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5일 오전 9시, 성서에서 경옥언니를 만나, 경민, 나, 경옥언니 이렇게 셋이서 용서폭으로 출발. 지난 달 용화산을 셋이서 야영하고 다녀온 느낌이 또 새롭다. 황금궁전 슬랩에서 짧은 팔, 짧은 키로 끙끙대며 선등하던 기억, 거의 울기 직전에 쌍볼트를 잡고 이 세상 모두에게 감사했던 기억, 야영하며 셋이 즐겁게 웃고 놀았던 기억...ㅋㅋ
88고속도로를 달려 달려, 황전 IC에서 내리니 바로 용서마을. 용서폭 가든 주차장에 차를 대고 야영짐과 등반 장비 짐을 둘러메고 암장으로 걸어간다. 5분 정도의 오솔길이면 바로 나타나는 암장. 단풍에 큰 벽에, 무엇보다 좋은 건 짧은 어프로치.
명당자리에 텐트 두 동을 치고, 장비 착용하고 등반 시작. 악동길로 선등. 선등하고 있자니, 성수언니 팀(성수언니, 동희선배, 상주선배, 춘빈선배)이 올라오신다. 이때부터 어느새 한명씩 한명씩 늘어나는 파워팀들. 등반하다 보니 희철선배님, 황선생님, 병구선배.. 어느새 10명.
잠시 숨 좀 돌리고 <가자! 낭가파르밧으로>를 선등. 10c지만 칸테를 타고 가서 겁많은 나로는 정말 용기내어 선등! 뾰족한 날등에 왠지 턱을 찢길 것 같은 불안함을 억지로 누르고 선등. 상단 슬랩에서 한참 망설이다가 결국 올라서서 마무리! 아, 기분 좋다! 키 크고 팔 길면 아무것도 아닌 코스지만, 적어도 내게는 심적으로 부담스러웠던 코스를 접수해서 기분 좋아짐. ㅋ
기분 좋은 김에 바로 내려와서 왼쪽 코스 <혜정2> 줄 걸기. 연속 등반으로 상단부에서 또 펌핑이 났지만 기분좋은 김에 참고 마무리! ㅋ 역시 등반은 멘털 스포츠!
경옥언니가 낭가파르밧 코스로 올라가서 앵커에 확보하신 후 사진 찍어주신다고 하신다. 호오, 이번 기회에 인생 사진을 한번 찍혀 볼까? 언니가 올라오라고 지정한 코스는 오른쪽 코스인 <신데렐라> 오른쪽 크랙이 있지만, 혜정2 보다 훨씬 좁은 크랙이라 손가락 반마디가 걸릴락 말락하는 크랙. 거기다가 오른쪽 벽은 반질반질해서 발홀드가 없다. 즉, 디에드르 등반이 안 되는 코스. 기존에 하던 동작이 아니라 예상치 못했던 동작으로 올라야 하는 코스.
상단까지는 그래도 잘 올랐다. 지금 하는 모든 코스는 모두 온사이트 개념. ㅋ 전에 와 봤지만 홀드고 뭐고 기억이 하나도 안 나니 양심상으로도 온사이트. 거기다 이 길은 처음 가니까 완전한 온사이트. 손가락을 엄지와 검지로 오형으로 말아서 크랙을 쥐고 오른다. 마지막 상단에서 주춤. 발은 가슴까지 올려서 믿고 일어서야 하는데.......당황하는 내게 경옥언니가 용기(?)를 준다.
"떨어지면 발목 부러질수 있어"
용기? 텐션외칠수 있는 용기를 주셨다!
텐션!
좀 쉬다가 오른쪽 팔에 펌핑이 가시자 바로 발 올려서 일어서서 마무리. 이 코스에서 나의 인생샷을 건졌다. ㅋ 경옥언니 고맙습니다. 허리 많이 아프셨을텐데....제가 다음 등반때는 언니를 찍어드릴께요.
오후 5시 지나자 조금씩 조금씩 어두워진다. 경민은 <강아지>코스 재등 성공. 강아지는 출발이 크럭스! ㅋ 동물을 무서워하는 경민은 <강아지> 코스나 <멧돼지> 코스를 많이 해야 하지 않나? ㅋ
경옥언니는 야등할 준비로 악동 코스로 자일을 달고 올라가 제일대길에 걸고 내려오신다. 진짜 하시는 거에요?
6시가 되자 완전 어두워진다. 우리는 저녁메뉴로 수육을 준비해왔다. 코펠에 양파 가득, 대파 가득 깔고 두툼한 삼겹살 올리고는 뚜껑 덮고 불 올리면 끝! 수육이 될 동안 베이스캠프(성수언니 자리)에 놀러가서 삼겹살이랑 꽁치 찌게 얻어먹기. 춘빈선배님이 하신 밥은 그야말로 예술이다. 동희선배님이 밥을 아껴서 먹고있다는 말에 동의! 격하게 공감!
