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엘 김상종 대표(베이비박스 협력 기관) 기고
“아이에게 제일 필요한 건 부모가 있는 가정입니다.”
[시설의 문은 넓고 입양의 문은 좁은 대한민국, 아이는 부모가 있는 가정에서 자라야 합니다.]
자신이 낳은 아기를 불가피한 사정 때문에 키울 수 없게 된 부모가 국가의 도움조차 받을 수 없어 최후의 선택지로 찾아오는 곳이 베이비박스다.
베이비박스를 설치하기 이전부터 이종락 목사 부부가 장애인 아이들을 입양하고 정성과 사랑을 가지고 키운다는 스토리가 TV매체와 언론에 소개되었다.
이로 인해 이종락 목사 교회 사택과 주차장, 전화박스, 계단, 골목 등 장애가 있는 아기를 놓고 가는 일이 있었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고 가슴이 아팠던 때는 2007년 4월, 새벽 3시 30분 대문 앞 생선박스(굴비)에 다운증후군 아기가 담겨 발견된 당시였다고 한다.
꽃샘추위로 몹시 추웠던 때이기도 했고, 자칫하면 저체온증으로 생명을 잃었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이를 계기로 이종락 목사는 힘없이 밖에서 버려져 죽어가는 아기들의 보호자임을 자처하고 생명을 구하기 위해 베이비박스를 만들었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주님, 밖에 버려져 죽는 아이가 없게 해주시고, 베이비박스에 어린 생명들이 들어오지 않게 하시며, 모든 아이가 부모의 품에서 축복받기를 기도합니다. 하지만 불가피한 사정으로 생명이 위태로운 아이가 있다면 주님께서 주님의 손으로 베이비박스 문을 열어 소중한 생명을 살리게 하옵소서.”
이런 이종락 목사의 바램과 달리 2009년 베이비박스 설치 이후 지금까지 1,700명이 넘는 아이가 베이비박스를 통해 보호되었다. 사연은 다양하다. 다만 그중 2012년 8월 시행되어 현행 입양특례법에서 강제한 출생신고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이들이었다. 10대 미혼모, 강간이나 외도 혹은 근친이나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 등등등. 사례는 다양했고 사연은 절박했다.
베이비박스를 설치한 처음 1년 동안 이종락 목사는 아이를 보호하고 돌보는데 집중하였다. 어느 날 아이를 두고 간 생모가 술을 마시고 새벽에 전화를 걸어왔다. 생모는 세 시간 동안 전화기를 붙들고 자신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가슴 시린 사연을 이야기하는 동안 계속 같은 질문을 했다.
“우리 아가 잘 있나요? 우리 아가 아프지는 않나요?”
아이 엄마도 울고 이종락 목사도 함께 울었다. 이 날 이후로 이종락 목사는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놓고 가는 생부모를 서둘러 뒤따라가서 만나 상담을 하고 아이를 다시 키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적극적으로 나섰다.
처음에는 함께 일하는 사람이 없어 이종락 목사와 사모가 부모를 뒤따라가는데도 어려움이 많았지만 지금은 보육사와 상담사가 역할을 분담한다. 베이비박스 벨이 울리면 보육사는 10초 안에 달려나가 아이의 안전을 확인하고 동시에 상담사는 밖으로 나가 친생부모를 만나 상담을 시도한다. 이 방법은 매우 효과적이어서 현재는 98% 이상 친생부모 상담 기록을 유지하고 있다.
베이비박스에 대한 편견과 부정적인 입장을 가진 기관에서는 베이비박스에 부모의 기록이 없어서 나중에 부모와 아기가 만날 수 있는 활로가 없다고 하지만, 그건 해외 사례의 베이비박스만 알고 있어서이다.
편견과 부정적인 입장이 있다고 하면, 한 번이라도 서울시 관악구 난곡로에 설치된 베이비박스에 직접 와서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야 할 터인데, 그들은 텍스트만 잃고 판단하는 것에만 그치는 것이 과연 아동복지 전문가라고 스스로 자처하는 이들의 옳은 판단인지 되묻고 싶다.
한국형 베이비박스는 친생부모들의 정보와 아기의 기록을 남겨두고 있다. 다만, 주사랑공동체교회는 종교기관이고 국가의 지원 없이 운영되는 곳으로서 국가에 정보를 제공할 의무가 없다.
이렇게 남겨두는 이유는 상담을 통해 자리에서 마음이 바뀌어 아기를 다시 키우기로 결심한 가정 외에도 몇 개월이 지나 마음을 돌이켜 아기를 다시 찾고 싶을 때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서이다. 또한, 아기들이 성인이 된 후 친생부모를 찾고 싶다고 한다면 서로의 동의하에 만날 수 있는 활로를 열어주기 위해서이다.
베이비박스에서는 상담이 이루어지는 동안 상담사는 친생부모의 가슴 아픈 사연에 진심으로 공감하며 치유와 성교육을 병행한다. 그런 후에 아이를 위해 기도할 수 있는 부모가 될 수 있도록 전도하고 아이를 다시 키울 것을 제안하고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을 설득한다. 그렇게 30% 이상이 아이들은 다시 친생부모의 품으로 돌아간다.
주사랑공동체 베이비박스는 아이를 데리고 다시 돌아간 가정에 베이비케어키트(1:1 맞춤형 양육키트)와 필요시 생계비, 병원비를 지원하고 개인회생, 취업 및 자격증 교육 등을 연계기관과 협력하여 지원하고 있다.
