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화경 제9. 수학무학인기품(授學無學人記品-2) 안녕하십니까 5월25일 염화실 인터넷 방송법문 시작하겠습니다
오늘도 법화경 수학무학인기품(授學無學人記品) 260쪽 "라후라는 도칠보화(蹈七寶華) 여래가 되리라" 라고 하는 수기하는 라후라에게 수기하는 내용을 공부할 차례입니다 그리고 라후라에 이어서 이천 명의 아라한은 보상여래가 되리라 하는 이천 명의 아라한이 또 수기를 받는 내용입니다
수기를 법화경에서는 상당한 그 부분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부처님께서 열반을 앞두고 가장 소중한 말을 제자들에게 유언처럼 남기게 되는 내용중 하나입니다 유언의 가장 중요한 내용이다 이렇게 생각해도 좋습니다.
그 내용이 바로 이 수기라는 것인데 어제도 말씀 드렸지만 불교에서 본 행복의 열쇠란 다시말해서 부처님께서 깨달음의 시각으로 본 행복의 열쇠란 바로 사람이 부처님이다 라고하는 사실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모든 사람을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기는데 그 답이 있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행복 할려면은 사람을 알아야 되고 그 사람의 진정한 가치 사람 안다는게 정말 부처님이 사람을 알 듯이 모든 깨달은 사람이 사람을 알 듯이 그렇게 사람의 무한한 가능성과 영원한 생명의 그 존귀성을 알고 그것을 그대로 받들어 섬기고 지켜주고 보호하고 이렇게 하자는 것이죠
그래서 사실은 우리가 법당에 불상을 모셔놓고 그기서 기도도 하고 예배도 하고 무엇을 빌기도 하고 또 우리 마음을 다듬어 가기도 하고 하는 그런 방편을 빌립니다 우리 중생들은 상견중생이라 그래요 모양 "상"자 볼 "견"자 어떤 형상을 봐야 마음이 잘 난다는 거죠
그걸 이제 "견물생심"이라 세속적이 표현을 그러게도 하는데 성스러운 법당 분위기와 성스러운 성인의 상을 대하고 있을때 마음이 나기가 쉽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래요 그러나 언제난 법당 생활을 할수도 없는 것이고 또 하루 종일 법당에 있는 사람들은 그런 생각을 못합니다
모처럼 법당에 갔을때 그렇게 성스러운 생각이 나고 근엄해지고 그렇지 법당에서 법당 관리하는 신도님들을 보십시요 어디 그렇게 이십 사시간내내 긴장된 마음으로 성스러운 마음으로 생활 합디까 그렇지 못하거든요 사람이 라고 하는 것이 그래서 결국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궁극적으로 정말 사람이 부처님 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이 우리의 영원한 과제입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사람을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겨야만 나의 행복 너의 행복 가정의 행복 나라의 행복 세계의 행복 이것이 성취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외에는 답이 없어요 사실은 그것이 모든 깨달으신 성인들이 다 보시고 이해 하셔고 그래서 그렇게 가르친 것이고 부처님께서 유언으로 이렇게 까지 간곡하게 구절구절 이야기 하고 있다 이렇게 우리가 이해를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이렇게 법화경 그렇게 긴 경이 아닌데도 부처님이라고 하는 사실을 수기하고 보증하는 이야기가 길게 될수가 없다는 거죠 오늘은 라후라 라고하는 특정인을 거론을 하면서 수기를 준다 하는 내용입니다
어제도 아나존자와 라후라 의 이야기를 대충 했습니다 만은 라후라는 세존께서 출가 하시기전에 대를 이을 후손을 남겨두고 출가 하라 라고 하는 부왕의 간곡한 부탁에 의해서 결국은 라후라를 낳게 되었는데
표현하자면 "저 놈때문에 출가가 이렇게 늦어 졌다 저건 내 삶의 장애다" 이렇게 내 뱄은것이 그대로 장애물 라후라 이렇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발음 하기는 참 좋아요 라후라..라훌라 라고도 하는데 어째거나 이렇게 해서 석가모니부처님 아들이 라후라 입니다 라후라는 참 복이 많죠 어떻게 하면 부처님의 아들이 될수 있습니까 부러운 일이기도 하고 대단한 일이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1)장항
8 그 때 부처님께서 라후라에게 말씀하셔습니다 "그대는 오는 세상에 부처님이 되어 이름을 도칠보화(蹈七寶華) 여래. 응공.정변지.명행족.선서.세간해.무상사.조어장부.천인사.불.세존이라 하리라
마땅히 열 세계의 티끌 수와 같은 부처님 여래께 공양하면서 항상 여러 부처님의 장자(長子)가 되리니 지금과 같으리라.
