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숨은 명산을 찾아서
청원 백족산(413m)
둥그스름, 청원군 귀염둥이 얼치기 고봉준령 보다 낫네!
선두산 거쳐 상당산성까지 연결 산행 가능
"당시 세조는 수많은 신하들을 거느리고 있어서 여기까지 올라올 수 없었습니다. 저기 들머리쪽 상야교 밑으로 무심천이 흐르지 않습니까. 그쪽 상류에 있는 병풍바위에서 발을 씻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스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이 높은 곳까지 올라오기 힘들었을 텐데요."
"글쎄요, 제가 듣기로는 이 절 앞쪽에 옷샘이라고 있었다는데 거기가 발을 씻은 장소라고 들었습니다. 지금 그 위치가 정확히 어딘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여간 여기까지 와서 우리 절 한번 안 들렀을리 없지요. 여기서 씻은 것이 분명합니다."
백족사에서 예정에 없던 토론이 벌어졌다. 발제자는 청주삼백리 송태호 대장과 백족사 주지 선봉스님이다. 주제는 산 이름 '백족'에 대한... 조선시대 세족 이곳을 지나다가 샘물에 발을 씻었는데 희게 되었다는 전설 속의 이야기를 두고 '발을 씻은 장소가 과연 어디였는가?' 였다. 전해져 오는 이야기일 뿐. 구체적인 자료가 증거가 없어 이번 토론은 무승부다. 세조의 입장에서 산을 타며 그때의 상황을 상상해보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본격적인 흙길 등산로는 백족사를 나와 왼쪽 너른 공터에 조성되어 있는 납골탑공원 뒤쪽에서 시작된다. 상야리에 있는 충청북도 교통연수원에서 백족사까지는 임도가 나있어 아무래도 산행하는 맛이 덜하다. 경사까지 급해 승용차 없이 오른다면 분명히 약이 오를 것이다.
줄지어 있는 하얀색 납골탑들이 내리쬐는 햇빛을 반사해 그 모습이 비현실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눈이 시려 얼른 숲속으로 들어간다. 메마른 땅이 꺼끌꺼끌 딱딱하다. 사람들이 많이 다녀 부드러움은 다 벗겨진 탓일 게다. 밑에 있는 자치연수원에서 직원들이 자주 산을 탄다. 그 까닭인지 표지판도 잘 달려 있다.
정상부 능선에 오르자 거의 평지다. 한걸음에 내달리고 싶지만 이런 오솔길은 아껴두고 천천히 걸어야 제 맛이다. 정상 바로 전, 오른쪽 나뭇가지에 표지기가 달려있고 그 너머로 거뭇거뭇한 산들이 솟아 있다. 금북정맥의 산들이다. 제일 앞에 보이는 봉우리가 선두산(527m)이다. 그러고 보니 표지기가 달린 나뭇가지는 금북정맥으로 가는 문의 문지방 역할을 하고 있다.
5분쯤 가니 백족산 정상이다. 거친 숨 한번 없이 갑자기 나타난다. 평평한 터에 정상석 하나 달랑. 이것마저 없었다면 그냥 지나칠 뻔했다. 주변은 나무들이 에워싸 조망이 시원치 않다. 쉴 곳도 마땅치 않아 그대로 길을 따라 내려간다.
정상 밑에 팔각정이 있다. 소나무 사이로 보이는 조망도 괜찮다. 오른쪽으로 선두산과 이어진 능선이 장쾌하게 보인다. 그 풍경을 배경삼아 배낭을 벗고 잠시 쉰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원한 산행길이야. 얼마나 좋아. 천천히 걸으며 도란도란 이여기도 나누고. 꼭 그렇게 전투적으로 산행할 필요 없는 거야."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송대장의 '낮은 산 예찬'이 계속된다. 인기있는 산들에만 몰려있는 국내 등산인들을 전국의 숨겨진 산으로 분산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렇게 하려면 오늘 같은 산행의 즐거움을 널리 알려야 한다고 덧붙인다.
