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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가씨 그자는 강호에 소문난 색마이지 않습니까 ? "
" 상관없다. "
" 아가씨 하지만 ..."
시비차림이긴 하지만, 앳되 보이는 얼굴 가득히, 약동하는 생명력을 뿜어내고 있는,
미소녀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수욕후 흐트러졌던 자신의 머리결을 황금빛 영웅건으로 질끈 동여매고있던 여인은,
소녀의 계속되는 목소리가 귀찮은지,
자신의 옷자락을 붙잡고 늘어지던 소녀의 뺨을 냉혹하게 올려 붙였다.
짝 -
" 아 아가씨 ! "
여인에게 뺨을 얻어맞은 것보단, 어려서부터, 친자매처럼 지냈던 여인이
마치, 딴사람처럼 냉혹한 태도로 자신을 싸늘하게 노려보는것에,
더욱 큰 충격을 받은 소녀는 입밖으로 터져나오려던 비명을 억지로 눌러참았다.
" 미안해 수연아. 하지만, 그런 것을 따지기엔 내가 범한 과실이 너무크다. "
" 하지만 아가씨 ... "
자신의 부드러운 사과에 눈물을 그치고,
자신을 바라보는 수연의 부어오른 볼을 가볍게 토닥거려주던 여인은,
침상위에 올려져있던 찌르기를 위주로하는 검으론, 보기드물게
만월모양으로 휘어져있는 기형의 대검(大劍)을
신중한 자세로 들어올려 자신의 등에다 메었다.
" 만약, 검문에 무슨일이 생긴다면, 곽아저씨와 상의하도록하고,
절대로 일년이 지날때까진, 기련산으로 날 찾아오지 말아라 ! "
" .... "
자신이 뭐라고 말하기라도 하면, 방금전처럼 눈앞의 여인이 화를 낼까봐,
아무런 말도 못하고있는 수연을 한 번 일별하고
뒤로 돌아서서 밖으로 나가려던 여인이
그때까지도 가녀린 어깨를 오들오들 떨고있는 수연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가볍게 눈살을 찌푸렸다.
" 만약, 일년이 지나도 내가 검문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네가 검문을 맡아줘야만 해.
그러니까 지금보다 훨씬 네가 강해져야 하는거야 수연아. "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는 여인의 등뒤로,
그제서야 서러운 오열이 섞여있는 수연의 흐느낌이 터져나왔다.
" 흐으흑 아가씨 제발 가지 마세요 ! "
***
한때는 강서성(江西省)의 패권(覇權)을 놓고,
구파일방의 하나인, 청성파와 자웅을 겨뤘을 정도로 성세를 구가했지만,
이십년전, 문주였던 일검무적(一劍無敵) 기세광이
청성파의 장문인인 군자검(君子劍) 유진청과의 비무도중,
의문의 죽음을 당한이후,
급격히 퇴락의 길을 걸어야했던 검문(劍門)의
유일한 후계자로 알려진, 검후(劍后) 기연화는
천하에 산재되어있는, 수많은 명문대파들이
일년후로 다가온, 영웅대연에 맞춰 총력을 다해 인재를 키우는 와중에도,
강서성을 비롯한 중원전체를 통털어
가장 총망받는 후기지수(後期之秀)중 한명이었다.
유복녀로 태어날때부터, 문주의 죽음을 통한으로 여기던,
검문의 십이장로(十二長老)들의 손에서 키워진데다,
그들로부터, 벌모세수와 함께, 백여년을 상회하는 내력을 전수받은 기연화는,
삼년전 강호에 처음으로 출도한 이후,
단 한차례도 패한 일이 없는 일대(一代)의 검도고수였다.
원래대로라면, 당연히 검문은 기연화의 치솟아 오르는 명성과 더불어
예전의 성세를 드높여야만 했지만,
기연화의 특출난 무공이 통하는것은 같은
또래의 후기지수들과의 대결에 국한되었을뿐,
각파의 장로급 인물들과의 무공차이를 뛰어넘을 정도로
고강한 무공을 기연화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게다가 억지로 기연화를 벌모세수하다가, 십이장로중
열한명이 모두 폐인이된, 검문에는
기연화를 제외하곤, 별다른 고수가 없었다.
