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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
파리를 조문한다(弔蠅文)
순조 10년(1810) 경오년 여름에 쉬파리가 극성하여 온 집안에 가득차고 우물우물 번식하여 산골에까지 득실거렸다. 고루거각(高樓巨閣)에서도 일찍이 동사(凍死)하지 않더니 술집과 떡집에 구름처럼 몰려들고 윙윙거리는 소리가 우레 같았다. 노인들은 탄식하며 괴변이라 하고, 소년들은 성을 내며 파리 소탕전을 펴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혹은 파리 통발을 설치하여 거기에 걸려 죽게 하고, 혹은 파리약을 놓아서 그 약기운에 어질어질하게 하여 섬멸하여 했다.
나는 말하였다.
아아! 이는 죽여서는 안되는 것으로, 이는 굶주려 죽은 자의 전신(轉身)이다. 아아! 기구하게 사는 생명이다. 애처롭게도 지난해 큰 기근을 겪고 또 겨울의 혹한을 겪었다. 그로 인해서 염병이 돌게 되었고 게다가 또 다시 가혹한 징수까지 당하여 수많은 시체가 길에 널려 즐비하였고, 그 시체를 버린 들것은 언덕을 덮었다. 수의도 관도 없는 시체에 훈훈한 바람이 불고 기온이 높아지자, 그 피부와 쌀이 썩어 문드러져 옛 추깃물과 새 추깃물이 괴어 엉겨서 그것이 변해 구더기가 되어 냇가의 모래보다도 만배나 많았는데, 이 구더기가 날개를 가진 파리로 변해 인가로 날아드는 것이다.
아아! 이 쉬파리가 어찌 우리 인간의 유(類)가 아니랴. 너의 생명을 생각하면 눈물이 줄줄 흐른다. 이에 음식을 만들어 널리 청해 모여들게 하니 서로 기별해 모여서 함께 먹도록 하라.
그리고 다음과 같이 조문하였다.
파리야, 날아와서 이 음식 소반에 모여라. 수북이 담은 쌀밥에 국도 간 맞춰 끓여놓았고, 무르익은 술과 단술에 밀가루로 만든 국수도 겸하였으니, 그대의 마른 목구멍과 그대의 타는 창자를 축이라.
파리야, 날아와 훌쩍훌쩍 울지만 말고 너의 부모와 처자를 모두 거느리고 와서 여한 없이 한번 실컷 포식하라. 그대의 옛집을 보니, 쑥덩굴이 가득하며 댓돌은 무너지고 벽도 허물어지고 문짝도 기울었는데, 밤에는 박쥐가 날고 낮에는 여우가 운다. 그대의 옛밭을 보니, 가라지만 길게 자랐다. 금년에는 비가 많이 내려 흙에 윤기가 흐르건만, 마을엔 사람이 살지 않아 잡초만 우거지고 일구지를 못했도다.
파리야, 날아와 이 기름진 고깃덩이에 앉으라. 살진 소다리의 그 살집도 깊으며, 초장에 파도 쪄놓고 농어 생선회도 갖추어 놓았으니, 그대의 허기진 창자를 채우고 얼굴을 활짝 펴라. 그리고 또 도마에 남은 고기가 있으니, 그대의 무리에게 먹이라. 그대의 시체를 보니 이리저리 언덕 위에 넘어져 있는데, 옷도 못 입고 모두 거적에 싸여 있다. 장마비가 내리고 날씨가 더워지자 모두 이물(異物)로 변하여, 꿈틀꿈틀 어지러이 구물거리면서 옆구리에 차고 넘쳐 콧구멍까지 가득하다. 이에 허물을 벗고 변신하여 구속에서 벗어나고, 송장만 길가에 있어 행인이 놀라곤 한다. 그래도 어린 아이는 어미 가슴이라고 파고들어 그 젖통을 물고 있다. 마을에서 그 썩는 시체를 묻지 않아 산에는 무덤이 없고, 그저 움푹 파인 구렁창을 채워 잡초만이 무성하다. 이리가 와 뜯어먹으며 좋아 날뛰는데, 구멍이 뻐끔뻐끔한 해골만이 나뒹군다. 그대는 이미 나비 되어 날고 번데기만 남겨놓았구 나.
