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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5. 14. 주일 큐티
빌립보서 4:1 ~ 7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관찰 :
1) 주 안에서 행하라
- 1절.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이 어떤 존재인가를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이라는 표현을 통해서 다시 언급하고 있습니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라는 표현은 데살로니가전서 2:19에서도 사용한 표현이기도 합니다. “면류관”(στέφανος, 스테파노스)은 당시 운동경기 승리자에게 주었던 월계관이나 연회에서 얻은 화관을 가리킵니다.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이 복음에 참여하며, 자신과 동역하는 자리에 나아가게 되었다는 것이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는 명예이고, 월계관과 같은 의미가 되는 것이라는 것을 밝히는 것입니다. 흔들리지 않고 계속하여 그렇게 되기 위해서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에게 “주 안에서”(ἔν κύριος, 엔 퀴리오스)만 가능한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아무리 어려운 환란과 역경을 만나더라도 굳세고 진실하게 행할 수 있는 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할 때 공급받게 됨을 경험을 통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의 믿음이 관념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죽은 믿음이 아니라 날마다의 삶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살아있는 믿음을 드러낼 것을 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2) 유오디아와 순두게를 향한 권면
- 2절.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 자주 장사였던 루디아에 의해서 세워진 빌립보 교회는 여타 다른 교회들 보다 여성들의 영향력이 컸던 교회였습니다. 오늘날로 치면 권사회 회장 격인 유오디아와 여전도회 회장 격인 순두게가 서로 힘겨루기를 하며 갈등을 만들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가 주 안에서 온전히 서기 위해서 조정되어야 하는 첫 번째 덕목으로 이들이 화해하고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가 분란을 일으키고 분쟁을 하는 것은 이유가 어떠하든지 옳은 행위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둘 사이의 불화는 로마의 감옥에 있는 사도 바울의 귀에 들어갈 정도로 대단했던 것 같습니다. 그들에게는 사도의 권위와 빌립보 교회를 세운 바울의 권위로 조정하는 것이 필요했을 정도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들을 교회에서 출교하는 것을 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들이 서로 화합하고 하나가 되어 더 열심히 빌립보 교회를 섬길 것을 명하고 있습니다.
- 3절.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가 누구를 지칭하고 있는 지를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과 함께 동역을 하고 있는 그에게 부탁하는 바는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을 도우라는 부탁입니다.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은 유오디아와 순두게를 말합니다. 그녀들은 분명히 사도 바울에게 도움이 되었고, 큰 힘이 되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글레멘드”도 이곳에서 독특하게 등장하는 인물로 누구인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나라를 위해 수고하고 애쓰는 이들이 생명책에 기록된 것은 당연지사입니다. 사도 바울은 세상의 그 어떤 명예나 특권보다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것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보고 있었습니다.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기까지 한 존재로서 서로 헐뜯고 싸우는 것이 참으로 옳지 않다는 것을 또한 사도 바울은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기까지 한 이들은 오직 한마음으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워가야 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3)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 4절.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 사도 바울은 다시금 역설적 기쁨을 말하고 있습니다. 환경을 넘어서는 기쁨이고, 세상에 휘둘리지 않는 기쁨입니다.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자의 기쁨입니다. 성도는 세상에서 그 어떤 환란과 역경을 만나더라도 이 기쁨을 잃어서는 안됩니다. 성도가 가장 비참한 상황에 처하는 것은 구원의 기쁨을 상실하는 상황입니다. 그렇기에 사도 바울은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 5절.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 “관용”(το ἐπιεικής, 토 에피에이케스)은 손해나 역경을 당해도 쉽게 동요되거나 넘어지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하는 ‘영적 인내’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것은 자신의 당연한 권리를 포기하고 다른 사람을 향해 너그럽게 대하는 태도로 드러납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태도를 성도가 성도에게, 뿐만 아니라 성도가 불신자들에게도 드러내야 하는 덕목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주께서 가까우시니라”는 ‘마라나타’,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선악간의 모든 것을 심판하실 주님의 재림이 가깝기 때문에 그것을 믿는 자는 핍박을 인내하고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고 사도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4) 염려하지 말고 기도하라
- 6절.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a. 사도 바울은 염려하지 말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 염려가 없는 인생은 없겠으나 염려를 붙들고 사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자세, 복 받는 그리스도인의 자세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 그 염려들 속에는 좋은 염려들,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꿈꾸며 하나님의 일을 하고자 하는데서 오는 문제들에 대한 염려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이생에 대한 고민과 염려들입니다. 관계에 대한 염려요, 개인의 죄악과 연루되는 것들입니다.
- 그러한 염려들에 대해서 걸러져야 할 것들이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곧 기도. 간구. 감사. 하나님께 아룀. 하나님이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분이시라는 것에 대한 신뢰. 나의 판단의 정지.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을 받음. 그 받은 평강으로 마음을 지킴. 그 받은 평강으로 생각을 지키는 것입니다.
- 그렇게 할 때 모든 염려로부터 우리는 해방되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복음을 소유한 자가 이러한 평강을 누리지 못하고 놓치고 산다는 것은 은행에 큰 돈을 예금해 놓고 쫄쫄 굶고 다니며 영양실조에 걸려있는 것과 다를 것 없는 모습입니다.
b.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를 해야 합니다.
- 과연 나는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모든 영역에 기도하고 간구하고 응답받고 움직이는가? 하나님의 응답을 확신하며 모든 일에 온전한가? 시도는 하지만 너무나 부족합니다. 그래도 다시 시도하고 또 시도해야 할 것입니다.