라후라는 두고두고 부처님의 장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은 여기는 부처님은 언제나 장가를 가야 되는 것이고 장가 가서 아들까지 두어야 된다 이런 조건 까지 뒷 따라 있죠
그것을 부각 시키는 것은 아니지만은 부처님의 장자된다 하면 부인 없이 장자를 둘수 있나요 부인 둘려고 하면 장가 가야죠 참 묘하죠 이야기죠 열 세계의 티끌 수와 같은 부처님 여래께 공양하면서 항상 여러 부처님의 장자(長子)가 되리니 지금과 같으리라
부처님의 아들로 금생에 태어났고 앞으로도 끊임없이 부처님의 아들로 태어날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지금의삶이 과거의 모든 삶이고 지금의 삶이 앞으로의 모든 삶이다 어제도 말씀 드렸지만 지금 그대로가 부처님의 삶인 것이다 그게 장애가 되었든 라후라가 되었든 부처님 아들이 되었든 뭐 부처님 조카가 되었든 간에 그대로가 부처님의 삶이다 이런 의미가 포함 되어 있죠 그것이 깔려 있습니다 이 도칠보화 부처님의 국토의 장엄과 수명의 겁 수와 교화하는 제자와 정법과 상법은 산해혜자재통왕 여래와 같아서 다르지 않으리라
아난 존자가 이제 "산해혜자재통왕 여래" 죠 아난존자 하고 짝을 참 잘 맞춰내요 라후라 하고는 모든게 같고 또 같은 장에서 수기를 받게 되잔습니까
또 그 부처님의 장자(長子)가 될 것이며 그런 뒤에는 최상의 깨달음을 얻어리라" 이랬습니다 어디 가서든지 금생에 부처님의 장자기 되었 듯이 어디가서든지 또 부처님의 장자로 태어난다 그럼 현재 삶 이대로가 과거요 또 미래다 그리고 또 이대로가 부처로써의 삶 이다 라고하는 이러한 내용입니다
(2)게송
9 이 때 세존께서 이 뜻을 거듭 펴시려고 게송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태자로 있을 적에 라후라가 장자가 되었더니 그렇죠 태자로써 아직 출가 하기전에 라후라를 낳았다는 이야기 입니다
내가 이제 불도를 이루게 되니 가르침을 받고 법의 아들이 되었네 이제는 세속적인 아들관계가 아니죠 제자의 관계입니다 그래서
가르침을 받고 법의 아들이 되었네 참 좋죠 표현이.. 과거에 불도 수행을 아주 깊이한 부부들도 보면은 도반으로써 불교에 귀의 해서 불교를 모두 깊이 이해 하고 그래서 노후에는 정말 아주 훌륭한 도반 관계로 탁마하고 서로 가르치고 서로 아는 것을 나누고 이렇게 하면서 남은 생을 좋은 도반 관계로 보내는 그런 불자들이 많이 계시죠 역사적으로도 또한 많았구요
방거사 같은 이들은 온 식구가 모두가 도반 관계고 또 견성을 한 그런 집안이 였죠 여기도 보면은 과거에 태자로 있을때는 나의 맏 아들이 였지만은 지금은 가르침을 받고 법의 아들이 되었다 지금 그런 표현을 하고있어요
