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릴 적의 사진이 없다. 이것이 한때는 열등감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별게 다 컴플렉스라고 흉볼 사람도 있겠으나 경험하지 않으면 그 심정을 모른다.
탈모 때문에 예민한 사람에게 죽을 병도 아닌데 머리숱 없는 것이 뭐 그리 대수냐고 하는 것과 같다. 내 선배 중에도 탈모인이 있기에 심정을 안다.
그 앞에서는 행여 상처 받을까봐 대머리니 반짝거린다느니 하는 농담도 하지 않는다.
어릴 때 친구집에 가면 안방 벽은 온통 사진 액자로 가득했다. 영정사진으로 쓸 법한 조부모 사진에서부터 해마다 찍은 가족사진이 줄줄이 걸려 있었다.
부모님 결혼사진은 물론이고 고추를 당당히 내 놓고 찍은 친구의 아기 때 사진을 가리키며 함께 웃기도 했다.
친구가 아기 때부터 해마다 성장해 가는 모습이 사진에 담겨 있었다. 친구 집에 놀러 갈 때면 사진을 가리키며 묻곤 했다.
"저 사람은 누군겨?"
"우리 작은 삼춘"
"글면 요 사람은?"
"우리 막내 고모"
친구네는 액자 속의 사진이 해마다 늘어났다.
우리집엔 아버지와 어머니 사진이 달랑 걸려 있었다. 이것도 증명사진을 보고 떠돌이 화가가 그려준 초상화다.
일찍 세상 뜬 아버지야 기억에 없으니 잘 모르겠고 어머니는 닮은 듯 안 닮은 듯한 사진으로 아버지보다 훨씬 늙은 모습이었다.
국민학교 때 봄이면 소풍을 갔다. 도시락을 모르고 살았던 나도 그날만은 도시락을 가지고 갔다. 그때는 모두 벤또라고 불렀다.
소풍 때면 동네 사진사가 그곳까지 따라왔다. 일종의 출사 영업이다. 담임이 가운데 앉고 반 전체가 모여 사진을 찍고 나면 개인 사진을 찍었다.
몇몇 친구들은 장소를 옮기며 여러 장 찍기도 했다.
나는 물끄러미 사진 찍는 친구들을 구경했다. 찍어 봤자 찾지도 못할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한 친구가 내 손을 잡아 끄는 바람에 친구 몇 명과 사진을 찍었다.
그때는 사진 원하는 사람이 돈을 낸 숫자만큼 사진이 나왔다. 어머니한테 말했으나 일언지하 거절과 지청구가 뒤따랐다.
"다른 친구 거 보면 되지 뭔 사진이래? 그런 돈 있으면 양식 사서 먹겠다."
맞는 말이다. 어머니한테 뭔 돈이 있을 것인가.
육성회비를 내지 않았다고 맨날 앞으로 불려나가고 했던 나에게 사진은 사치였다. 굶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며칠 후 사진을 찾은 친구가 여러 장을 방바닥에 펼쳐 놓고 말했다.
"내는 사진 찍은 거 많으니까 니가 원하는 거 하나 가져."
나는 냉큼 사진 하나를 골랐다. 다섯 명 속에 까까머리 아이가 박혀 있었다. 나의 유일한 어릴 적 사진이었다.
내가 졸업한 유일한 학교, 국민학교 졸업 앨범도 돈을 내지 않아서 나는 없다.
열네 살에 고향을 떠나면서 이 사진을 챙겨 왔으나 세상을 떠돌다 보니 어디론가 사라졌다. 많은 걸 잊고 살았다.
어느 날 내 돈 내고 당당히 사진을 찍었다. 서울 양화교 부근에 있는 인공폭포 앞이었다. 그곳에는 전문 사진사가 돈을 받고 사진을 찍어줬다. 열여섯 살 때였다.
성인이 되어 직장에 다닐 때 무슨 기념으로 사원들의 어릴 때 모습을 담은 사진집을 발간한다고 했다. 일등으로 뽑히면 상도 줬던 것으로 기억한다.
누구는 고추 나온 돌사진, 누구는 세살 때 오빠와 찍은 사진, 누구는 아기 때 아버지 무릎에 앉아 찍은 사진 등을 냈다.