파리야 날아서 고을[縣]로 들어가지 말라. 굶주린 사람만 엄격히 가리는데 아전들이 붓대 잡고 그 얼굴을 살펴본다. 대나무처럼 빽빽이 늘어선 사람 중에 다행히 한번 간택된다 하여도 물같이 멀건 죽 한 모금 얻어 마시면 고작인데도 묵은 곡식에서 생긴 쌀벌레는 상하에 어지러이 날아다닌다. 돼지처럼 살찐 건 호세 부리는 아전들인데, 서로 부동하여 공로를 아뢰면 가상히 여겨 견책하지 않는다. 보리만 익으면 진장(賑場)을 파하고 연회를 베푸는데, 북소리와 피리소리 요란하며, 눈썹이 아름다운 기생들은 춤추며 빙빙 돌고 교태를 부리면서 비단 부채로 가린다. 비록 풍성한 음식이 있어 남아돌아도 그대는 먹을 수가 없단다.
파리야 날아서 관(館)으로 들어가지 말라. 깃대와 창대가 삼엄하게 벌려 꽂혀 있다. 돼지고기 쇠고깃국이 푹 물러 소담하고 메추리구이와 붕어지짐에 오릿국, 그리고 꽃무늬 아름다운 중배끼 약과를 실컷 먹고 즐기며 어루만지고 구경하지만, 큰 부채를 흔들어 날리므로 그대는 엿볼 수도 없단다. 장리(長吏)가 주방에 들어가 음식을 살피는데, 쟁개비에 고기를 지지며 입으로 숯불을 분다. 계피물 설탕물에 칭찬도 자자하나, 호랑이 같은 문지기가 철통같이 막아서서 애처로운 호소를 물리치면서 소란을 피우지 말라고 한다. 안에선 조용히 앉아 음식 먹으며 즐기고 있고 아전놈은 주막에 앉아 제멋대로 판결하고, 역마를 달려 여리(閭里)가 편안하다고 치보(馳報)하되, 길에는 굶주린 사람 없고 태평하여 걱정이 없다고 한다.
파리야, 날아와 환혼(還魂)하지 말라. 지각없이 영원토록 혼혼한 그대를 축하한다. 죽어도 앙화는 남아 형제에게 미치게 되니, 6월에 벌써 조세를 독촉하는 아전이 문을 걷어차는데, 호령 소리가 사자의 울음 같아 산악(山岳)을 뒤흔든다. 가마솥도 빼앗아가고 송아지와 돼지도 끌어간다. 그러고도 부족하여 관가로 끌어다가 주릿대로 볼기를 치는데, 그 매를 맞고 돌아오면 기진하여 염병에 걸려서 풀 쓰러지듯 고기 물크러지듯 죽어가지만, 만민의 원망 천지 사방 어느 곳에도 호소할 데가 없고, 백성이 모두 사지에 놓여도 슬퍼할 수가 없다. 어진 이는 위축되어 있고 뭇 소인배가 날뛰니, 봉황은 입을 다물고 까마귀가 까옥거리는 격이다.
파리야, 날아가려거든 북쪽으로 날아가라. 북쪽 천리를 날아가 구중궁궐에 들어가서, 그대의 충정(衷情)을 호소하고 그 깊은 슬픔을 진달하라. 강어(强禦)를 겁내지 말고 시비가 없다. 해와 달이 밝게 비치어 그 빛을 날리니, 정사를 펴서 인(仁)을 베풀고 신명에 고함에 규(圭)를 쓴다. 천둥같이 울려 임금의 위엄을 감격시키면 곡식도 잘 익어 백성들의 굶주림도 없어지리라. 파리야, 그때에 남쪽으로 날아오라.