그래서 검후 기연화의 명성은 갈수록 하늘을 찌를 듯 높아져갔지만,
기연화를 배출하느라, 가지고 있던 모든 기력을 다 짜내버린 검문은,
점차 퇴락하여, 이제는 강서성에서 조차,
일개 군현 정도나 호령하는, 그저 그런 문파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어려서부터, 오직 강해지는 것만을 강요받아온 기연화는,
그래서 갈수록 초조해지고 있었다.
아버지인 일검무적 기세광의 유지를 받들어,
한시라도 빨리 검문을 예전과같이 일으켜 세워야만 하는 사명이,
그녀에겐 너무나 무거웠다.
자신의 명성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서서히 검문에 압박을 가해오기 시작한
강서성의 패자 청성파의 압력은 시간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었고,
점차로 주변의 파락호들까지, 업수이 여기며,
영역을 침범해 들어오기 시작한, 검문의 명예를 수호할만한 무공이 그녀에겐 없었다.
그시점에서, 검문에 다시 예전의 영광을 되찾아줄 방책은 오직 하나뿐이라고
섣부른 결론을 내린 기연화는,
그때까지 검문에 생존해있던 유일한 장로이자,
자신의 사부인 패검 곽잔양과도 의논하지 않고,
일년후에 있을 영웅대연에 검문이 강서성의 대표로 참여한다는 사실을
천하에 공표하고 말았다.
매십년마다, 벌어지는 천하무학인들의 잔치인 영웅대연은,
말 그대로, 무림을 떠도는 숱 영웅들이
중원각지의 대표로 참가해서, 서로의 기량을 겨루는
거대한 규모의 비무대회(比武大會)였다.
영웅대연의 우승자를 배출한 문파는,
다음번 영웅대연이 벌어지는 향후 십년간,
무림의 크고작은 대소사에 직, 간접적으로 관여할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되는데,
한마디로 군소문파가 무림에 이름을 떨치는 것으로,
영웅대연만한 적임지는 없는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남북으로 십삼개성(十三省)으로 갈라져있는 중원무림계에서
영웅대연의 본선에 참가할수 있는 자격을 가진 인원은 단, 14명뿐이었다.
그 14명에서, 전대회에서 우승자를 낸 문파의 대표 한명을 제외하면,
십삼개성에서 기껏해야, 한명씩 밖엔 영웅대연에 참가할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기연화가 영웅대연에 참가한다고 밝힌 것은,
강서성의 패자인 청성파에게 정면으로 도전한 것이나 진배가 없는 일이었고,
당연히 기연화의 도발에 상당히 격분한 청성파에서는,
이제나 저제나, 검문을 강서성에서 축출시킬 기회만을 엿보고 있는 처지였다.
자신의 생각없는 말한마디 때문에,
강서성에서 삼백년의 역사를 가지고있는 검문이
존폐의 위기에까지 이르게되자,
검문의 상대 문주로서, 깊은 책임을 통감하게된 기연화는,
반드시 일년후로 다가온 영웅대연에서, 청성파를 누르고,
자신의 대에 이르러, 참혹할 정도로 무너져버린,
검문의 위상을 드높이겠다는 생각으로,
요전번과 같이, 다른 누구와도 의논하지 않고,
자신의 부족한 무공을 일년내에 급격히 높여줄만한 사람을 찾아,
기련산으로의 천리길을 나섰다.
그리고 기련산에는 이미 전설이 되어버린,
전대의 대마두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
기연화가 생각하기에 무림(武林)이란곳은, 묘한 곳이었다.
외가권(外家拳)을 완성시켰다는 달마라는 서장승(署長僧)은
항상 좌선을 해야하는 선종(禪宗)의 수련방법이
건강을 해친다는 생각으로 소림사의 평범한 중들에게 권법을 가르쳤다고 한다.
