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수사 총괄 국수본부장에 檢출신 정순신
경찰 내부 “경찰을 檢아래 두려는 것”
경찰의 수사전담기구인 국가수사본부(국수본)의 2대 본부장으로 검사 출신인 정순신 변호사(57·사진)가 임명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24일 정 변호사를 현 정부 첫 국가수사본부장으로 임명했다. 임기는 26일부터 2년이다. 앞서 경찰청은 17일 국가수사본부장 지원자 3인을 심사한 결과 정 변호사를 최종 후보자로 낙점해 윤 대통령에게 추천했다.
정 변호사는 서울중앙지검 형사7부장과 인천지검 특수부장, 법무연수원 용인분원장 등 검찰 주요 보직을 거친 수사 전문가다. 사법연수원 네 기수 선배인 윤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장을 맡았을 때 인권감독관을 하며 친분을 쌓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수사본부장은 전국 18개 시도경찰청장과 각 지역 경찰서장을 비롯해 3만 명이 넘는 전국 수사경찰을 지휘하는 자리다. 검경 수사권 조정에 맞춰 2021년 1월 출범한 국가수사본부의 수장으로, 경찰 수사의 사령탑이다.
경찰 수사를 총괄하는 자리에 검찰 출신이 임명된 건 처음이다. 야당과 경찰 내부에선 “경찰을 검찰 아래 두겠다는 것”이란 반발이 나왔다. 남구준 국가수사본부장도 이날 퇴임식에서 “경찰 수사의 독립성·중립성이라는 소중한 가치가 든든히 지켜질 수 있도록 힘을 모아 달라”며 뼈 있는 말을 남겼다.
“檢출신, 3만 수사경찰 지휘… 제2 경찰국 사태” 경찰 반발
정순신 국수본부장 임명
퇴임 남구준 “썰물 뒤엔 밀물 온다”
일부선 “누구든 일만 잘하면 돼”
鄭, 한동훈-이원석과 연수원 동기
정 변호사는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윤 대통령과 대검찰청, 서울중앙지검에서 함께 근무한 인연이 있다. 다만 ‘특수통’이나 ‘윤석열 사단’으로 분류되진 않는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이원석 검찰총장의 사법연수원 동기다.
● 경찰 반발 “우려가 현실로”
정 변호사의 국가수사본부장 임명을 두고 경찰 내부에선 “지원했을 때부터 우려했는데 결국 현실이 됐다”는 반응이 나왔다.
경찰 내부 실명게시판인 ‘폴넷’과 익명게시판 ‘블라인드’ 등에선 임명을 비판하는 글이 연이어 올라왔다. 한 경찰관은 이날 폴넷에 “(견제와 균형이란) 검경 수사권 조정의 취지가 무색해지는 인사다. 이런 글을 쓰는 것도 무섭다”는 글을 남겼다. “설마설마했는데 검찰 출신이 경찰 수사의 수장으로… 정말 검찰 공화국이다”, “경찰 조직에도 수사 잘하는 분이 많은데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겼나”, “이러다 축구 국가대표 감독직도 검찰 출신이 유력한 거 아니냐” 등의 글도 올라왔다. 서울경찰청에서 일하는 한 경감은 동아일보 기자와의 통화에서 “제2의 경찰국 사태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남 본부장도 이날 퇴임사에서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겠나. 썰물이 있으면 반드시 밀물의 때가 온다”고 했다. 후임 인사로 혼란에 빠진 경찰 조직을 ‘흔들리는 꽃’에 비유한 것으로 해석된다.
다만 일부에선 외부 인사 수혈이 나쁘지만은 않다는 의견도 있다. 한 경찰관은 블라인드 게시판에 “누가 오든 처우 개선만 잘하면 된다”며 “대통령과 인연 있는 측근이 오면 조직에도 힘이 생길 것”이란 글을 남겼다. 서울 일선 경찰서에서 일하는 한 경위는 “우수한 수사 노하우를 받아들일 수 있다면 경찰에도 이득”이라고 했다. 경찰청도 “1차 수사기관으로 대부분의 수사를 경찰이 담당하면서 경험 있는 외부 인사 영입을 통해 책임수사 역량을 한층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 대통령실 “수사 잘한다는 평가 고려”
일각에서 윤 대통령과의 친분 때문에 임명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자 대통령실은 “경찰청이 행안부와 상의해 절차대로 한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인선 과정에는 대통령실의 의견이 적잖게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 관계자들에 따르면 국가수사본부장이 개방직인 만큼 경찰 외부에서 뽑을 수 있다고 보고 수사를 잘한다는 평가를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 임명했다고 한다.