<정약용 저, 박석무·정해렴 편역, 다산문학선집, 현대실학사, 1996>
부모에게 효도하는 길(諭谷山鄕校勸孝文)
효자가 자기 어버이를 봉양하는 일은 어버이의 뜻을 봉양함에 있었기 때문에 성인(聖人)께서 먹고 입는 일만 봉양함을 무척 경계삼도록 하셨다. 그러나 세상이 갈수록 타락하고 도덕이 날로 빛을 잃고 있는 탓인지, 먹고 입는 것만을 봉양하는 사람조차 도리어 찾아보기 어렵다. 먹고 입는 일만 봉양할 사람이 있다면 이 사람이야말로 역시 효자의 부류이리라. 더구나 일반 백성들의 뜻이란 대인군자(大人君子)와는 달라서 먹고 입는 일말고는 별다른 뜻을 가지기가 힘들어 곧 먹고 입는 일만 봉양해 드릴 수 있으면 더러는 뜻까지 함께 하여 봉양받은 것으로 여기지 않을 수 없다. 연약한 백성들이나 서민들이 어찌하여 먹고 입는 것에 대한 봉양만이라도 부지런히 힘쓰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맹자(孟子)는 "5묘의 주택지의 담장 아래 뽕나무를 심으면 50세의 사람이 비단옷을 입을 수 있으며, 닭·개·돼지 등의 가축을 그 때를 놓치지 않고 기른다면 70세 노인이 고기를 먹을 수 있을 거다"라고 하였다. 이는 곧 옛날의 훌륭한 임금들이 누에치기와 명주짜기를 백성들에게 권하고 가축 기르기를 권했던 까닭은 정말로 그런 일을 해서 그들의 부모를 봉양하게 하려는 것이지 이익을 늘리고 재산을 모으게 하려고 했음은 아니었다. 요즘 가축 기르는 정책이 오랫동안 등한하여 없어져 가는 지경이지만, 그러나 더러는 여인들 중에 열심히 누에를 쳐 명주를 짜기도 하고 남자 중에는 가축 기르는 일에 힘쓰는 사람도 있다. 한 필의 비단을 짜내면 금방 시장에 달려가 팔아서 돈을 만들 생각이나 하고 병아리 한 마리라도 키워내면 급히 읍내에 들어가 돈으로 바꿀 생각이나 하고 있어, 저고리 하나라도 만들고 닭고깃국 한 그릇이라도 준비하여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릴 일은 하지 않고 있으니 역시 서글픈 일이 아닌가.
그 사람들 중에는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아 아직 그러할 겨를이 없다고 여길 것인데, 이게 다른 날을 기다릴 수 있는 일이겠는가. 아아, 바람이 불면 나무는 항상 고요할 수 없는데 어버이 나이가 어떻게 오래도록 멈추어 있으랴. 참으로 어버이의 나이 먹어가는 하루라도 애석해하는 효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의당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음식의 미세한 맛인 시고 짜거나 달고 떫은 것에 대해서는 군자들이 결코 신경을 쓰고 있지 않은데, 『예기(禮記)』의 내칙(內則) 등과 같은 여려 편에서는 고기 굽는 일, 고깃국의 맛이나 생강·계피·양념 식초 간장의 품질 등 잗다란 것들을 정밀하고 핵심적으로 논란해 놓아 번거롭고 복잡하며 정중함을 잃는 것을 꺼려하지 않았는데, 이건 왜 그렇게 하였을까. 그건 부모를 봉양하기 위함이어서다. 요즘 사람들은 집안의 재산이 조금만 넉넉하여도 부녀자들이 손수 밥을 짓거나 반찬 장만하는 일도 하지 않고, 남자들이야 더욱 고자세로 관남녀 종들이나 매를 때리며 꾸짖고는 끝내 자기들의 잘못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으니, 이 또한 미혹된 짓이 아니겠는 가.
