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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데가르트 섭정황태후의 시대는 후세에 '평화와 통합을 추구한 안정의 시대'로 여겨진다.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은 1세기 반에 걸친 동란의 시대를 마감하고 통일시대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러나 정작 그 자신은 본격적인 통합의 시대를 구상하여야 할 타이밍에 사망했다. 라그랑 그룹의 사례를 보듯 통합의 시대를 열어야 할 시대에 지도자가 부재하게 되면 그 체제에는 위기가 올 수 밖에 없다. 심지어 이 체제를 떠받치던 이가 라인하르트였으니 더더욱.
그럼에도 힐데가르트는 라인하르트가 생전에 뽑아놓은 인재들을 그대로 신뢰하며 그러한 시대를 이끌었다. 그 시대에 힐데가르트가 추구한 가치는 평화, 안정, 통합이었다. 오랜 동란의 시대를 평화와 통합을 안정시키겠다는 것이 그녀의 목적이었다. 그리고 이 시대에 당시 사람들 중에는 진심으로 혹은 체념적으로 받아들이는 이들도 많았다.
제국 신민들의 경우, 당연히 이 시대를 환영했다. 셋으로 쪼개진 우주가 결국은 제국을 중심으로 재통합된 것에 대한 자부심은 물론 오랫동안 이어진 전란 속에서 제국 신민들은 징병과 높은 세금이 부과되어 고통받았는데 모든 전쟁이 끝났으니 더이상은 전쟁을 위한 막대한 군 규모와 군비를 유지할 이유가 없었기에 제국 신민들은 당연히 환영이었다.
동맹 시민들은 상대적으로 체념적인 기류가 강했다. 조국이 멸망해서 분노한 동맹 시민들이 대다수였지만 제국이 한발씩 물러나며 양보를 하면서 동맹 시민들은 동맹 시절에는 못미칠지언정 그렇다고 역사속에서 배워오던 골덴바움 왕조의 폭정이나 직접 겪어본 구국군사회의의 폭정과는 비교도 안 되는 선정에 어느정도 만족하기 시작했다.
거기에다 동맹은 제국령 침공작전 이전부터 국가 전방위적인 문제점이 발생하여 제국령 침공작전과 구국군사회의 쿠데타 이후에는 그 수준이 매우 심각해졌고 바라트 화약 이후에 이르면 동맹의 국가시스템은 마비 직전에 이르렀고 이로 인해 벌어지는 고통은 오로지 민중의 몫이었다. 동맹 이후로도 각지에서 벌어진 사건사고들은 동맹 시민들의 저항심리와는 별개로 설사 조국이 재건되더라도 그것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겠냐는 것에는 난색을 표하게 만들었으나 제국이 안정적으로 통치하면서 사회적인 문제점들과 해소되었으며 제국에서도 동맹의 민심을 잡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므로 결국 동맹 시민들이 완전히 제국에 굴하지는 않았을지라도 '지켜보자'는 심정으로는 어느정도 제국을 따르며 새 시대에 적응해나갔다.
반면 페잔인들은 처음엔 그들에게도 동맹 시민들이 그렇듯 망국의 감정이 있었고 특히나 한 수 낮게 보던 제국이 페잔을 통치하게되었다는 것에 불쾌히 여긴 이들도 많았다. 그러나 한편으로 평화의 시대가 열리면서 과거에도 페잔 회랑은 수많은 민간우주선들이 왕래하며 페잔의 폭발적인 성장을 견인했지만 이 시대에 이르자 더이상의 전란의 걱정이 없어지고 제국-동맹의 왕래를 제한하던 장벽들이 대다수 사라지자 페잔은 우주공항마다 입항을 기다리는 우주선들로 미어터질 정도로, 지난 100년간의 성장보다 더한 고속 성장을 이뤄나갔다.
망국의 심정과 경제적 풍요 속에서 돈이 최고 가치인 페잔인들이 페잔인들이 선택한 것은 결국 옛 페잔 자치령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새 제국에 적극 협조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시간이 조금 걸리긴 했지만 결국 제국은 페잔에서도 구 제국령 못지않은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시대에는 제국과 동맹간에 단순한 경제적 교류 외에도 다양한 분야의 교류가 이어졌다. 동맹령과 제국령이 떨어질 수 없도록 하기 위한 목적에서라지만 제국에서는 의도적으로 양 지역의 다양한 분야에서의 교류가 이어지도록 유도했고 그 결과 제국의 앞선 기술력이 동맹령으로 유입되며 동맹은 빠른 복구와 발전을 이루어낼 수 있었고 반대로 제국령은 동맹의 사상을 접하며 은하연방의 우민에서 크게 달라진 것 없는, 어찌보면 그보다도 더 퇴보한 제국시민들의 의식을 개선시켜 나갔다.
