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 입학을 하고 처음 1학년 4반에 편성되어 교실을 찾았을 때
난 진짜 맘에드는 한 여학생을 발견했다.
갈색으로 빛나는 단발머리와 하얀 얼굴,
예쁘고 다소곳하고 단정하기까지 한...
내 성격이 왈가닥해서인지
누가 뒤에서 이름을 부르면 천천히 돌아보는
그 차분한 모습조차 신비스럽게 와 닿을 정도였다.
그 여학생의 이름은 김이은이었다.
뒤에 앉아 그 친구를 유심히 살펴봤다.
저 애랑 친구가 되어야 겠다 생각하면서...
처음 학교에 입학하면서 중학교 때 친구와 헤어져 특별히 친한 애가 없었기 때문에
일단 친구가 될 만한 애를 찬찬히 물색했던 내 예리한 감각 속으로
내가 좋아하는 성향과 딱 맞을 듯한 판단에
한치의 오차도 없을 듯이 포착된 학생이었다.
초등시절 짝사랑이었던 부반장도
와일드했던 나와 너무나 다른, 그 당시 까불까불했던 애들과 너무 달리
별 말도 없고 조용한 성격이었기에 그렇게 맘에 와 닿았었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지금 동창회에 나오지 않고 친구들과도 별 소식이 없음은
어릴 때의 그 성격을 그대로 갖고 살아가기 때문인 것 같은 예감이 들기도 한다.
친구는 비슷해야 더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나는 나와 반대 쪽 성향에 더 끌렸었던 것 같다.
내가 갖지 못한 면을 동경해서 였을까...
며칠 간 뒤에서 예의주시하고 있었으나
이은이와 중학교 때 부터 함께 올라온 미선이란 친구가 늘 붙어있었기 때문에
가까이 하지 못했었다.
그러던 어느날
임원 선거가 있었고 역시 이은이는 그 모습 그대로 미화부장에 추천되어
우리반 미화부장이 되었다.
그날, 역시 사람보는 내 눈은 정확하다고 미소를 짓기까지 했었다.
늘 괜찮다 생각은 하면서도 일부러 접근한 것은 아니었는데
어느날 이은이와 나는 가장 친한 단짝이 되어 있었다.
이은네 엄마가 식당을 하셨었기에
자유공원 밑 이은네 집은 늘 반찬이 아주 많았었다.
학교 끝나면 이은네집에 가서 밥도 맛있게 먹고
재미있게 놀다 오곤 했었다.
어느날,
술로 인해 새겨진 내 잊지 못할 동굴벽화도
이은네 집에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그날은 이은이 생일이었다.
이직 우리 맴버가 결성되기 전이었기에
이은이와 중학교 때 부터 친했었던 미선이와 함께
샴페인을 사서 셋이 이은네로 갔던 날이었다.
평소 엄마는 따뜻하시고 정이 넘치는 분이셨으나 이은이 아버지께서는
말씀도 없으시고 엄청 엄하신 분이셨다.
샴페인을 막 터뜨리려고 철사를 풀고 있는데 아버지가 들어오신다.
너무 놀라서 열려던 샴페인 뚜껑을 교복 속에서 꼭 누르고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얼른 밖으로 나왔다.
말로만 듣던 샴페인을 처음 터뜨려 보려던 찰나였기에
마치 그 병뚜껑이 열리면
평 소리와 함께 뚜껑이 하늘로 솟구치며 마구 흘러내릴 것만 같은 공포가 있었다.
교복 속에서 양회봉지 속 샴페인을 꺼내 뚜껑을 막은 채 지나가는 아저씨한테
가져가시라 했더니 이상하게 쳐다보고 그냥 지나친다.
그냥 내려 놓으면 뻥 터질 것 같아 버리지도 못하고 할 수 없이 우리는
당시 이은이가 다녔기에 몇 번 따라갔었던
자유공원 밑 제 2교회 학생회실로 찾아 들어갔다.