불법이란게, 본디 자비를 근본으로 삼는 것인데,
사람을 때리는 법을 중들이 배웠으니,
그후로 장생불패(長生不敗)의 문파라는 소림사엔
천여년동안,
무림정복(武林征服)을 노리는 사마외도(邪魔外道)들의 잦은 방문으로 말미암아,
불문답지 않은 거센 피바람이 한시도 쉴날이 없었으니,
그것은 소림사에 외가권을 남기고 죽은 달마의 잘못이 분명했다.
게다가 소림을 위시한 구파일방의 명문대파들은,
항상 질리지도 않고, 자신들이 만들어놓은 길만이 오롯이 정의라고 부르짖으며,
자신들과 다른길을 가는 방문좌도의 무리들을 거리낌없이 무력으로 정벌했는데
, 기연화가 강호에 출도한이례, 겪은 바론
, 다분히 실제론 별다른 잘못도 하지않는 군소문파(群小門派)들이
자신들의 영역안에서 성장하는 것을 억압하기위한
명문대파들의 속보이는 명분이 대부분이었다.
간단히 말해서, 명문대파들은 끊임없이 수하의 제자들에게
자신들이야말로, 강호의 정의를 지키고,
나아가 사악한 사마외도의 준동을 막아야한다고 가르치곤 했지만,
백년이례 계속되어온 그들 명문대파들의 무림지배(武林支配)에
조금치의 영향을 끼친 사마외도의 무림세력은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 정답이었다.
지금도, 장문제자인 자신이 빠져나간 검문을 호시탐탐 노리고있을 청성파 역시도
한시라도 타당한 명분만 주어진다면,
단숨에 별다른 힘도없이 명맥만을 유지하고있는 검문을 쳐서,
뿌리 한포기 남기지않고 쓸어버릴 궁리를 하고 있을게 분명했다.
그러니, 다급한 심정에 결정한 일이지만,
백년내, 방문좌도의 무리들 중에서도 가장 극악하다는
기련산의 색마를 찾아나서는 기연화의 발걸음엔 별다른 망설임의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일이 잘못되어봤자, 자기 한사람만 목숨을 끊으면 그만이라는 생각도 있었지만,
자신이 찾아가고 있는 색마가 악명을 날린것이
벌써, 오십년전의 일임을 감안할 때,
설령 왕년에는 천하에 극악무도한 여인들의 원수였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아침이 밝아와도, 밑에 물건이 제대로 서지않을,
이빨빠진 호랑이가 되어있을 거라고,
기연화는 순진한 처녀답지 않은 생각을하고 있었다.
거기다 오십년전, 그렇게 흉악한 악명을 뿌리며 무림을 종횡했는데도,
자신들의 체면을 그렇게 중시하는 구파일방의 무수한 고수들조차,
그의 발걸음을 막지 못했을 정도로 막강한 그의 무공을 물려받기 위해서라면,
오십년이례, 구파일방의 고수들에의해,
무림제일의 금지(禁地)가 되어버린 기련산을
목숨을 걸고 기어올라갈만한 가치는 충분한 것이었다.
기련산이 무림의 금지이긴 하지만, 꿈에 나타날까 무서운 대마두가 은거한 산중에
누가 겁도없이 기어올라가랴는 생각으로,
기련산의 정봉인 월출봉(月出奉)으로 올라가는 산길을 제외하곤,
별다른 감시가 없는 점을 이용해서,
쉽사리 기련산의 중턱까지, 암벽을 밟고 뛰어오르는
일학충천(一鶴沖天)의 신법으로 올라온 기연화는,
내공이 출중한 고수답지않게, 이마에 송글송글 맺혀있는 땀방울들을 가볍게 털어냈다.
" 휴우~ 중원의 오악(五岳)외엔 산이 없을줄 알았는데,
기련산이란 곳도 꽤, 험악한 곳이 많네. "
한참을 신법을 펼쳐 달려왔는데도,
끝없이 이어져있는 기괴한 모양의 산봉우리들을 바라보는
기연화의 얼굴에 낭패한 감정이 떠올랐다.