내가 열여섯 살 사진을 냈더니 기획을 맡은 직원이 말했다.
"어릴 때 사진 없어요? 이 사진집 발간 취지는 최소 열 살 아래 사진이어야 해요. 더 어릴 때일수록 좋구요."
그게 제일 어릴 때 사진이라 했더니 취지에 어긋난다고 했다. 그렇게 그 화집에서도 나는 빠졌다. 나중 사진집을 보며 깔깔대는 직원들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부러워하면 열등감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나는 그때 열등감을 느꼈다. 가난, 짧은 가방끈, 편모 슬하 등 예전의 컴플렉스에서 이제는 벗어났다.
그럼에도 어릴 때 사진이 없는 것이 때론 아쉽다.
내 어릴 적 모습은 이러지 않았을까.
어릴 적 모습이 사진에 박혀 있지 않으면 어떠랴, 이렇게 살아 남은 것이 얼마나 복된 삶이냐는 위안을 삼으며 살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지금 행복하다.
첫댓글
그러셨군요.
안타까운 마음으로 읽었습니다만
맨 마지막에 지금 행복하다고 하시는 말씀에 제가 고맙습니다.
사실 저는 조금 넉넉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때 별로 고생 모르고 살알습니다만
중학교 다닐 때 등록금 문제로 매일 교무실에
불려가던 친구의 지난번 등록금을 대신 내 주었다가
그걸 채우지 못해서 곤혹스러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등록금을 타서 다른곳에 쓴걸로 생각들을 하셨던 것 같습니다.
제가 군에 좀 오래 있었는데, 집이 이사를 하게 되었는데
내 짐은 내가 휴가 나가서 정리 할테니 그냥 두라고 했더니
지하실에 보관 해 두었는데 그해 그 지역에 큰 물난리가 나서
지하실은 보름이나 지나서 물을 제거했던 관계로 저의 짐을 모두
못 쓰게 되어 저도 어릴때 사진이나 기념품이 하나도 남은게 없습니다.
글을 읽으면서 저도 그때 생각을 했습니다.
지난날의 안타가운 글 적어 주셔서 잘 읽었습니다.
우리 모두 같이 옛 일들을 기억하며 힘 내고 열심히 사십시다..
산애 선배님의 고운 마음결이 느껴지는 긴 댓글에서 위안을 받습니다.
가난이 뭐 그리 자랑이라고 자꾸 들춰내느냐는 사람도 있겠으나
추억이 그것밖에 없으니 쓸 게 이것밖에 없기도 하답니다.^^
때아닌 물난리로 어릴 적 물품들이 사라져버렸다니 황당했을 법하네요.
현물은 사라졌어도 가슴에 담긴 어릴 적 추억만은 오래 간직하시고 건강하셨으면 합니다.
친구 등록금까지 내주셨으니 분명 복 받으실 거예요.ㅎ
등록금을 대신 내 주었다는건 심성이 고우셨기에 가능하셨겠지요
지금도 가끔씩 베푸시는걸 보면 그러시고도 남지요
어린시절 사진이 없다니 정말 안타깝네요
저는 몇장 있는데 지금도 보면 신기해요
얼굴이 나오니까요 ㅎㅎ
어린 호랑이가 참 귀엽네요.
마치 유현덕님의 기개가 저 호랑이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어린시절에는 못가졌던 것들을 지금 많이 누려보시기 바랍니다..
짠한 마음으로 잘 읽었어요.
지금은 누구보다 멋진분으로 알고 있어요.
기회가 되면 맛있고 정갈하게 차려진 한정식 한번 대접하고 싶은 마음이 드네요..
여성방에 감자 사러 오세요..ㅎㅎ
아기 때는 고슴도치도 귀여운 법이라데요.^^
기개라기보다 깡으로 살았다고 할 수 있는데 다른 복은 별로 없는 인생이나
건강 복은 타고 났는지 여태 병원 갈 일 없이 사는 것도 큰 행운이랍니다.
샤론님도 늘 건강하시길,,ㅎ
여성방에 감자가 있나요??
