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국보급 문화재 <조선왕조실록>은 임금들의 하루 일과가 오롯이 기록된 세계에 둘도 없는 희귀한 기록물이다. 조선시대 궁궐 내에서 펼쳐지는 임금님의 통치행위가 빼곡하게 기록되어있다. 매일매일 기록한 초고는 그 임금이 죽은 뒤 하나의 실록으로 묶인다. 태조에서 철종까지 조선 25대 왕들의 연대기인 셈이다. 물론 연산군과 광해군은 ‘실록’대신 ‘일기’로 불린다. 이 기록물은 사대사고(四代史庫)에 보관되었고 수많은 전화를 거쳐 오늘날까지 남아있다. 이 기록물은 10여 년 전에 디지털로 DB화가 되었고, 이제는 인터넷에 한자 원문과 한글해석본이 나란히 올라있어 어느 왕 어느 시절에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를 누구나 열람해볼 수 있다.
광해군은 조선의 15대 왕에 해당한다. 어릴 때부터 영특한 세손이었지만 시대와 부모를 잘못 만난 불운을 타고 났는지, 못난 아버지 선조 때 임진왜란이 일어난다. 선조는 백성의 안위는 신경도 안 쓰고 저 혼자만 살 요량으로 북으로 도피했다. 왕이 엄연히 살아있음에도 광해군은 왕세자의 신분으로 실제 전쟁을 지휘하는 임금의 역할을 떠맡았다. 이른바 분조(分朝)라는 것이다. 광해군은 아버지 몫까지 다해가며 조선 땅을 사수하고 조선백성을 지켰다. 전쟁이 끝나고 선조는 백성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광해군을 싫어해서 아니 질투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어쨌든 폐세자 시킬 생각까지 했었지만 결국 그 전에 죽고 광해군은 왕이 된다. 하지만 당시 조선의 운명은 위태로웠다. 밖으로는 하늘같이 따르던 명이 멸망 직전이었고 유교라면 껌벅 죽던 당시의 조선이 그리도 깔보던 북쪽 오랑캐(누르하치의 후금)는 날로 세력을 확장시켜나갈 때였다. 임진왜란을 거치며 정신을 차렸을만한 조선사대부들은 여전히 당파싸움질이었고 광해군은 그렇게 궁궐의 한복판에서 미래 없는 왕 노릇을 하고 있었다.
광해군 8년(1616년) 2월 28일. 광해군은 아침 수라를 들다 은수저가 검게 변하는 것에 기겁한다. '내 목숨을 노리는 역모가 어느새 여기까지 도달하였단 말인가'를 생각한 광해군은 유일한 신복 허균에게 자신을 쏙 빼닮은 사람을 구해오라고 은밀히 전한다. 허균은 저잣거리 기방에서 나라님 흉보기를 하며 밥먹고 사는 광대 하나를 눈여겨본다. 그리고 한밤에 그를 궁으로 데려와 광해군 앞에 선보인다. 광해군은 자신을 쏙 빼닮은 이 인물이 크게 쓰임새가 있을 것임을 안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광해군은 원인모를 이유로 쓰러져 혼절한다. 허균은 서둘러 광해군을 모처로 빼돌리고 광해군을 빼닮은 광대를 ‘광해군’인양 용좌에 앉힌다. 용케도 광해군을 노리는 무리들을 향해 광대는 자신에게 주어진 광대 짓에서 벗어나 조금씩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대동법을 속히 실시하라” “사대주의 짓거리를 때려치우고 백성을 우선 생각하라!”고.
역사에 폭군으로 남아있는 광해군의 진실은 무엇일까? 암살의 위험에 노출된 유명인사의 바디 더블(Body Double)을 다룬 이야기는 많다. 그리고 우연찮게 닮은 인물이 대리역할을 한다는 이야기도 흔하다. 최근에 개봉된 <나는 왕이로소이다>는 닮은꼴 세종이 등장하여 왕자와 거지 이야기를 펼친다. 카케무사도 그렇고, 이라크의 독재자 후세인에게도 그런 바디 더블이 있었다. 광해군에게 그런 일이 있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조선왕조사에서 드라마틱한 한 부분을 재현하는데 이만큼 흥미로운 설정이 어디 있으랴.
“숨겨야할 일들은 기록에 남기지 말라 이르라” (傳敎曰曰 可諱之事 勿出朝報). 이 말은 조선왕조실록 광해 108권 8년 2월 28일자에 있다.
국사편찬위의 번역은 “숨겨야 할 일들은 조보에 내지 말라고 전교하다”로 나와 있다. 작가의 상상력은 이 한 줄의 어명에서 한 편의 근사한 시나리오를 뽑아낸 것이다. 광해군이 숨기려고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지긋지긋하게 올라오는 사대부들의 꽉 막힌 상소문이었을까, 오늘은 누구를 내일은 누구를 추국하라는 죽음의 밀명이었을까. 명나라에는 숨겨야만했던 약소국 왕의 ‘의지’였을까. 추창민 감독은 그동안 역사에서 가장 확실한 암군(暗君), 혼군(昏君) 평가를 받은 광해군을 새롭게 평반(平反)하려고 시도했다. 물론 ‘그’ 광해가 아니라 ‘이’ 광해를 통해서. 그러니 현실적으론, 역사적으론 존재하지 않았던 역사의 판타지가 펼쳐지는 것이다. 당시 왕은 명과 오랑캐 사이에서, 이 정파와 저 정파 사이에서 위태롭게 외줄을 타며 연명했던 것이다.
이 영화에서 1인 2역의 광해군 역할을 한 이병헌의 연기는 여유롭고 향기가 난다. 때로는 역사의 유물이 된 폭군의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당시 민초의 마지막 희망을 그린 저자거리 광대가 되어 인간미를 풍긴다. 그의 추임새에 관객은 완전히 빠져든다. 그런 광해군의 옆을 지키는 류승룡, 한효주, 장광, 김인권, 심은경 등 조연들도 사극드라마의 생생함과 무게를 적절히 실어준다.
역사드라마는 항상 가정법과 아쉬움을 남긴다. “그 때 그랬었더라면”이라거나 “만약 그였더라면...” 같은 대체불능의 가설 때문에 후대를 안타깝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가끔은 내려오는 역사적 기록에 대한 신뢰도 문제로 실제의 역사에 대해 의문을 품기도 한다. 광해군이 한 수많은 악행은 후대(인조반정)의 졸문(왜곡)이라거나 실제 알고 보면 광해군은 당시의 불안전한 상황에서 절묘한 외교술을 펼친 명군이라는 평가까지. 영화 한편으로 이렇게 바닥에서 공중으로 완전 부양(浮揚)한 역사적 인물을 찾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만큼 시나리오가 멋졌든지 아니면 이병헌이 매력적이었다는 말일 것이다.
그런데 정말로 궁금한 것이있다. 광해가 대변을 보는 장면을 지켜보는 것은 그렇다치더라도 임금의 소화상태를 확인하기 위해서 변(便)을 찍어 먹었다는 말이 정말일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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