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문학관 <무진기행(1981)> 그리고 소설
1. TV문학관은 1981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하여 1987년 중단했다. 그 후 다른 이름으로 간헐적으로 지속되었지만, 이름에 걸맞게 핵심적인 내용은 이 시기에 집중되었다. 앞으로 1980년대 영화에 이어 1980년대 <TV문학관>을 소설과 비교하며 감상하려 한다. 그때 술에 취해 항상 늦었던 귀가 때문에 보지 못했던 작품들을 새롭게 살펴보려 하는 것이다. 황석영의 <삼포가는 길>과 임철우의 <사평역>을 이미 다뤘지만, 이제 본격적인 1980년대 <TV문학관> 답사를 시작한다.
2. 첫 번째 작품은 한국 단편소설의 최고의 작품이라 평가받는 김승옥의 <무진기행>이다. 영상은 소설의 기본적인 줄거리와 대사를 활용하고 있어 소설의 분위기를 적절하게 전달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 작품의 줄거리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무진이라는 가상의 고장에서 절망과 답답함만을 느꼈던 주인공이 서울에서 우연하게 만난 부잣집 이혼녀와의 결혼을 통해 성공하고, 더 큰 승진을 앞두고 고향 무진에 내려와서 겪게 되는 며칠간의 낭만적인 혼돈을 그리고 있다. 고향에 내려간 후, 고시에 합격하여 성공한 친구의 사무실에 방문해서 우연하게 만난 학교 여선생과의 일시적인 만남은 무진을 심심해하며 벗어나고 싶어 하는 그녀와의 동질성 때문에 급격하게 진행된다. 서울에 가고 싶어 하는 여선생의 소망을 주인공은 들어주기로 결정하면서 일종의 일탈을 결심한다. 그것은 자신이 무진에서 경험했던 고통과 쓸쓸함에 대한 일종의 보상이었다. “한 번만, 마지막으로 한 번 만, 이 무진을, 안개를, 외롭게 미쳐가는 것을, 유행가를, 술집 여자의 자살을, 배반을, 무책임을 긍정하기로 하자”
3. 하지만 결심은 허무 속에서 나온 어떤 힘도 갖지 못한 넋두리였는지 모른다. 영상 속에는 직접 만난 자리에서, 소설에서는 편지로 그는 여선생에게 약속한다. “당신은 제 자신이기 때문에, 적어도 제가 어렴풋이나마 사랑하고 있는 옛날의 저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옛날의 저를 오늘의 저로 끌어다 놓기 위하여 갖은 노력을 다하였듯이 당신을 햇볕 속으로 끌어놓기 위하여 있는 힘을 다할 작정입니다.” 그러나 소설 속에서 그는 편지를 결국 찟어 버린다. 영상 속에는 여선생의 공허한 눈동자를 통해 무의미한 헛소리임을 직감하게 해준다. 결국 그는 공허와 쓸쓸함을 핑계로 한바탕의 허무를 즐겼을 뿐이다. 승진을 알리는 전보를 받고 그는 무진을 떠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무진을 잊을 것이다.
4. <무진기행>의 줄거리는 몇 번을 읽어도 낭만적인 공감도, 쓸쓸한 애상도, 두 사람의 일탈에 대한 연민도 생기지 않는다. 무언가 ‘안개’를 핑계로, ‘허무’를 핑계로 ‘심심한’ 시간을 때우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 속 등장하는 사람들은 진지하지 않다. 무진의 명물인 ‘안개’때문인지 모른다.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차고 타인에 대한 감정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는 것을 지극히 낭만적인 모습으로 포장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소설의 ‘줄거리’는 매력이 없다. 다만 <무진기행>의 뛰어난 점은, 장면과 상황에 대한 멋진 묘사와 뛰어난 문장력의 극치에서 나타난다. 무진에 대하여, 바닷가에 대하여, 그의 쓸쓸한 심정에 대하여 작가는 가장 아름다운 우리말의 표현력을 선사한다. “나는 그 개구리 울음 소리들이 나의 감각 속에서 반짝이고 있는, 수없이 많은 별들로 바뀌어져 있는 것을 느끼곤 했었다. 청각의 이미자가 시각의 이미지로 바뀌어지는 이상한 현상이 나의 감각 속에서 일어나곤 했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찌질한(?) 줄거리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읽을 때마다 무한한 상상력을 선사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TV문학관>의 내용은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한다. 소설 속에 담긴 묘사와 표현의 아름다움을 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5. 서울에서 내려온 유부남과 쉽게 연애에 빠진 ‘여선생’에 대해 한 번 생각해본다. 그녀는 주인공이 내려오기 전에 주인공의 친구와 결혼이야기가 오가고 있었고 적극적으로 남자에게 매달리고 있었다. 또한 같은 학교의 소극적인 남선생의 사랑도 받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서울에서 내려온 그에게 ‘서울’로 데려가 달라고 말했고 그에게 몸을 허락하는 것이다. 어쩌면 그녀의 행동은 소설 속에서 그녀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심심하기’때문이었는지 모른다. 결혼을 약속하는 사람이나 짝사랑하는 사람 사이에서 생길 수 있는 부담이 없었기 때문인지 모른다. 연애는 그렇게 허무 속에서 만들어지고, 현실적으로는 각자의 필요성에 의해서 결혼하는 것이다. 주인공도, 여선생도, 타인들의 속물성을 비난하면서 자신들의 쓸쓸함을 포장하고 있지만 누구보다도 그들의 속물성이 더하다는 점을 소설과 영상의 마지막 장면이 말하고 있는 듯하다. “<당신은 무진을 떠나고 있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라고 씌어 있었다. 나는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첫댓글 --- 안개의 합리화(?)로 널리 알려진 작품으로 기억...... 알 수 없는 인생살이와 타인의 눈에 의한 상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