꽁치 찌개를 한 입 먹으니 갑자기 생각나는 와인. 센터장님이 이번 야영을 위해 와인 두 병을 찬조해주셨다.
와인 한 모금, 삼겹살 한 조각! 오오. 풍미 작렬! ㅋ 센터장님이 와인 4병 중 2병을 골라가라 해서 고민고민해서 골라왔는데 대성공! 살짝 드라이한 맛에 향도 좋고 그냥 딱 좋다!
파김치와 김치를 가져와서 곁들여 먹기. ㅋㅋ 어둠은 짙어가지, 폭포 소리는 끊이지 않지, 랜턴 불은 환하지, 저어쪽 반대편 하늘에 달은 반달로 걸려있지......이런 분위기라면 어쩔수 없이 먹어야 하는 와인. 수육은 아직 덜 되었는데 와인병은 벌써 쓰러져 딩굴고 있다. 센터장님이 와인 4병을 꺼내놓으실 때 4병 다 갖고왔어야 했어. ㅜㅜ 경옥언니와 둘이서 때늦은 후회.
수육이 다 되어 썰어서 먹고, 그 와중에 성수언니는 만두를 굽는다. 그리고는 오뎅탕을 끓이신다. 뭐지? 이 팀. 딱 내 스타일이야. ㅋㅋ 등반도 후회없이! 먹는 것도 후회없이! 등반도 먹는 것도 흐름이 끊기면 안된다!
동희선배와 경옥언니 야등하신다. 동희선배 확보 봐드리고 돌아서는데, 어느새 모닥불 숯불에 삼겹살 꼬치를 굽고 계신 성수언니. 이럴려고 아까 낮에 대나무로 꼬챙이를 만드셨구나. 배불러서 안 먹으려 했지만, 삼겹살이 알아서 입에 들어와서 지가 씹혀서는 목구멍으로 넘어가버린다. 맛있다! 인류가 불을 이용하게 된 건 축복이다! ㅋ
낮에 용을 너무 많이 쓴 탓인지 졸려서 우리 자리로 하산. 양치하고는 바로 텐트로 들어가서 기절!
새벽에 잠이 깨다. 헤드랜턴 불빛이 일렁이더니 잠잠하다.(병구님이 지리산 가신다고 일찍 나선 것이었다.) 잠 깬 김에 일어나서 화장실 다녀와서는 세수하고 커피 끓이기.
원두 갈고 물끓이고 하는 부산함에 옆 텐트 경옥언니가 깨셨다.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나는거야 하시면서도 커피 드릴까요 하니 응 하신다. ㅋ
룸서비스 해드릴께요. 원두 내려서 텐트로 바로 배달. 침낭속에서 커피 배달 받으신 경옥언니, 텐트 앞 용서폭포 풍경에 감탄, 감탄!
쌀 불리고 된장찌개 끓일 준비하는 동안, 경민은 베이스 캠프로 가고 없다. 거기서 모닥불 피우니 불나방처럼 불 옆에 딱 달라붙어 있다.
준비한 음식 들고 올라가서 베이스 캠프에서 아침 먹기. 된장찌개랑 밥 들고가니, 베이스 캠프에서는 곰국 끓이고 호박전 부치신다. 이건 야영이 아니라 잔치야. ㅋ
8시부터 등반 시작. 어깨와 등이 너무 아파서 톱로핑으로만 등반. 그러는 동안 사람들이 쑥 쑥 들어온다.
오늘도 정신차려 보니 약 50여명의 사람들이 북적북적. 더 웃긴 건 다 대구사람들이다.
파워센터, 핸즈센터, 동성로센터, 대클 팀.
쉬엄쉬엄 등반하다가 3시쯤 정리해서 일찍 철수. 인사드리고 나옴.
주차장에 주차비내고 대구로. 대구와서 장기동 쪽에 막걸리집에서 뒷풀이. 셋이서 이틀간의 소회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 가진 후 해산!
이틀동안 정말 즐거웠습니다. 덕분에 좋은 시간, 좋은 등반 가졌습니다. 고맙습니다.
첫댓글 리얼한 등반 후기에 큰 웃음 지음..
나머지 두병은 다음 야영에~~함께해서 더욱 즐거운 용서폭이었습니다~
앞으로 불나방 경민으로 ~ㅋㅋ 간만에 리얼후기 잘봤어요~ ^^
ㅎ너무 잔치를 벌였남?
야영지에서 꾸워먹은 호박전은 예술이었지 ㅋ등반과음식은 흐름이끊어지면 죽음
후회없이 들이대기돌입
야영의기본을 좀 아네
후기글 재미있네요.
야영할때는 불장난 좀해야죠~ㅎㅎ
즐거웠어요~
늦었지만
실감나고 자세한 후기에
한글자 소감을 안적을수가 없어서....
ㅋㅋ
야영이 체질에 안맞는 나도 야영하고 싶어지게하는 재미난 글이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