하산길 걱정 없는 듯 모두들 느긋하다. 지금까지 왔던 산길이 좋아 내려가는 길도 같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일찍 하산하는 것이 아쉬워 코스를 길게 잡기로 한다. 내려가는 도중 나타난 왼쪽 하산길(A코스)을 그대로 지나쳐 능선을 따라 내려간다. 완만한내리막이다. 널찍한 길이 은근슬쩍 좁아지더니 이내 덤불숲으로 바뀐다. 사진촬영을 위해 제일 앞서가던 정 기자는 "앞에 쳐진 거미줄을 다 걷어냈다"며 볼멘소리를 낸다. 길은 곳곳에 만들어 놓은 무덤으로 이어진다. 길을찾기 어려워질 때면 어김없이 무덤이 나타난다. 30분쯤 지나자 희미한 길 끝으로 농로가 나온다.
*산행길잡이
백족사 입구-(1시간)-백족사-(25분)-백족산 정상-(5분)-팔각정-(10분)-갈림길-(20분)-농로
내려가기 아쉬운 호젓한 산길
산 정상에서 이어지는 산줄기가 백개가 된다고 해 마치 지네발과 같은 모양이라 백족산이라고도 한다. 그런 이름과는 달리 청주로 가는 32번 국도변에서 보는 백족산은 둥그스름하고 펑퍼짐하다. 등산로 또한 완만하다. 다만 백족사 입구 표지판에서 백족사까지 이어지는 포장된 임도가 조금 가파르다.
공식적인 등산로는 A, B코스 두 가지다. 충북자치연수원에서 임의로 만들어 놓은 듯하다. A코스는 정상 밑 팔각정을 지나 원동마을로 이어진다. B코스는 정상에서 팔각정으로 가기 전 왼쪽 갈림길로 들어가 다시 자치연수원으로 원점회귀하는 코스다. 조금 더 길게 산을 타고 싶다면 A코스를 지나쳐 노계마을로 내려갈 수도 있다. A, B코스보다 길이 험하다. 30분 정도 덤불숲을 헤쳐 나가야 한다. 길이 갑작스럽게 없어지기도 하는데 주변의 무덤을 이정표 삼아 하산해야 한다.
백족산 정상 전에 선두산으로 이어진 길이 있다. 오른쪽으로 표지기가 여러 개 달려 있어 쉽게 찾을 수있다. 그 길을 따라가면 바로 금북정맥 능선이다. 산행이 심심하다면 선두산, 선도산을 거쳐 상당산성까지 마라톤 종주를 하는 것도 괜찮다.
*교통
청주터미널에서 미원 방향 육거리시장 가는 버스(405, 502, 821)를 탄다. 요금 1,000원. 육거리시장에서 미원으로 가는 21번 시외버스를 타고 운수연수원 앞에서 하차하면 백족산이 보인다. 요금 1,600원. 30분 정도 걸린다.
승용차로는 청주를 출발, 지방도를 따라 미원쪽으로 간다. 20분쯤 가면 오른쪽으로 가덕초등학교가 나오고 곧이어 오른쪽으로 충북자치연수원 표지판이 보인다. 상아교를 건너 5분쯤 들어가면 오른쪽 백족사 표지판이 보인다. 50m 위쪽이 충북자치연수원이다.
*잘 데와 먹을 데
가덕면 한계리에 소나무숲 멧돼지(043-286-5552), 염소탕으로 유명한 산앙골가든(297-5565)이 있다. 한계저수지 안쪽으로 들어가면 돼지고기 장작구이로 유명한 산울림가든(294-2292)이 있다. 병암리 32번 국도변에 오리바비큐 전문인 촌(284-6900)과 두부요리가 맛있는 콩쥐콩쥐(292-2223)가 있다.
청주시에 숙박업소가 많다. 가덕면에 모텔 클레오파트라(283-2126)가 있다.
*볼거리
백족사 본래 이름은 심진암이었으나 뒤에 산 이름을 따서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근처에서 발굴된 유물로 보아 고려 초기에 창건된 것으로 보인다. 1940년대에 발견되어 복원한 삼층석탑(청원군 문화재자료 제59호)과 산신각바위에 좌정하고 있는 부처님 옆모습을 하고 있는 산왕불이 있다. 또한 대웅전에 있는 석조여래좌상은 하대석, 중대석, 상대석으로 이루어진 연화대좌가 원형대로 남아 있어 백족사 자리에 있었던 고려시대 절터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글쓴이:윤성중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