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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三國志) (147) 원소의 절명
휘하의 장수들과 아들에 의해서 기주쪽으로 철수를 하던 원소는 그로부터 몇
시각이 지나서
기력을 회복하기는 하였으나, 참담한 운명에 직면하게 된 자기 자신을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는 가운데 오소의 수비를
책임지고 있던 순우경이 코가 잘리고 귀가 잘린 상태로
수레에 실려 원소 앞에 나타났다."도대체, 오소가 어찌하여 그렇게도 쉽사리 적의
손에 떨어졌느냐 ?"
원소가 순우경에게 물었다.순우경이 차마 대답을 못하고 얼굴을 수그리자, 그를 호송해 오던
부하가,
"대장께서는 술에 취해 계시다가 조조군의 기습을 당하셨습니다."하고, 있는 사실 대로 대답하였다.
원소는 그
소리를 듣자 크게 노하며 그 자리에서 순우경의 목을 베라 명하였다.
순우경이 참혹하게 죽임을 당하자 원소의 부하들은 모두 불안에 휩싸였다.
실수를 용서하지 않는
자신들의 주공인 원소가 언제든지 자기들에게도 같은 명을 내릴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보니,
행군이 길어질 수록 따르는 병사들이 속속 자취를 감췄다.
그리하여 원소는 불과 팔백여 명의 부하들을 거느리고 여양까지 쫒겨왔다.
그러나
나머지 부하들은 종적을 감추거나 연락이 단절되어 어디로 갈지를 모르고 있었다.
더구나 일만의 군사를 주어 관도의 조조 군영을 치게
하였던 장합과 고란 등 두 장수는 군사를 이끌고
조조에게 투항해 버렸다는 소식까지 들어왔다.
원소는 크게 낙담하며 성중으로 돌아온 이후에는
내전(內殿)에 깊이 파묻혀 날마다 번민 속에 지내고 있었다.
이렇게 나이도 많은데다가 심려까지 달고 살다보니, 그의 건강은 눈에 띠게 쇠약해
갔다.
그 모양을 보고 하루는 후처(後妻) 유 부인이 걱정의 말을 하였다.
"당신이 건강하실 때에 후사(後嗣)를 미리 결정해 두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야만 그 사람을 중심으로 모두가 합심하지 않겠습니까 ?"
유 부인이 이렇게 말하는 데는 복심(腹心)이
있었다. 원소에게는 원담(袁潭), 원희(袁熙), 원상(袁尙)의
세 아들이 있었는데, 앞서 두 아들은 전실 소생이고 셋째 아들 원상만이 유 부인의 소생이었다.
그리하여 유 부인은 자신의 아들로 후사를 삼고 싶어서 그렇게 말했던 것이었다.
"음 .... 나도 이제는 심신이 모두
피로해져서 후사를 정하기는 정해야겠어..."
원소는 즉답을 피했지만 심중은 매우 복잡하였다. 귀엽고 총명한 막내인 원상을 후계자로
정하고 싶었지만,나머지 형제들의 원성을 사지 않을까 염려되었던 것이었다.
원소는 혼자 걱정하다 못해, 하루는 심배(審配), 봉기(蓬紀), 신평(辛評), 곽도(郭圖) 등
네 중신을 불러들여 그 문제를 물어 보았다.
"오늘은 나의 후계자를 미리 정해 두기 위해서 여러분들을
불렀소. 제대로 하자면 후계자는
응당 맏아들 담이로 정해야 할 것이로되, 담(潭)이는 위인이 너무 강포(强暴)해서,
덕(德)으로 수하를 다스릴 줄을 모르니 만 백성의 어버이로는 부족한 것 같고, 그보다는 차라리
영웅지표(英雄之表)가 넉넉한 막내인 상(尙)으로 후계자로 삼을까 하는데,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한가 ?"
곽도가 대뜸 나서며 반대한다.
