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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도 먹었고, 열도 좀 내리는 것 같아”
보미의 이마에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넘기는 진규의 손가락을 바라보던 준희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보미와 재빈이 누워 있는 침대에서 물러 선다.
“나 갈게, 형. 오늘 하루 종일 작업 했더니 너무 피곤해”
“조금 더 있지. 보미 깨는 거 보고 가”
“아냐. 그리고 나 왔던 거 말하지 마. 누나 부담스러워 할 거야.”
“왜 부담스러워 해, 그렇지 않아”
준희가 슬쩍 뒤를 돌아보며 웃고는 바닥에 떨어져 있던 자신의 점퍼와 모자를 주워 입는다.
“어제……누나한테 고백했다가 거절 당했거든. 누나가 부담스럽다고 나 안 본다고 할 까봐, 무서워 사실”
“……”
“얼마나 대단한 여자였길래, 형이 그 오랜 세월 동안 저렇게 예쁜 여자를 모른 척 했을까”
진규는 준희의 말에 대답 대신, 보미를 빤히 내려 보며 그녀의 손을 꼭 잡는다.
그 둘의 꼭 잡은 손을 내려 보던 준희는 그들을 등 지고 서서 두 주먹을 꼭 쥔다.
“사실 이런 말 하는 내가 병신 같지만. 둘은 둘이 있을 때, 둘이 있으니깐, 가장 아름다워 보여”
“박준희”
“갈게, 나중에 누나 어떤지, 전화나 잠깐 주라.”
“너가 그 송진규랑 꽤 친하다며??”
“네…… ?“
이곳은 경희예고 밴드부실 안.
교복을 입고 있는 무리들. 그들은 앉아 있지만, 교복을 입은 보미는 그들 앞에 서 있다.
“걔도 음악 좀 하지 않나? 우리가 남자 보컬을 찾고 있는데…”
“보컬이야……저희 학교에도 잘 하는 사람이…”
“많기야 하겠지. 근데 우린 널 받으려면 송진규도 같이 받아야겠는데”
보미는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선배들을 보고,
다리를 꼬고 앉은 선배와 팔짱을 끼고 앉은 선배가 답답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송진규 안 데려 오면 너도 못 받는다고”
“그!그런게 어딨어요, 선배님들!! 이건 저희 학교 밴드잖아요”
“그래, 이름은 경희예고 밴드지. 국제대회에서 4년 연속 2등을 했고”
선배 중 덩치가 조금 있는 남자가 일어나 보미 앞으로 걸어 가 그녀의 주위를 뱅그르르 돈다.
“이유가 뭔지 아니?”
“…….”
“너 같이 실력 좋은 사람이 없기도 했지만, 그 동안 너무 실력만 따졌기 때문이야”
“진규 없이도 1등 할 수 있습니다!!!”
“훗. 자신감은 좋은데, 나 역시 지난 2년간 그렇게 생각했다. 송진규 꼭 데려 와라”
그가 보미의 어깨를 쳐 주고, 음악실을 나가고, 다른 선배들도 보미를 지나 음악실 문으로 간다.
텅 빈 밴드부실에는 보미가 혼자 멍하니 서 있다.
-분식집-
“뭐어? 어쩐지 니가 밥을 산다고 할 때 이”
“아, 알아~ 진희가 너 남들 앞에서 노래 하는 거 싫어 하는 거….근데”
“근데 뭐”
진규는 눈을 덮은 머리를 슬쩍 넘기며, 괜한 순대만 포크로 찔러 대는 보미를 가만히 쳐다본다.
“난……경희예고 밴드에 들어가고 싶은데. 너…… 랑 같이 가 아니면 안 받아 준대”
“풋. 뭐라고? 야, 우리가 무슨 세트 메뉴냐??”
“그……러니깐. 그냥 내가 그 밴드 안 하려고. 치사해서 안 한다. 에잇”
순대를 떡볶이 국물에 풍덩 담갔다가 자신의 입안으로 가져 가는 보미의 눈빛이
굉장히 슬퍼 보임을 느낀 진규는 그녀의 앞으로 물이 든 컵을 밀어 준다.
“천천히 먹어.”
“내가 경희예고 간 것도 솔직히 그 밴드 때문이었는데!!! 그렇게 치사한 곳인 줄 알았음 딴 데 갔어!”
