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문화연구센터(이하 카프병원)의 해체위기에 직원들보다 더 분노한 이들은 바로 입원중인 알코올중독 환자들과 그 가족이었다. 11일 토론회에서도 재단의 정상화를 바라는 이들의 분노와 하소연이 이어졌다. 그 가운데서 35년간의 음주로 인한 알콜중독을 카프병원에서 치료했다는 백덕수씨<사진>의 이야기가 눈길을 끌었다.
“카프병원의 도움으로 8년간 단주에 성공해 현재 나같은 사람 막아보겠다고 사회복지사로 나섰다”고 말했던 백씨. 14일 백석동에 위치한 카프병원에서 그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백덕수씨에게 술은 집안 내력이었다. 부모님은 모두 알콜중독자였고 큰형은 알콜중독에 간암으로 일찍 세상을 떴다. 어린 시절부터 술의 무서움을 보고 자랐다는 백씨. 술만 마시면 싸움을 하는 부모님을 보며 술을 없애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다는 그였지만 성인이 되면서 어느새 알코올중독자로 변한 자신을 발견했다고 한다.
“고 1때부터 스트레스를 이겨내려고 술을 입에 대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가족들을 사고로 하나 둘 떠나보내면서 만취상태가 되지 않고는 슬픔을 견뎌내지 못하겠더군요. 어느샌가 술 없이는 생활을 할 수없을 정도로 만신창이가 되고 만거죠”
술에 대한 욕구를 이겨내지 못하면서 가정과 직장생활도 순탄치 못했다. 과음으로 인해 다음날 출근하지 못하는 일이 빈번하면서 직장도 수없이 옮겨 다녔다고. 알콜중독을 이겨내기 위해 20곳이 넘는 병원을 다녀봤지만 효과는 없었다. 치료를 위해 심지어 사이비종교집단까지 들어가 봤다는 백덕수씨는 2005년 7월 마지막 희망을 갖고 카프병원에 입원했다.
백씨는 두 달간의 입원기간 동안 중독치료 외에 음악, 미술치료 등을 받으며 음주의 원인이 되는 스트레스 조절법을 터득했다. 퇴원 후에도 병원건물 내 이용센터에서 6개월간의 주간재활과 2년간의 직업재활과정을 통해 사회적응과정을 거쳤다. “여느 병원과 달리 이곳 카프에서는 체계적인 관리 프로그램을 거치기 때문에 알콜중독의 재발을 최대한 억제할 수 있다”고 자랑하는 백씨. 직업재활훈련을 통해 사회복지사, 중독전문가, 음악치료사, 노인상담지도 자격증까지 딴 백덕수씨는 현재 자신이 재활프로그램을 거쳤던 카프이용센터에서 사회복지사로 활동중이다. 7년째 금주 중인 그의 경험담은 재활과정에 있는 알코올중독자들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아내는 카프병원이 있는 이곳 백석동을 ‘부활동’이라고 불러요. 이곳은 저를 새로 태어나게 해준 소중한 곳이거든요. 그래서 저는 미역국도 본래 생일이 아니라 이곳에 입원한 7월 3일에 먹습니다”
술을 끊고 새 삶을 찾기 시작하자 누구보다 기뻐한 것은 백씨의 아내. 직업훈련 때문에 출퇴근생활을 해야 했던 그를 위해 잠실에 있던 집을 팔고 이곳 백석동으로 이사까지 왔다. 백씨처럼 병원에 치료받기위해 외지에서 찾아온 이들로 인해 주변 고시원들은 방을 구하기가 힘들 정도. 입원한 알콜중독환자들 가운데 절반정도는 지역주민들로서 지역사회에도 꼭 필요한 기관이다. 한달 입원비도 60~70만원정도로 타 병원에 비해 절반수준에 불과해 대부분 생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알콜중독자들에게 마음의 안식처가 되고 있다.
백덕수씨는 요즘 카프병원이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소식에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10월이 지나면 재단출연금이 바닥나 병원운영을 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병원이 없어지면 끔찍했던 과거로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노조의 집회현장에도 함께 따라다니고 있는 그는 “음주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는 상황에서 알콜중독을 치료하는 이런 좋은 시설이 없어진다는 건 말이 안된다”며 “주류업체와 정부측은 하루빨리 재단정상화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