- 이렇게 사는 것은 부끄러움이 뒤따릅니다. 모든 일.... 모든 일에 대해서 기도하고 간구해야 합니다.
c. 감사함으로 해야 합니다.
-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는 것입니다.
- 불만과 짜증과 성질. 이것은 하나님께 할 대상이 아닙니다.
-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는 마음. 이것은 훈련이 필요한 영역입니다. 믿음으로 하는 행위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간절한 간구일수록 감사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해야 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
-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아뢰는 것은 허공에 대고 하는 것이나 마인드 컨트롤 하는 것이 아니라 인격체이신 하나님을 뵈옵는 행위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기에 믿음이 없으면 감사도 간구도 응답도 없습니다.
d. 간구의 대상은 하나님이십니다.
- 긍정의 힘이 아닙니다. 인격자이신 하나님께 드려져야 합니다.
- 세상의 다른 종교인이나 이데올로기를 추구하는 자들이나 다른 세계관을 가진 자들, 그리고 부의 분배에 대해 우측에 있는 사람이나 좌측에 있는 사람들. 이들이 간구하는 열심은 우리보다 더 열심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 대상이 누구인가가 문제의 핵심입니다. 대상은 하나님이셔야 합니다.
- 다른 것에 간구하는 것은 응답이 없습니다. 우상숭배입니다. 세속주의입니다.
e. 하나님을 인정해야 합니다.
- 하나님께 구했다면, 하나님이 판단하시고 결정하시는 모든 사항이 나의 판단과 지각과는 비교할 수 없으신 판단이요 결정이심을 인정해야 합니다.
- 기도는 했으나 나의 뜻, 나의 생각대로가 아니라고 해서 성질내고, 분을 품는 것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 하나님을 인정하지 못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이 우리에게 올 수 없습니다. 그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내 생각과 판단을 죽이고, 십자가에 달고, 하나님이 주시는 응답에 만족하고 감사하고 받아들이는 것, 정말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도 있겠지만,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 이것이 이기는 길입니다.
- 7절.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 하나님은 하나님의 평강으로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는 것으로 응답하십니다. 내 생각이, 내 간구가 만사형통하는 것이 우리 기도의 응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마음과 생각이 지켜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그것이 더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지켜지는 것은 얼마나 더 중요한가? 또한 하나님의 평강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마음과 생각이 지켜지는 것은 더 더 더 얼마나 중요한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가르침 :
1) 사도 바울은 성도가 무엇을 하던지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게 되면 그가 온전해 질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말뿐이 아니라 사도 바울 스스로가 실제로 그런 삶을 살았기 때문에 말할 수 있는 권면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사도 바울은 자신을 본받으라고 말한 것입니다. 성도가 온전하고자 한다면 그 누구라도 그리스도 안에서 거해야 합니다.
2) 유오디아와 순두게는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 중에는 모르는 이들이 없는 여성 리더들이었습니다. 이들이 사도 바울을 돕고, 또 얼마나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섬기는 삶을 열심히 살았는지 모릅니다. 게다가 이들의 이름은 생명책에 기록되었을 것이라고 사도 바울이 말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그런데도 이들이 서로 분란을 일으키고 분쟁을 멈추지 않는 것은 합당한 모습이 아니라고 사도 바울은 분명히 말하고 있으며, 당장 그 싸움을 멈출 것을 명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 안에서 이유가 어찌되었든 분쟁을 일삼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3) 오늘 말씀의 핵심은 결국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문제인데, 이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으로 지켜져야 하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가능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4) 모든 염려,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핵심은 ‘내 안에 주님이 주시는 평강으로 해결되고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뜻대로 구하고 이루어지고 있는 것인가?’, ‘믿음으로 하나님을 모든 일에 대해 인정하고 살고 있는가?’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적용 :
1) 주님 안에 거하는 것. 이 문장이나 명제는 짧게 표현되지만 제 인생의 평생의 숙제입니다. 날마다의 도전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안되는 만큼 저는 성도로서의 바른 삶을 실패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로 오늘도 주님 안에 거하는 삶을 살아보고자 다시 시도합니다.
2) 교회 안에서의 분쟁은 이유를 불문하고 멈추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조정해 주실 것을 구해야 하고, 기득권이 큰 자가 포기해야 합니다. 그것이 주님이 원하시는 일이라면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더욱 주님 안에 거하게 되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들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내려놓음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주님의 은혜가 언제나 갈급한 이유입니다. 그런데 말씀대로 했음에도 조정이 되지 않는 경우는 공권력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필요하기에 하나님께서 허용해 주신 것입니다.
3) 제 마음의 염려를 주님께 내려놓습니다. 그렇게 하고, 나는 내 멋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하기를 전심으로 힘쓰고자 합니다. 염려를 내려놓는다는 것은 제 믿음의 적극적인 표현입니다. 무책임한 광신이 아닙니다.
4)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을 인정하고 제 생각과 판단을 내려놓겠습니다. 주님이 저를 택하셨습니다. 그것은 제 판단과 생각을 넘어서는 결정이시고,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판단이십니다. 제 생각과 다른 영역입니다. 주님의 판단을 신뢰합니다. 저를 통하여 빚으실 미래의 제 모습을 기대합니다. 주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고 헛된 생각으로 제 마음과 생각을 더럽히지 말겠습니다.
5)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믿고 사는 신앙의 경지에 저는 아직 제대로 오르지 못했습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제가 구할 것을 하나님께 아룀으로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의 간섭으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제 마음과 생각을 날로 더욱 점령되어 가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