“알아, 알아, 근데 좀 다 먹고 말 할래?”
보미의 입안에서 순대 쪼가리가 튀어 나오자 진규가 고개를 저으며 그녀에게 휴지도 밀어 준다.
-다음날-
“어? 진희야……”
“너 어제 진규 만났다며. 보컬 같이 하자고 했다고?”
“아니…… 그냥 살짝 떠 봤는데~ 역시 진규는 안 할 거야. 노래 안 할 거야”
긴 머리를 올려 묶은 진희가 예고 대문 앞에 서 있자, 남자 학생들 뿐만 아닌 여자 학생들 까지도
그녀의 미모를 그냥 지나 치지 못하고 한번씩 돌아 보고 간다.
“안 한다고 했어, 너한테?”
“……너가 싫어 하니깐”
“지금 진규 안에 들어 갔어. 밴드부 리더한테 오디션 볼 거라고”
보미는 진희의 말이 끝나자 마자 학교 안으로 뛰어 들어가 2층 끝에 자리 잡힌 밴드부 실로
쉬지 않고 달린다.그녀가 숨을 헐떡이며 도착한 밴드부 실 앞.
진규의 노래소리가 들린다.
밴드부실 창문 너머로, 오랜만에 노래 하는 진규의 모습을 보던 보미는 그와 눈이 마주친다.
씽긋 웃으며 손을 흔드는 진규...
“유보미. 너 생일 선물 땡긴거다”
보미가 고개를 끄덕이며, 환하게 웃고. 밴드부 모두가 연주를 멈추며 그녀에게 손을 흔든다.
그 날…..
최고의 생일 선물을 받은 날…..
그 행복했던 날이 점점 멀어 진다. 진규의 노래 소리도, 밴드부 선배들의 악기소리도, 점점 작아진다.
머리가 빙빙- 돌더니 앞이 캄캄해 진다.
눈을 번쩍 뜬 보미는 캄캄한 주위를 둘러 본다.
자신의 옆에 누워서 자고 있는 재빈이가 눈에 들어오자, 보미는 힘 없이 웃으며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자신의 손을 꼭 잡고 있는 손에 하얀 붕대가 감겨 있다.
“깼어?”
“……진규야…….너 손….왜 그래”
“내 손이 문제가 아니고, 지금 니 몸이 문제네요, 유보미”
진규의 따뜻해야 할 손이, 그녀의 이마에 닿자 그녀는 그의 손이 차갑게 느껴진 듯,
눈을 꼭 감았다가 뜬다.
“아직도 열이 있네. 죽 먹을 기운은 좀 있어? 먹어야 약을 먹지”
“나……아픈 거야?”
“그래, 바보야. 어쩜 그렇게 무감각 하신지”
보미는 피식 웃으며 몸을 일으켜 세우고, 진규는 그녀를 침대헤드에 기대어 앉히고는
급히 부엌으로 나가 끓여 놓은 죽을 작은 그릇에 조심스럽게 담는다.
보미에게 사실은 그날만큼, 아니 그날 보다 더 행복한 날도 많았다.
재빈이가 나타나고부터는 하루하루가 매일 행복 했었다.
하지만, 가장 행복했던 날을 고르라면, 그녀는 꿈에서 나타났던 바로 그날이라고 말 할 것이다.
왜냐고 묻는다면, 그녀는 수줍게 웃으며 대답 할 것이다.
“그를……많이……사랑한다는 걸 알았거든요. 사랑이……그런 감정 이라는 걸… 깨닫게 됐거든요”
진규가 죽 그릇을 들고, 숟가락을 보미의 손에 쥐어 준다.
그가 계속 들고 있는 죽 그릇에서, 보미는 힘 없이 죽을 한 입 떠 먹으며 그를 바라본다.
웃으며 먹으라고 말하는 진규를 보던 보미는 다시 고개를 돌려 죽을 더 떠 먹는다.
“초콜릿처럼 달콤하면서도 씁쓸한 게, 바로……사랑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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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소설 1.
[ 중편 ]
그남자 그여자 사이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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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재미있게 읽어네요.....진규랑 보미 학창시절 나오는군요...진규가 보미를 위해 밴드부를 들어갔네요....다음편도기대....
네!!! 그들의 학창시절이죠.
진규..... 너무 착해여~ 딱 내스탈인데~~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