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문 Ⅲ-3]“책읽는 맑은 냇가” 청계천
청계광장에서 광통교구간 사이, 청계천산책로에서 오늘오후 처음 보고 즐긴 야외도서관. “청계천 물소리를 한데(야외)에서 들으며 편하게 책을 읽으며 쉬자”는 캐치프레이즈로, 지난해부터 서울시가 운영하고 있는 야외도서관 이름이 <책읽는 맑은 냇가>이다. 곳곳에 빈백(bean bag:몸을 푹 감싸주는 큰 쿠션의자)과 캠핑의자, 벤치가 놓여 있고, 그 옆에는 책주머니가 있다. 누구라도 무료로 앉아 여유있게 ‘물을 바라보며’(물멍) 놓여 있는 책을 골라‘읽으며’(책멍) 힐링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 놀랍고 신선하다. 누구의 아이디어였을까? 볕이 따갑다며 양산까지 빌려준다. 2000여권에 달한다는 책도 대부분 영양가 있는 신간들인데, 특이한 것은 외국 원서들도 수두룩하다는 것이다. 이 기막힌 공간을 애용하는 외국인들도 엄청 많다. 이렇게 보기 좋은 풍경이 있을까?
성인들이 1년에 책 몇 권 읽지 않고, 출판계가 불황에 시달린다는 얘기를 들은 지 수년째인데, 이렇게 책을 읽게 하는 야외도서관이 숲속이나 공원 곳곳 그리고 청계천 냇가에까지 있다는 게 놀랍지 아니한가. 아주 좋은 일이다. 책을 좋아하는 나로선 황홀하게 좋은 일이다. 책 제목들을 살피러 다니기에 바빴다. 그곳에서 발견한 신간 <미술관에 간 할미>를 인근 교보문고에서 사기도 했으니. 청춘남녀들이여, 데이트도 좋지만, 이곳에서 두세 시간 ‘독서삼매경’에 빠져보는 것은 또 얼마나 좋은 추억일 것인가. 머리에, 가슴에 양식(糧食)과 양식(良識)을 쌓자. ‘배워서 남 주나’라는 말도 있지만, 책을 읽어서 남을 줄 것인가. 일찍이(1980년) 국내 최대 규모의 서점, 교보문고를 만드신 신용호 회장은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기똥찬 어록을 남겼다. 두 시간여 나태주와 정호승 시집을 읽었다. 전혀 지루하지 않고 오후내내 있었으면 싶기도 했다. 또 언제나 와보려는지. 그 풍경을 광통교 위에서 바라보며 사진을 찍으니,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됐다는 실감이 비로소 났다.
선진국, 그렇다. 우리 유구한 대한민국은 ‘한강의 기적’에 이어, 이제 GNP 3만5천달러가 넘은, 유엔이 공식 인정한 선진국이 된 것이다. 정치(행정이 잘 돌아가니 얼마나 다행인가)와 북한 대립 등 문제 말고는 어디 하나 뒤처지거나 빠진 부문이 없다. 우리의 손자세대들이 선진국의 풍요를 마음껏 누리게 된 것은 참으로 큰 홍복이다. 50년대는 극빈국, 60년대는 후진국, 70년대는 개발도상국, 80년대에는 중진국이었을까? 문화 예술은 진즉에 선진국을 넘어 지구촌에 ‘수출’하기도 바쁘다. 백범선생이 그토록 원하는 나라가 됐거늘, 야당이 야당다운가? 여전히 후진국 양태를 보이는 정치는 어찌할 것인가. K-컬처, K-음악 등 생각하면, 문외한이지만 언제나 신통방통하기 짝이 없다. 무한 자랑스럽기도 하다. 어느 지방도시를 가보라. 특히 전주의 경우 곳곳에 크든작든 도서관이 즐비하다. 그런데도 책을 읽지 않으시며 안될 일이다. 잘못이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팔복(八福)에서 맨먼저 제외될 진저. 한때 ‘경제적 동물’이라고 비웃기도 했지만, 선진국 일본의 비결이 독서라고 했었다. 그들은 지금도 지하철에서 포켓북에 빠져 있다.
졸부(猝富)가 되려고 대통령이 됐다는 비난을 받았던 어느 정치인이 서울시장으로 있을 때 대표적인 치적으로 청계천 복원과 도로 가운데 버스정류장 설치를 내세워 ‘졸속’이라고 생각했었으나, 지금 생각하면 청계천 복원은 잘한 일같다. 도심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며 물고기가 놀고 있는 긴 냇물을 만드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터이나, 도시의 허파꽈리 역할을 하고 있으니, 비록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들어가겠지만, 힐링공간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듯하다. 메가 시티(인구 천만명 이상의 대도시)의 명물(名物)이 된 것이다. 청계천을 걸으시라. 왕복이래야 3km 이쪽 저쪽일 듯. 음악도 있고, 밤에는 현란한 조명도 있다. 오전오후 서너 시간 편하게 앉아 물소리를 들으면 양서도 읽어보자. 좋은 경험했다. 서울이 문화를 즐기는 살만한 곳이 된 것같아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