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버스 기사들의 인심은 아직 야박하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야박이라는 건 아무래도 속도와 승차객의 수에 비례해서 발생할테니 말이다. 빠른 것이 요구될수록 상급자의 꾸중에 대한 공포와 짜증때문에 속도는 재촉된다. 마찬가지로 그러할 때 승차객의 수는 그런 감정을 증폭시킨다. 최소한 버스 기사에겐 그렇다. 노인들이 안전히 땅 위에 착지하는 모양을 뒷거울로 확인한 뒤에야 버스는 비로소 출발한다.
풍경은, 사람들이 채 지면에 그들의 발을 내리기도 전에 차문을 닫는 스위치를 내려, 하차 발판에 마련된 압력 게이지가 보내는 요란한 소음이 수시로 귓가를 윙윙대는 서울과는 사뭇 다르다. 다리가 불편한 노인의 하차를 인내심 깊게 참아주는 기사의 사려깊음에 나는 슬며시 흐뭇한 웃음을 내린다.
도로 이곳 저곳에서는 작년, 전대미문의 대홍수로 손실된 곳을 복구하는 모습이 한창이다. 숲사이로 여러 가게들이 즐비한 앞쪽에 나는 하차한다.
5년 만인가? 사랑의 종말을 극기하려는 몽상으로 홍수진 계곡을 홀로 거슬러 야영하던 때가? 혼자 다시 밟는 그 너럭 바위들이 가려진 기억의 장막을 하나둘 벗는다.
우선 화장실로 간다. 선배가 손에 쥐어 준 디지털 카메라를 점검하고, 오면서 구입한 반바지로 여정 초입의 마음을 수습한다.
MT를 온듯한 한떼의 사람들에게 나는 기분좋은 마음으로 사진 몇 장을 흔쾌히 찍어주었다. 상쾌한 기분이다. 영은사와 학소대, 그리고 쌍폭포를 지나 용추 폭포 아래에 도착한다.
"접근 금지"가 붙어있는 동해시장의 엄중 경고를 무시하고 나는 폭포 아래로 바짝 접근해서 풍경 몇 조각을 시각 속에 영원히 담았다. 아마 나는 건강한 모범 시민 쪽보다는 성실한 후배로 기억되길 바랬던 걸까? 아마 후자쪽일 것 같다.
폭포 아래, 얼음장 같이 차고 투명한 물에 발을 담궈 탁족한다. 탁족의 유교적 의미를 생각해 볼 짬도 없이 발은 금새 찌릿한 고통을 급히 타전한다. 고통은 곧 풍류를 먹어치운다.
가슴을 두어번 펴서 심호흡을 깊이 한 다음 본격적인 산행을 준비한다. 이제부터가 본편이다. 두타산성으로 오르는 이 험한 길은 작년 홍수의 여파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것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바위가 구르고 나무가 뽑히면서 옛 길의 자취는 찾을 수가 없다. 새로 난 어린 길들이 등산객들의 꼬리표를 따라 졸망하게 이어진다. 이 길을 따라 나는 미로면 천은사 방향으로 하산할 작정이다.
두타산성에서 정상까지 대략 7Km. 2Km를 남겨둔 지점에서 오이와 '자유시간' 하나를 달게 먹었다. 이곳까지 가파른 능선의 연속이었다. 높아지는 고도와 함께 냉랭하고 건조한 공기들이 등받이의 땀을 섬뜩하게 식혀주었다. 몇 년 전에 이 길을 걷다 떨어졌던 낭떠러지도 큰 느낌을 주지 않은 것은 아무래도 턱까지 차오른 가쁜 호흡의 들숨으로 상대적으로 적은 농도의 산소가 주입되는 탓인 듯 했다.
어느 지점에서 부터인가 산풀과 꽃들, 나무들의 풍경과 따라붙는 벌레들의 움직임과 생김새도 다른 듯 했다. 힘들게 올라간 낯익은 능선에서 보이는 탁트인 봉우리들과 그 사이의 골짜기들이 기암의 솟구친 괴석을 표지판처럼 달고 마음 한 켠을 뻥하고 뚫어내는 느낌이다. 이 느낌은 언제나 같다.
아침에 사진이나 찍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흐리더니 벌써 8번째 두타산행인 나에게는 게중 가장 쾌청한 날씨다. 역시 누군가의 말처럼, 운이란 노력하는 자 만이 얻을 수 있는 덤인가 몰랐다.
목청껏 '그날이 오면' 한 소절을 돋워 부르고 다시 산행을 시작한다.