"주공 ! 그것은 천부당 만부당한 말씀입니다. 자고로 형을
제쳐놓고 아우에게 후사를 맡겨서
나라가 태평한 일이 없었습니다. 지금 조조와 끝없는 결전을 펼치고 있는 때에, 후사를 잘못 정하시어
내분에
알력까지 일어난다면 나라의 운명이 어찌되겠습니까 !"
반대에 봉착하여 원소가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맏아들 원담이 청주에서
군사 오만을 거느리고 왔고, 둘째 원희가 유주에서 군사 육만을 거느리고 왔고, 병주에 있는
생질 고간(高幹)은 오만의 군사를 이끌고 왔다는
전갈이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
"음 ... 누구누구 해도 정세가 위급할 때에는 핏줄밖에 없구나 !..."
원소는 내심 크게 감탄하며
후계자 문제는 일단 접어 두고,
이들의 지원을 믿고 또다시 조조를 쳐부술 욕망이 솟아오르게 되었다.
한편, 조조는 오소를 점령하여
많은 무기와 군량을 노획하고, 관도의 원소 진영을 쳐서
원소의 칠십만 대군을 상당부분 몰살 시키고 병력을 와해시킨 뒤, 투항한 원소의 잔병과 자신의
군사들을 정리하기 위해 황하 상류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곳 원주민들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기 위해서 전군에 다음과 같은 군령을 하달하였다.
1. 농가의 농작물을 해치는 자는 참한다.
2. 민가의 개와 닭을 해치거나 취하는 자는 참한다.
3. 부녀를
농락하는 자는 참한다.
4. 술에 취해 민가에 해를 끼치는 자는 가차없이 참한다.
5. 노인과 어린이에게 인덕(仁德)을 베푸는
자에게는 상을 준다.
이와같은 군령이 내리자, 군사들은 모두 두려워 하며 행동을 조심하기에 이르렀고, 주
변의 백성들은 그 말을 전해
듣고, 한결같이 조조의 덕을 칭송하였다.
그리하여 그곳 백성들은 누구나 앞을 다투어 가며 원소측의 움직임을 조조군에게
전해주었다.
그러한 정보중에는 조조에게 설욕하기 위해서 원소군은 기주, 청주, 유주, 병주 등에서 삼십만 군사를 모아
창정(倉亭)으로
진군해 온다는 것이었다.
조조도 즉시 전군에 명령을 내려 창정에서 원소군과 대치하였다.
원소가 세 아들과 생질(甥姪: 누이의
아들)을 거느리고 나서며 조조를 불렀다.
"천하의 간사한 역적놈 조조야 ! 내 이번에는 기필코 너를 용서치 않으리라 !"
조조도
수하의 장수들을 거느리고 나서며 원소에게 외쳤다.
"원 대장군은 어찌 항복할 생각을 하지 않소 ? 칼이 목에 가 닿을 때에는 뉘우쳐도
소용없을 것이오 !"
조조의 대답을 듣고 원소는 크게 화를 내며 수하 장수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뉘 나아가 저놈을
쳐부수겠냐 ?"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셋째 아들 원상이 아버지 앞에서 공을 세워 보려고 쌍도(雙刀)를 휘두르며
말을 달려
나갔다.조조가 그 모습을 보고 손을 들어 가리키며 물었다."저자가 누군가 ?"
장수 서황의 부장(副將)
사환(史渙)이,"원소의 셋째 아들 원상입니다. 제가 나가서 싸우겠습니다."
하고 대답하며, 비호같이 말을 달려 나가는
것이었다.
두 장수가 서로 어우러져 공방을 벌이길 십여 합, 원상이 문득 말머리를 돌려 본군쪽으로 쫒겼다.
그러자 사환이 그의 뒤를
맹렬히 쫒았다.
원상은 부지런이 달아나며 활에 살을 매겨잡더니, 별안간 말을 되돌리며 활을 쏘아 갈겼다.
"쌔앵
!..."
원상의 손을 떠난 화살은 그를 뒤쫒던 사환의 한쪽 눈에 깊숙히 꽂혀버렸다.
그와 동시에 사환은 말 위에서 땅바닥으로 먼지를
일으키며 곤드라져 버렸다.
