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하지욕ㅣ袴下之辱 ○ 가랑이 밑을 기는 치욕 ○ 袴(사타구니 과) 下(아래 하) 之(갈 지) 辱(욕될 욕) 진제국이 붕괴된 뒤에 진승이 반진(反秦)의 불을 붙였다면 그 이후엔 항우와 유방이 등장하여 치열한 승부를 겨루었다. 결국 유방이 초반의 열세를 극복한 후 항우를 이기고 한제국을 세웠다. 유방이 승리를 거두는 데에 그의 리더십도 한몫 했지만 소하(蕭何), 장량(張良), 한신 (韓信) 등 세 명의 영웅의 도움을 결코 무시할 수가 없다. 세 영웅을 비롯한 유방의 참모들은 난세를 만나서 영웅이 된 것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생업에 종사하거나 빌빌거리며 인생을 보낼 인물이었다. 이들 중 한신의 변신도 참으로 드라마틱하다. 그는 유방 진영에 가담하여 대장군으로서 전장을 누비며 유방에게 결정적 승리를 안겨주었다. 하지만 젊은 시절을 생각하면 그의 변신은 참으로 파격적 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젊은 시절에 가난한데다 품행이 반듯하지 못해, 유력자의 추천을 받을 수 없어 관리가 되지 못했다. 게다가 그는 천성이 게으른 편이라 장사라도 해서 먹고 살 궁리를 하기는커녕 늘 남에게 빌붙어서 얻어먹고 지냈다. 그는 한때 오늘날 파출소 소장에 해당되는 정장(亭長) 집에서 여러 달 동안 몇 차례 신세를 지게 되자, 정장의 아내가 밥 때가 되었는데도 한신에게 밥을 주지 않을 정도였다. 그 길로 한신은 정장과 의절했지만 옛날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낚시를 하며 소일했다. 어느 날 빨래터의 여인이 한신이 늘 굶주리는 걸 보고 불쌍히 여겨 밥을 수십 일 동안 주었다. 그래도 한신은 자존심이 있는지라 “내 반드시 훗날 이 은혜를 크게 갚으리라!” 고 큰소리를 쳤다. 아낙네는 기가 차서 한 마디 했다. “대장부가 스스로 밥을 먹지 못하니 내가 사지 멀쩡한 젊은 사람을 불쌍히 여겨서 밥을 줄 뿐 무슨 보답을 바라겠소?” 이 정도면 한신더러 도대체 자존심이 있는 사람인가 하는 의문을 품을 만하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한신은 송견의 ‘견모불욕’을 가장 잘 실천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남들이 뭐라고 해도 자신이 치욕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아무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그 뒤에도 한신은 밥 얻어먹는 ‘모욕’에 결코 뒤지지 않는 모욕을 당했다. 한신을 아니꼽게 보는 백정이 그에게 시비를 건 것이다. “네가 비록 키가 크고 늘 칼을 차고 다니지만 속은 겁쟁이일 뿐이야. 네가 죽을 용기가 있으면 날 찌르고 죽을 용기가 없으면 네 가랑이 밑으로 기어라!” 그러자 한신은 백정을 한번 쳐다본 뒤에 몸을 구부려 그의 가랑이 밑으로 기어갔다. 여기서 ‘과하지욕(跨下之辱)’ 이라는 고사가 생겨났다. - 오늘의 고사성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