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부동산 시장의 최대의 관심사는 분양가 문제다. 비싼 분양가에 따른 주택시장 불안이 이어지자 정부와 자치단체 등이 나서 분양가인상 억제와 관련한 각종 제도 도입을 서두르는 움직임이다.
파주신도시나 은평뉴타운의 고분양가가 추석 이후 집값을 들쑤신 데 자극받은 정치권까지 정부를 재촉해 분양가 상승 억제 방침을 내세우고 있다.
분양원가 공개와 지자체의 분양가 규제, 그리고 후분양제 등 분양가 억제와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일련의 제도는 주택소비자들에게는 유리한 제도여서 시민단체들도 적극 반기고 있다. 그러나 이런 이면에는 건설업체들의 주택사업이 위축돼 궁극적으로 공급이 줄어드는 부작용도 예견된다.
후분양제의 득과 실
후분양제는 아파트를 어느정도 지어놓은 상태에서 소비자들에게 공급하는 제도. 분양승인을 받은 뒤 모델하우스를 열고 착공과 함께 아파트를 분양하는 선분양과 반대의 개념이다.
시민단체에서 꾸준히 필요성을 제기하는 가운데 서울시가 최근 은평뉴타운 아파트를 80% 공사 후 분양하겠다(후분양)고 발표한 뒤 제도 도입에 관해 관심이 높아졌다. 분양가제도개선위원회에서는 아직 과제로 연구하고 있지는 않지만 앞으로 본격적으로 거론될 움직임이다.
후분양제는 소비자들에게 미치는 부분과 관련해 장단점이 있다. 가장 큰 장점은 상품을 보고 구입하므로 안전성이 확보된다. 시공사가 부도나서 적어도 입주 피해를 보는 사례는 없다는 것이다. 분양가 부담과 관련해서는 큰 차이가 없다. 어차피 선분양 체제에서도 입주 때까지의 금리부담이 분양가에 반영되고 후분양하면 마찬가지로 공사 기간까지의 금융비용이 분양가에 떠넘겨지게 마련이다.
다만 아파트값 상승시기에는 분양가가 선분양 때보다 올라가는 현상이 생길 수 있다. 예컨대 선분양했을 당시 주변지역 32평형 아파트값이 3억원이었는 데 후분양으로 2년 뒤 분양할 때 이 집값이 4억원 정도로 오르면 분양가가 오르지 않을 수 없다.
건설업체들이 분양가를 산정할 때 적정이윤 확보보다는 주변 시세를 더 많이 반영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집값이 2년전보다 떨어진다고 해서 분양가를 낮추는 건설업체는 없을 것이다. 다만 분양원가 공개 등과 함께 이 제도를 시행한다면 분양가 상승효과는 어느정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이같은 후분양제는 그러나 시장상황과 관련해서는 미묘한 부분이 있다. 우선 공급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 선분양이라면 시장상황에 따른 분양(착공)시점을 잡아 자유롭게 공급할 수 있지만 후분양제는 착공 2~3년후의 분양시장을 가늠해야 한다. 따라서 ‘확실한 프로젝트’가 아니면 선뜻 사업에 손을 대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생길 수 있다.
건국대 손재영 교수(부동산학)는 “후분양제에서 건설업체는 아파트를 짓는 동안의 자금을 금융기관 대출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며 “금융기관은 중소 건설업체에 높은 이자를 부담시키든지 아니면 아예 대출을 꺼리므로 주택산업 전체가 소수의 대형 업체 위주로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처음 시행할 때 2년 이상 공급에 공백이 생기는 점도 시장을 불안하게 만드는 요소다.
원가 공개·상한제는 초기 상승 억제 효과
현재 대규모 택지지구에서 7개항목의 원가가 공개되는 데 이를 확대한다는 것이다. 현재 분양제도개선위원회에서 실시방법과 범위, 시기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민간개발 아파트에까지는 적용될 가능성이 작지만 어쨌든 원가를 공개하면 분양가 상승을 억제하는 효과는 확실하다. 결국 업체의 이익을 소비자들에게 나눠주거나 채권입찰제를 통해 정부가 챙기는 부분이 있다.
원가공개를 의무화한다면 분양가 인하효과는 생길 수 있다. 원가에 대비한 분양가가 노출되기 때문에 기업이 챙기는 이윤의 규모를 그대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건설사도 터무니없이 많은 이익을 챙기기 어려우므로 분양가 인하효과가 생긴다는 게 정부의 의도다. 분양가 상한제(원가연동제) 역시 비슷한 구도다.
현재 관건은 민간택지에 원가공개나 분양가상한제를 적용하느냐는 것. 정부와 열린우리당이 면밀히 검토하고 있고 특히 분양가 제도개선위원회에서 따지고 있지만 실현가능성이 낮은 편이다.
분양원가 공개가 주택사업의 투명성을 촉구하고 분양가를 낮추는 의도이지만 기존 주택시장의 안정까지 꾀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넥스플래닝 길연진 소장은 “분양가를 낮춘다고 해서 기존 집값을 떨어뜨리는 기능은 하지 못한다”며 “다만 비싼 분양가가 기존 주택값을 터무니없이 올려 시장을 불안하게 만드는 상황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분양가가 떨어질 경우 이익은 첫 당첨자가 챙길 수밖에 없다. 청약과열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지자체 규제로 공급 위축 가능성
충남 천안시를 비롯해 전국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가 분양가 검증위원회나 원가분석팀 등을 만들어 해당 지역에서 분양되는 아파트 분양가를 사실상 ‘통제’하고 있다. 이같은 통제는 건설업체들의 터무니없는 분양가 상승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이같은 규제는 해당 지역 주택소비자들에게는 상당한 혜택으로 돌아온다. 특히 지방의 경우 분양가가 인근의 기존 아파트값보다 비싸게 마련인데,분양가를 조금이라도 낮추면 집값상승세를 차단하는 효과가 생긴다.
천안시의 경우 “평당 650만원대 이하로 분양해야 승인을 내준다”고 공식화함으로써 지역주민들로부터 호응을 얻고 있다. 물론 원가(특히 땅값)를 고려하지 않고 과도한 규제를 했다는 점에서 1심 소송에서 패소했지만 일부 업체들은 천안시의 행정지도에 따르고 있기도 하다.
이런 규제 역시 건설업체들의 주택사업을 위축시켜 공급이 줄어들 우려가 있다. 주택사업 환경이 어려워질 경우 선뜻 분양에 나설 업체들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땅값이 정해진 상태에서 분양가를 규제하면 건설사들은 건축비에서 이윤을 남겨야 하는데 이럴 경우 품질저하의 문제도 고려할 수 있다. 내집마련정보사 김영진 사장은 “비싼 땅값 등 사업 환경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분양가만 무조건 통제하면 공급 뿐 아니라 주택품질이 나빠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천안시 관계자는 “업체들이 챙기는 과도한 이익을 억제해 소비자들에게 적정한 가격의 주택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지자체가 어느정도 견제하는 기능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