험난한 산이 별로없는 강남에서 주로 활동한 기연화에게
산이란 곳은, 자신같은 무공고수가 마음만 먹으면, 하룻 정도면 능히 오를수있고,
사흘정도면 근처의 모든 산자락을 둘러볼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배를 타고 장강(長江)을 넘은후,
기련산으로 향하는동안 보게된 강북의 산들은
하나같이 크기가 작게는 수백리에서, 많게는 수천리에 이르는
거대한 산맥(山脈)들 뿐이었다.
그리고 애석하게도 기련산 또한 그 크기가 녹록치 않은 거대한 산자락을 가지고 있었다.
한참동안, 자신의 시야를 어지럽히며 끝없이 이어진 기련산의 산자락을 바라보며,
주변을 둘러보던 기연화의 목소리에 진한 낙담의 기색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런 모습도 잠시뿐이었다.
여인 특유의 꼼꼼한 감성으로
주변의 험악한 산세를 이리저리 살피기 시작한 기연화의 오른손이
자신도 모르게, 목에 걸려있던 악귀의 모양이 새겨져있는 신패를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 어쩔수 없지. 시간이 넉넉한 편은 아니지만,
아버지가 남겨주신 신패가 있으니, 앞으로 차근차근 찾아볼밖에. "
기연화에겐, 아버지인 일검무적 기세광이 신신당부하며 남겨준,
색마의 신패가 있었다.
어쩌면, 기연화가 감행한 이번 출행은, 어린시절부터 누누이 들어왔던,
천하제일의 대마두가 어떠한 소원이라도 한가지를 들어준다는,
악귀신패의 내력과,
백년내, 천하제일의 대마두라 일컬어지는 색마의 경혼절백할 무공내력을
사부인 패검 곽잔양에게 들었을 때부터, 이미 준비되었던 건지도 몰랐다.
실제로 무림을 횡행할 당시, 거침없이 움직이던 보보마다,
자신의 앞을 가로막아선, 수많은 정도 무림인들의 피와
끝없이 이어지는 여인들의 절규로 얼룩진 혈로를 걸었다는 색마는,
단한번도 자신이 내뱉은 말을 어겨본일이 없다고 전해지고 있었다.
그러니, 이번의 출행(出行)에는 기연화가 자신의 목숨을 걸고 도전해 볼만한
가치는 충분했던 것이다.
그리고 ...
기련산을 헤맨지, 한달여의 시간이 지난후,
기연화는 자신이 찾아다니던
색마가 은거해있는 석부앞에 써져있는 글귀를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 이글을 보는자가 여인이라면, 당장 옷을 벗어던지고 들어올 것이며,
사내라면 내손을 귀찮게 하지말고, 스스로 죽어라. -
이미, 강서성의 검문을 떠날때부터, 인간의 상식을 초월한다는
색마의 존재에 대해, 어느정도 각오를 다지고 있던 기연화가,
이정도의 글귀에 넋을 놓는다는건 말이 안됐다.
단지, 기연화는 자신이 한달동안, 온갖 고생을 감수해가며,
숱하게 찾아 다녔던, 기련산의 수많은 기암절벽(奇巖絶壁)들을 다 놔두고,
여봐란 듯이, 가장 오르기 수월한 월출봉으로 향하는 소롯길의 근처에
만들어져있는 석부(石府)의 뻔뻔함에 기가막혔을 뿐이다.
***
잠시동안, 곤란한 지경에 처했을 때마다,
등뒤에 메어져있는 만월검의 검자루를 만지작거리며
, 잠시동안 고민하던 기연화는,
석부앞에 써져있는 색마의 경고문(警告文)을 그냥 무시하기로 했다.
무림에 출도한후,
아직까지 단 한차례의 패배조차 경험하지 못한 무인의 담량이기도 했지만,
사실 아직 시집도 안간 처녀가 백주대낮에 옷을 벗어던진다는건
상당히 부끄러운 일인 것이다.