침을 삼키며 이런 모습을 바라보던 원소군은 일시에 천지를 뒤덮는 함성을 지르며 조조군을 향하여
수만의 군사가 일시에 밀물과 같이 땅을 뒤덮으며 공격하였다. 그 바람에 조조의 군사들은 사기가
크게 꺾여참패를 거듭하였다.비록, 원소군의 사기는 이전의 전투에서 크게 저하된 바는 있었으나
군사의 수에서나 병참(兵站)에 있어서 조조군 보다는 훨씬 우세했던 것이다.
싸움은
그로부터 날마다 계속되었다.
그러나 조조는 며칠을 두고 연전연패를 당했다."어떤 방법이 없을까 ?"
조조는 측근 모사와 장수를
불러놓고 물었다. 그러자 정욱이 대답한다.
"승상 ! 형세가 이렇게까지 불리하니, 이제는 십면매복지계(十面埋伏之計)를 쓰는 것이
좋겠습니다."
"십면매복지계라 ? 좀더 자세히 설명하시오 !"
정욱이 조조를 비롯한 모여든 장수들에게 설명한다.
"황하를 등지고
군사를 십면으로 매복해 놓고, 원소를 강변까지 꾀어다가 일대 결전을 펼치는 전법입니다.
그러면 우리 군사들은 물러날 수가 없기에 죽기로 싸울 것
입니다."
조조가 설명을 듣고 대답한다.
"음.. 배수의 진이라...위험하기는 하나, 지금 형편에서는 한번 시도해 볼만 하군
!"
조조는 그 계교를 옳게 여겨, 군사를 좌우 열대로 나누어 강변에 매복을 시켰다.
좌 일대는 하후돈(夏侯惇), 좌 이대는
장요(張遙), 좌 삼대는 이전(李典), 좌 사대는 악진(樂進), 좌 오
대는 하후연(夏侯淵), 우 일대는 조홍(曺洪), 우 이대는 장합, 우 삼대는 서황(徐晃),
우 사대는 우금(于禁), 우 오대는 고람(高覽), 그리고 중군(中軍) 총대장으로 허저(許楮)를 삼았다.
그러나
원소군은 전투를 하면서도 좀처럼 조조군의 십면 매복지점 까지 깊숙히 공격해 오지 않았다.
조조는 원소군의 공격을 기다리다 못해, 어느날 밤
허저를 시켜 적진을 공격하도록 명했다.
허저가 자기 부대를 이끌고 나가 소리를 지른다.
"18, Jo8, Dog Sem Sem
!"
(중국놈들은 진한 욕을 잘한다)
"뭐야 ! 저놈은 ?"
허저의 욕을 얻어들은 오채(吳寨)가 화를 내며 군사를 이끌고
달려나왔다.
허저는 좌충우돌로 한바탕 싸우다가 힘에 겨운 듯이 쫒기는 형세를 보였다.
적의 대군이 이때를 놓치지 않고 맹렬히
추격해온다.
"너무 깊이 들어가지 마라 ! 적이 배수의 진을 치고 있다 !"
원소 부자가 일선에 긴급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싸움에 정신이 없는 일선 부대에 그 명령이 제대로 전해질 리가 없었다. 더구나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한 원소군은 쫒겨가는 조조군을 쫒기에 여념이
없어서 원소의 대군은 강변 깊숙이까지 추격해 들어갔다.
바로 그때였다. 조조가 지휘도를 휘두르며 명령했다.
"우리의 승리는 이
싸움에 달렸다. 물러서면 강물이다 ! 죽기로 적을 쳐부수라 !"
조조의 군사들은 십면 매복으로 어둠속에서도 약속이라도 한 듯이 개미떼 처럼
원소군을 향해 몰려나갔다.
추격에만 급급하였던 원소의 군사들은 불시의 반격에 나아갈 바를 몰라서 우왕좌왕 하였다.
그리하여 급히 군사를
돌리려 하여도 십면(十面)으로 조여오는 조조군의 공격은 너무도 치열하였다.