조심스레 철사를 벗은 하얀 플라스틱 마개를 살살 열고
드뎌 샴페인을 온전하게 마실 수 있게 되었다.
그날이 맨 처음으로 술을 입에 댄 날이었다.
미선이와 병을 주거니 받거니 오로지 이 술을 처치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벌컥벌컥 마셔댔다.
맛이 달달하니 얼마나 좋던지 지금까지 사과향이 풍겨나오는 것 같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
나오는데 휘청휘청 몸이 말을 안듣는다.
자유공원을 거쳐 당시 우리 학교 앞을 지나 버스정류장까지 오는데
땅이 여러번 솟고 여러번 구덩이가 파져서 발을 들었다 내렸다
갈지 자로 휘청휘청 몸이 말을 듣지 않았었다.
교복을 입은 채 휘청거리며 학교앞을 지나쳤으니 만약 독사 선생님이나
깽묵이 선생님이 보셨다면
이유야 어떻든 퇴학이나 정학 감이었을까... ㅎ
술에 취해 본 그 경험 덕분에
2학 년 때 퍼스먼스에서는 아버지 양복을 입고 술취한 행인으로
아주 그럴듯한 연기를 펼쳐 볼 수 있었다.
아무리 술에 취했어도 버스 정류장까지 무사히 올 수 있었다.
드뎌 버스를 탔는데 웬 딸꾹질이 그렇게 나던지...
맨 앞 좌석에 몸을 기대고 앉았는데 딸꾹 딸꾹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버스 기사님이 이상스레 쳐다 볼 수도 있었는데
누가 쳐다 보던지 안 보던지 혀를 차는지 까지는 내 영역이 아니었다.
아니 거기까지 미쳐 생각할 겨를도 없었을 것이다. ㅎ
다행히 집에가서 내방으로 슬쩍 들어가니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셨다.
지금도 가끔 그 영상이 내 마음속 동굴벽화처럼 새겨져 펼쳐지지만
그날 이후 그보다 더 술을 많이 마셔봐도
다시는 그날의 경험처럼 땅이 솟고 구덩이가 파지고 딸꾹질이 나는 것을
경험해 본 적이 없다.
지금도 술잔을 앞에 두고 공공연히 얘기한다.
"난 술은 마시면 마실 수록 정신이 맑아져 "
다시는 그날처럼 아스라한 몽롱함은 경험해 볼 수 없을 것 같다.
첫술에 얽힌 사연과 이은이를 잊을 수가 없는데
사모가 된 이은이는 아쉽게도 이제 소식이 끊겨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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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ㅎ 희아 님. 정말 너무 웃깁니다. ㅎ 학생시절 놀았었군요. ㅎ
저는 그날 이후 술은 졸업하고도 한참 후에 마셔봤답니다. ㅎ 물론 디스코 택한번 못가보고 졸업 후 음악감상실은 많이 갔었지요. ㅎ
여고 때 담배... 대단하시네요. ㅎ 참 솔직담백하신 희아 님이십니다. ㅎㅎㅎ
샴페인을 교회에서 마신 저도 참 대단했지요? ㅎㅎㅎ
그 교회는 이은이 따라 몇 번 갔던 곳이었고 저도 제가 다니던 작은 교회에서 부회장까지 했었는데
아마도 믿음이 없었었나 봅니다.
회게조차 안했던 걸 보면요. ㅎ 좋은날 되세요. 희아 님.^^*
불량학생들 여기 다모였구만~
쉬잇! 신랑 눈치첼라~ㅎ
@낭주 저는 학창시절 세상을 너무나 모르는 모범생이었답니다.ㅎ학생회에서 교회 아픈분들 병실 찾아다니며 찬송가와 기도등으로 위로를 해드렸던 생각이... ㅎ
이래저래 즐거웠다는...ㅎ
@산골순이 희아님 여고시절 나이트도 가보고 담배도 ~ㅎㅎ
아저씨따라 서울도 가보고 기네스북감 이구만~~ㅋㅋ
전철로 숨은벽을 향해 이동하면서 산골순이님의 글을 읽습니다.
