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남매 가족 모임
우리 형제자매는 모두 8남매입니다. 어머니는 열일곱 살 때부터 아이를 낳기 시작하여 마흔 여섯 살 때까지 총 8남매를 낳았습니다. 그중 제가 제일 막둥이입니다.
8년 전, 우리 형제들은 의논을 했습니다.
“살다보니 서로 바빠서 모일 기회가 없는데 우리 이럴 것이 아니라 각자 돌아가면서 잔치를 하면 어떨까? 위에서부터 차례대로 잔치를 하면 우리 형제들의 우에가 더 돈독하지 않을까?”
형들과 매형 그리고 누님들의 협의에 의해 매년 적당한 날짜에 날을 잡아 모두 모이기로 일정을 잡았습니다.
8년 전에는 제일 큰 누나가 사는 인천에서 삼겹살파티를 했고 그 이듬해는 칠보에 사는 누나가 집 근처 계곡에서 잔치를 했습니다. 형제가 많다보니 내 차례는 까마득해 보였습니다.
‘설마 내 차례까지 오겠어? 잔치를 하다가 흐지부지 말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세월은 참 빠르더군요. 벌써 팔년이 흘러 나의 차례까지 온 것입니다.
아내가 뭘 어떻게 대접해야할지 몰라 고민합니다.
“자기야! 난 요리도 잘할 줄 모르는데 어쩜 좋아?”
“그냥 하던 대로 하면 되잖아. 잘 하면서 왜 그래?”
두 달 전에 우린 양평에 펜션을 예약했습니다. 성수기가 코앞이라 마음에 맞는 방이 없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날짜는 다가오고 마음은 급해지기 시작합니다. 아내와 나는 서로 일을 다니기 때문에 음식을 장만할 시간이 없습니다.
아내가 말합니다.
“자기야! 토요일에 비 온다는 예보가 있는데 비가 오면 밖에서 고기를 구워먹기가 좋지 않을 것 같은데 그냥 수육보쌈으로 할까?”
“에이, 그래도 내리는 비를 보면서 고기를 구워 먹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비가 퍼붓는데 음식을 방에서 밖으로 옮길 걸 생각해 봐요. 계속 옮겨야 하는데…….”
“당신 맘대로 해요.”
큰 잔치 때는 남자인 제가 져줘야 분란이 없습니다. 아내의 선택은 늘 현명했으니까요.
그런데 금요일의 일기예보는 또, 비가 오지 않는다고 하네요.
아내는 일을 마치고 서둘러 미리 준비할 것을 메모합니다. 그리고 열흘 전부터 준비를 하기 시작합니다. 아내는 늦게 들어오는 나에게 미루지 않습니다.
“그래 보쌈하기로 결정했어?”
“아니. 비가 오지 않는다네. 그냥 숯불구이 하려고.”
드디어 토요일이 되었습니다. 우린 15명이 먹고 마실 음식을 차에 가득 실었습니다.
빨리 도착해서 손님이 오기 전에 술은 차게 해놓고 수박도 시원하게 해야 하거든요.
물론 고기도 구워먹을 수 있게 상을 봐야 하고요.
멀리 부산에서부터 서울까지 전국 각지에 사는 팔남매가 모두 양평에 모였습니다.
번개탄에 불을 붙이고 숯을 올려놓는데 잘 타지 않습니다.
“처남! 바닥에 바람구멍이 있어야 잘 타지. 비켜 봐 내가 할게.”
집짓기의 달인인 막내 매형이 불쏘시개를 잡습니다. 구멍 뚫린 철판을 바닥에 깔고 그 위에 번개탄과 숯을 올려 불을 피웁니다. 과연 불은 아까보다 훨씬 잘 붙습니다.
저는 석쇠위에 오리고기와 삼겹살을 올려놓습니다.
불은 번개탄의 구멍을 가득 매운 다음 활활 타오르더니 이윽고 불꽃은 사라지고 번개탄에서 사라진 불꽃은 다시 숯에 옮아 붙습니다. 숯에 옮아 붙은 불은 혼자 있을 때보다 여럿이 있을 때 더 강력히 타오릅니다. 불꽃이 일며 타던 불은 이내 불꽃이 사그라집니다. 그리고 그 붉은 화력만 은은히 퍼집니다. 마치 폭발한 화산의 마그마가 흘러내려 논바닥에 둥둥 떠 있을 때 같습니다. 그제야 불은 안정을 찾고 고기는 제대로 익어갑니다.
일 년에 한번 모이는 형제자매의 담소는 끊이지 않습니다. 그동안 궁금했던 이야기부터 지금 처한 각자의 생활까지, 혹은 아픈 이야기에 같이 아파하고 기쁜 이야기에 같이 활짝 웃으며 축하해줍니다.
나는 노래방으로 다시 누님, 매형, 형님들을 모셨습니다. 적당히 취한 취기에 박자는 엉망이고 몸은 흔들려도 얼마 만에 가져보는 모습인지 까마득합니다.
이튿날 아침, 형은 산을 오르고 매형은 축구를 하고 일부는 잠에 취하고 아내는 다시 아침 식사준비에 분주합니다. 아내가 새삼 위대해 보입니다. 아침식사가 끝나고 담소를 나누고 정오가 되어 우린 펜션을 비워주었습니다.
아쉬움에 이별을 못하고 우린 다시 용문산 근처 횟집으로 이동했습니다. 매운탕에 메밀 전을 곁들여 송어 회까지 적은 양이지만, 마음은 풍족하게 먹었습니다.
막내 누님이 계산을 하려는데 제가 극구 말렸습니다.
“오늘 모임은 제가 책임져야 하는 모입입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내겠습니다.”
모임이 끝나고 막 헤어지려는데 셋째 매형과 누님이 눈시울을 붉힙니다.
88세의 어머니가 이제 저의 집에서 여생을 보내야 합니다. 다시 또, 언제 볼지 몰라 그 미욱한 마음이 안쓰러워 우는 것입니다. 하루하루가 다르게 기력이 없는 어머니를 남겨두고 발길을 옮기려는 형제자매들의 눈가가 아프게 질척거리고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편히 모실게요.’
생과 사의 이별은 더 없이 슬플 일이라서 누구 한 사람 그 이별을 꺼내지는 않았지만, 머지않아 우리에게 닥쳐올 그 이별을 미리 예견하고 그것이 가슴 아파 눈물 그렁이는 모습은 처연하기까지 했습니다.
차마 어쩌지도 못한 채 감당해야 하는 생과 사의 일이라서 생각할수록 억장이 무너집니다.
어제 계단을 오를 때의 어머니와 오늘 계단을 오를 때의 어머니의 발걸음이 하루하루가 다르다는 말이 왜 이다지도 아픈지요?
어머니! 오래오래 사세요!
첫댓글 아름다운 모습 잘 보고 갑니다
좋은날 되세요
여덟째 아드님이 모시는 어머니. 그 아내분의 심성이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