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고주원님께
이렇게 편지를 쓰려고 피시를 켜고 앉으니 조금은 민망합니다.
이 나이에 젊은 연예인에게 나의 마음을 전하는 글을 쓰리라고는 생각해 본적조차 없으니까요. 제가 속해 있는 문학회에서 발행하는 올해의 단행본은 편지글로만 엮는다는 걸 알고 그 대상을 별 고민 없이 고 배우님으로 정했습니다. 친구나 가족들을 과감히 제외하고 편지를 쓰기로 작정한 나름의 이유 몇 가지가 있기는 합니다.
우연히 시청한 어떤 프로그램을 통해 배우님을 처음 만나던 날의 기억은 지금도 너무나 선명해요. 결혼하지 않은 노총각 연예인과 일반인 여성과의 실제의 달달한 연애담이 고스란히 화면을 통해 안방까지 전해 오는 획기적 프로그램이었으니까요. 티비를 켜면 설정과 꾸미기 천지여서 시청자들은 식상함을 느끼던 때문일까요? 개인의 사랑이야기마저도 진짜를 원하는 분위기의 중심에 고 배우님이 있었어요. 실제로 그 프로그램을 통해 다른 한 배우는 상대 여성과 결혼에까지 이르러서 사람들은 더 믿고 애정하며 시청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연예인이기에 혹은 예능이니까 라는 전제가 있어서 연출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겠지만요. 여자 앞에서 서툰 그 날의 배우님은 마치 또래인 제 아들이라 착각하게 되더군요. 내성적이어서 말수도 적고 수줍은 듯 쩔쩔매며 소개팅 여성과 간신히 대화를 이어가는 모습이 얼마나 귀엽던지요. 아들 둔 엄마의 심정으로 좀 더 용기를 내주면 좋았을 텐데 라며 아쉬워했죠. 아들 녀석도 처음 만나는 여자 앞에서 저렇게 어색해하지 않을까? 배우님의 일거수일투족을 아들과 연관 지어 상상해보기도 하고요.
요즘 연애에는 여자 친구가 흡족하도록 음식을 만들어 주는 것도 필수며 일상이라면 겨우 라면이나 끓일 수 있는 아들은 후한 점수를 받을 리가 없겠다 싶어 그 부분은 매우 안타까워요.과묵하며 자상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전형적 경상도 남자인 아들에게 상대 아가씨는 얼마나 재미없다 여길까요? 배우님은 다행히 꼼꼼한 솜씨로 코스 요리를 만들어 내더군요. 상대방 아가씨가 감동받아서 상기된 표정이 반복해서 화면에 클로즈업 되던데요?
배우님이 연예인이어서 연애 따위는 선수가 아닐까 하는 처음 마음은 완전한 편견이었어요.
서툴고 부끄러워하는 그 점에 저는 매력을 느끼고 호감을 가져서 열렬한 팬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더군다나 배우님은 학창시절에는 특별히 성적이 좋아서 뇌섹남이라는 수식어도 달고 사신다면서요? 부모님께는 얼마나 든든하고 자랑스러운 아드님이었을까요. 화려하지만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연예계에서 바르다는 평가를 받는다는 건 평소 생활에도 얼마나 모범적인지를 미루어 짐작하겠어요. 검색해보면 배우님의 개인적 성향도 쉽게 파악할 수 있는데 매사에 반듯하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삶을 신중하고 진지하게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은 실수가 적은 편이잖아요. 조금은 답답하고 고지식한 듯해도 정도를 걷는 남자는 누구에게든 인정받는다는 증표가 아닐는지요?
“연애의 맛“이라는 제목처럼 청춘 남녀의 연애이야기는 제 삼자의 입장에서도 두근거리며 설렙니다.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애틋한 감정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나 봐요. 배우님이나 상대 아가씨의 인스타그램(사회관계망서비스)에는 나이 지긋한 팬들의 뜨거운 응원 글로 날마다 달구어지고 있는 걸 쉽게 확인할 수 있으니까요. 설레어서 새벽까지 제대로 잠들 수 없었다는 글도 있고 메마른 생활에 두 분의 연애는 활력이 되어 삶이 새삼 아름답다는 분들의 글도 읽은 기억이 납니다. 늦은 시간대의 방송이어서 혹여 잠을 못 이겨 놓치기라도 하면 어쩔까 싶어서 저도 눕지 않고 꼿꼿하게 앉아 독서 핑계를 댄 적이 있으니까요.