괜히 나오는 피식 웃음에 주변
승객들이 처다보네요^^
쫌은 쑥쓰워 고개를 숙이고
슬며시 들여다봅니다
이게왠일? 저보다 아래연배네
저보다 쫌은 더 윗배신줄 알았어요 하하(죄송ㅋ)
ㅎㅎ 저도 다른 분 글 읽다가 민망해서 고개 수그릴ㅎ 때 많답니다.^^ 세상을 진하게 살아오다 보니 두 배로 즐기며 살아온 듯. 한 느낌입니다. 아마 그래서 더 윗 연배로 착각하셨을 거예요.ㅎ 행복한 날 되세요.
서기 님.^^*
@산골순이 우야둥 반갑습니다 전 연수네 순이님은 옥련댁 이시군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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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 전 친구들과 손잡고 걸어본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ㅎ 이은이와 함께 하면서 시작된 친구들,
몇 년 전까지 자주 만났었는데 이제 무슨 때나 되야 겨우 볼 정도가 되었어요.
초등친구들은 동창회가 있어서 계속 볼 수 있는데 그냥 만나다 보니 이렇게 흩어지게 되네요. ㅎ
이은이가 가장 먼저 우리와 끊어졌답니다.
당시 개척교회라 신도분들 밥을 해 드린다는 얘기가 있었어요. ㅎ 행복한 동행 님 휴일 아름답게 맞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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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결혼 후 이은이한테 가장 미안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ㅎ
목에 갑상선이 있던 이은이가 어느날 기도로 목에 부어있던 갑상선이 다 떨어져나가 너무 말끔해졌다고
저 보고 교회 나가라고 전화로 열심히 전도를 하더라구요. 그때 맞장구를 쳐 주며 축하했어야 되는데
"그래? 뭐든지 열심히 매달리다 보면 그런 힘이 나올 때가 있어." 하며 대수롭지 않게 얘기했던 적이 있었지요.
그때 난 도를 닦는다고 하얀 도복을 입고 열심히 치성을 드릴 때 였거든요. ㅎㅎㅎ
암튼 오래도록 함께할 수 있는 인연은 어떤 울타리가 아니면 힘들 것 같습니다.
포근이 님. 좋은 날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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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ㅎ 그런 체험도 소중한 것 같습니다.
평생 그 황홀한 기분 못 느껴보고 떠나는 사람도 부지기수일텐데요. ㅎ
다 아름답게 지내온 발자취라 생각합니다.ㅎ
혜홀 님. 향기고운 날 되세요.^^*
술의 첫 경험을 일찍이도 하셨네요
한병 시켜놓고
기기를 몇년..
애주가 되었답니다
저는 사십중반에 절친 동생이랑 술을 배우며
둘이 술자리를 자주 가졌어요
술 취하는 그 기뿐이 넘 좋아
시간 가는줄 모르고 얘기 봇다리 풀어 놓고
이젠 각 일병은 거뜬히..
ㅎㅎㅎ 술은 참 술술 잘도 넘어갑니다. ㅎ
술만 마시면 기분이 더 좋아지니 참 잘 만들었어요. ㅎ
초등 친구들과 만나면 저를 감시하는 여자동창이 있답니다. 자기가 몇 잔 마실 때 맥주 한잔 들었나 놨다 한대나 어쩐대나...
결국 같이 원샷 때리고 있답니다. ㅎㅎㅎ 좋은날 되세요. 아로미 님.^^*
자유공원 밑 롤러스케이트장에서 점심 굶어가며 놀던일~
일번지 다방에 몰래 들어갔다가 교련 선생님 보고 화장실에 숨던일~
지금의 주안역에서 망둥어 낚시 하던 일~ (예전에는 주안역까지 바다였슴)
선인종합고(현 선인고)시절 야외전축 들고 인화여고생들과 미팅했던 추억까지~
언제 인천에서 추억을 안주삼아 소주한잔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하, 망둥어 낚시하던 곳이 주안역근방이었나요?
