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의 길이가 가장 길다는 하지의 새벽이 밝았다.
정선을 떠난 버스는 새벽안개를 헤치며 영월, 제천을 지나니
이른 아침의 밭에서는 농부들이 분주하다.
일찍 심은 옥수수는 벌써 개꼬리가 희끗희끗 나왔고
개울에 앉은 백로는 한가롭다.
언젠가부터 여기저기 여행을 다니다보면
하천의 물들이 깨끗해졌음을 느낀다.
물 뿐만 아니라 산에는 나무들이 울창해질대로 울창해져
어디를 가나 원시림이 되어 사람의 발길을 거부하니,
헐벗은 산을 보고 자란 눈에는 하나의 경이라 하겠다.
어느 마을의 뒷산에는 백로가 무리를 지어 소나무에 앉았으매
예로부터 상서롭다 하였거늘 마을은 포실하여 돋보이고,
나즈막한 구릉에는 흔히 잡초로 치부되어 귀여움을 받지 못 하는 망초가
활짝 꽃을 피워 흡사 안개꽃같은 군락을 이루어 장관이다.
제천을 지난 충주 땅에서 모처럼 밭에 심은 잎넓은 담배를 본다.
옥수수, 감자를 심는 바쁜 철을 넘긴 정선사람들에게
엑스포 구경은 하나의 구실이라,
언제 또 오겠느냐 지나는 길에 독립기념관부터 들린다.
오래 전부터 보고 싶다 마음만 있던 독립기념관의 우람한 모습은 감개롭고
똘망똘망한 눈을 가진 아이들도 많이 와서는 진지하다.
가는 길에 볼 만한 곳은 모두 들리자 하여 찾은 남원 땅 광한루에서
춘향이는 한양에라도 갔는지 보이지 않고,
오작교 아래 수백 마리의 굵은 잉어들이 길손을 반긴다.
오작교 옆 매점에서 잉어먹이를 따로이 팔아 길손들이 수시로 던져주매
잉어들은 사람이 다가서면 입을 껌벅이며 스스로 모여든다.
지난 가을에 이어 다시 찾은 화엄사 대웅전과 각황전은 웅장하고도 의연하다.
노고단 아래 온천이 있어 하룻밤을 묵는 정선사람들은 먼 길을 피곤하다 아니 하고
밤늦도록 이런저런 세상사는 이야기를 주고받으니 농사 이야기라,
감자 거름으로는 무엇이 제일이고 고추밭에는 어찌어찌 하니 좋더라...
남도 땅 여수는 바다가 있어 좋다.
여수 앞바다는 섬들이 점점이 있어 바다는 잠잠하고
섬들은 구름에 잠긴 산봉우리같이 보인다.
멀고도 먼 강원도 땅 정선은 남도 사람들에게는 아련한 그리움이라
앞장선 이의 깃발에 적힌 지명만 보고도 사람들은 반갑다 미소짓고,
정선사람들 또한 웃음으로 화답한다.
엑스포장은 평일임에도 멀리서 또는 가까이에서 모인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어
온갖 첨단과학시설과 함께 그야말로 세계적인 축제라,
평생 이러한 장관은 언제 또 보겠느냐 감개가 무량하다.
러시아에서 온 벨루가라는 흰고래가 보고 싶어 들어선 줄은 끝이 없어
입장까지 두어 시간은 족히 걸린다.
줄을 서는 휀스가 지그자그로 되어있어 길다고 생각않고 무심코 들어서면
앞으로 나갈 수도 뒤로 물러 설 수도 없어 꼼짝없이 갇히고 만다.
뙤약볕은 내리쬐고 앉을데도 마땅치 않아 허리굽은 어르신들에게는 고역이겠으나
그래도 묵묵히 기다리는 모습에 눈시울이 붉어진다.
고요한 정선에서 살던 이에게 무엇 하나 보겠다고 이러한 고역은 감내가 어려워
오동도가 보이는 바닷가 그늘에 돌아가는 시간까지 앉는다.
입장을 하더라도 인파에 밀리고 밟히는 수고보다는
차라리 방송에서 더 자세히 볼 수 있음이다.
나 역시 그 인파 중의 하나지만...
짭조름하고도 비릿한 바닷내음은 정선에서는 맡을 수 없는 내음이고
여수라는 곳에 왔음을 만족시켜주는 내음이다.
엑스포장은 웅장하여 우리나라의 국력이 이만큼이나 커졌다는 사실이 고맙다.
팔십 명이나 되는 정선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안겨 준 엑스포장을 떠나려니
어르신 미아가 발생하여 찾느라 두 시간을 지체하고,
정선사람들이 모였으매 돌아오는 버스에서 노래를 부르니
그저 정선아리랑이다.
이틀을 다닌 여정에서 이런저런 느낌이 있으니,
우선 전국 어디나 도로망이 무척이나 좋아졌음을 알게 되고
어디를 가나 아파트는 높이경쟁을 하듯 높아진다.
따라서 지방과 도시의 구별이 어려워지매
이 것이 좋은 일인지 어쩐 일인지는 잘 모르겠다.
또한, 막연히 시골이라 하면 쓰러져가는 오막살이의 가난을 연상하던 옛날과 달라
지금의 시골집들은 아담하고도 깔끔하다.
오래 된 집들을 헐고 새로이 지으면 외관 뿐만 아니라 살기에도 좋게
도시사람들이 꿈에도 그리워하는 그림같은 전원주택을 지으매,
살림살이야 모르겠으나 도시보다 여유롭고 풍요한 느낌이다.