여기를 보면 "라후라가 장자가 되었더니"그런 표현을 쓴것을 보면은 아들이 라후라 말고도 몇이 더 있지 않았겠나 이렇게 생각 할수도 있어요 또 어떤 경전보면은 관례에 따라 부인이 셋이었다는 하는 그런 이야기도 있습니다.부인이 셋이 였으면은 당연이 아들이 또 있을 수 도 있죠 그러면 라후라가 첫 아들 되며 장자가 되었다 이런 것들도 얼마든지 생각 할 수가 있습니다 왜냐?역사적인 석가모니는 사람입니다. 불교는 사람이 만든 종교이고 사람을 위하는 종교이고 사람에 의한 종교이고 그런 거죠 똑 같은 사람으로써 아주 특별한 깨달음 이라는 체험을 하신 분으로써 그 깨달음이 우리의 삶에 너무나도 큰 지침이 되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는 부처님을 스승으로 존경하는 것이죠
아주 담백하게 우리가 부처님과의 관계를 설명한다면 그런 관계 입니다 그러니까 인간으로서의 삶의 모습들이 당연히 그대로 노출되어야 하고 노출 될수 밖에 없고 또 그런 것이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상하게 생각 할 것도 없어요. 우리 대승불교권의 어떤 경전에 보면은 부처님을 너무 신격시 이상으로 아주 위대하게 초인간적으로 너무 권위있게 저 높여 놓고서 이해 하려고 하는 경향이 적지 않습니다.
그런곳에 습관화 되어 있는 사람으로써는 석가모니를 인간의 입장에서 설명하려고 하면 조금 거부감을 느낀 다든지 신심 없는 이야기라고 이해를 한다 든지 그런 경우들이 들어 있어요
그런 실망은 얼른 무너 떠려야 해요 그런 것은 오해니까요 석가모니는 그렇게 신격적이 존제도 아니고 초능력자도 아니고 또 그런 것을 좋아 했든 분도 아니고 그렇습니다 그런대 대한 환상은 얼른 깨어지는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여기 표현이 좋잔아요 "내가 이제 불도를 이루게 되니 가르침을 받고 법의 아들이 되었네 이제 그런 관계다 이거예요 내 자식도 이제 법의 아들 법 제자가 된 그런관계다
"오는 세상에도 무량 억 부처님을 뵙고 모두 그들의 장자가 되어 일심으로 불도를 구하리라 라후라의 비밀 한 행 을 오직 내가 알뿐이니" 그렇죠 부처님의 아들로써 또 어린 나이로 출가 해서 뭐 어쩔수없이 들어와서 출가는 했지만은 지가 무슨 크게 발심하고 들어 왔겠습니까
그래서 자꾸 울었대요 때가 되면 오후엔 안 먹었는데 스님들은 안먹었는데 배가 고파니까 어린아이 니까 자꾸 우니까 라후라가 배가 고파서 저녁무렵에 운다라고 하는 이 이야기를 우리가 가만히 상상해보십시오
오후에 해가 넘어가고 인도 기원정사의 종소리는 들리는데 라후라는 배가 고파서 종소리고 예불이고 생각이 없고 그 배고픈 것 때문에 울고 있었다 그런 묘한 한폭 그림같은 모습을 우리가 상상 할 수있습니다.