요즘 세상의 학자들이란 가까스로 학문한다는 이름만 나도, 갑자기 자랑이나 무겁게 하며, 천(天)이나 지껄이고 이(理)나 떠들어대며 음(陰)이다, 양(陽)이다 하고는 벽 위에 태극팔괘(太極八卦)·하도낙서(河圖洛書) 따위의 그림을 그려놓고 스스로 일컫기를 완색(玩索)한다고 하면서 어리석은 사람들이나 속여먹고 있다. 그러나 자기 부모가 한창 춥다고 하소연하며 배고픔을 참다가 병이 들어 깊은 병세가 되어도, 게으름 피우며 보살펴 드리지도 않은 채 편안히 노동도 않으니, 그러한 완색(玩索)은 부지런히 하면 할수록 학문하는 일과는 더욱 멀어져 버리는 것이다. 진실로 부모에게 효도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비록 배우지 않은 사람이라도 나는 반드시 배운 사람이라고 말하겠다. "
효자의 행동으로서 손가락을 잘라 피를 내거나 어버이의 똥을 맛보아 병세를 살피는 일 같은 것은 정말로 훌륭하고 기특한 품행이 아니랄 수는 없지만, 그러나 순(舜)임금·증자 (曾子)·윤자기(尹子奇)·민자건(閔子騫)과 같은 옛날의 효자들은 왜 그러한 일을 하지 않았을까? 만약 살아계실 때 섬기고 죽어서 장례치르고 제사지내는 일들을 예로써 하여 백가지 행실이 모두 갖추어져 있어 하나라도 모자람이 없는 사람이라면, 비록 한가지의 기이한 품행이 없다 하더라도 그런 사람이 바로 효자인 것이다. 또 얼음 속에서 잉어가 뛰어나오고, 눈 속에서 죽순이 솟아나오고, 꿩이 던져지고, 호랑이가 타라고 땅을 긁는 것과 같은 자취는 옛날 사람들의 특이한 신령스러움이 나타났던 일이지 어떻게 그러한 일이 항상 있을 수 있는 일이겠는가. 고을이나 마을에서 효행한 사람을 칭송하는 일로, 했다 하면 옛날의 기적과 같은 그런 소리를 답습하고 있는데, 더러는 사실과 틀린 소리였다. 사람의 아들이 되어 설사 그러한 기적이 있었다 하더라도 의당 자신의 비밀로 가려 두고 남이 알도록 하지 말아야 한다.
불효의 단서가 되는 것으로 두 가지가 있는데 아내와 재물이 바로 그거다. "젖먹이 어린이도 자기 어버이 사랑할 줄 모르는 아이가 없다."라는 말은, 젖먹이의 어리석음으로도 오히려 부모 사랑할 줄을 안다는 것이다. 내가 볼 때, 젖먹이의 어린애 때조차도 자기 어버이를 사랑할 줄 알면서 어른이 되어서는 반대로 더러 그걸 모른다고 한다면 무엇 때문일까. 아내와 재물이 가리어 버리기 때문이다. 아내 와 재물이라는 것은 본래 부모에게 효도하기 위한 것이었다. 아내란 장차 시켜서 살아계시는 동안에는 맛있는 음식을 마련하게 하고, 돌아가신 뒤에는 제사지내고 자식을 낳아 길러서 조상을 잇게 하려는 거다. 재물이란 장차 부모에게 옷과 음식을 해드리게 하려는 것이요, 부모의 장례나 제사의 비용에 이바지하는 것이다. 아내가 없고 재물이 없다면 사람의 자식이 되어 어떻게 효도를 할 수 있겠는가. 다만 아내를 자기 개인의 아내로만 해버리고 재물을 자기 개인의 재물로만 해버려 부모가 자기의 아내를 편하게 해주지 않는 걸 보고서는 원망하고, 부모가 자기의 아내를 수고스럽게 하는 것을 보고는 부모를 비난한다. 소곤소곤 안방에서만 가까이 붙어 지내며 자기 부모를 외면해 버리는데, 이게 바로 불효하는 원인이다. 부모가 자기의 재물을 축내는 걸 보면 인색스러워지고, 부모가 자기의 재물을 다른 형제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을 보고서는 걱정스러워 상자 속에다 비밀히 단단히 은닉시켜 두고는 부모를 외면해 버리니, 이런게 불효하는 까닭이다. 아내란 바로 내 부모의 며느리다. 나만 어떻게 내 것으로 하랴. 재물이란 바로 내 부모가 일으켜 놓으신 거다. 어떻게 내 것으로만 해버릴 것인가. 나란 바로 내 부모의 유형(遺形)이다. 내 몸이 어떻게 나 혼자만의 몸이겠는가. 참으로 이런 점을 알아야 효도할 수 있게 된다.
