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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생태 파괴하는 인류, 안전한 미래는 없다”…공존의 가치 일깨워
김호기 |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
먼저 두 구절을 소개하면서 이 글을 시작하려 한다.
미국 생물학자 레이첼 카슨은 “인간은 생물권의 일부일 따름이고, 다른 모든 생물체에 대한 책임을 자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낯선 정적이 감돌았다. 새들은 도대체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 전에는 아침이면 울새, 검정지빠귀, 산비둘기, 어치, 굴뚝새 등 여러 새의 합창이 울려 퍼지곤 했는데, (…) 들판과 숲과 습지에 오직 침묵만이 감돌았다.”
“체르노빌에서는 ‘모든 것 후’의 삶이 더 기억에 남는다. 사람 없는 물건, 사람 없는 풍경…. 목적지 없는 길, 목적지 없는 전선…. 또 생각해 보면, 이것은 과거일까, 미래일까?”
첫 번째는 환경 보존의 중요성을 선구적으로 일깨운 미국의 생물학자 레이첼 카슨(Rachel Carson·1907~1964)이 발표한 <침묵의 봄>(Silent Spring, 1962) 제1장의 한 구절이며, 두 번째는 2015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벨라루스의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발표한 <체르노빌의 목소리>에 나오는 ‘독백적 인터뷰’의 한 구절이다. 살충제의 위험을 경고한 <침묵의 봄>과 원전 참사의 결과를 고발한 <체르노빌의 목소리>는 생태적 계몽을 선사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사상 70년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새로운 도전은 생태주의, 페미니즘, 포스트모더니즘이었다. 이 세가지 사유는 인간중심주의, 남성중심주의, 이성중심주의를 전면적으로 비판했다. 카슨의 <침묵의 봄>은 지식사회는 물론 일반 시민들에게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추구하는 생태학이 왜 중요한지를 알려준 저작이었다.
정치가는 권력으로, 기업가는 자본으로 세상을 뒤흔든다. 지식인이 책으로 세상을 뒤흔들 수 있다면, <침묵의 봄>만큼 적절한 저작을 찾기 어렵다. 미국의 사회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은 이 책을 해리엇 스토의 <톰 아저씨의 오두막>과 존 뮤어의 <미국의 국립공원>의 반열에 올려놓는다. 스토가 노예제도 폐지에, 뮤어가 국립공원 설립에 중대한 기여를 했듯, 카슨은 국가환경정책법 제정과 환경보호국 신설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침묵의 봄>이 미국사회에 가져온 변화였다.
■‘침묵의 봄’과 생태적 계몽
<침묵의 봄>은 17장으로 이뤄져 있다. 봄이 와도 새들이 울지 않는 제1장 ‘내일을 위한 우화’로 시작하는 이 책에서 카슨이 다루는 주요 내용은 두 가지다.
첫째, 살충제인 디디티(DDT)와 같은 독성 화학물질이 자연을 얼마나 파괴하는지를 실증적으로 분석한다. 한 번 투여된 독성 물질은 분해되지 않은 채 축적되며, 결국 생태계를 죽음의 세계로 이끌어간다.
둘째, 독성 물질은 인류에게도 큰 영향을 미친다. 카슨은 인간에게도 안전지대란 없고, 현재의 인간은 물론 미래의 인간까지 오염시킬 수 있음을 경고한다.
지구의 모든 생명체의 권리를 옹호하려는 게 카슨의 핵심 아이디어였다. <레이첼 카슨: 환경운동의 역사이자 현재>라는 카슨 평전을 쓴 윌리엄 사우더에 따르면, <침묵의 봄>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지상의 모든 생명체가 생화학적 진화의 역사를 공유하기 때문에 합성 유독물질이 특정 유기체만 표적으로 삼을 뿐 다른 유기체엔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생각은 어리석고 그릇된 것이라는 데 있었다.
<침묵의 봄>은 출간되기 직전 주요 내용이 주간지 ‘뉴요커’에 연재됐는데, 논쟁은 이때부터 격렬하게 진행됐다. 살충제 제조사를 포함한 기업들은 카슨이 살충제의 위험을 과장·왜곡한다고 비판했다. 어떤 이들은 카슨이 공산주의자라고 모함했다. 하지만 미국 국민 다수는 카슨 편이었다. <침묵의 봄>은 출간 2년 만에 100만부가 팔렸다. 이 책을 읽은 시민들은 살충제가 생명에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깨닫게 됐다.
카슨은 생태주의자인 동시에 현실주의자였다. 그는 살충제 등 독성 화학물질의 사용을 전면적으로 거부한 게 아니라 건강 보호와 생태계 보존을 고려해 신중하게 제한적으로 사용할 것을 제안했다. 카슨이 대안으로 제시한 것은 미국의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가 제시한 ‘가지 않는 길’이었다. 편리함은 제공했지만 생명을 위협하는 길을 버리고, 지구를 보호하며 생명체를 존중하는 길을 선택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의지에 달려 있다고 카슨은 주장했다.