그러니까 저렇게 어리고 또 노약한 이를 위해서는 저녁에 먹도록 하라 그럼 그것을 뭐라고 합리적인 이름을 짓는게 좋겠는가 이래가지고 "약석(藥石)"이라고 하라. 약석이다 저녁에 먹는 것은 약으로 먹는 것이다 건강한 사람은 먹지 말라는 뜻이죠 약이 필요한 사람에 한해서만 먹어라 그런 법을 내놔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라후라 때문에 생기 법이죠 그래서 그 후에 수행을 잘 하시는 분들은 오후 불식을 하시죠 그게 첫째 하는 것이고 그 다음아침에는 죽을 먹으면 속이 편하다고 해서 죽을 먹는 분도 있고 좀더 철저히 하시는 분은 일종식, 점심 한끼만 드시는 분들도 계시죠 그런데 라후라가 부처님의 아들로써 이런 저런 어려움이 많았을 텐데
그것을 남 몰래 자신의 처지를 감추고 행동한것을 "오직 내가 알뿐이다" 나만이 라후라의 심정을 이해한다는 그런 표현 인데 참 인간적이죠
드러나게 나의 장자가 된것을 모든 중생들에게 보여주려고 한 것이니라 한량없는 천만 억 공덕을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지만 부처님의 법에 편안히 머물러 최상의 도를 구함이니라
"한량없는 천만 억 공덕을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지만" 하는 것은 참 좋은일 많이 했죠 좋은일 잘 않 하겠습니까 부처님의 아들이 되었서 솔선수범 해서 얼마나 좋은 일을 많이 했겠어요 그렇지만 그것을 이제 표현하지 않죠 표현하지 않고 좋은일을 해도 남 몰래 했다 하는 그런 내용입니다
4.이천 명의 아라한은 보상(寶相)여래가 되리라
(1)장항
10 이 때 세존께서 배우는 이들과 다 배운 이들 이천 명의 사람들이 생각이 유연하고 고요하고 청정하여 일심으로 부처님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시고 아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대가 이 배우는 이들과 다 배운 이들 이천 명의 사람들을 보는가?" "그렇습니다.봅니다" "아난아 이 사람들이 오십(五十)세계의 티끌 수 부처님 여래에게 공양하며 공경 존중하고 법장(法藏)을 수호(守護)하다가 끝에 가서 시방세계에서 한꺼번에 성불(成佛)하리라 이름은 모두 같아서 보상(寶相)여래.응공.정변지. 명행족.선서.세간해.무상사.조어장부.천인사.불.세존 이라 하리라. 수명은 일겁이요 국토의 장업과 성문과 보살과 정법과 상법도 모두 같으리라"
이렇게 이 천명을 동시에 수기 합니다.앞에서는 오백명을 동시에 수기하였구요 여기서는 이 천명을 동시에 수기합니다.이야기가 나왔으니까 조금 성급한 일이기는 하지만 넘겨서 법사품 첫장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법사품]
수기하노라 이렇게 나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마땅히 최상의 깨달음을 얻어리라" 보십시요 오백명 이 천명 그 다음에는 이제 법화경과 인연을 맺은 조금이라도 인연을 맺은 모든 사람들에게 내가 다 수기한다 이렇게 했어요
이게 어찌 어떤 특정 인 이름을 부르고 세계.나라 뭐 겁 이런 것들을 구체적으로 들먹거린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이제 아셔죠 모두?그것은 하나의 방편에 불과 한 것이고 사실은 내용에 있어서 전부 모든 존제가 다 함께 부처님이라고 이 철두철미한 인불사상에 근거를 하고 법화경이 설해지고 있다 하는 것을 말씀 드립니다.이건 내일 공부 할 꺼리인데 지금 도 이렇게 소개하고 내일 또 한번 살펴봅시다
우리가 이 정신을 정말 철저히 우리네 살림살이로 한다면은 나의 어떤 그 공부 나의 불교에 대한 지혜라고 할까 그런 지혜라고 할까? 지혜를 삼는다면 정말 모든 문제의 해결 입니다.어떤 문제도 바로 그기서 해결이 가능한 것이죠 그래서 이 사상을 아주 내가 쉼없이 강조하는 바 입니다 왠고하니!지금까지 보았듯이 법화경이 그렇지 않습니까 사람이 부처님이다 제발 사람이 부처님이란 것을 알라 라고 하는 그런 뜻입니다 그러나 내가 말하 듯이 이제 법화경에서 자꾸 그렇게 만 강조 한다면 같은 말 또 하고 또 하고 그럴수도 없고 영~재미없죠 그리고 그건 경전으로써의 어떤 제대로 구성이 되었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보았듯이 이런 어떤 재밌는 이야기와 방편과 또 각각 다른 그런 세계와 겁과 정법 상법의 수명 같은 것을 이야기 해오다가 결과적으로 다 드러나죠 오 백명 이천명 그리고 모두 다 이렇게 이야기가 발전되어가고 있다 하는 것 정말 천번 만번 주장해도 틀린 말이 아니라고 말씀 드릴수가 있습니다 (2)게송
11 이 때 세존께서 이 뜻을 거듭 펴시려고 게송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여기 이천 성문(聲聞)들로서 지금 내 앞에 있는 이들에게 오는 세상에 마땅히 성불하리라고 모두에게 수기를 주노라.
