험에 합격하여 마침내 내가 바라던 꿈을 이룰 수 있었다.
이제 내가 나아가야 할 길은 정해져 있다. 어둠 속에 파묻혀 끊임없이 절망하는 장애인이 있다면 그들을 밖으로 인도하고 밝은 빛을 받을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나누어 줄 수 있는 조금의 양식이 있다면 아끼지 않고 나누어 주고 싶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드리워진 그늘은 그들 스스로 치울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나에게 남은 더 큰 꿈이 있다면 세계적인 장애인 볼링 지도자가 되는 것이다. 지금보다 조금 더 큰 빛이 되어 장애로 인하여 어둠 속에서 절망하는 세계의 이웃들에게 까지 밝은 빛으로 희망을 선사하고 그들 모두에게 한 아름 삶의 즐거움을 안겨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