그리고 앞서 말한대로 숲은 울창하고 그에 따라 물도 깨끗해졌다.
이틀의 여정을 끝내고 돌아 온 정선에서 아침을 맞아 텃밭에 나서니,
옥수수는 이틀 사이에 내 키를 넘겼고
오이는 노란 꽃을 피웠다.
그리고, 이른 아침부터 까치는 이 나무 저 나무 부산하고
뻐꾸기는 노래한다.
아무리 여기저기 화려하고 좋은 곳 많다 해도
한 칸 누옥 내 집이 제일 좋구나...
첫댓글 여수 엑스포 댕겨 가셨군요.. 제가 사는 곳은 광양인데, 멀리서 고생 하셨습니다.^^
글을 생동감있게 잘 쓰셨습니다. 잘보고 갑니다.^^
네, 여수와 광양은 지척이라 이웃동네더군요.
바닷가마을이던 옛모습은 찾을 수 없어요.
고향이 이쪽인가 보네요?
고향은 아니지만 오래 전의 여행길에서 본 모습이 아직도 어른거려서...
현 우리나라 끝에서 끝을 돌아 오셨네요.`
네, 멀리를 돌아 왔습니다.
드디여 엑스포를 관람 하고 오셨네요
여정중 에 힘은 안드셨는지요
거기서도 마음속에 쭈욱 정선
생각만 하신것은 아닌지요
향상 좋은 풍경 그려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집에 가만히 앉았으면 어디라도 가고 싶고, 막상 나가면 집이 제일 좋지요.
말씀대로 이틀 내내 정선 생각만 했어요.ㅎ
독립기념관은 우리동넨데요...살짝 다녀가셨군요..ㅎ
긴 여정에 고생많으셨습니다...
좋은 곳에 사시는군요.
잘보고 오셨다니 다행이네요,매스컴에서는 질서가 안잡히고 운영하는 묘가 없다고 야단이고 땡빛에서 기다리냐고 노고 많아네요, 수고하셨습니다.
그래도 바다가 있어 지루하지는 않더군요.
다음 주에 상추와 쑥갓 씨를 다시 뿌립니다.ㅎ
여행에 맘 설레시는걸 보면 형님두 아직까진 청년이십니다..ㅎㅎ
짧은 여정에도 여러곳을 둘러보셨군요.
덕분에 좋은 여행소식을 들을 수 있지만요..ㅎㅎ
글 소재가 넉넉해 졌으니 한동안 심심치 않으시겠어요..ㅎ
언제 다시 보겠느냐 하고 동네어르신들이 여기저기 가자 하시네요...
좋은구경 했지만 집이 제일 좋더라
ㅎㅎㅎ
그렇지 않나요? ㅎ
그럼요 . 아무리 누추해도
내 집이 제일 편하고 좋지요 ㅎ ㅎ
여행은 떠나기전 준비 할때가 설레고 기대되고.. 그렇게도 탈출 하고픈 집이였는데
역시 돌아와 보면 내 집보다 더 편안한 곳은 없드라구요 ㅇㅇㅇ
맞습니다. 그리고는 이제 안 간다 하지요.ㅎ
뭐니해도 내집만큼 좋은곳은 없죠?
잘앍었습니다^^
나가봐야 알지요.ㅎ
즐거운 여행되셨길 바래요~^^
재미있었고 보람있는 여행이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정선 아리랑..구슬픈 음박이 생각나네요~
비가올라나 눈이 올라나 천둥번개치려나~ㅎㅎㅎ
부럽네여 여수엑스포~ 난 언제 가보나~~^^
정선아리랑을 아시는군요. 반갑습니다.
여수 엑스포가 사람들이 많지않아
걱정이라던데 지금은 많겠지요?
거리만 멀지 않다면 가 보고싶은데 조금 안타깝네요.
요즘 너무 많은 행사들을 만들면서 주민들에게 강압으로 팔아버리는 입장표들..
조금 짜증이 납니다.여기도 여름에 곤충엑스포가 열리는데 사람수마다
입장표를 돌리네요. 이러다가 지역민들 잔치로 끝나는거 아닌지..몇년전에도 같은 엑스포를 열더니
돈을 벌었나 또 개최하고 주민들에게 부담을 주다니 눈쌀이 찌푸러집니다.
엑스포 장소가 아주 산골에서 열리니 촌 노인들은 가시기도 힘든데..
여수에 가보니 동원된 느낌은 없이 전국에서 모여 들더군요.
예천의 곤충연구소 근처에 지인이 있어 한번 가겠다 마음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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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은 눈에만 시원한게 아니라 한여름에도 이불을 찾는 곳이지요.
잘 다녀가시기를...
고생하신 분위기네요,,,,아님 다행이구요,,,ㅎㅎ
자기둥지가 최고로 편하죠,,,,저도 부산 놀러 갔다가 밤늦게 집으로 돌아 오는데...
집가까이 와서 제가 좋아라 하니 옆의 친구 왈,,,남편도 없는집에 들어 가는데 뭐가 그리 좋으냐,,고 묻더이다,,ㅎㅎ
고생은 아니 했지요. 그러게요, 집이 뭐가 그리 좋다구...ㅎ
삭제된 댓글 입니다.
이제는 어디를 가도 빨리 돌아옵니다. 내 집이 최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