그동안의 강호경험 대로라면,
은거고수(라기 보다는 은거거마란 표현이 더 어울리겠지만)들의 거처에 이르면,
숙연한 자세로 말에서 내리고, 검을 풀어놔야겠지만,
기연화가 만나야하는 상대가 상대이니만치,
어느새 빼어든 수중의 만월검을 손아귀에 꼭 쥔채로,
어둠침침한 석부안으로 들어선 기연화는
단전(丹田)의 내공을 돋구어, 안력(眼力)을 증강시키고,
천천히 석부안의 넓직한 외길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어둠은 원래 인간의 원초적인 공포를 쉽게 자극한다.
발걸음을 옮기는 동안,
자신들의 안식처를 찾아든 낯선 침입자에 놀라,
푸드덕 거리며 날개짓을 시작한 박쥐들의 심상치않은 움직임에
등어림 가득히 식은땀을 쏟아내고 있던 기연화는,
갈수록 어두워지는 석부의 외길에서 축축한 습기를 느끼곤, 난감한 기분이 들었다.
' 석부라기 보다는, 천연적인 동굴을 그냥 개조한 것 같은데,
절세의 고수가 살고있다기엔, 너무 주변환경이 나쁘다.
원래 세상에서 악명(惡名)을 날렸던 거마(巨魔)들일수록,
자신들의 거처는 아름답게 꾸민다는데 ... '
기연화의 내심이야 어떻든지간에, 축축한 습기가 느껴지던 석부안의 소롯길은,
앞으로 나아갈수록 낮아져갔다.
석부에 들어선지, 한식경이 지나자, 결국 지하의 동굴에서 흔히 볼수없는
지하로 흐르는 계류를 눈앞에 둔, 기연화는
자신이 나아가야 할 길을, 가로막고있는 지하계류를
무인특유의 옹고집과 불굴의 의지로 활활 타오르는 눈을 들어 봐라봤다.
' 비록, 수공(水功)은 익히지 못했지만,
배위에서 암습을 당할경우를 대비해, 귀식지법을 익혔으니까,
한시진 가량은 호흡을 참을수 있다.
무거운 돌을 들고, 물속을 걸어가면 되겠지. '
다른 여인같으면, 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뭔가가 나타날지도 모르는 음침한 대마두의 지하석부를 가로지르는 계류속을
가로지를 엄두조차 내지 못했겠지만,
어려서부터 오직, 강해지는것만을 지상목표로 살아왔던 기연화는
이미 남녀의 구별을 떠나, 진정한 무도인이 되어 있었다.
주변을 뒤져서, 백근은 족히 되어보이는 커다란 바윗덩이를 주워온 기연화는
손에 들고있던 만월검을 등에 매달린 검집안에 다시 밀어넣고,
바윗덩이를 끌어 안은채, 깊숙한 수위때문인지,
별다른 소음이 들리지않는 물속으로 천천히 걸어들어갔다.
' 기를 기경팔맥으로부터, 단전으로 되돌려서, 폐혈을 이루고,
몸밖의 숨구멍을 닫아서, 체내의 숨결을 보존한다. '
완벽하게 외고있는, 귀식지법의 입문구결을 천천히 암송하며,
의외로 수위가 깊은, 물속을 걸어가는 기연화의 안색은 믿을수 없을 정도로 온화했다.
상승의 무공을 배우는 무도자들이 정신통일(精神統一)을 가장 큰 과제로 삼듯이,
어떤 무공이든 운기를 시작하면,
재빨리 정신통일의 상태로 접어드는 기연화의 타고난 재질은 놀라운바가 있었다.
수압 때문에, 신법을 펼치지 못하고, 천천히 물밑을 걸어가기를, 일각 정도가 지나자,
점점 가빠오는 숨결을 참지못해, 물을 몇모금이나 거푸 마셨던 기연화는
그러나, 끝끝내 지하의 계류를 무사히 통과할수 있었다.