여러 이름난 산들 중에 두타산만큼 그 정상에 올랐을 때의 성취가 밍밍한 산도 드물 것이다. 그것은 화려한 시야를 전혀 제공하지 못한다. 다만, 등산의 여정에 간혹 뵈던 그 정교한 풍경들과 경험해 본 자 만이 느낄법한 정복욕 정도가 그 곳에 서 있을 뿐이다.
천은사 쪽으로 하산했다.
막차가 끊겨서 다른 사람들의 차를 얻어타야했다.
사진을 건네주고 나는 떳떳하게 밥을 얻어먹었다.
몸이 꽤나 노곤했는 지 코피가 연방 흘러내렸다.
아주 곤히 잠들었다.
2. 낚시 이야기
군은 역시 유혹에 약하다.
그에 반해 내 잔머리는 가히 천재적이라 할 만하다.
그렇다고 군이 항상 속는 것은 아니다.
제 꾀에 제가 속는 경우는 허다하기 때문이다.
현충일은 마침 공휴일이라 군도 쉬었다.
낚시 가자고 한 것은 당연한 일.
귀찮아하는 기색이 역력한데도,
나는 모든 장비를 내가 준비할테니 너는 운전만 하라 일렀다.
'단순한 녀석'
결국 갈거면서..
우리는 그간 여러 번의 뼈아픈 낚시 경험이 있었다.
그 뼈아픈 경험이란,
낚시 가서 회쳐먹을 고기다운 고기를 잡지 못한 것에서 기인한다.
우리는 그래서,
미지의 장소를 물색했다.
다만 미심쩍었던 것은,
군은 작은 릴낚시로 뭔가 물고기다운 물고기를 건졌다는 것을 힘주어 말했지만,
나는 아직껏 그 릴에 뭔가 걸려서 올라온 것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말 대박이 났다.
우리는 회를 뜰 놀래기를 무려 네마리나 잡았다.
마지막 놈은 내가 십수년간 경험해본 적이 없는 25Cm이상은 될 법한 놈이었다.
소주도 없이 우리는 그 놈들을 잔인하게 회쳐먹었다.
어머니가 오기 전에 특별히 갈아주셨던 무식한 풀베는 칼로.
삼척으로 나와서는 여러 술집을 전전하며,
또 여러 사람을 만나,
제법 진절머리나는 진지한 얘기를 한 듯 한데,
기억이 안나는 걸 보면 그게 진지한 얘기가 아니라,
남들 듣기엔 무겁다 못해 지겨운 얘기였을 거라 생각된다.
그런데 군이 정말로 애인이 생겼을까?
나는 아직도 판단이 왔다리갔다리다.
여러 가지 정황을 종합해 볼 때,
통상 얘기하는 하루 못보고도 눈에 가시박히는 애인인 것 같지는 않고,
글자 뜻 그대로 애인일 성 싶다.
메시지를 보내거나 전화 대화의 창구가 열려있는 걸로 봐서는
어느 정도 서로 호감이 있다는 얘기일테니
초기 단계인지도 알 길이 없다.
워낙에 잔머리를 많이 굴리는 나이기에
단순하고도 순수한 군의 말을 너무 갈아버렸는 지도 알 수 없다.
하여간 뭔가 속았다는 느낌.
그리고 또 즐거웠다는 기억.
군은 늘 내게 '널 만나면 뭔가 특별한 일이 생긴단 말야'하곤 했지만,
천만에.
그건 도리어 내가 군에게 들려주고 싶은 얘기.
바다는 보는 것만 해도 그윽하다.
나는 낚시가서는 낭만이랑은 거리가 멀고, 사냥꾼이 되지만
군은 늘 바다를 그윽히 본다.
저 자세면 만년에 그의 꿈처럼 바닷가에서 그림을 그려도 좋겠다.
첫댓글누군가 이야기 하더군요.... 버스요금과 지하철요금 등이 올랐을때..."또 올랐어 내 용돈이 얼마인데, 미쳐버리겠군"이라며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수요의 가격탄력성이 1보다 적기 때문에 가격을 올렸군"이라며 말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예전엔 이해할 수 있는듯 느껴졌던 형의 말들이 해를 거듭할수록 점점.
첫댓글 누군가 이야기 하더군요.... 버스요금과 지하철요금 등이 올랐을때..."또 올랐어 내 용돈이 얼마인데, 미쳐버리겠군"이라며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수요의 가격탄력성이 1보다 적기 때문에 가격을 올렸군"이라며 말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예전엔 이해할 수 있는듯 느껴졌던 형의 말들이 해를 거듭할수록 점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