어떤 친구 한 사람이 어느 날 그대를 위험스러운 횡액으로부터 구해 주었다고 하자 그대 는 그 친구에게 은혜 갚으려는 생각을 하지 않을 테냐. 또 어떤 친구 한 사람이 어느 날 그대에게 백냥의 재물을 도와 주었다고 하자. 그대는 그 친구에게 은혜 갚으려는 생각을 하지 않을 거냐. 심지어 종이나 노예 등이 더러 너의 병을 간호해 주며 너의 입에 떡을 먹여주었다고 하면, 너는 입이 닳도록 그들의 공을 칭찬하며 못내 아끼는 정을 품을 것이다. 아아, 인생이 지극히 위험스러워서 조심조심 보살피기 힘드는 일은 갓난애기 때보다 더 심함이 없다. 자기 부모로 하여금 일각이라도 사랑스럽게 돌봐주고 보호하는 일을 잊어먹게 한다면 갓난애가 어덯게 안전무사하겠는가.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날 때는 대체로 맨손으로 태어난다. 옷을 입혀 주고 먹여주며 아울러 전답과 집을 물려준다. 비록 만냥의 돈을 물려주지 않았다고 부모가 아닐 것인가. 지난번에 친구의 하루 동안 은혜에 대해서는 죽을 때까지 잊지 않고, 지난번의 종이나 노예의 하루 동안의 수고에 대해서는 마음에 새기고 잊을 줄 모르며, 지금 부모야말로 호천망극(昊天罔極)의 은혜인데도 망연하게 잊어먹고는 마치 당연히 해주어야했던 일인 것처럼 생각해버리고는, 숫제 그 만분의 하나라도 보담해 드리려고 하지 않으니 이게 도대체 무슨 이치인가. 사람의 자식이 되어 어찌 이 문제에 대하여 심사숙고해 보지 않을 건 가.
남자들이 장인·장모에게 겉으로는 건성건성하는 것 같지만 속으로는 은근한 정을 두고 있다. 부인들은 시부모에게 겉으로는 존경하는 것처럼 하지만 속으로는 비난할 점만 가지고 있으니, 이거야말로 참으로 미혹된 일이다. 『예기(禮記)』에 "며느리가 시부모 섬기는 일을 친정 부모 섬기듯 한다."라고 하였으니, 정말로 시부모에게 불효하는 사람은 그 부모에게 하는 일도 알아볼 만하다. 시부모는 자기 며느리를 자기 자식같이 보기 때문에 바라는 바가 매우 깊다. 그러나 며느리는 시부모 보기를 친부모와는 다르게 하기 때문에 그 바램에 부응하지를 못하니, 이렇게 정이 붙지를 않아 가도(家道)가 어그러져 버린다. 참으로 아내로 하여금 자기 남편이 뜻이 한결같이 효도하려는 마음만 있고 딴 마음 먹는게 없음을 알게 해준다면 남편의 환심을 사려고 해서라도 효성으로 시부모 섬기는 일을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니, 그렇게 오래 하다 보면 물이 들고 감화되어 흔연히 저절로 효부가 되리라. 이것으로 본다면, 며느리의 불효는 그 남편이 불효한다는 명확한 증거다. 무슨 말이 더 있겠는가.
순임금은 어떻게 효도했을까. 계모를 아주 잘 섬겼었다. 윤자기(尹子奇)는 어떻게 효도했을까. 계모를 아주 잘 섬겼었다. 왕상(王祥)은 어떻게 효도했을까. 계모를 아주 잘 섬겼었다. 계모의 마음에 맞도록 하지 못하는 사람이 항상 계모를 귀찮게 여기니, 장차 그렇게만 한다면 어떨 것인가. 계모의 마음을 기쁘게 해주는 데는 방법이 있으니, 계모의 아들과 지극한 우애를 하기만 한다면 계모를 기쁘게 해줄 수 있다. 순임금이나 윤자기는 모두 이 방법으로써 효도의 극치를 이룩했었다. 그러한 입장에 있는 사람은 거의 깜짝 놀라듯 깨우치리라. 만약 계모에게 자식이 없는 이는 그 마음이 진실로 갈라지지 않을 것이다.