힐데가르트는 특별히 성장과 발전을 최고의 가치로 추구하지 않았다. 힐데가르트 자신은 아직은 신체제에 필요한 것은 평화와 통합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인 안정을 이끌어내면서 굳이 성장과 발전을 위해 전력투구를 하지 않더라도 자유행성동맹 초기에 맞먹는 경이로운 성장가도를 달릴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신체제에서 뜻밖의 혜택을 본 곳도 있었다. 바로 지구. 지구통일정부의 멸망이래 인류사회로부터 변방중의 변방으로 여겨지며 아무런 관심도 받지 못하던 지구는 지구교가 본격적으로 활동을 하면서 아주 잠깐 관심을 받았지만 곧 관심 밖에서 내쳐졌다. 제국에서는 지구교의 부활을 막기 위해서 제국군을 파견해 진주하게 하였을 뿐 다른 과제들이 많아 특별히 지구에 관심을 가지지 못했다.
그러나 지 지구주둔 제국군을 중심으로 하여 지구 현지의 열악한 사정이 보고됨과 함께 지구에 간직되어 있던 만 1600년도 더 된 옛 유산들이 재발굴되며 지구교때와 다른 의미로 관심을 받을거리가 생기기 시작했다. 여기에 도미니크 여사의 증언, 붙잡힌 지구교도들의 증언, 이제르론 공화정부측에서 넘긴 지구교의 비밀들을 통해 이들이 지구통일정부의 멸망 후 그 시절의 영광을 잊지 못하지만 모두가 지구를 잊어버리자 (표면상) 이에 원한을 품고 그 시대를 재현하고자 세워진 것이 지구교라는 사실에 900년의 원한이 이러한 무서운 일을 벌였다는 것에 놀란 제국은 뭔가 지구, 정확히 지구 거주민들을 달래줘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여겼다.
제국 입장에서 가장 편한 선택지는 아마도 지구 거주민들을 모두 타지로 이주시키는 것이다. 지구를 텅텅 비워버린다면 다시는 아무도 지구를 기억하지 못할테고 그들이라면 모를까 그들의 2세, 3세는 정말 비참한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모를까 그러지 않는다면 지구 외의 생황에 익숙해져 딱히 지구에 미련을 가지지도 않을 테니까. 그리고 전제군주제 국가인 제국이 그것을 하지 못하 이유는 없었다.
그러나 골덴바움 왕조라면 모를까 로엔그람 왕조는 대부분의 기간동안 원칙상 가진 힘에 비해 실질적이 힘이 적었던 골덴바움 왕조와는 달리 실질적으로 가진 힘은 오히려 더 컸음에도 오히려 힘을 합리적으로 휘두르려 했으므로 강제이주는 생각하지도 않았다. 게다가 대부분의 거주민들이 지구교 통치하에 있었던 만큼 오히려 이들을 무리해서 이주시켰다가는 이들이 지구교를 전도하여 완전히 소탕한 지구교가 부활할 우려도 있었다.
그래서 제국은 지구 거주민들을 이주시키는 대신 은하연방 시절부터 공식적으로 방치하다시피한 지구를 다시금 관리하며 지구 거주민들을 지원했고 여기에 마침 발견된 사실상 고대의 유산들을 재발굴하고 연구하는 작업을 지원, 확대하여 그 과정에서 인류의 발상지인 지구를 띄워주어 기억하는 한편 겸사겸사 자연스레 그 지구를 (명목상) 쭉 통치하고 있던 제국의 정통성을 높이고자 하였다.
