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를 받고 시골로 내려가는 길이다. "하필 바쁠 때 다치시네..."
방에 지린 내가 심해 들어갈 엄두가 안 난다. "환기 좀 시키지 냄새가 너무 심하잖아." "아버지가 다리를 다쳐서 어쩔 수가 없잖니."
입원시켜 드리고 집에 오는 길에 아버지의 '미안하다'는 말이 자꾸만 생각난다. "왜 다치셔서... 답답하네." 권효가(勸孝歌) 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子女汚便 以手自執 (자녀오변 이수자집) 자녀들의 대소변은 손으로도 주무르나 父母流唾 思濊不近 (부모유타 사 예불근) 부모님의 흘린 침은 더럽다고 멀리하고
愛犬病臥 急走病院 (애견병와 급주병원) 개 병들어 쓰러지면 급히 병원으로 달려가나 老親發病 子謂老患 (노친발병 자위노환) 늙은 부모 쓰러지면 노환이라 생각하네
모든 일이 지나고 나서야 깨닫고 후회한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지금 이 순간 잘못하고 있다.
맹무백(孟武伯)이 효에 관하여 여쭤 보자 공자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孟武伯問孝 子曰 父母唯其疾之憂 (맹무백문효 자왈 부모유기질 지우) 부모는 오직 자식이 병들지 않을까 그것 만을 걱정한다.
부모님의 사랑으로 자라서 서른에 이립(而立)하였으나 부모와 자식 중간에서 이것도 저것도 할 수 없는 나이가 50대이다. 누구나 50 여 년을 살다 보면 뒤를 돌아보게 된다. 돌아보면 돌아볼수록 신기하기도 하고, 후회스럽기도 하다.
일흔 넘은 공자는 자신의 삶을 이렇게 요약했다. 子曰 參乎 吾道一以貫之 (자왈 삼호 오도일이관지) 나의 길은 하나로 꿰어져 있다. 세상의 흐름에 흔들리지 않고 내가 가야 할 그 길을 지금까지 일관되게 걸어왔다.
우리가 만약 서른에 인생의 뜻을 세웠다면, 20년이 지난 오십의 자신은 분명 덜 흔들리고 있을 겁니다. 스물의 미숙함, 서른의 치열함, 마흔의 흔들림이 줄어든 오십. 지금이야말로 일관성 있게 '오도일이관지'를 시작하기에 좋은 나이이다. 그러나 너무 조급해 할 필요는 없다. 주어진 책임감과 역할로 순식간에 세월이 흘렀으니 흔들리는 오십을 마주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지금까지의 삶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꼭 한 번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 50대를 잘 보내보자. 苗而不秀者有矣夫 秀而不實者有矣夫 (묘이불수자유의부 수이부실자유의부) 싹은 틔었으나 꽃을 피우지 못하는 경우가 있고, 꽃은 피웠으나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당연한 일이 아닌데도 지금까지 당연하게 여겼다면 지금이 바로 변화할 시기인 것이고, 당연한 일을 당연하게 하고 있었다면 행복한 인생을 확인하는 거다. 그러니 핑계를 멈추고 생각해야 한다. 지금 바쁘다는 핑계로 오십을 넘기면 무엇을 하든 후회하는 육십이 될 거다. 나이 오십, 자기 자신만 생각해도 욕먹지 않을 나이이다. 지금까지 '누군가'를 위해 살았다면 이제부터 '나'를 위해 재밌게 살아야 한다. 한 번은 뜨겁게 살아서 칠십이 되었을 때 우리도 당당하게 '오도일이관지'를 외칠 수 있길 기대해 본다. - 오십에 읽는 논어 中 - <출처 : narr-shallow tistory.com>
<옮긴 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