박쥐가 야생의 상태로 거주할 정도의 천연동굴을,
입구만 변형해 만든 석부속을 흐르는 깊숙한 계류를 걸어서 건넜는데도,
별다른 위해를 겪지않은 기연화는 자신의 운이 좋았다는 생각을 하면서
다시 앞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시 반각여를 정신없이 걸어가자
, 드디어 석부에 들어선후, 처음으로 환한 불빛이 보였다.
지독한 어둠속에서 빛나고있는 한가닥 야명주의 광채에 이끌려,
타오르는 불꽃에 유혹된 한 마리의 불나비처럼 평정심을 잃고,
정신없이 야명주가 빛을 발하고 있는 장방형 모양의 석실로 달려가던 기연화는
야명주 덕분에 주변의 모든 것이 일목요연(一目瞭然)하게 드러나 보이는 석실에 들어서자마자,
뾰족한 기함성을 터뜨리고 말았다.
" 아악 ! "
기연화가 내지른 비명에는 강한 설득력을 동반한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뽀오얀 우윳빛 냉기를 연신 뿜어내고있는, 거대한 한옥침상 위에
태연하게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는 젊은이(겉으로 보기엔 분명히 ...)은
놀랍게도 자신의 알몸을 그대로 드러낸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기실, 남의 집에 허락도없이 무단으로 침입한 주제인, 기연화가
사나이가 옷을 벗고 있는것에 대해, 화를 낼만한 이유는 전혀, 눈꼽만큼도 없었다.
하지만 대개, 여인들의 습성이 그렇듯이,
자신의 집에서, 나신으로 앉아있는 사나이의 무방비 상태의,
흉칙한(?) 하체를 정면으로 보게된 기연화는
마치, 자신이 눈앞의 사나이에게 강간이라도 당한냥, 분한 감정을 주체할수 없었다.
당장에라도 사나이에게 달려들어,
사나이의 전신사혈(全身死穴)을 하나도 남김없이 검을 휘둘러 찔러대고 싶은 기분이었지만,
자신이 보는앞에서 뻗뻗하게 들어올려진, 머리위로
한줄기의 가느다란 수증기를 연신 피워올리고 있는 사나이의 상태가,
내공수련중 가장 중요한 순간에 접어든 상태란걸 대략 짐작할수 있었던 기연화는
같이 무공을 익히는 무도자(武道者)의 예의로 자신의 분한 감정을 일시 내리눌렀다.
게다가, 몰래 훔쳐본 사나이의 상반신은,
명장이 자신의 모든 심혈을 기울여 조각한 듯, 절묘하고 늠름한 것이,
기연화가 무문(武門)이 아닌, 양가댁의 규수로 자라났다면
, 단숨에 반했을만큼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뭐, 그렇다고해서 기연화가 특별한 연예감정을 가지고 사나이를 바라본 것은 아니었다.
어린시절부터 끝없이 강해지길 원했고
, 무학을 익히는 내내, 자신이 무학을 익히기에 적합한 무골(武骨)의 남자로 태어나지 못한걸,
항상 한스럽게 생각했던 기연화가 보기에,
눈앞의 사나이는 무공을 익히는 무인이라면,
누구라도 부러워 할정도로 가장 이상적인 체형을 하고 있었다.
기재라고 알려져있는 기연화가 부러워할 정도로 뛰어난, 사나이의 골격 !
그 한가지 이유만으로도 기연화는 자신이 사나이의 기괴한 행태를
잠시동안(사나이가 운기행공을 끝마칠때까지), 참아줄만한 가치는 충분히 있다고 생각했다.
결국, 그것이 기연화 혼자만의 생각이었다고 해도 말이다.
그래서 늦게나마 처녀로서의 자각에 눈을 떴는지,
호기심에 가득한 눈빛을 애써 억누르며,
사나이의 눈부신 나신에서 눈을 뗀, 기연화는
야명주의 영향으로 주변이 환한 덕분에, 여실히 드러난,
석실의 벽면과, 천장을 가득 메우고있는
현란한 부조물들이 뿜어내는 장대한 환상경에 일시, 안색이 도화빛으로 물들었다.