여권 관계자는 “지원자가 적었던 데다 나머지 후보자들은 1급인 국가수사본부장으로 가기에는 직전 직급이 낮거나 정년이 임박했다는 문제가 있었다”며 “검경 수사권 조정에 따라 경찰이 책임지고 꼼꼼하게 수사해야 하기 때문에 검찰의 수사 능력으로 경찰 수사 능력을 올려달라는 의미”라고 말했다.
야당은 반발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정권은 주요 사정기관에 검찰 출신들을 보내 대한민국을 검찰 국가로 만들고 있다. 경찰을 검찰 아래 두겠다는 뻔한 얕은 수일 뿐 아니라 검경 수사권 조정을 전면 퇴행시키는 비열한 수법”이라며 임명 철회를 요구했다.
김기윤 기자, 전주영 기자, 박훈상 기자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에 검사 출신
국회의 탄핵 소추로 직무정지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판사 출신이지만 검사 인맥으로 보수 정부에 들어왔다. 대검 중앙수사부장 출신인 안대희 대법관 밑에서 재판연구관을 한 인연으로 박근혜 정부에서 국민권익위 부위원장을 지냈고 윤석열 대통령의 충암고 후배라는 인연으로 장관이 됐다. 이 장관은 취임하자마자 경찰제도개선자문위원회를 만들어 경찰국 신설을 추진했다. 위원장인 황정근 변호사와 함께 경찰국 신설에 총대를 멘 검사 출신 정승윤 부산대 로스쿨 교수는 국민권익위 부위원장으로 임명됐다. 지금은 경찰제도발전위원회가 자문위를 대체해 경찰대 폐지 등을 추진하고 있다. 그 위원장도 검사 출신인 박인환 전 건국대 법대 교수다.
▷윤 대통령은 어제 경찰 국가수사본부장에 정순신 변호사를 임명했다. 경찰 수사의 최고위 자리에 검사 출신을 임명한 것이다. 정 변호사는 윤 대통령이 대검 중수 2과장을 할 때 대검 부대변인을 지냈고 윤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장을 할 때 인권감독관으로 같이 근무했다. 문재인 정부 때 검경 수사권 조정 과정에서 경찰 수사지휘권을 포기하는 대신 직접 수사권을 계속 갖겠다고 한 것은 당시 검찰총장이던 윤 대통령이다. 그러나 이제 국수본부장에 측근 검사 출신을 임명함으로써 수사지휘권을 넘어선 깨알 같은 수사 지시가 가능해진 셈이다.
▷윤 정부는 경찰국을 신설해 경찰 인사권과 징계권을 확보하더니 국가수사본부장에 검사 출신을 임명함으로써 경찰 장악의 마침표를 찍었다. 법무부 장관도 검찰총장도 대통령의 측근, 복귀할 가능성이 높은 행안부 장관도 국수본부장도 대통령의 측근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관할 범위가 남아 있긴 하지만 공수처가 무기력한 수사력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대통령 자신은 법으로 정해진 특별감찰관을 아예 임명할 생각도 않고 있으니 대한민국의 모든 수사는 대통령 측근들이 장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사는 그 위력을 잘 알면 알수록 더 두려운 것일까. 검찰의 경찰 수사지휘권은 법적으로 사라졌다. 더불어민주당 정권의 ‘검수완박’법으로 줄어든 검찰 직접 수사 영역을 대통령령을 통해 확대하긴 했으나 그런 확대에는 한계가 있다. 물론 검찰이 영장청구권을 독점하는 한 영장 청구가 필요한 정도의 중요 수사를 경찰이 검찰 눈을 피해 하기는 어렵다. 그렇다 하더라도 검찰이 직접 수사하지도 못하고 지휘하지도 못하는 큰 공백이 생긴 것은 오랫동안 검찰을 통해 모든 수사를 장악했던 정권에는 공포일 수도 있겠다. 그렇게 보지 않고서야 이렇게까지 경찰을 장악하려고 하는 정권의 노력이 이해되지 않는다.
송평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