더구나 어둠속에서의 전투는 사전에 지형지물을 익힌 매복군에게
절대 유리한 것이 아니던가 ?
그 바람에 원소의 삼십만 대군은 아우성만 칠 뿐이지, 제대로 싸우는 군사는 하나도
없었다.
원소는 아들 삼형제 만을 데리고 급히 도망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얼마를 못 가서, 이번에는 좌편으로 악진이,
우편으론 우금이 동시에 몰려온다.
원소는 말을 갈아타기를 네댓번..간신히 위기를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서황과 이전이 양쪽에서
협공을 한다.
그 바람에 둘째 아들 원희는 깊은 상처를 입고, 생질 고간도 싸울 수 없을 정도의 중상을 입었다.
원소는 쫒기고
쫒기기를 백여 리 .. 날이 밝아올 무렵에야 간신히 적의 추격으로 부터 벗어났다.
그제사 군사들을 모아 보니, 삼십만 대군 중에서 쫒겨온
군사는 대략 일만여 명뿐이었다.
그들 조차도 크고 작은 부상을 입은 모습이었다.
"아아 ! 내 평생 수십차례 전쟁을 치뤘지만, 이런 참패는
처음이구나 !"
원소는 동녘 하늘을 우러러보며 탄식을 하다가 말위에서 굴러 떨어졌다.
"앗 ! 아버님 !"
원담, 원희가 깜짝
놀라며 몰려왔다.
원소는 워낙 노령인데다가, 밤을 새워가며 싸우는 것이 크게 무리였던지, 말에서 굴러 떨어진 뒤에는
입에서 피를 토해내는
것이었다.
아들 삼형제는 급히 원소를 풀밭에 눞혀놓고 전의(戰醫)를 불러 응급 치료를 하게 하였다.
"염려 마라 ! 나는
아직도 자신 있으니 !"
원소는 억지로 정신을 가다듬어 이렇게 말했지만, 그 말은 군주의 체면에서 내 뱉은 말일 뿐이었고,
실상은 사지가
늘어지고 눈동자는 촛점을 잃어가고 있었다.
이런 급박함이 벌어지는 가운데, 앞서 가던 부대가 황급히 돌아오며 외친다.
"큰일
났습니다. 조조군이 전방에서 나타나 몰려오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설상가상(雪上加霜)이었다.
원담은 의식조차 분명치 않은
원소를 등에 업고, 아우들과 잔병을 몰고 다시 수십리를 쫒겨갔다.
"괴롭다 ! 그만 내려놓아라 !"
원소가 아들의 등에서
중얼거린다.
풀밭에 전포(戰袍)를 깔게하고 원소를 내려 눕혔다.
새벽 여명과 함께 사라지는 달빛이 대지를 싸늘하게 적셨다. 원소는
촛점이 흐려진 눈으로
창공의 희미해져 가는 달을 멍하게 바라보다가 간신히 입을 연다.
"원담, 원희, 원상아 ...나는 이제 천명이 다한
것 같다. 너희들은 기주에 돌아가거든 군사를 양성해서
이 애비의 원수를 갚도록해라. 이 부탁을 들어 줄 사람은 너희들 뿐이다 !"
원소는
이 말을 마지막으로 검은 피를 토하고 사지를 버둥거리며 그대로 숨을 거두어 버렸다.
원소의 삼형제는 목을 놓아 통곡하였다. 그러면서
그들은 원소가 죽은 사실을 비밀에 붙이고,
유해(遺骸)를 아무도 모르게 기주성으로 모셔왔다. 그리고 ,
"주공께서 지금 병중이셔서 아무도
만나지 않으신다 !"
하는 헛소문을 널리 퍼뜨려 놓았다. 그런 뒤에 기주성은 셋째 아들 원상을 집정관(執政官)이 되어
군사를 장악케 하고, 제각기 지역의 패권을 쥐고있는 큰아들 원담은 청주로, 둘째 아들 원희는 유주로,
생질 고간은 병주로 돌아가 재기를 노리며 양병(養兵)에 부단한
힘을 기울였다.(148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