전 세계 18개국 이상 베이비박스 운영 국가 중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상담하고 지원하는 곳은 대한민국 주사랑공동체 베이비박스가 유일하다. 하지만 베이비박스를 운영하면서 안타까운 일은 생부모 품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시설로 갈 수밖에 없는 아이들의 제도적 환경이다.
‘헤이그국제아동입양협약(이하 ’헤이그협약‘)’에서는 불가피하게 생부모 품을 떠나게 된 아동의 경우 국가는 시설보호에 앞서 가정보호가 신속하게 이루어지도록 권고하고 있다. 위탁이나 그룹홈을 가정보호의 유형으로 분류하기도 하지만 미국이나 유럽에서 위탁과 그룹홈은 시설로 분류된다. 또한 시설이나 그룹홈은 만 18세라는 한시적 가정보호에 해당되지만 입양은 모든 인류가 공통으로 인정하는 유일한 영구적인 가정보호 형태다.
현재 101개 국가가 가입되어 있는 헤이그협약에서는 국내입양, 국외입양 순으로 입양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모든 아동의 가정에서 자랄 권리’는 모든 문명국가가 동의하는 아동권리의 지표 중 하나이다.
그러나 입양촉진법이 폐기되고 입양특례법이 시행된 2012년 8월 이후 우리나라는 보호아동이 발생할 경우 다른 가정보다 시설로 갈 확률이 훨씬 높아져 버렸다. 간단하게 표현하면 ‘시설 문은 넓어지고 입양 문은 좁아졌다.’ 베이비박스 아동의 입양률이 두 자릿수조차 기록하지 못하는 이유는 유기 아동에 대한 입양대책이 현행법에서는 전무하고 주무부처에서조차 손을 놓고 있기 때문이다.
해외 베이비박스의 사례를 보면 아이의 입양은 신속하게 이루어진다. 문화와 제도 차이를 감안해도 보호아동의 가정보호에 모든 사회적 자원이 자연스럽게 동원되고 이해되기에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10대 경제대국이자 OECD 국가인 대한민국의 가정보호 정책은 오히려 아동 최우선의 원칙에 반하는 역행을 하고 있다. 신속한 입양이 중요한 이유는 신생아와 구강기 아동의 애착형성이 그 아동의 전 삶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주사랑공동체 베이비박스에 보호된 아이의 입양 완료까지의 행정처리 과정은 모두 7단계를 거친다. 베이비박스, 파출소(지구대), 구청, 병원, 일시보호소, 보육원, 입양기관에 이어 입양가정으로 이어지기까지 아이는 계속 낯선 환경에 반복해서 노출된다. 아동 최우선의 이익이 아닌 한국 공적 시스템에서 고질적으로 나타나는 행정중심의 아동 보호체계인 셈이다.
가정이 아닌 시설에서 자란 아이들의 성장은 보편적인 발달과정과는 결을 달리한다. 비록 복지시설에 대한 투자와 아동인권의 신장으로 과거와는 다른 가시적인 변화가 있다고는 해도 근본적으로 집단생활 속에 묻힌 개인의 자존과 한 인간으로서 보장받아야 하는 모든 사적 공간 및 소유에 대한 몰이해의 성장과정은 퇴행적으로 나타난다.
게다가 일반 가정에서라면 한창 부모님의 보호 아래 성장하고 교육받아야 할 18세에 지방자치단체에서 자립비용이라고 주는 단 돈 500만 원을 손에 쥐여주고 시설에서 강제 추방시키는 비정한 우리 사회다.
베이비박스에 보호된 아이 중 30%의 아이가 원가정으로 돌아가 부모의 따뜻한 사랑 안에서 다시 성장을 시작한다. 남은 아이들 중 입양을 통해 새로운 가정을 만난 아이는 10%도 채 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입양이 아닌 시설에서 보호되고 있고 그 수가 천여 명을 훌쩍 넘겨버렸다. 이 아이들의 삶에 엄마 아빠는 단어로만 존재하는 만질 수 없는 홀로그램이다.
아동 최우선의 이익이라는 근사한 말이 아니라도 국가의 제도와 정책은 행정이 아닌 사람 중심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그런데 유독 입양을 제도와 정책으로 틀어막아 아이가 가정에서 자랄 수 없게 만드는 나라가 되어버렸다. 우리나라가 세계 10대 경제대국이고 세계를 선도하는 OECD 국가임을 자랑하기 전에 스스로 반성하고 부끄러워해야 한다.
“모든 아동은 가정에서 자랄 권리가 있다.”는 문명사회의 보편적 가치조차 우리 사회는 지켜내지 못하고 있다. 행정 편의적으로 설계된 후진적인 제도와 정책이 굳건하게 자리 잡고 있고 그걸 뜯어고칠 의지와 성찰이 부족한 사회에서 요구되는 건 이 정부가 그토록 강조하는 사람 중심 아동 중심에 대한 진지한 자기반성이 먼저다.
어른들의 이기적인 판단으로 정치적 대립, 좌우이념, 옳고 그름의 가치를 계산하고 판단하는 순간 아동은 지금도 소외되고 있다.
현장에 있는 전문가들은 알고 있다. 현재의 딱딱한 정책과 제도 안에서도 행정이 조금만 유연성을 발휘하면 베이비박스 아이들 중 절대적인 수가 입양으로 새로운 부모를 만나 가정에서 자랄 수 있다는 사실을...
대한민국의 미래가 곧 아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