그들이 공양할 여러부처님은 위에서 말한 티끌 수와 같으며 그 부처님의 법장을 수호하다가 나중에 바른 깨달음을 이루리라.
이 법장을 수호한다는 말이 자주 나오는데 참 우리가 유념 해야할 일입니다 과거 서울에 어떤 큰스님께서는 "호법사상"호법운동을 하셔어요 호법운동이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법을 보호하고 지키고 그기에는 우리가 법을 공부하고 또 법을 널리 편다는 뜻이 그런 뜻이 그속에 다 포함되어 있어요
그래서 부처님 법장을 수호하다가 나중에 바른 깨달음을 이루리라 라고 하는 말 그 말 속에 호법운동이 들어있습니다.우리가 이런 일 하는 것도 우리가 인터넷을 통해서 법문을 하고 경전을 올리고 책을 한 권씩 맡아서 또 글 올리고 그리고 여러 사람이 이제 조회를 해서 읽고 하는 이런 일들이 전부 호법운동입니다.
법을 보호 하고 부처님 법을 지키고 그리고 부처님 법을 널리 전하고 하는 그런일이죠 저는 법 공양운동 이라 해서 상당히 여러해전부터 미미한 운동이지만 혼자 하다보니 법공양 운동을 계속 지금까지도 하고는 있습니다 처음에는 일지경이라고 해서 한페이지의 경전...경전 이름도 내가 지었죠
"일지경 한페이지의 경전" 이렇게 해서 보왕삼매론 부터 찍어서 저기 일주문에 수 천장씩 쌓아놓고 가는 사람 오는 사람 모두가 한 장씩 들고 다니며서 보고 주머니에 넣어서 집에 가져 가든지 이렇게 할 수 있도록 그 운동을 88년 그 해 올림픽이 열리든 그해 부터 그해 봄 부터 외국인들에게도 필요한 그런 법문지를 만들어서 일주문에 많이 샇아 놓고 가져 가게하는 그런 을 88년부터 지금 까지 뭐 크게 두르러지지는 않지만 나름의 법공양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법공양 호법운동 이게 말이 달라서 그렇지 같은 것이고 또 우리 염화실 법우님들이 동참 하시고 염화실에서 법문을 듣는 일도 법공양 운동이요 또 호법 운동입니다 부처님께서 가장 바라는 바 이고 사람으로써 살아가는데 가장 의미있고 가치있는 일이라고 하셔어요 내가 생각해봐도 그렇구요 그래서 저는 마음 닿는데 까지 또 힘 닿는데 까지 하고 있습니다 각각 시방 세계에서 모두 다 같은 이름으로 한꺼번에 도량에 앉아서 최상의 지혜를 얻어리라.그들의 이름은 다 같이 보상이요 국토와 제자들과 정법과 상법까지 같아서 다르지 않으리라.모두 다 신통으로 시방의 중생들을 제도하리라 명성이 널리 퍼지고 점점 열반에 들리라"
게송을 보죠 12 이 때 배우는 이들과 다 배운 이들 이천 명은 부처님의 수기(授記)하시는 말씀을 듣고 뛸 듯이 기뻐하여 게송으로 말하였습니다
"세존은 밝은 지혜의 등불이시고 수기하시는 말씀을 우리가 들으니 환희한 마음 가득차서 마치 감로수(甘露水)를 마신 듯합니다"
이 천명이 게송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이천명이 숫자는 많지만 아주 간단명료하게 한 수의 시로 표현했습니다. 이 천명이면 숫자는 많지만 아주 간단명료하게 한 수의 시로 표현했습니다. 여기 뭐라고 했습니까 세존은 밝은 지혜은 등불이시고 그래서 우리가 등불을 밝히는 것입니다.초파일이 지난간지가 몇 칠 않 돼죠 그래서 등불을 밝히는 것입니다 그 등불 밝히는 의미가 바로 세존은 밝은 지혜의 등불이시기 때문에 바로 그래서 등불을 밝히는 것입니다