***
그것은 천지창조(天地創造)의 모습이었다.
중국에 전해지는 신화(神話)에 의하면,
아주 오랜 옛날 중원의 하늘에 해가 열 개나 뜬,
열천지옥의 때가 있었다고 한다.
화염신(火焰神)의 자리를 놔두고, 열 개의 해가 각축을 벌이는 가운데,
과도한 열기를 견디지 못한, 대지가 말라 비틀어져가자,
이를 보다못한 천신이 휘하의 맹장인 궁신(弓神)을 지상으로 내려보냈다.
궁신은 지상으로 내려오자마자, 강철로된 활대에 벼락으로 날을 벼린, 화살을 재어
단숨에, 화염신의 지위를 다투던, 아홉 개의 태양을 떨어뜨렸고,
그제야 정상적으로 돌아온 지상의 평화에 감읍한,
요왕(중국 신화시대의 어진왕)은
천하제일의 미녀인 성모궁의 항아공주를 궁신에게 시집보냈는데,
항아공주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자신을 하루종일 내버려둔채,
진종일 사냥에만 몰두하는 궁신을 탐탁치않게 여겨,
자주 남편인 궁신의 눈을 피해 다른 남정네와 바람을 피웠다.
사냥을 나갔다 돌아온, 궁신은
자신의 아내가 다른 남정네와 바람을 피는 광경을 목격하곤,
격분해서 ...
본래, 이야기의 끝은, 남의 아내와 간통했던 사내가
궁신이 쏜, 화살에 꿰뚤려 비참하게 죽고,
항아는 궁신의 노여움을 피해, 달에 있는 월궁으로 도망가
그곳의 두꺼비가 된다는, 권선징악(勸善懲惡)적인 내용으로 끝을 맺지만,
석실의 천정을 온통 장식하고 부조물의 모양은 사뭍 그내용이 달랐다.
천하제일의 미녀인 월궁의 항아를 자신의 품안에 끌어안고,
항아의 황금빛 과실을 여유롭게 희롱하던 사내는
, 오히려 항아의 남편인 궁신의 남근을 잘라서, 개의 먹이로 던져주고,
벼린날을 새우고있는 초승달에 매단채
, 항아와 꿈결같은 운우지락(雲雨之樂)을 나누고 있었다.
사내와 항아간의 운우지락의 모습이 너무나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어서인지,
부조의 형상을 유심히 바라보던 기연화의 호흡이 갑자기 거칠게 변했다.
' 이럴수가 ! 평정심(平定心)을 유지하는 것으론,
소림의 고승에게도 뒤지지 않을거라 곽아저씨가 말했었는데 ... '
그랬다. 검문은 지난 백여년간, 오직 검술일로(劍術一路)에 모든 것을 건, 절대검문이었다.
검은 만병지왕(萬兵之王)이고, 그런 검을 사용하는 검법을 사용하는자는
바른 검법을 익히기위해 백절불굴(百折不屈)의 평정심을 가져야만했다.
특히, 여인이기 때문에 남자보다 신체적인 제약을 많이 받아야했던 기연화는
자신이 검문의 정통적인 계승자임을, 증명하기위해
어려서부터 여인의 몸으론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극한에 가까운 고련을 견뎌야 했다.
그런 검문의 수련을 이겨낸 기연화가
단순한, 춘화(春畵)에 불과한 석실의 난잡한 부조를 봤다고,
호흡이 거칠어진다는건 있을수 없는 일이었다.
냉철한 머리로 지금까지의 사정을 면밀히 되집어보고 있던
기연화의, 자연에 가까운 본능이
아직까지 운기삼매경(運氣三昧境)에 빠져있는 사나이에게로 집중됐다.
' 내 심기를 흐트러뜨린, 모든일의 근원은 저놈이다. 저놈은 필시 나쁜놈이 분명해 ! '
강서무림에는 지난, 백여년전부터,
'검문의 검법은 단순하고 무식하다'는 말이 정설(定說)처럼 전해져왔다.