때문에 힐데가르트의 시대에 지구 역시도 격변을 맞이하게 되었다. 물론 지구 거주민들은 처음엔 이런 외부자들을 매우 불쾌하게 생각했다. 비록 이들은 지구교 광신자들은 아니었을지언정(그런 자들은 모두 지구교 총본산에서 죽었다.) 지구교가 설파한 역사관에는 깊이 공감하고 있었으므로 이제 와서 다시 돌아온 자들이 좋게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구는 자원고갈로 자체적인 생산능력이 매우 떨어지는 상황에서 그나마 1천만의 인구를 유지할 수 있던 이유는 인류사회에 깊이 뿌리박혀있던 지구교 덕분이었는데 그 지구교마저 붕괴되어 앞날이 막막하던 상황에서 제국의 지속적인 지원과 지구에서 연구하고자 많은 이들이 방문하며 이들을 대상으로 한 여러 사업이 발달하고 흥하며 지난 1천여년의 시간동안 이어지던 기나긴 침체를 깨고 상당한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비록 그 성장이 지구통일정부 시절만큼은 아니었지만 그 시대의 성장이 비정상적이었음을 감안하면 특별히 못한 성장이라고 할 수 없었다.
때문에 제국은 지구인들의 머릿속에서 지구교를 완전히 지워버리고 지난 900년동안 묵혀진 지구의 원한 또한 정화시킬 수 있었다. 이는 지구인들도 전 우주를 지배한 제국이 자신들을 계속 지원하는 모습과 전 우주에서 지구의 고대문명을 발굴, 연구하며 지구를 기억하려는 모습을 보며 옛 영광이 되찾아온건 아니라도 그래도 나름 만족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제국에서 의도치 않은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지구의 고대문명이 발굴되면서 옛 시대의 특이한 문화양식과 문명들이 드러났고 이것이 민간인에게도 알려지면서 큰 관심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전까지 인류사회는 지구통일정부 이전의 역사는 잘 기억하지 못하며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지도 않았다. 이는 은하계의 1/3에 달할 정도로 광활한 인류사회 속에서 지구라는 좁디좁은 곳에서 벌어진 역사는 너무나 하찮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구통일정부로부터 현재까지 은하연방, 골덴바움 왕조, 자유행성동맹 정도를 빼면 제대로 된 시대를 연 국가가 없는 관계로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역사적 재현(리인액트먼트)에 대한 욕구나 다양한 옛 문화나 문명에 대한 추구를 만족시킬 수가 없었다. 심지어 골덴바움 왕조는 자신들의 가치만을 최고로 쳤기에 그 이전의 시대인 지구통일정부나 은하연방에 대한 역사에 관심이 적었고 자유행성동맹은 인류사회의 정통성을 위해 자신들 이전의 역사(정확히는 골덴바움 왕조 전까지)를 가르치는데 적극적이었지만 그 시대의 유산을 가지지 않은 관계로 그저 그런게 있다는 것만 가르쳤지 그 이상의 행위를 하지 못했다.
그런 그들에게 수천년간 지구에서 꽃피워진 문명들의 잔재는 엄청난 자극이었다. 순식간에 13일 전쟁 이전 시기의 지구의 문화가 유행처럼 퍼져나갔고 이러한 복고풍이 시대의 트렌드가 되었다. 특히 이러한 현상은 지구와 가까웠던 구 제국령 지역에서 활발했는데 거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비록 인류사회는 제국을 중심으로 통일되었지만 제국 신민들은 언짢아했다. 분명 인류사회를 통일한 것은 자신들이었던만 제국 정부는 상대적으로 페잔이나 구 동맹령 등에 관심을 더 가졌기 때문으로 이는 구 제국령에서의 제국에 대한 지지는 확실했지만 페잔과 동맹에서는 그렇지 못했던 제국의 숙명이었지만 이러한 점을 이해하지 못하는 제국 신민들 입장에서는 소위 나, 아빠, 엄마가 있는 가정에서 어느날 아빠와 엄마가 동생 둘을 입양했는데 친자인 나보다도 더 잘대해주는 식의 현상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여기다가 페잔, 구 동맹령과의 교류가 활발해지며 삼국 중에서 제국이 가장 사회적 시스템이나 제도적 시스템이 약한 국가였다는 것이 드러나게 되어(정확히는 골덴바움 왕조) 제국 신민들은 설사 기존 체제에 익숙해져서 막연히 옛 골덴바움 왕조를 지지하던 노인 세대마저도 구 체제에 완천히 환멸하게 만들 정도였다.
