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창공으로 흐른다. 너울너울 날갯짓하며 계곡물이, 강물이, 바닷물이 해를 향해 떠난다. 멍석 위에 널려있는 고추의 몸속에 머물던 빨간 수액도 하늘로 오른다. 마음도 따라 날아간다.
토실토실 장 영근 빨간 고추의 두텁던 살집이 쏙 빠졌다. 씨앗이 비치도록 얇아졌다. 보일 듯 보이지 않게 핏줄을 감춘 맑고 투명한 것이 참으로 애틋하다. 흔들자 맑은 소리가 난다. 도나캐나 다 내어주고 비워내어 초연해진 것으로부터 들려오는 소리다. 무구한 깊이가 깊어진다. 차라리 비어 있어서 전율케 하는 해맑음이다.
어머님은 고추가 잘 마르도록 이리저리 뒤적인다. 자식에게 쏟아붓던 정성을 모아 손질한다. 무언가를 가려낸다. 빨간 색깔을 잃고 하얗게 얼룩져 변해버린 흉한 고추이다. 희아리, 고추의 본은커녕 밭으로 내던져질 운명에 놓였다. 고추이기를 거부해야만 하는 절망의 몸이다. 쓰일 데라고는 없어 곧 거름 밭으로 내던져질 운명에 놓였다. 멍석 귀퉁이에 모은 그것들을 들여다보다가 온통 하얗게 돼 버린 하나의 희아리를 집어 든다. 손바닥에 올려놓는다. 그 위로 노인 한 분이 선하게 다가온다.
곱상하게 늙어가던 친우의 어머니다. 그분은 가까운 사람의 이름을 기억해 내지 못하는 경미한 증세로 치매의 길을 내딛었다. 점, 점, 점, 점. 남루한 옷차림으로 길을 배회하는 중증에 치달으면서 온갖 물건들을 방안으로 들였다. 버려진 옷가지와 신발, 심지어 망가진 대소쿠리며 깨어진 플라스틱 바가지를 주워와 늘어놓았다. 친우의 가슴은 탈대로 다 탔다. 그분은 기억이 하나하나 상실 도리 때마다 잊어버린 만큼의 그 무엇을 채워야 한다는 불안에 휩싸였을지도 모른다. 하루하루가 낮과 밤 구별 없이 고통스럽게 혼란을 주는 백야白夜였을 것이다. 발버둥 치며 찾으려는, 출구로부터 더욱 멀어져 가는 미로였지 않을까.
치매. 그것이 달라붙게 되면 기억이 희끗희끗 바래진다. 고스란히 간직하던 추억들은 하나 둘 쓰러져 가고 자리에 남았던 흔적마저 지운다. 깨끗하게, 아주 뽀얗게. 더 이상의 무엇을 공유할 수 없는 머릿 속 무대에는 백지의 자유로움만이 공연된다. 오늘에서 옛날로 다시 한 번 거꾸로 살아가는 삶의 길을 천방지축으로 걸어간다. 고통이 고통인 줄 모르고 기쁨이 기쁨이지 않는 망각의 강, 레테를 건넌다.
치매가 하는 짓을 보면 치사하고 비겁하다 못해 유치하기 짝이 없다. 야당 맞은 심술로 머릿속을 온통 헝클어 놓는다. 허공을 날듯이 사부랑납작 움직이던 사고력을 날지도, 퍼덕이지도, 깃털마저 세우지 못하도록 윽박지른다. 그리고는 정신연령을 바짝 낮춘다. 무조건 먼 과거의 수로로만 기억 몰이를 한다. 신혼의 골목으로, 어릴 적의 마당으로 끌고 가서 생판 딴 사람으로 둔갑을 시킨다. 숫제,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어린아이 꼴로 만들어 이르집도록 또드긴다. 걸핏하면 화를 불러내고, 다랍게 굴라고 부추긴다. 복잡한 일로부터 구출이나 해주듯 그저 단순해지라고 몰아세운다. 엊그제의 일마저 담아놓지 말고 철철 흘리고 다니며 있는 대로 흘려버리라고 들쑤신다. 노예처럼 끌고 다니다 볼썽사나운 겉피만 남겨준다. 이 세상이 아름다운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억장이 무너질 노릇이다.
원래 치매는 조그만 기억조차 허용하지 않고 군림하며 영역을 넓혀 가는 포악함을 지녔다. 안온한 삶에 딴죽 거는 등에처럼 고약함 또한 둘 때라면 서러워한다. 웃다가 울다가 변덕을 부리며 격렬하게 상승, 하강하는 감정으로 종잡을 수 없게 하는 괴팍함을 특기로 친다. 안하무인이다. 아무리 얼굴이 없다손 치더라도 어찌 그런 횡포를 부린단 말인가. 비유 맞추는 데 능한 바람만이 그 속물과 친한 척 들락날락 거린다.
영화 '축제'에서는 치매에 걸린 할머니와 그 관계들. 그리고 할머니의 죽음을 그려내면서 '축제'라는 제목을 붙였다. 모진 지병으로부터 끝이 난 망자를 축하하는 자리이고, 힘든 수발과 지져보기조차 안타까웠던 산 사람들이 해방되는 자리이기 때문일 것이다.
'축제'는 노쇠해지면서 차츰 작아져 원점으로 되돌아가는 할머니와, 그 할머니를 이해하지 못하는 손녀 사이에 주제를 숨겨 놓았다. 치매는 세대와 세대를 잇는 교량 역할을 하는 중이라고, 질병이라기보다 사람 관계를 맺어주는 한 가닥의 연결고리라는 것을 귀띔한다. 끊어질 것 같은 줄을 이어갈 수 있도록 매듭으로 묶고, 비워내며 작아짐으로 해서 더 넓게 향유할 수 있다는 뜻을 넌지시 던진다.
비워내는 건 아무것도 담지 않는 것, 아무것도 담지 않는 건 깨끗해지는 것, 깨끗해지는 건 하얗게 되어 가는 것, 하얗게 되어 가는 건 희아리. 희아리는 치매. 치매는 끈.
(정여송 님의 수필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