그것은 사일검법(死日劍法)같은,
주로 현란한 변화로 상대를 제압하는 변검(變劍)을 주로 사용하는
청성파의 제자들에게서 흘러나온 말인데,
실제로 검문의 검법은, 주변의 무당파나, 청성파와 같은
명문검파들이 갖고있는 비전검법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검문에서 검을 수련한 검사들은, 특정한 초식의 변화에 얽매이지 않고
검을 휘둘렀고, 상대와 검을 나눌때는,
순간적인 자신의 판단과 직감에 의해 적을 물리치는
임기응변(臨機應變)의 묘(妙)를, 검술의 극의로 삼았다.
그런 검문의 임기응변의 검의(劍意)를 자신의 몸에 바르게 체득하기 위해선,
자신의 머리속에서 떠오른 잡다한 생각을 일소에 붙이고,
한줄기의 번뜩이는 직감에 의지하여 검을 휘두르는
단순무식함을 가슴 깊숙히 담아두고 있어야만 했다.
그러한 까닭으로, 조금전까지 약간의 호감마저 느끼고 있던,
운기조식중의 사나이에 대한 나쁜 감정이 생기자마자,
자신의 등뒤에 매달려있던 반월검을 단숨에 빼어든, 기연화의 신형이,
'뜻이 이르는곳에 검이 이른다'는, 심검(心劍)의 검의에 따라,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한줄기의 광풍을 동반한채, 사나이의 천령개를 향해 검을 내려쳐갔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벼락처럼, 한점의 군더더기도 없이,
사나이의 천령개를 노리고 떨어져내리던 반월검의 검세가,
그때까지도 내려감은 눈을 뜨지 않고있던 사나이의 천령개를 단숨에 두쪽으로 쪼개가다,
사나이의 천령개를 한치정도 앞에 놔두고, 거짓말처럼 딱딱한 석상처럼 굳어버렸다.
' 이놈이 운기조식을 끝마쳤다 ! '
진정한 고수는 나아갈때와 물러날때를 안다는 말이있다.
사나이의 천령개로부터, 뿜어져나온 기이한 반탄강기(反彈剛氣)에 밀려서
사나이의 천령개로부터 뒤튕겨져 밀려난, 자신의 반월검을 재빨리 가슴으로 회수하며,
상승의 신법을 펼쳐, 공격했던 때와 같이 매끄럽게 뒤로 물러선, 기연화의 등줄기로
오싹한 한기가 스쳐갔다.
' 저놈의 눈 ... '
그렇다. 기연화 정도의 검도고수쯤 되면,
전력을 다해 뽑아들었던 자신의 검을,
사나이의 전개해낸 반탄강기가 제아무리 대단하다고해도,
단한번의 겨룸으로 검을 뒤돌리지는 않았다.
다만, 기연화가 검봉을 타고, 자신의 단전으로 파고드는
사나이의 반탄강기에 저항하지 못하고 뒤로 물러나는것에 맞춰,
느닷없이 뜨여진 사나이의 눈동자에서 뿜어진 이상한 기운은,
그것을 접한 기연화로 하여금 마치, 거대한 구렁이앞에 내동댕이쳐진,
한 마리의 새앙쥐처럼 일시에 사나이에 대한 전의(戰意)를 상실케 만드는 힘이 있었다.
' 저 눈, 저놈의 눈이 ... '
강서성을 통털어, 다섯손가락 안에 드는 미녀인 자신을 능가하는
절세의 외모를 가지고있는 사나이의 용모를 더욱더 돋보이게 만드는
푸른빛이 감도는 매혹적인 눈동자에서 발산되는 사악한 마력에 꽁꽁 묶여버린
기연화의 장미빛이 감돌던 안색이 어느새 새하얗게 질려있었다.
" 아 안돼 ! "
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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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잘 보고갑니다
감사 합니다^^
고맙게 잘보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갑니다 .
잘읽었읍니다
잘봅니다,
ㄳㄳ^^^
즐감.
잘봅니다..~~
즐독중
^^ 감사합니다
즐.독.하고있읍니다
잘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