심지어 제국은 수도마저 페잔으로 옮겨버리고 그나마 몇몇 주요 국가행사는 구 제도인 오딘에서 열곤 했으나 시간이 지나며 이마저도 줄어들며 제국 신민들은 자신들만이 특별히 가질 자부심이 없어져갔다. 페잔은 자유상인으로서의 자부심이 동맹은 자유시민으로서의 자부심이 지구는 인류 발상지로서의 자부심 있지만 제국은 옛 시대라면 '신성불가침하신 황제폐하의 충실한 신민'이라는 자부심을 (제국 정부가 강요하는 형태로) 가질 수라도 있었겠지만 모두가 제국이 된데다 제국이 이들간에 차등을 두지 않은 만큼 그들이 특별히 가져야 할 자부심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지구의 가치가 떠오르면서 그러한 지구를 품고 있던 국가들, 그리고 그 마지막에는 제국이 있음이 부각되어 구 제국령의 신민들은 자신들이 인류문명의 적통임을 자부할 수 있게 되었고 이는 지구에 대한 막대한 관심으로 이어져 지리적으로 가깝다는 이점도 물론 있었지만 어쨌거나 페잔이나 구 동맹령보다도 구 제국령에서 지구 복고주의가 유행하는 결과를 가져다주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일부 사람들이 지구를 추앙하기 시작했고 그에 대한 추앙이 점점 올라가다 마침내 극에 달하자 지구 자체를 하나의 신으로서 여기는, 흡사 이전의 지구교와 유사한 종교가 탄생하게 된다. 그들은 자신들을 'Mutter Erde(어머니 지구)'라 하였으며 자신들처럼 지구를 극도로 추앙하는 자들을 상대로 전도를 행하였고 이에 따라 어머니 지구의 신자는 급증하였다.
이러한 행보는 제국 수뇌부들로 하여금 지구교의 부활로 여겨 극초반기에 이 운동은 제국으로부터 한 차례 탄압을 당하기도 했다. 제국 수뇌부들은 지구교로 인하여 크게 데여보았던 만큼 결코 지구교를 용인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단 한번뿐이었지만 탄압은 꽤나 거셌다.
하지만 지구교와 어머니 지구는 달랐다. 지구교는 어디까지나 철저히 지구인들을 중심으로 세워진 반면 어머니 지구는 구 제국령 신민들을 중심으로 세워진 만큼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선 반 제국 행위를 서슴지 않던 지구교와는 달리 어머니 지구는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어머니 지구의 수뇌부들도 지구교라는 집단이 저지른 일을 참고하여 반국가적인 일을 행하지 않고 조용히 전도를 행하며 자기네들의 지구 숭배에 대한 자유만 보장된다면 다른 것은 요구하지 않기로 했다. 오히려 신자들 중에서는 제국이 지구를 지배하는 만큼 제국은 지구의 수호자이며 제국의 정점인 황제 역시도 지구의 수호자이니 제국과 황제는 지구처럼 신앙의 대상은 아닐지언정 공경의 대상으로는 여겨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많았다.
때문에 이들의 실체를 파악한 제국은 결국 어머니 지구의 존재를 인정하고 이들의 전도 또한 허용하기로 정했다. 사이비 종교에 가까웠던 지구교와는 다르게 어머니 지구의 경우 아직 성립 초기단계라서 수뇌부 간에도 구체적인 교리가 없었지만 그래도 그들의 모든 주장들을 총합하여 보면 거의 대부분 반사회, 반국가적인 색체가 담겨있지 않았으며 비록 지구 만세로 귀결되긴 하지만 그들 나름대로의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비신자들이 보기에도 나름대로 합리적인 새 시대의 모델을 제시하는 등 계몽적인 면도 제법 있었다. 그래서 제국도 특별히 문제를 저지르지도 저지를것 같지도 않은 이들을 탄압해 자신들이 진짜 우려하는 제2의 지구교로 만들어 버리느니 오히려 인류사회 어딘가에 남아있는 지구교의 잔재마저 없애버리기 위해 어머니 지구를 밀어주었다.
이 때문에 힐데가르트의 시대의 분위기는 제국에서 지향하는 평화와 통합 속의 안정, 그 안에서는 구 제국령을 중심으로는 옛 지구 문명과 문화가 발굴되며 생겨난 복고풍과 그에 따른 어머니 지구의 발생과 확산이 구 동맹령을 중심으로는 오랜 피폐를 걷어내고 나름대로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의 사회재건이 그리고 인류가 통합되는 과정에서 그 성장가도에 적극적으로 올라타려는 페잔인들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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