요즈음 부부간에는 좋아서 화합함이 마치 금슬(琴瑟)을 두드리는 것 같음이 있으나 형제간에는 전혀 화목하지 못한다. 친구들과는 붙쫓아다니면서 죽고 살기를 허락하면서도 형제간에는 지나는 길손처럼 여겨버린다. 그렇게 되면 성인들이 교(敎)를 세워놓은 뜻이 어떻게 되어버리겠는가. 성인들이 다섯 가지 가르침을 세워놓을 때 아내와 친구는 넣지도 않았다. 다섯 가지 가르침이란 아버지·어머니·형님 ·아우·자식이었다.
형제란 나와 부모를 함께 하고 있으니, 이 또한 나일 뿐이다. 형은 나보다 먼저 나온 사람이고 아우는 나보다 뒤에 나온 사람이다. 얼굴 모습이나 나이가 다소 약간 다르지만 참으로 구분하여 두사람으로 여기고 서로 우애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내가 나를 멀리 함이다. 어찌 미혹한 짓이 아니랴.
나무 한 그루가 여기에 있다고 하자. 가지 하나는 번성하게 자라서 꽃이 무성하게 되었지만, 다른 가지 하나는 시든 듯 말라빠져 고목이 되었다면 사람들이 안타깝게 탄식하며 애석하게 여기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지금 형제 여러 사람이 있어 어떤 사람은 부자가 되어 편안히 즐기고 어떤 사람은 가난하여 괴롭게 애쓰는데, 서로 돌보아 주지 않고 각각 자기 아내와 자식들만 돌보고 있는 사람이라면, 사람들이 그들을 보기를 어찌 지각 없는 초목을 보는 것같이만 여길 것이냐. 특별히 대면해서는 감히 한탄하면서 허물을 따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부끄럽고 두렵지 않으 랴.
<정약용 저, 박석무·정해렴 편역, 다산문학선집, 현대실학사, 1996>
잊지 못할 낙동강 월파정(月波亭)
우리 나라에 월파정이란 이름을 가진 정자가 세 개 있는데 나는 그것들을 모두 구경하였 다.
하나는 낙동강에 있다. 내가 예전에 진주(晋州)에서 예천(醴泉)으로 가던 길에 그 정자에 올라가 보았다. 그런데 때마침 한낮이었던 탓으로 잔잔히 흘러가는 물빛만을 보았을 뿐이다.
또 하나는 노량(露梁)의 서쪽에 있다. 나는 권형과 이형 등 여러 친구들과 그 정자 아래에서 배를 띄우고 놀면서 월파, 즉 달빛에 비치는 물결을 구경하였다.
또 하나는 황주성(黃州城) 동쪽에 있다. 기미년(己未年) 봄에 청나라 사신이 우리 나라를 방문했을 때 내가 영접사로서 황주에 갔었는데 때마침 달밤이라 달빛에 반사된 물결이 휘황찬란하였다. 뿐만 아니라 황주지사 조영경(趙榮慶)은 나를 위하여 풍악과 술과 음식을 차려왔고 안악(安岳)군수 박재순(朴載淳)은 또한 춤 잘 추는 아이 네 명을 보내와서 황창무(黃昌舞)를 추며 포구락(抛毬樂)을 연주하여 유흥을 한결 돋구었다. 나는 두 분의 호의에 사의를 표시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 것을 시로 지어 읊었 다.
이와 같이 내가 월파정놀이를 한 것이 세 번이었으나 그 중에서 가장 잊혀지지 않는 것은 낙동강의 월파정이었다. 왜냐하면 시와 술로써 한가롭게 즐긴 흥취는 노량의 월파정에서 다하였고 음악과 무용의 다채로운 재미는 황주 월파정에서 흡족히 느꼈으며 동시에 이 두 군데서는 모두 그 유명한 달빛에 비치는 물결도 충분히 구경할 수 있었던 것이 다.