저는 주안염전 많이 놀러갔었는데 그 위치를 몰라 늘 궁금했었습니다.
ㅎ 좋은 날 되세요. 토말촌장 님.^^*
무뉘는 산골순이 실물은 불량학생~~ㅋㅋ
무늬와 실물 다 산골순이 아니었나요?ㅎ
좀 대범했던 산골순이...ㅎ터질까봐 버리지도...
...^^ 지금은 아무리 마셔도 끄떡없으니 진짜
불량주부 일수도...ㅎㅎ
ㅎㅎ
여고시절 첫경험 .. 너무 재이있네요.
저도 첨 술을 입에 대본 건 수학여행 때 소주 반 잔
내가 술에 그렇게 반응하는 사람인 줄 처음 알았던거죠.
죽는 줄 알았습니다.
울 아부지가 감기 걸리시면 쇠주에 고추가루 팍!
정말 그런 줄 알고요.
수학여행에서 마이크를 잡아야 했는데
감기로 목소리가 안 나왔거든요. ^^
와아
그날 열광의 도가니였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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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노래 실력에 술까지 곁들이신 그 파워로 수학여행에서 날리셨겠네요.
솔숲 방장님. 멋지셨어요.
@산골순이 노래는 아니구요.
레크레이션 진행을 봤어야했는데
소주 반잔에 숨이 안 쉬어져서
친구들에 의해 옥상으로 옮겨져
거의 실신 상태였지요.
제 동창 한놈은 술이취해 집을 못찿고 전봇대 끌어 안고
여보세요 제발 우리집도 갈쳐 주세요 하고 부탁 했는데
지금은 어디에 살고 있는지 보고샆은 친구 입니다.
따봉!!
산골순이님의 터프함과 신선함이 전해지는 이야기
저는 진짜 모범생이었나봐요. 술도, 나이트도 대학에 가서나 시작했으니
전 나름 날범이라 생각했는데 산골순이님과 희아님 앞에서는 명함도 못 내밀겠네요. 하하하
신포동 태양제과가 학생들 아지트였었지요. 거기서 모여 인하부고 애들과 미팅을 했는데 제 파트너가 키가 좀 작고 걸음걸이가 약간 이상한 남자애 였어요.
다같이 수봉공원을 갔다가 내려와 각자 파트너된 애들과 헤어졌는데 내려와서 버스 타려는데 다음에 만나자고 하네요. 그래서 됐다고 하니까 그애 하던 말이
아직 생각나요. "왜요, 한번이 열번 될까봐요
회수권을 주네요.
삼페인을 일찍 터트렀습니다..조숙했나봅니다..
요즘은 생일날 저녁식사하고 라이트크럽에서
케이크에 삼페인 터트리는것 많이봤습니다.
생일날 터트리면 근사할 것 같아서요. ㅎ 아, 이은네 아버지께서는 왜 하필 그때 들어오셔서 잊지못할 그림을 새겨두게 하셨을꼬! ㅎ
저는 술을 입에대본게 대학시절
패스티발때였네요
소주가 목을타고 넘어갈때
후끈 불붙는듯 했던 느낌을
아직잊지 못하는데 요즘소주는
정말 순해졌대유
그후 콜라에 소주탄걸 모르고 마셨다가
빙글빙글 움푹움푹의 기억인데
여고시절에 샴펜으로 축하주였다니
역쉬 앞서갔네요
저는 뭐든 좀 늦네요
싱글탈출도요 ㅎ
저는 그 뒤로 다시는 그런 경험을 못해봤으니 순수했던 그 감각이 이제 술에 찌들었나봐요.
정신력이 그만큼 강해진 걸까요
좋은 휴일 맞으세요. 정아 님.^^*
첫술을 샴페인으로 경험하셨다니
저보다 세련되셨었네요
전 찌그러진 주전자로 부어준 막걸리였었거든요
이 참에 이은이도 한번 찾아보시는게 어떠실까요
그 남편이 황해남 목사님인데 그 목사님 찾으면 찾을 수 있을 텐데요.
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