도무지 시간이 안나요 ㅎ
범방에 묵여 있다보니 다른방에 마실 갈 틈도 없구요
샤론 언니 방문에 넘넘 반갑기만 하네요
여전히 건강하시고 즐거우시죠?
늘 고운날 되셔요^^*
@리즈향 보고싶은 리즈향..
요즘에는 잘 안보이는거 같아요.
저 역시 얼마나 바쁜지 여성방 들어오기도 바쁘네요..
우아한 우리 리즈님 언제 보나요...^^
@샤론2 그니까요
언니 방장역활이 이리도 무거운지 몰랐어요
당췌 마실 갈 틈이 없네요
거기 정모에 보고픈 언니들 완전 많은데 샤론 언니를 비롯해서요
한번 기회를 보자구요
퐈이팅 이에요♡♡♡
공감백배.........
공감해주시니 다행입니다.
언제 얼굴 봐야지요.ㅎ
아픈만큼 성숙해진다는
진리 입니다 .
누구나 한때 시절의 수상함에
고달픈 시간들이 있습니다
지인들이 때론 그것 때문에 저를 부러워하기도 한답니다.
꼭 연속극 보는 것 같다는 사람도 있데요.ㅎ
보쳉님이라고 어디 순탄한 길만 걸었겠는지요.
고단한 일들 잘 견뎌낸 보챙 누이도 국화꽃처럼 남은 인생 풍요롭게 지내시길 바랍니다.
짠 하네요 토끼방 산행때 함 보입시다 희망과 용기를?~~~~~~~~~~~~~~
넵! 그날 반갑게 인사드리겠습니다.
창조로 형님께도 희망과 용기를 따블로~~~~
빨간 모자는 쓰고 나오실 거죠.ㅎ
시골 할아버지댁에 가면 늘 대청 마루에 천정 가까이 높게 걸어둔 조상 님들의 사진 을 보며 흰 저고리를 남자들이 입었다는게 참 신기하게 느껴졌었어요 ㅎ
오빠 사진은 장손의 외아들 이라고 액자에 넣어 중요한 부분은 가리지도 않고 보란듯이 걸어두었던 친할아버지 생각이 나네요
지금의 밝고 환한 현덕님의 모습은 의외로 생각이 되어졌어요
전혀 그랬을거라는 상상이 안되는 예의바른 사람으로 성장 하셨다는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 이니까요
당당한글도 늘 웃음주시는 모습도 현덕님은 성공 하셨어요 ^^
시댁시골집 처음갔을때 사진보며 재미났었어요^^
행복한 하루 되세요 ~~
저를 좋게 봐 주시는 것은 그만큼 방장님의 세상 보는 눈이 긍정적이면서 심성이 곱기 때문입니다.
가끔 어긋나는 인생이었지만 제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있는 것도
가능한 밝게 살려고 했기 때문이지 싶습니다.
저는 좋은 부모 밑에서 사랑받으며 잘 사는 친구를 부러워했고
친구는 가난하지만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사는 제가 부럽다고 하고,,^^
세상이 공평하지 않다고 불평하기보다 자기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우리 열심히 살자구요.ㅎ
@마스코트 사진들 보면 정말 잼났지요
옛날사진들 특히ㅡㅡ
다들 화가 난듯 ㅎㅎ
웃지도 않고
낭군님은 까까머리에 ㅋ
마스코트 님 하고 하루종일 얘기해도 모자랄듯 하네요 ㅡㅡㅡㅡ^^
옛 생각에 미소지어봅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
마스코트 님 반가워요.^^
다소 우울한 글인데도 좋은 쪽으로 읽어주시니 저도 좋습니다.
범방을 위해 애쓰시는 방장님한테도 늘 미소를 보내주세요.ㅎㅎ
유현덕님~반갑습니다~
글로 첫 대면을 하네요~
님의 글을 읽으며 저 어릴적이 오버랩되는듯요~
한번 만나뵙고 싶습니다~^^
인향님 조금 늦게 다녀가셨군요.^^
범방 산행 때나 모임에 나오시면 만날 날이 있을 겁니다.
물론 저도 자주 참석하는 편은 아니지만요.
저도 인향님을 글로나마 대면해서 무지 반갑네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