이렇게 과학이 발달해서 그 밝은 전기불을 우리가 사용하고 있지 않습니까 형광등 하나키면 촛불 백개 켜도 형광등 하나 못따라가죠 그런데도 꾸역 꾸역 우리는 옛법을 따라서 하나하나 인등도 밝히고 이촉짜리 삼촉짜리 인등도 밝히고 또 초파일 되면 개인등 일일이 밝히고 이절 저절 보통 평균 세 절이지요
우리나라 불교 인구를 계산할때 표현 된것에서 3분의1 로 계산 하면 되요 대개 좀 절에 다녔다 하면 보면 3개 사찰이상에 축원이 가 있으니까요 어떤 경우는 열개 사찰이상에 그 이름들이 다 같이 등록 되어 있어요 그 만큼 등을 많이 밝힌다는 뜻 입니다.
그런 이야기를 할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니까 우리가 등을 켜는 이유가 바로 "세존은 밝은 지혜의 등불이 시다"그런 지혜를 상징하는 의미에서 그렇게 전기불이 있는 데도 우리가 괜히 불을 밝힌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등불하나 하나 밝힐 때 그저 어떻게 하드라도 내 마음을 밝히려고 하고 내마음의 때를 없애려고 하고 그래서 부처님이 가르치신 그 지혜를 나도 터득해서 모든 존제를 제대로 파악하고 볼줄 알고 그기 맞게 살줄 알고 그런 지혜를 얻어지다 하는 마음으로 사실은 부처님 앞에 오는 것이고 부처님앞에 등불을 켜는 거죠 "세존은 밝은 지혜의 등불이시고 수기하시는 말씀을 우리가 들으니 환희한 마음 가득차서 마치 감로수(甘露水)를 마신 듯합니다"
감로수는 불사약이죠.이 약을 마시면 죽지 않는다 해서 불사약이라고 그렇게 합니다 무엇을 보드라도 어떤 법문,어떤 내용에서 든지 우리 모두 부처님이라고 하는 사실이고 법화경을 통하여서 부처님이라는 수기를 받았습니다 우리는 그러니까 부처님을 알고 살아야되죠 그러면 나만 부처님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다 부처님이다 그러니까 사찰에 있는 등불하나 위하듯이 제발 그렇게 불상을 위하듯이 만 사람을 위하면 좀 얼마나 좋겠어요 그것만 해도 어지간이 참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기게 되죠 법당에 있는 불상 앞에서는 별 별 것 아까운 것없이 다 갖다 올리죠 진짜 부처님에게는 우리가 소홀히 하고 등한시하고 어떤 경우는 무시하고 하는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시어머니 부처님 며느리 부처님 아들 부처님 딸 부처님 남편 부처님 아내 부처님 형님 부처님 동생 부처님 누나 부처님 등 그기서 부터 모든 이웃을 부처님으로 이렇게 점점점 우리 마음을 확대 되어 나간다면은 그게 바로 행복의 열쇠가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그랬을때 우리의 법화경을 제대로 공부하는 것이 되고 또 법화경을 제대로 이해 하는 것이 되고 또 우리 염화실에서 주창하고 있는 인불사상을 높이 선양하는 그런 일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말씀 드릴 수가 있습니다
오늘은 법화경 공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
정리 : 아라빈Atti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