그런데 다만 낙동강의 월파정에 갔을 때는 밤이 아니어서 달빛에 비치는 매혹적인 물결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것이 나의 마음에서 잊혀지지 않아 미련이 남아 있었는데 틀림없이 그곳에는 비할 데없이 아름다운 경치가 있었을 터인데 내가 보지 못하고 놓쳐 버렸다는 섭섭한 느낌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것으로 미루어 본다면 사람에게 있어서도 문장과 광채를 자기 가슴속에 심오하게 쌓아 두고 이것을 남에게 쉽사리 보이지 않음으로 하여 남들에게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도록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로써 자기 표현에 조급해하는 병통을 반성하면서 돌아온 뒤에 적어 둔다.
호기심으로 경솔하게 자신을 버리지 말기를
-이인영(李仁榮)에게 주는 글-
내가 열수(洌水:한강-역자)가에 살고 있을 때였다. 어느 날 얌전하게 생긴 소년이 찾아왔다. 등에 무엇을 걸머졌는데 알고 보니 책이었다. 이름을 물으니 이인영(李仁榮)이라 하였고 나이를 물으니 19세라고 하였다. 그의 뜻을 물으니 앞으로 문학을 공부하려고 하는데 그 길에서 비록 공명을 이루지 못하여 평생 불우한 생활을 한다 하더라도 후회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의 책보따리를 펼쳐 보니 모두가 재주 있는 시인들의 기발하고 참신한 작품들로서 파리머리만큼 작게 쓴 글씨거나 모기눈썹처럼 자질구레한 글들이었다. 그는 또 자기의 포부를 털어놓는데 마치 청산유수처럼 술술 쏟아져 나와 그의 책보따리 속보다도 수십 배나 더 풍부하였다. 그의 눈에서는 영채가 돌았으며 그의 이마는 무쇠뿔처럼 툭 튀어나온 귀상으로 광채가 언뜻언뜻 비치는 것 같았다.
나는 그에게 다음과 같이 타일렀다.
그대는 앉으라. 내 그대에게 말하겠네. 대체로 문장이란 어떤 것인가? 학식이 속에 쌓인 다음 문장으로서 밖에 표현되는 것이 마치 고량진미(膏粱珍味)가 창자 안에서 퍼지면 기름기가 피부에 나타나며 맛좋은 술이 입안으로 들어가면 붉은 빛이 얼굴에 오르는 것과 같은 것이다. 문장을 어찌 밖에서 가져올 것인가? 마음이 평안한 덕으로 수양하고 효성과 우애의 행실로써 성격을 단련하며 경건하게 지니며 참되고 정성스러운 뜻으로 관철시켜 떳떳이 하여 고치지 말며 힘쓰고 힘써 도를 향하여 전진하여야 한다. 사서(四書)로 써 자기 몸을 안착시키며 육경(六經)으로 자기 지식을 넓히고 많은 역사 서적으로 고금의 변천을 통달하며 예악형정의 문헌과 법전제도의 고전들이 가슴 속에 가득 쌓인 다음 외계의 사물과 접촉하며 사회의 시비나 이해와 부딪치게 되면 곧 자기의 마음속에 쌓인 축적이 넘치고 용솟음쳐서 한번 밖으로 퍼져나가 천하만세의 광채가 될 것인데 이렇게 막아 둘래야 막아 둘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한번 자기가 표현하고 싶어하는 것을 터뜨려 놓으면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일러 '문장'이라 한다. 이런 것이 참으로 문장이다. 어찌 풀을 헤치고 바람을 보려는 듯이 빨리 달리고 조급히 서둘러 이른바 그 문장이란 것을 손으로 붙잡아 입으로 삼킬 수 있겠는가?