딸 같아서 혹은 아들이라 여겨져서 눈을 떼지 못하고 연애의 진도를 눈여겨보노라면 세상 어느 순정 영화가 이보다 달콤할까요. 두 분의 데이트가 즐거우면 저의 기분도 상승하고요. 다퉜다면서 한동안 두 분이 불편한 관계로 지내시는 기간에는 서로의 마음이 크게 다치지 않았을까 라는 염려를 내려놓을 수 없었답니다. 제 아들의 연애가 순조롭지 못해서 서로 번민 안에 있는 듯 아팠어요. 티비 안의 ‘연애의 맛’에 현혹되어 ‘사는 맛’을 더해준다는 저를 보고 이웃들은 일본의 주부들을 떠올리더군요. 드라마 주인공이었던 한류배우를 보기위해 일본의 주부들이 용감하게 한국행 비행기에 오른 시절이 길었다고요.
한글과 우리말을 익히고 경제적 부담을 안으면서 해외에까지 달려오는 그들의 열정을 그 때는 부질없다 여기며 의아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그들이 되어 배우님과 연인 보미 씨를 너무 사랑하고 있네요.
팬들의 성원에 보답한다며 머지않아 서울의 모처에서 작은 바자회를 연다는 공지가 떠서 놀랍고도 반가웠습니다. 정확한 날짜와 장소가 정해지면 저도 만사를 제쳐두고 참여하고 싶어요. 여태 하염없이 기다리며 욕망 따위를 꾹꾹 누르는 삶이었다면 작지만 이제라도 적극적으로 그런 일들부터 행동으로 표현하고 싶어졌습니다. 두 분의 상징인 ‘보고‘라는 보랏빛 곰 인형도 꼭 사고 싶어요. 날마다 지난 영상을 ’다시보기’하는 것에서 벗어나 먼발치에서라도 예쁜 사랑 키워가는 두 분을 만나고 싶어요. 제가 정말 서울 행을 결행한다면 드라마 속의 연예인을 보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현해탄을 건너는 일본의 주부들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ㅎㅎㅎ
연인에게 다가가는 배우님의 사랑은 아직도 진행형이지만 더디고도 침착하지요.
그러기에 그 사랑의 진실을 믿습니다. 만나고 금새 빠져서 사랑한다 외치고 쉽게 헤어지는 풍토 바람직하다 여기지 않아요.저와 팬들의 바람대로 연인 보미씨와 꼭 결실을 이루신다면 정말 좋겠어요. 예능은 예능으로만 바라보아야 한다지만, 결혼이 연애의 완성이 아니라고도 하지만 배우님과 파트너 보미씨의 품성을 알고 있으니까요. 두 분은 프로그램을 위해 사랑까지 가면으로 연기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출연을 접는 그 시점쯤 두 분의 결혼 소식이 전해지면 더없이 좋겠습니다. 아들도 여자 친구와의 사랑이 무르익어서 결혼 소식을 들고 대문에 문득 들어선다면 이중삼중으로 저는 기쁠 것입니다. 꼭 그렇게 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서로에게 조금의 상처도 받지 말고 무사히 프로그램을 마칠 수 있기를 또한 바랍니다.
두 분 심약하고 너무 말랐다는 의사선생님의 진단이 있던데 여름 감기 부디 유의하세요.
2019년 7얼 8일
경북 문경에서 이 음전
(2019년,편지마을 7dnjf,단행본게재글)
첫댓글 모처럼 카페를 둘러보는데 이글을 보고 제가 선생님의 팬이 될것같아요 ㅎㅎㅎ
소박하게,진솔한 편지글 잘 읽었습니다~~^^
ㅎㅎㅎㅎ안년하세요?
부끄럽사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