카슨의 대표 저작 <침묵의 봄>
■카슨 이후의 생태학의 발전
<침묵의 봄>은 현대 과학의 발전이 어떻게 환경 위기를 초래하는지를 설득력 있게 전달함으로써 이후 생태학 발전에 결정적 계기를 제공했다. 생태학의 주요 흐름을 이뤄온 아르네 네스의 심층생태학, 머레이 북친의 사회생태학, 앙드레 고르의 정치생태학 모두 <침묵의 봄>으로부터 크고 작은 영향을 받았다.
<침묵의 봄>은 특히 노르웨이 생태학자인 네스에게 큰 영감을 선사했다. 네스는 카슨과 함께 생태학의 선구자 중 한 사람인 미국의 알도 레오폴드가 <모래 군(郡)의 열두 달>에서 주장한 ‘산처럼 생각하라’를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산처럼 생각하기’는 인간중심적 관점을 넘어선 생태계 전체 관점에서의 사유를 촉구했다. 이 말에는 우리 인간이 생물권의 일부일 따름이고, 다른 모든 생물체에 대한 책임을 자각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참사, 미세먼지와 옥시 사태, 그리고 기후 변화에서 볼 수 있듯 지구적 차원에서나 국내적 차원에서 모두 생태적 사유와 실천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환경 위기를 극복하고 인간과 자연이 공존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발전의 길이 여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동시에 지구적 생태 위기를 고려할 때 시간이 많이 남아 있는 것도 아니다.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제도개혁과 의식혁신을 지역적으로, 지구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것은 21세기 인류사회에 부여된 가장 중대한 과제 가운데 하나다.
■한국어판 저작은
<침묵의 봄>은 여러 출판사들에 의해 우리말로 옮겨졌다. 번역가 김은령이 옮기고, 세민환경연구소 홍욱희 소장이 감수한 에코리브르의 <침묵의 봄>은 에드워드 윌슨의 ‘후기’를 싣고 있다. 윌슨은 출간된 지 40년이 된 2002년의 시점에서 이 책의 의의와 영향을 간결하게 정리하고 있다.
환경운동과 함께 성장…담론 확산시킨 김종철·실천 앞장선 최열
■한국사회의 생태학
<침묵의 봄>에서 영향받은 생태학은 한국사회에서도 활발히 토론돼 왔다. 그동안 생태적 계몽을 주도해온 이들로는 정치학자 문순홍, 사회학자 구도완, 영문학자 김종철(왼쪽 사진), 생물학자 최재천, 환경운동가 최열(오른쪽)을 들 수 있다.
문순홍은 선구적으로 서구생태학 담론을 소개했고, 구도완 역시 선구적으로 한국 환경운동을 사회학적 시각에서 분석했다. 한국 생태학의 발전에서 이채로운 이들은 김종철과 최재천이다. 김종철이 격월간지 ‘녹색평론’을 발행해 생태학 담론 확산과 심화의 중추적인 역할을 맡았다면, 최재천은 생물학자답게 협애한 인간 중심의 관점을 넘어선 보편적 생물의 관점을 제시해 생태학의 시야를 넓히는 데 기여했다.
생태학은 학문과 실천이 긴밀히 연관된 분야다. 생태학은 환경운동의 성장에 영향을 미쳤고, 환경운동은 생태학의 발전을 자극했다. 민주화 시대에 환경운동을 이끌어온 이는 최열이다. 그는 공해추방운동연합, 환경운동연합, 기후변화센터 등의 환경단체를 창립했고, 동강 살리기 운동, 새만금 방조제 반대 운동, 4대강 반대 운동 등의 환경운동을 주도했다. 나아가 환경 이슈에 관한 일본·중국 등 이웃 나라와의 연대를 활발히 모색했다.
대학에서 농화학을 전공한 최열은 이론과 실천을 두루 겸비한 환경운동가다. 그는 1999년 월드워치연구소에 의해 ‘세계 시민운동가 15인’에 선정됐고, 2014년에는 시에라클럽이 수여하는 ‘치코멘데스상’을 받았다. 그가 세운 환경재단에는 레이첼 카슨을 기념하기 위한 ‘레이첼 카슨홀’이 있는데, 환경운동을 포함한 사회운동과 시민사회의 토론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최근 환경운동이 직면한 가장 중요한 과제는 미세먼지, 기후변화, 원자력발전에 대한 대처다. 이 가운데 탈핵은 2011년 후쿠시마 참사 이후 주요 정치 의제로 부상했다. 주목할 것은 참사 이후 각 나라의 대응이다. 독일은 탈핵의 길로 나아갔고, 미국은 재생에너지 개발에 주력했으며, 대만은 거의 완공된 신규 핵발전소 건설을 중단했다. 한국의 경우 2011년 당시 21기였던 핵발전소는 시험 가동 중인 신고리 3호기까지 포함하면 현재 25기로 늘어났고, 2027년까지 10기가 추가로 건립될 예정이다. 후쿠시마 참사 이후 원전의 안전성을 높였다고는 하지만 원전이 주는 위험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점진적인 탈핵으로의 정책 전환이 마땅히 추진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