세상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문장의 학(學)'이란 것은 곧 도학(道學)을 해치는 좀과 같다. 이 두 가지는 서로 용납하지 못한다. 좋지 않게 여겨 팽개쳐 버려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따위 문장이라도 그것을 하려고 한다면 그도 역시 그 가운데 문이 있고 길이 있으며 기운이 움직이고 혈맥이 통해야 되는데 반드시 경전으로써 근본을 삼고 여러 역사문헌이나 선비의 저작들을 섭렵해야 한다. 그것으로써 혼후하고 함축성 있는 기운을 쌓고 심오하고 원대한 지향을 배양하여 위로는 나라를 다스릴 방책들을 생각할 줄 알며 아래로는 온 세상을 깨우쳐 고취시키는 기수로서의 임무를 깨달은 뒤에라야 바야흐로 그 문장을 잊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의 문장은 그렇지 못하다. 나관중(羅貫中)을 조상으로 삼고 시내암(施耐菴)과 김성탄(金聖歎)을 어버이로 받들어 조잘거리는 앵무새처럼 이리저리 혓바닥을 놀려 음란하고 괴상스러운 말들을 꾸며 놓고 저 혼자 스스로 기뻐하며 즐거워한다. 이래서야 어찌 문장이라 할 수 있겠는가?
저 시고 떫거나 밤중에 목멘 소리만 늘어놓는 것과 같은 시구들은 온유하고 돈후한 시풍이 아니다. 음탕한 보금자리에만 마음을 주며 비분하는 장면에만 눈을 팔고 사람의 간장을 녹이는 언사를 누에실 뽑듯이 늘어놓으며 뼈를 에이고 살을 저미는 듯한 문구를 구슬픈 벌레 소리처럼 내고 있다. 그것을 읽고 나면 흡사 새파란 달이 추녀 밑을 들여다보는 듯하며 산골짜기 귀신이 휘파람을 불고 음산한 바람이 촛불을 삼켜 버리며 원한에 잠긴 여인이 흐느껴 우는 듯도 하다. 이와 같은 것들은 다만 문장가들만이 사도로 여길 뿐만 아니라 그 기상이 처참하고 심지가 각박하여 위로는 하늘의 복을 받을 수 없으며 아래로는 세상 사람들의 조롱을 면치 못할 것이다. 참으로 문장의 도를 아는 자라면 응당 놀라 피해서 달아나기가 바쁠 것인데 하물며 몸소 행장을 차려 그 꽁무니를 뒤따라 갈 것인가?
우리 나라 과거제도는 그것이 본디 쌍기(雙冀)로부터 시작되어 춘정(春亭)에게 이르러 완비되었던 것이다. 무릇 이 기예를 익히는 자들은 헛되이 정신만 소모하고 세월을 허송할 뿐 아니라 전혀 쓸모없는 인간이 되어 생애를 끝마치고 만다. 참으로 이단(異端)으로 서는 으뜸가는 것이며 세상을 위해서 큰 걱정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나라의 제도가 아직 고쳐지지 않고 있는 이상 그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다. 이것이 아니고는 군신의 의리도 물을 데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조정암(趙靜菴)·이퇴계(李退溪)와 같은 여러 선생들도 모두 이 기예를 닦아 자기 몸의 출로를 구하였는데 지금 자네는 무슨 사람이기에 그것도 벗어던져 버리고 돌아보지 않으려고 하는가? 자기가 살아 나가기 위한 학문도 오히려 버리지는 못할 것인데 하물며 이와 같은 음란한 소설의 찌꺼기나 떫고 시린 짧은 문구에만 정신을 잃어 자기 신세를 포기할 수 있겠는가? 더욱이 위로는 부모도 섬기지 않고 아래로는 처자도 돌보지 않으며 가깝게는 자기 문호도 보전하지 못하고 멀리는 나라를 다스리며 백성들에게 혜택들 주려고도 하지 않고 다만 관중이나 시내암의 문장에만 매달리려고 하니 이 또한 정신없고 어리석은 짓이 아니겠느냐?
바라건대 자네는 지금부터 문장의 학을 단념하고 빨리 집으로 돌아가서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안으로는 효성과 우애를 독실히 하고 밖으로는 경전의 공부를 열심히 하라. 성현들의 격언에 항상 관심을 가져 잊어버리지 말며 겸하여 과거 공부도 계속하여 자기 갈 길을 찾음으로써 임금을 섬겨 시대의 쓸모있는 인간이 되어 후세에 이름을 남길 훌륭한 사람이 되도록 하라. 부디 그 하찮은 호기심으로 인해 경솔하게 자기의 귀중한 한몸을 버리지 말라. 정말 자네가 고치지 않는다면 이는 마작이나 투전으로 세월을 보내는 노름꾼들보다도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